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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리는 평창에는 국제방송센터(IBC, International Broadcast Centre)가 있다. 이 방송센터는 올림픽 주관 방송국인 OBS(Olympic Broadcasting Services)가 작년 9월 5일 자로 평창동계올림픽대회 조직 위원회로부터 양도받아 운영하고 있다. 올림픽 중계방송을 총괄하는 OBS는 17일간의 대회 기간 매일 24시간씩 총 400여 시간 동안 세계 각국으로 영상을 중계한다.

인공기를 비롯한 참가국들 국기가 강릉 올림픽 선수촌 앞 국기 게양대에서 펄럭이고 있다.
▲ 올림픽 선수촌 참가국 국기 게양 모습 인공기를 비롯한 참가국들 국기가 강릉 올림픽 선수촌 앞 국기 게양대에서 펄럭이고 있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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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까지 동계올림픽은 방송 관계자들의 경기장 접근이 용이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경기가 열리는 평창 올림픽 경기장 중심부라 할 수 있는 평창 마운틴 클라스터에 IBC가 설립되어 최상의 올림픽 중계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6000여 명의 각국 방송국 관계자들은 IBC에서 OBS의 도움을 받아 전 세계인의 축제를 전하게 된다. 여기에서 드는 의문이 있다. 올림픽 주최국인 대한민국 방송국들은 주관 방송사일까? 아니다. 평창 올림픽은 국제올림픽위원회 IOC가 주최하는 대회다. 대한민국은 그 행사에 장소를 제공하는 나라이고, 평창은 운동장을 제공하는 도시 이름이다.

방송 역시 마찬가지다. IOC 산하 방송국인 OBS는 올림픽 주관 방송이고, KBS, MBC, SBS 등은 OBS로부터 송출권을 양도받아 송출하는 방송국이다. 주최국 방송국이라 해서 특별한 권한을 가질 수 없는 구조다. 방송만 그런 게 아니다. 올림픽 참가국만 해도 그렇다. 올림픽이라는 잔치에 참가하는 나라를 결정하는 권한은 전적으로 IOC가 갖고 있다.

그 단적인 예가 동계올림픽 최강국인 러시아 참가를 불허한 것은 IOC이지, 주최국인 대한민국이 아니다. 올림픽 주최 국민으로 자긍심을 갖고 있던 사람들은 이런 구조를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결혼식이 예식장에서 열린다고 예식장 사장이 하객을 부르는 게 아니라는 점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결혼식 주인공인 신랑 신부가 하객을 초청하듯이 IOC는 자신들이 벌여 놓은 잔치에 참가할 나라를 스스로 결정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럼 왜 각국은 IOC, 남의 잔치인 올림픽 개최에 뛰어들까? 잔치마당을 빌려준다고 어떤 이득이 있기 때문일까? 국격을 높이고 경제적 이득이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긴 하지만, 그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개최국이 어떤 이득을 얻는지에 대해 IOC는 크게 관심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IOC는 철저하게 이해득실을 따져 올림픽 주최국을 선정한다. 올림픽이라는 국제행사를 더 크게 키워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느냐는 주최국 선정에 크게 작용한다. 쉬운 말로 흥행이 될 만하냐를 고려한다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이번 평창올림픽은 북한의 참가가 결정되기 전까지만 해도 흥행에 실패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동계스포츠 최강국인 러시아 선수들은 도핑 문제로 개인 자격으로밖에 참가할 수 없게 되었다. 올림픽 최고 인기 종목인 아이스하키는 세계 최고 리그라는 북미 리그가 불참을 선언해 버렸다. 미국 농구 대표 팀에 미국 프로농구(NBA) 선수들이 없고, 월드컵에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EPL) 선수들이 없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 벌어져 버린 것이다. 무엇보다 동계 스포츠가 인기인 유럽 국가들은 평창과 시차가 8시간이나 나면서 생중계에도 불리한 점이 많다. 이런 가운데 개최국이 위치한 한반도는 연일 북핵 문제로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를 자극하고 있었다.

IOC로서는 평창 올림픽 흥행을 위한 카드가 절실히 필요했다. 3수 끝에 판을 벌인 평창에서 IOC는 잔칫상이 엎어져 버리는 걸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올림픽 기간만이라도 북핵 국면을 전환하겠다는 구상은 결코 남한만이 갖고 있던 생각이 아니었다. 지난 제72차 유엔 총회에서 '올림픽 이상과 스포츠를 통한 평화롭고 더 나은 세계 건설'이라는 명칭으로 채택된 휴전 결의안이 그 증거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군사적 충돌 우려가 여전한 한반도의 특수성을 반영해, 선수와 관계자 등 모든 관련 인사들의 안전한 통행과 참여, 접근 보장을 촉구하는 결의안 제출에 힘을 실었다.

결의안은 올림픽을 전후한 2월 2일부터 3월 25일까지 모든 회원국들에 적대 행위를 중단하도록 권고했다. 이러한 결의는 고대 그리스가 올림픽 때 전쟁을 중단했던 전통에 기원을 두고 있다. 고대 그리스는 지긋지긋한 전쟁을 잠시 쉬면서 무기를 내려놓고 맨몸으로 싸우는 올림픽을 열었다. 이를 통해 평화를 도모하는 것이 올림픽 정신이자 이상이 되었다. 근대 올림픽이라고 다를 게 없다. 아무리 이윤 추구에 혈안이 된 IOC라 해도 평화라는 명분을 포기할 수 없다. 오히려 적극 앞세우려 한다.

이런 가운데 북한의 참여가 결정되었고, 남북 단일팀과 인공기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사실 남북 단일팀은 평창올림픽 흥행카드로 IOC가 먼저 제안했다. IOC는 다른 회원국들을 설득하며 여자 아이스하키팀 구성에 대한 공정성 문제를 차단했고, 올림픽 때문에 방한한 바흐 위원장은 무엇보다 먼저 여자 아이스하키팀을 찾았다. 이는 남북 단일팀 구성은 IOC가 시나리오를 쓰고 남북이 호응한 것임을 말하고 있다. IOC로써는 올림픽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릴 수 있는 호재로 단일팀 구성을 이끌어낸 것이다.

북한 선수단이 묵고 있는 강릉 선수촌 아파트 옆에 걸린 이탈리아 선수단 숙소
▲ 아파트 외벽 전체를 자국 국기로 도배한 이탈리아 북한 선수단이 묵고 있는 강릉 선수촌 아파트 옆에 걸린 이탈리아 선수단 숙소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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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OC는 분단국인 대한민국 평창에서 올림픽을 열도록 결정하면서 올림픽을 통해 평화를 구축한다는 올림픽 정신에도 부합하기 때문이라고 선언했었다. 지금도 바흐 위원장을 비롯한 IOC는 남북 단일팀이야말로 올림픽 정신에 가장 부합하는 모습이라고 연일 강조하고 있다. IOC로서는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과 인공기 논란이야말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생각해 보시라. 올림픽에 명목상 북한 최고 위치에 있는 사람과 실질적 최고 권력자의 혈통이 남한을 방문하면서 연일 시끄럽긴 하지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최소한 북핵 문제가 주요 기사로 취급되지 않고 있지 않은가? 올림픽 이후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모르지만, 현실적으로 남북 긴장상태는 훨씬 완화된 것이 사실이다.

이런 사실은 외면한 채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에 걸린 인공기를 두고 시비를 거는 이들은 선수촌 광장에 IOC가 직접 내건 참가국 국기들을 먼저 봤어야 했다. 인공기는 그저 여러 국기 중 하나일 뿐이다. 선수촌 아파트 외벽에 단 하나밖에 걸리지 않은 인공기가 시비가 될 거라면, 온 벽면을 자국 국기로 도배한 나라들은 대체 뭐라 할 것인가? 아파트 외벽을 도배할 것처럼 국기를 걸고 있는 타국 선수단에 비해 북이 과도한 노출을 피하고 있음을 모른척할 것인가?

타국 선수단과 달리 인공기는 달랑 하나만 강릉 올림픽 선수촌 외벽에 걸려 있다.
▲ 달랑 하나만 걸린 인공기 타국 선수단과 달리 인공기는 달랑 하나만 강릉 올림픽 선수촌 외벽에 걸려 있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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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기 논란은 평화올림픽에 어떻게든 생채기를 내려는 트집밖에 되지 않는다. 남북 단일팀 구성에 있어서 분단 세대가 느끼는 소외감과 허탈감 등이 없다 할 수 없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분단세대 역시 북한을 함께 살아야 할 한민족이라고 새롭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많은 희생을 마다하고 치르는 올림픽이 가져다줄 가장 큰 열매다.



태그:#평창동계올림픽, #강릉올림픽선수촌, #인공기, #IOC, #북한선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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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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