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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반성문부터 제출한다" 미투운동 동참한 이정미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폭력 고발 이후 시작된 미투운동과 관련해 8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명의 여성 정치인으로, 정의당이라는 조직의 대표로서 미뤄두었던 자기 의무를 다하고자 한다"면서 "우리 사회 권력의 정점에 있는 여의도야 말로 성폭력이 가장 빈번한 곳"이라고 밝혔다. ⓒ 남소연
[기사 보강 : 9일 오전 10시 50분]

"지금 이 시간, 저의 기자회견을 직접 보거나 글로 접하게 될 피해자 여러분께 말씀드린다. 정의당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 기다리게 해서, 먼저 용기 내게 해서 정말 미안합니다."

이정미 정의당 당대표는 여러 번 말을 멈췄다. 준비한 원고를 읽으면서도, 침착했던 평소와는 달리 자주 말을 잇지 못했다. "정의당은 이미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당규가 있지만, 성폭력을 막지는 못했다. 오늘부터 정치권 내 성폭력 근절을 위한 대책 마련을 함께 시작하자"라고 하던 도중엔 말을 멈추고 잠시 숨을 고르기도 했다.

이 대표는 이어진 기자들과의 브리핑에서도 눈물을 참으며 눈을 깜빡였다. 잠시 말을 멈춘 이유에 관해 묻자 이 대표는 복잡한 감정이 복받치는 듯 약 15초간 붉어진 눈시울, 눈물이 그렁그렁한 상태로 말을 잇지 못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은 정적이 이어진 뒤 이 대표가 한 말이다.

"어... 한국 성추행 사회에 십수 년 동안, 방치돼왔던 여성들이 떠올랐고 그런 부분에 대해 제가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에 당대표로서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지금 '미투'(#미투, #MeToo) 운동으로도 자신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하는 더 많은 피해 여성들에게, 이제는 정말 책임 있는 역할을 다하겠다는 그런 다짐을 드리겠습니다."

정의당의 '철저한 자기반성', 이정미는 왜 눈시울이 붉어졌을까

이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국 정치에는, 여의도에는 '숨은 안태근'이 없느냐"라며 "성폭력이 권력 관계에 기반한 폭력이라면, 권력의 정점에 있는 여의도야말로 성폭력이 가장 빈번한 곳이다. 여성 정치인, 여성 보좌진, 여성 언론인에 가해지는 성폭력은 일상적이지만 흐지부지되기 일쑤"라고 일갈했다. 그는 "성폭력 문제는 더는 상대 정당을 비난하기 위한 정쟁의 소재가 아니라, 철저한 자기반성의 대상이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정의당의 반성문'을 제출했다. 그는 "오늘 상무위에서 한 당직자의 직무정지를 결정했다. 성폭력 피해자를 보호할 위치에 있으면서, 되레 피해자를 비난하고 사건 해결을 방해하는 등 2차 가해를 저질렀다"라고 설명했다. 직접 가해자는 이미 징계했으며, 2차 가해에도 책임을 묻겠다고 기자회견 직후 부연하기도 했다.

이 대표의 '반성'에 따르면 위와 같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정의당 내에서도 성폭력 사건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광역시도당 당직자가 술자리에서 동료 당직자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는 발언을 하거나, 부문조직 위원장이 여성당원을 스토킹하고, 한 전국위원이 상대 여성에게 심각한 언어적 성폭력을 저지르고 제명되는 등 여러 사건이 있었다"라고 고백했다.

이 대표는 울먹이면서도 "지금 입을 열어야 할 주인공은 피해 여성이 아니다. 입을 열어야 할 의무는, 비난하고 침묵했던 조직과 단체들에 있다. 정의당 조직의 대표로서, 오늘 저는 미뤄뒀던 자기 의무를 다하고자 한다"라면서 "피해자 여러분께 당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정치권 내 성폭력 근절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겠다"라고 말했다.

'국회 대나무숲' 청원글 이어져... "의원님들, 남일만 얘기 말고 국회도 조사하자"
입술 깨문 이정미의 '#미투' 반성문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폭력 고발 이후 시작된 미투운동과 관련해 8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명의 여성 정치인으로, 정의당이라는 조직의 대표로서 미뤄두었던 자기 의무를 다하고자 한다"면서 "우리 사회 권력의 정점에 있는 여의도야 말로 성폭력이 가장 빈번한 곳"이라고 밝혔다. ⓒ 남소연
실제 서지현 검사의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에 대한 성추행 피해 폭로가 있은 뒤 국회 보좌진이 이용하는 '여의도 옆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엔 관련 글이 잇따랐다. "검사님 용기에 박수를 치면서도 씁쓸하다. 그런 일은 여기 의원회관에도. 우리 방에도...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는데" "의원님들, 남의 일에만 용기 운운하지 마시고 국회 내 성추행, 성희롱 조사 한 번 해달라" "죄책감이라도 느끼는지 궁금하다"는 얘기다.

이 대표도 앞서 당대표 당선 직후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과거 출마 과정에서 겪었던 성희롱 경험을 고백한 바 있다. 유세 중 한 남성 유권자가 악수하며 성희롱을 했으나, 놀라서 그대로 '얼음' 상태가 돼 전혀 대응을 못 했다는 내용이었다.(관련 기사: 이정미 "여의도 여풍? 여전히 남성 중심 '손바닥 희롱'한 그 분, 지금 만나면...")

이 대표는 관련해 "선거운동 과정에서 여성 정치인이 겪는 어려움이 굉장히 많다. 저도 경험했다. 어디 정치인들뿐이겠나, 여의도에서 일하는 여성 보좌관과 언론인들 피해 호소를 여러 차례 들어왔다"라면서 "이제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 나갈 전면적 문화 혁신이 우리 안에 필요하다고 본다"라고 짚었다.

다음은 이 대표가 이날 읽은 반성문 전문이다. 그가 숨을 고르며 읽은 기자회견문 제목은 '정의당의 반성문을 제출합니다'였다. 같은 날 오전, "용기 있는 폭로까진 좋았다"라면서도 "(그걸 구실로) 우리 당 의원들 정치적 흠집 내기에 몰두하지 말라"며 문재인 정부 '뉴욕 성추행 사건' 역공격에 나서던 자유한국당 지도부의 모습이 떠오르는 지점이다(관련 기사: 서지현 폭로 때는 조용하더니... 한국당 '뉴욕 성추행' 맹공).

<정의당의 반성문을 제출합니다>

서지현 검사의 용기 있는 고발 이후, 우리 사회 곳곳에서 ME TOO(미투) 운동이 재개됐습니다. 제가 재개라고 말씀드리는 이유는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일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2000년대 초 100인 위원회, 2016년 #OO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 등, 성폭력 피해자들은 언제나 말을 해왔습니다.

지금 재개된 미투운동은 모두 과거형의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우리 사회가 제때에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지 않은 것입니다. 목격자는 침묵하고, 가해자는 도리어 피해자를 비난하는 동안, 피해자들의 고통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결국, 그들은 수개월, 때로는 십수 년, 고통의 시간을 보내다 용기를 냈습니다.

지금 입을 열어야 할 주인공은 그들 피해 여성이 아닙니다. 성폭력 문제의 해결을 위해, 계속해서 피해자 개인에게 용기를 요구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또 다른 책임 전가입니다. 지금 입을 열어야 할 의무는, 비난하고 침묵했던 조직과 단체들에 있습니다. 한 명의 여성 정치인으로, 정의당이라는 조직의 대표로서, 오늘 저는 미뤄두었던 자기 의무를 다하고자 합니다.

제가 이러한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정당조직 또한 성폭력 문제의 예외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국 정치에는, 여의도에는, '숨어 있는 안태근'이 없습니까? 성폭력이 권력 관계에 기반한 폭력이라면, 우리 사회 권력의 정점에 있는 여의도야말로 성폭력이 가장 빈번한 곳입니다. 여성 정치인, 여성 보좌진, 여성 언론인에 가해지는 성폭력은 일상적이지만 흐지부지되기 일쑤입니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 이후 각 정당이 검찰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에 대한 성찰은 빠져 있습니다. 성폭력 문제는 더 이상 상대정당을 비난하기 위한 정쟁의 소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폭력 문제는 철저한 자기반성의 대상이어야 합니다.

저는 오늘 정의당의 반성문을 제출합니다.

조금 전 열린 상무위원회에서 저는 한 당직자의 직무정지를 결정했습니다. 해당 당직자는 성폭력 피해자를 보호할 위치에 있으면서, 도리어 피해자를 비난하고 사건해결을 방해하는 등 2차 가해를 저질렀습니다.

이러한 일만 있던 것이 아닙니다. 성평등 실현을 목표로 하는 진보정당인 정의당 안에서 많은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광역시도당의 당직자가 술자리에서 동료 당직자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는 발언을 하거나, 부문조직의 위원장이 해당 부문의 여성당원에게 데이트를 요구하며 스토킹을 하고, 전국위원이 데이트 관계에 있는 상대 여성에게 심각한 언어적 성폭력을 저지르고 제명되는 등 여러 사건이 있습니다. 부끄럽지만, 말씀드린 대로 가해자의 상당수가 당직자였습니다.

대표인 제가 다 파악하지 못하는 사건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 저의 기자회견을 직접 보거나 혹은 글로 접하게 될 피해자 여러분께 말씀 드립니다. 정의당을 대표하여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닙니다. 많은 성폭력 피해 여성들이 성폭력 그 이상으로 성폭력 사건의 해결 과정에서 좌절합니다. 사건이 벌어진 직장이나 단체가, 외부의 시선을 이유로, 조직을 위한다는 핑계로 문제를 무마하거나 덮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대중의 1표가 중요한 정당으로서, 비난을 받고 지지를 잃을까 두려워, 성폭력 사건을 불투명하거나 소극적으로 처리하지는 않았는지 저 역시 반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제 성폭력 가해자인 당직자가 신속한 징계절차를 밟게 하는 대신 권고사직을 하게 하거나, 피해를 호소하는 피해자에게 가해자에 대한 당내 징계절차가 있으니 기다리면 된다는 식으로 문제를 처리한 때도 있었습니다. 문제 해결 중 가해자가 완고한 자기 논리를 앞세워 책임지기를 거부하거나, 탈당 등의 방식으로 징계 책임을 회피하기도 했습니다.

이로 인해 아직 상처를 입고 고통스러워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두려움과 소극성 대신 적극적 리더십과 결단이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2012년 정의당 창당 이후 최고위원과 부대표 그리고 대표까지 맡으며 빠짐없이 지도부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말씀드립니다. 기다리게 해서, 혹은 먼저 용기 내게 해서 정말 미안합니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로 정의당의 반성문을 마치지 않을 것입니다. 당내 성폭력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자기반성과 성찰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정의당은 이미 잘 정돈된,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당규가 있습니다. 선출직은 물론 임명직 당직자에게도 성 평등 교육이 의무화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제도가 성폭력을 막지 못했습니다. 결국, 허다한 제도보다 중요한 것은 리더십이며, 조직문화를 바꾸겠다는 구성원의 의지입니다. 피해자들이 애타게 기다리거나 좌절하는 일이 없도록, 그리고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당의 대표로서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혼자만의 힘으로 변화를 이뤄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이 시작되기를 바랍니다. 함께 성평등한 사회로 나아갑시다. 감사합니다.

2018년 2월 8일
정의당 당대표 이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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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이정미, #정의당, #반성문, #미투, #정치권미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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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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