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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2만여 명의 사상자를 낸 동일본 대지진. 국가적 재난 속에서도 일본인들이 마음의 위로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아픔을 함께 하려는 이웃나라 국민들의 정(情)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세계 어느 나라 보다 빨리 구조대를 파견한 나라는 바로 한국. 독도와 위안부 문제로 양국의 갈등이 첨예한 가운데도 우리나라 국민들은 일본에 아낌 없는 온정을 보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까지 나서서 지진 희생자 추모집회를 열고 일본에 성금까지 보내자 일본인들은 감동을 넘어 충격을 느끼기까지 했을 터. 양국의 외교 갈등에도 잠시나마 숨통이 트였다.

'독립 성향' 대만 정부, 중국의 구조 지원 거부해

대만 동부 화롄(花蓮)을 강타한 지진으로 기울어진 주상복합 건물 윈먼추이디(雲門翠堤) 빌딩에서 실종자 수색 작업이 진행 중이다.

건물 기울기가 갈수록 심해지는데다 여진까지 계속 이어지면서 수색구조 작업이 어려워지고 있다.
▲ 대만 지진 현장 대만 동부 화롄(花蓮)을 강타한 지진으로 기울어진 주상복합 건물 윈먼추이디(雲門翠堤) 빌딩에서 실종자 수색 작업이 진행 중이다. 건물 기울기가 갈수록 심해지는데다 여진까지 계속 이어지면서 수색구조 작업이 어려워지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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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대형 재난을 계기로 국가간 갈등의 돌파구를 찾는 일을 우리는 종종 보게 된다. 하지만 최근 대규모 지진 피해를 겪은 대만(타이완)의 경우에는 상황이 좀 다른 듯 하다.

대만에선 지난 6일 동부 화롄(花蓮)지역을 강타한 규모 6.0의 지진으로 300명 가량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중국 정부는 즉각 구조대를 파견하겠다는 뜻을 건넸지만 대만 정부는 중국의 제안을 거절했다. 

대만의 자체 구조 인력과 자원 만으로도 구조가 충분하다는 것이 이유였는데 대만이 일본 정부의 구조 지원은 받아들이기로 해 중국 정부의 반감을 샀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거부하고 대만 독립을 외쳐온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이 의도적으로 중국 정부와 선을 그었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대만 정부의 예상치 못한 냉대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중국 정부는 애꿎은 일본을 향해 공격의 화살을 날렸다. 중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대만에 보낸 애도문에서 대만 정부의 관료 직책을 중국식이 아닌 대만식으로 표현한 것을 트집 잡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지난 9일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일본 정부가 재난 구호를 명분으로 국제사회에 '하나의 중국, 하나의 대만' 인식을 퍼뜨리고 있다"면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중국인 9명 모두 사망... 대만 정부 '곤혹'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
▲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
ⓒ 중국 외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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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정부는 중국의 구호 지원을 거부함으로써 독립 의지를 다시 천명했다고 의미를 부여했을 터.

하지만 지진 피해 현장에서 중국인 실종자를 찾는 작업이 난관에 부딪히면서 대만 정부의 호기로운 선택이 썩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번 지진으로 인해 사망한 중국 국적자는 현재(11일)까지 총 9명. 지진 당시 화롄 윈먼취디(雲門翠堤) 빌딩 내 여관 안에 있다가 파묻힌 중국인 일가족 5명이 모두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은 베이징시에 살고 있는 평안(平安)보험사 30대 직원인 양씨와 그의 아내, 아들, 부모 등으로 대만에 여행을 갔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정부와 국민의 눈과 귀가 이들 가족 수색에 쏠린 가운데 대만 정부가 구조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1명도 살려내지 못하게 되면서 대만 정부는 여간 곤혹스러운 입장이 아니다.

차이잉원, 재난 대응도 외교도 '골든타임' 놓쳤다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이 지난 7일 화롄 지역에서 발생한 지진 피해 현장을 찾았다.
▲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이 지난 7일 화롄 지역에서 발생한 지진 피해 현장을 찾았다.
ⓒ 차이잉원 대만 총통 공식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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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차이잉원 총통은 자신의 트위터에 "인도주의적 구조 문제에서 양안(兩岸, 중국과 대만)은 어떤 거리감도 없고 최대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라며 "양안 모두 이들을 위해 기도하자"고 썼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내민 인도주의적 손길을 뿌리쳤던 상황에서 차이잉원 총통의 이같은 메시지는 중국 정부와 국민들의 분노만 더 자극하는 꼴이다.

만약 대만 정부가 보다 대승적인 태도에서 중국의 도움을 받아들이고 함께 실종자 수색을 펼쳤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물론 양국이 합동으로 수색을 했다해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 수 있지만 그래도 중국 대륙이 느끼는 허탈감, 대만 정부에 쏟아지는 비난의 목소리는 조금 피해갈 수 있지 않았을까.

재난이 어느 정도 수습된 이후에는 양국의 이번 협력을 계기로 대만 정부가 양안 관계에서 보다 긍정적 입지를 다지는 한편 양안 갈등에 피로를 느끼는 양국 국민들의 마음도 어루만지는 성과도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든 중국인 실종자 찾기는 실패로 돌아갔고 양안 관계 역시 경색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10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대만과 우호 관계에 있는 싱가포르의 한 언론은 이 같은 사평을 냈다.

"대만은 (실종자) 생존 골든타임을 이미 놓쳤을 뿐만 아니라 '지진 소통'을 통해 중국과의 관계를 회복할 계기도 놓쳐 아쉽다." <싱가포르 연합조보(聯合早報)>

대만은 이번 지진 직후 미국과 한국이 건넨 구조 지원 제안도 사실상 거절했다. 가뜩이나 국제적 고립 상태에 빠져 있는 대만 정부가 차가운 외교 태도를 취하는 것을 두고 국내외 안팎에서 물음표가 뜰 수밖에 없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 블로그 <이강훈 기자의 중국 대중문화 리포트>와 인터넷 미디어 <차이나스타리포트>에도 실릴 수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대만지진, #양안관계, #차이잉원총통, #대만정부, #이강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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