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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드세요."

전북 김제 모악산 귀신사(歸信寺) 공양 간. 점심 공양 상을 물려 내자, 비구니 스님께서 쟁반에 받쳐 물을 냅니다. 갑자기 만난 인연에 그저 감사할 뿐! 전생에 지은 공덕이 있음을 봅니다. 물을 들이키면서 "각자 놓인 상황에 따라 인식이 다르다"던 송담 스님 말씀을 떠올립니다.

"물은 목마른 인간에겐 마시는 '물'이요, 물고기에겐 삶의 터전인 '집'이요, 천상계 신들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빛나는 '유리'요, 지옥 중생이 마시면 '불'로 변한다."

물, 집, 유리, 불. 이 중 어느 곳에서 보는 게 '참'인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무심한 '나'만 있을 뿐. 모악산 귀신사 무여 스님과 앉아 잠시 지나온 삶과 되돌아봅니다. 특히 해탈 '발심' 이후 3개월 여 동안 '참 나'를 찾기 위해 정진했던 때를 돌이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깨달음에 들기 위한 과정과 인연으로 여겨집니다.

번뇌와 해탈이 하나이듯 승과 속도 하나

 옆에서 본 김제 모악산 귀신사 대적광전입니다. 보이는 그대로가 보물입니다.
 옆에서 본 김제 모악산 귀신사 대적광전입니다. 보이는 그대로가 보물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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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길에 서기로 발심했습니다."
"절에 들어가 도 닦으려는 건 아니지?"
"번뇌와 해탈이 하나이듯, 승과 속도 하나. 도는 시공을 초월한 경계에 있는 법."
"큰 공부하는 아우님의 길이 잘 이뤄지길."

지난해, '도 닦기'에 돌입했습니다. 이를 뒤늦게 주위에 알렸더니, 우려 반 기대 반. 어떤 분은 "깊은 성찰을 수반하는 수도자적 발자취에 경이로움을 느낀다"고 격려했습니다. 또 다른 분은 "득도하면 나에게도 꼭 알려주시게" 하며 기대에 찬 시선이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침묵. 압니다. 그 침묵 속에 '도 닦기가 쉬운 줄 알아?' 혹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는 '어딜 감히~' 라는, 부정이 많이 섞여 있음을.

하지만 홀로 아는 게 있습니다. 그건 인간으로 태어난 인연의 굴레입니다. 태어남과 죽음에 때가 있듯, 이제야 도를 향한 때가 무르익었다는 사실입니다.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에서 열반 후 펼친 설법에서 일반인들이 그 자리에서 해탈했다는 이야기는 꿈이 아닌 현실입니다. 모든 것의 출발점은 발심입니다. 하여간 작년 설 전후, 마음 깊은 곳에서 해탈을 꿈꿨습니다. 생각이 어디서부터 나왔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원인은 어렴풋이 알 수 있습니다.

수년 전, 어느 절에 갔더니 스님께서 "저 사람 머리 깎으러 왔는데 들여도 될지 봐주게" 하고 물으시는 겁니다. 그래, 제자로 거두길 권했습니다. 왜냐하면 득도할 상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여, 행자복과 승복을 보시하며 후견인을 자체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행자가 밖에서 얼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아마 이날 무의식중에 '내가 직접 성불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듯합니다.

"저 기러기 소리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인고?"

 김제 모악산 귀신사 석탑입니다.
 김제 모악산 귀신사 석탑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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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를 구하는 길에 직접 나서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일선 스님 덕이지요. 작년 10월, 장흥 보림사에 갔더니 스님께서 "밖에 들리는 저 기러기 소리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인고?"라고 묻는 겁니다. 알 수 없는 소리에 풀어주길 청했더니 "앞으로 이걸 화두 삼아 답을 구하라"시대요. 그러면서 "이제 해탈의 길 초입에 들었으니 정진하라"고 격려하셨습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스님이 주신 화두의 답은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면서 구하게 되었습니다. 아!!!

헌데 말입니다. 해탈을 꿈꾸고 그 길에 나섰는데, 해탈 방법은 알 수 없었습니다. 물론 그 길은 스스로 찾아야 하는 인연에 따른 외로운 길입니다. 하지만 일반 중생에게 해탈을 안내하는 길잡이가 거의 전무한 상황. 길을 찾아 무척이지 헤맸습니다.

불교 최후의 목표가 해탈로 불리는 '득도'라지요.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이 해탈하도록 원을 세웠다지요? 하여, 대한민국 불교계에 바랍니다. 돈벌이에만 전념하지 마시고, 모든 종단이 모여 스님이든 중생이던 간에 발심한 사람들이 득도할 수 있는 체계적인 안내 프로그램을 갖추길 염원합니다.

직지인심이면 견성성불, 모두 '인연' 덕분

 마음이 곧 부처입니다.
 마음이 곧 부처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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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자랑 좀 하렵니다."

점심 공양 후, 무여 스님과 앉았습니다. 스님들께서 자신들 몫의 공양을 나눠 준 밥값을 제대로 해야 했기에. 이는 수행 단계 중 '아라한' 과에 들면, 기꺼이 밥을 나눠주신 스님들의 원이 이뤄지길 바라는, 혼자만의 다짐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뜬금없는 소리에도 불구, 스님은 웃음 지었습니다. 오히려 '무슨 자랑인데?' 하는 표정입니다.

"지난 2월 10일 '참 나' 자리인 '공적영지'를 체험했습니다. 그 자리는 맑고 깨끗하고 고요한 소소영영 자체였습니다. 헌데 한번 체험한 그곳에 다시 가려 했더니 들 수가 없습니다. 그래, 바람 쐬며 그 과정을 찬찬히 되짚어보기 위한 나들이에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공적영지를 체험한 순간 무덤덤했습니다. 놀라운 건, 명상과 단전호흡 등을 한 번도 한 적 없음에도 스스로 집중되었다는 점입니다. 이미 태어날 때부터 기가 열린 상태로 난 인연 덕분입니다. 남들은 단전호흡을 수련하며 '통기'하기까지 애를 먹는 것에 비하면 복 받은 게지요. 다만, 30여 년 간 '마음자리'가 바로 그곳인 줄 모르고, 천지의 기운과 텔레파시를 받는 곳쯤으로 알았다는 사실이 우스울 뿐!

선종에서는 "직지인심(直指人心)이면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합니다. 즉, "근본도 머무는 곳도 없는, 자기 본래 마음인 본성을 보면, 불성을 보았다 하여, 부처를 이룰 거"랍니다. '참 나' 그 자리는 걸림 없이 편안한 '선정'과 밝은 '지혜'가 축입니다. 무여 스님, 침묵을 뚫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 자리(공적영지)에 든 방편이 무엇이었습니까?"

 나무는 '나'가 없어, 나무라고 한답니다. 스스로 없음을 알기에 있는 게지요...
 나무는 '나'가 없어, 나무라고 한답니다. 스스로 없음을 알기에 있는 게지요...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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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SNS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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