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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명절 연휴를 불과 이틀 앞두고 한국GM은 군산공장 폐쇄 결정을 서둘러 발표했다. 지난 몇 년 동안 꾸준히 제기된 위기설과는 달랐다. 어떤 이는 한국GM이 '잔인한 방식'으로 폐쇄를 발표했다고 말했다. 노동운동 관련 대화방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돌기도 했다.

"외국 임원들이야 설 명절이 그냥 쉬는 날이지만 노동자들은 가족, 친지들과 함께 보내는 날이다. 더욱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발표가) 이슈가 되어 한국 정부도 압박하면서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기 가장 좋은 날을 정한 것이다."

 지난 14일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군산지회는 공장폐쇄 철회를 요구하는 결의대회는 군산공장 내에서 열었다.
 지난 14일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군산지회는 공장폐쇄 철회를 요구하는 결의대회는 군산공장 내에서 열었다.
ⓒ 문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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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일 금속노조 한국GM지부 군산지회가 개최한 공장 폐쇄 규탄 결의대회에 비정규직노동자들은 참석하고 싶었지만, 사측의 제지로 함께하지 못했다.
 14일 금속노조 한국GM지부 군산지회가 개최한 공장 폐쇄 규탄 결의대회에 비정규직노동자들은 참석하고 싶었지만, 사측의 제지로 함께하지 못했다.
ⓒ 문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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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GM의 경영 전략에 따라 군산이 신차 생산에서 제외된 지난 2013년부터 한국GM의 위기론은 꾸준히 불거졌다. 위기론이 등장하고 구조조정이 시작되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일터에서 떠나야 했다. 군산공장은 위기론의 중심에 있었다. 2014년에는 물량 감소를 이유로 하청업체와 도급 계약을 해지하면서 약 360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떠났다.

2015년 초에도 같은 이유로 약 500여 명의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떠나야 했다. 같은 해 7월 말에는 하청업체 구조조정이 이뤄지면서 약 500여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이제 한국GM은 공장 폐쇄라는 카드를 꺼냈다. 비정규직에게 향했던 해고의 칼날이 이제 정규직에게도 향하고 있다.

14일 오전 11시. 군산공장 내에서 열린 군산공장 폐쇄 철회 결의대회에 참가한 군산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정문을 나섰다. 그들의 표정으로는 군산공장 폐쇄라는 참담한 현실을 읽어내기 힘들었다. 어쩌면 장기간의 걸친 위기설에 적응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GM 군산공장 동문 앞에 비정규직지회가 설치한 현수막
 한국GM 군산공장 동문 앞에 비정규직지회가 설치한 현수막
ⓒ 문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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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GM 군산공장 동문 앞에 비정규직지회가 설치한 피켓
 한국GM 군산공장 동문 앞에 비정규직지회가 설치한 피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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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이 조업 없이 결의대회를 마치고 난 뒤, 군산공장 앞에는 "임박한 위기, 가만히 있다간 당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한국GM 군산비정규직지회가 설치한 현수막이다. "경제 위기 진짜 주범, 재벌이 책임져라"는 내용의 피켓도 현수막 옆에 자리하고 있다.

비정규직지회 노동자들은 '함께 살자'는 몸 자보를 등 뒤에 항상 붙이고 다닌다. 함께 살자. 해고되고 지난 3년 동안 세상에 외친 구호다. 이제는 8명만 남은 싸움. 군산공장 비정규직지회는 공장 폐쇄를 앞두고 마음이 복잡하다. 위기설이 터질 때마다 비정규직들이 자리에서 밀려났다. 부평, 군산, 창원까지 한국GM 공장 내 비정규직들은 언제나 위기의 꼭짓점 위에서 위태롭게 버텨내고 있다.

 김교명 금속노조 한국GM 군산 비정규직지회장
 김교명 금속노조 한국GM 군산 비정규직지회장
ⓒ 문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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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인정받은 정규직, 공장 폐쇄라는 현실"

"3년 만에 처음이었어요. 제지를 받지 않고 공장 안으로 들어간 것은요. 3년 만에 살아서 들어가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게..."

14일 오후에 만난 김교명 군산비정규직지회 지회장은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 군산공장 폐쇄가 발표된 13일. 한국GM 부평, 군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초국적기업 GM을 상대로 소송에서 이겼다. 3년 만이다.

'원고들이(한국GM 부평, 군산 비정규직지회) 피고의(한국GM) 근로자임을 확인한다.'

인천지법 제11민사부는 한국GM 부평, 군산 비정규직지회 소속 노동자 45명이 제기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김 지회장은 판결을 듣기 위해 인천지법으로 가는 길 위에서 군산공장 폐쇄 소식을 접했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어요. 그래도 7월 정도에 이와 비슷한 발표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글로벌GM이 이렇게 선수를 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죠. 설 연휴가 되면, 가족들이 다 모이잖아요. 그때 당연히 GM 이야기가 나오게 될 것이고, 정부도 압박을 느끼지 않을까요? 다 계산된 행동이라고 봐요. 군산공장이 (한국 정부를 향한 겁박의) 희생양이 되었죠."

김 지회장은 이 이야기를 꺼내며 '상도'라는 말을 꺼냈다. 장사꾼이 적어도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라는 표현의 '상도', 설 명절을 앞두고 폐쇄 결정을 발표한 것은 그 도리를 어긋난 것이라고 봤다.

"설을 앞두고 폐쇄 발표를 했다는 것은 노동자를 감정이 있는 사람으로 본 것이 아니라 일만 하는 기계로 봤다는 거예요. 1회용품처럼 필요하면 뽑아서 쓰고, 상황이 나빠지면 버리는... 그것도 잔인하게 말이죠."

 지난 2015년 여름, 한국GM 군산공장이 대규모로 비정규직 해고를 단행하자 비정규직지회는 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지난 2015년 여름, 한국GM 군산공장이 대규모로 비정규직 해고를 단행하자 비정규직지회는 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 문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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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 쓰다가 필요가 없으면 버려지는 그런 기계. 해고를 앞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흔히 쓰는 표현이다. 파견법에서 정한 2년 고용 기한이 다가오면 해고되는 비정규직. 해고는 언제나 '계약 만료'라는 이름으로 찾아온다. 마치 사용자는 정당하게 고용의 의무를 다 했고, 해고는 이미 계약 전에 예정된 것처럼 말이다. 김 지회장을 비롯해 군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난 3년 전 이 같은 일을 경험했다.

"2009년 입사해서, 레조, 올란도 등 GM에서 잘 팔리는 차들을 만들었어요. 정규직과 같은 컨베이어에서 일을 했습니다. 한국GM의 지시를 받아 차를 만들었어요."

김 지회장을 비롯해 비정규직 동료들은 2015년 2월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한국GM이 직접 명령을 했고, 한국GM의 지휘를 받아 자동차 생산 공정에서 2년 이상 일을 하였기에, 파견법에 따라 직접 고용하라는 소송.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해고였다. 같은 해 7월, 군산공장은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10개의 하청업체를 2개로 줄이며, 기존에 일한 비정규직 노동자들 중 선별적으로 신규채용 형태로 고용한 것.

'군산공장의 위기'가 언론과 지역 여론을 통해 확산되던 시점이었다. 그들은 희생양이 됐다. 전북도청, 군산시청 등 지자체와 상공회의소 등 지역의 경제단체는 '차 팔아주기' 행사로 한국GM의 마음을 잡고자 애썼다. 그리고 군산공장에서 신차 생산을 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군산시청을 비롯한 지역사회는 현수막을 내걸며 환영했다. 그 현수막을 보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마음이 찢어졌다.

 2015년 6월, 한국GM 군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받은 해고통보서
 2015년 6월, 한국GM 군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받은 해고통보서
ⓒ 문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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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기 500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계약 만료'라는 이름으로 해고됐다. 그리고 지방정부는 비정규직지회의 소송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환영 현수막을 철거했을 뿐이다.

"3년 만에 살아왔다, 비정규직 외면하지 말아 달라"

군산 비정규직지회 노동자들은 해고 이후의 삶도 척박했다. 일부 동료들이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투쟁을 도왔다. 이들이 내는 약간의 생계비와 일부의 후원으로 군산비정규직지회는 버티고 또 버텼다. 그렇게 버틴 것이 벌써 963일(14일 기준)을 넘겼다.

 한국GM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천막 농성이 1000일을 바라보고 있다.
 한국GM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천막 농성이 1000일을 바라보고 있다.
ⓒ 문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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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고 기다리던 법의 판단을 받았지만, 마냥 기뻐하지 못하고 있다. 14일 오전, 김 지회장은 3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GM 군산공장을 경비의 제지 없이 들어갔다. 그동안 정규직노조 이·취임식에 초청받아 들어간 것을 제외하고는 처음 있는 일. 당시에도 그는 정규직노조의 마중 없이는 군산공장을 들어갈 수 없었다.

5년의 정든 일터. 기름밥과 함께 회사의 차별도 견뎌내야 했지만, 그래도 그의 삶을 이어가게 만들었던 일터. 투쟁 끝에 비로소 홀로 공장에 설 수 있었다.

"지회장님, 판결 받았다면서요."

군산공장 앞에서 매번 눈치싸움을 해야 했던 경비요원들도 이날만큼은 그동안 수고했다는 의미의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비정규직 해고 투쟁하면서 어떻게 보면 가장 기쁜 날이어야 했어요. 2년 이상 너희들이 우리를 고용했기에, 우리는 정규직이라고 호소할 때면, GM측은 '판결을 가져와야 정규직으로 인정을 하든지 하지요'라는 식의 답을 했어요. 그 답에 이제 다시 답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김 지회장은 3년 만에 살아서 돌아왔노라고 외치고 싶었다. 공장 안에서 시원하게 GM을 상대로 욕이라도 퍼붓고 싶었다.

"3년 만에 공장에 들어왔는데, 암담했습니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다 모여서 공장을 살려내라고 외치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저는 함께 살자는 말을 속으로 외쳤습니다. 이 모든 것이 꿈이었으면 좋겠습니다."

3년간 이날만을 기다렸다. 승소를 하면 공장 안에 들어가 금속노조 한국GM지부 집행부와 논의를 하여 복직을 추진하고자 했다. 마침 노조의 단협 기간. 법의 판단은 복직 협상에 있어서 훌륭한 무기가 된다. 그러나 비정규직지회는 그 부푼 기대를 뒤로 하고 다시 투쟁을 시작해야 하는 처지다.

법은 그들을 '한국GM 노동자'라고 인정했지만, 같은 날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 발표에 모두들 제대로 축하 인사도 하지 못했다. 14일 오전 열린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철회 조합원 결의대회, 그를 제외한 다른 비정규직 동료들은 함께하지 못했다.

"전날 한국GM지부 군산지회에 결의대회 참여의 뜻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정중히) 거절을 하더군요. 조합원들끼리 하기로 했다며, 이번에는 들어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한국GM의 위기는 이미 3년 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쫓겨날 때부터 제기됐다. 비정규직지회는 조심스럽게 당시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를 강조했다. 지난 2015년 5월 해고를 앞에 둔 군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인터뷰에서도 원·하청 연대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 다음은 정규직입니다. 현실만 지키려다가 더 많은 것을 내줄 수밖에 없어요. 작년(2014년)에 1교대를 합의해주니, 올해(2015년)는 물량 생산 축소를 요구하잖아요. 이 상황을 답답해하는 정규직 조합원들도 있어요. 자본의 습성이 그렇잖아요. 하나 내주면 더 줘라, 더 줘라. 이제 답을 찾아야 합니다." <2015년 군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 인터뷰 중에서>

3년이 흐른 지금, 김 지회장은 상황이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서 물량을 확보한다고 해도 그것은 1년 치 물량입니다. 이제 군산, 부평, 창원을 경쟁시키겠지요. 공장 내 원·하청이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군산공장 폐쇄 철회 조합원 결의대회에서 하고 싶었던 말이다. 함께 지혜를 모아보자는 이야기를 결국 꺼내지 못했다.

 한국GM 군산 비정규직지회는 적은 인원으로 매주 수요일 군산의 번화가에서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GM 군산 비정규직지회는 적은 인원으로 매주 수요일 군산의 번화가에서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 문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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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자는 구호를 이제 실현해야 합니다"

김 지회장이 이번에 승소한 판결 자료를 건네며 다시 말을 꺼냈다.

"3년 전에 노조를 설립하고 2개월 만에 해고가 되었습니다. 만약 당시 노조를 만들지 않고 소송만 했다면 절대 이렇게 판결이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현장 검증(동영상으로 대체) 등 승소에 필요했던 기초 자료들도 투쟁으로 얻어냈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다른 직장 생활을 했다면 사법부가 이 같이 판결을 내렸을까요?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도 그렇고 모든 판결을 힘든 탄압을 견뎌내고 얻어낸 것입니다. 쟁취한 것이죠."

축하받지 못한 승소. 한국GM 노동자라는 지위 확인. 이제 이들은 두 개의 싸움 앞에 목도했다. 하나는 법 판단에도 불구하고 일터로 돌아가지 못했기에 3년 전부터 해온 비정규직 투쟁. 다른 하나는 원·하청 차별 없이 하나 되어 자본 철수(먹튀)를 시도하는 GM자본을 상대로 한 투쟁.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3년을 버틴 비정규직 노조 지회장은 어려워도 원·하청의 연대를 반드시 이뤄내서 투쟁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 하나 살자고 다른 것을 버리면 결국 시민도 호응하지 않아요. 비정규직도 함께 살아갈 방식을 지금이라도 고민해야 합니다. 함께 살자는 말이 지금 모두에게 필요한 말입니다."

그리고 행정 당국에게도 호소했다.

"군산시청과 전북도청, 정부도 비정규직을 외면하는 방식의 방안을 내놓아선 안 됩니다. 그동안 그렇게 해왔고, 결국 여기까지 왔습니다. 좀 더 멀리 보고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북인터넷대안언론 참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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