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오픈 4강 신화, 정현  호주오픈 테니스대회에서 4강에 오른 정현이 지난 1월 28일 저녁 인천공항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 호주오픈 4강 신화, 정현 호주오픈 테니스대회에서 4강에 오른 정현이 지난 1월 28일 저녁 인천공항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 연합뉴스


테니스 호주 오픈 준결승 진출로 큰 사랑을 받은 정현 선수가 지난달 28일 귀국했다. 언론의 정현 인터뷰가 이어지며 화제가 됐고, 각종 알려지지 않은 얘기들이 연이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인기가 과거 피겨 스케이팅의 김연아 선수나 수영의 박태환 선수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이다.

과연 정현의 인기, 나아가 한국 테니스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사랑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막 '잘 나가는' 젊은 선수에 대해 속된 말로 '고춧가루를 뿌리'거나 '재수 없으라고' 품어보는 의문이 아니다. 테니스 팬들이나 보통 시민, 또 정현 선수에게 '몸에 좋은 쓴 약'이 될 수 있기에 짚어보자는 것이다.

정현의 세계랭킹, 호주오픈 후 수직상승한 이유

최소 1년은 보장된 정현의 인기(=프로선수의 인기)는 성적 순위, 즉 랭킹과 직결된다. 세계 남자 테니스의 랭킹시스템은 아주 잘 정비돼 있고, 실력을 평가하는 척도로써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현의 랭킹이 호주 오픈 시작 전 세계 58위에서 준결승 진출 후 29위로 껑충 뛰어오른 것은 그의 인기가 수직 상승한 것과 정비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현의 현재 랭킹 포인트는 1472점이다. 호주 오픈과 같은 그랜드슬램 대회는 준결승 진출자에게 720점을 부여한다. 호주 오픈 준결승에 나감으로써 점수를 2배 가까이 끌어올렸다는 얘기이다.

테니스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720점은 그다지 실감이 나지 않는 수치일 수 있다. 이해를 돕자면, 720점이란 점수는 세계프로테니스협회(ATP)가 주관하는 ATP 250 대회에서 3번 우승하는 것과 거의 맞먹는다. ATP 250 대회는 우승자에게 250점을 준다. ATP 250 대회는 1년에 모두 40차례 열린다.

정현 선수가 이번 호주 오픈에서 따낸 720점은 내년 호주 오픈이 열릴 때까지 유효하다. 현재 기량이나 나이로 볼 때 정현 선수는 오는 11월 ATP 대회 종료 시점까지 랭킹 포인트를 차곡차곡 더 쌓아갈 확률이 매우 높다. 바꿔 말해 최소한 낮춰 잡아도 정현은 향후 1년 동안은 상위로 랭커로 머물 것이고, 인기 또한 지속될 수 있다.

 정현이 지난 18일 호주 멜버른에서 열른 호주오픈 테니스대회 남자단식 2회전에서 공을 받아치고 있다.

정현이 지난 1월 18일 호주 멜버른에서 열른 호주오픈 테니스대회 남자단식 2회전에서 공을 받아치고 있다. ⓒ 연합뉴스


정현이 세계 주목하는 테니스 선수로 1년간만 유효하기를 바라는 한국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다소 성급한 듯하지만,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 같은 유명 선수의 랭킹 변화를 정현과 비교하는 것은 그 나름 의미가 적지 않다.

정현 선수가 세계 랭킹에서 단식 순위를 부여받은 것은 2012년 10월로, 967위였다. 이어 2013년 10월 500위권으로 상승한 뒤 약간 등락을 거듭하는데, 2015년 4월에는 88위로 처음으로 세계 100위권에 발을 내디딘다. 세계 랭킹에 등록된 2012년 10월을 기준으로 하면 2년 반 남짓에 100위권 안쪽으로 발돋움한 것이다. 그리고 다시 3년이 좀 못 걸려 이번 호주 오픈을 발판 삼아 30위권으로 도약했다.

 정현과 슈퍼스타들의 랭킹 상승 추세

정현과 슈퍼스타들의 랭킹 상승 추세 비교, 괄호 안 숫자는 순위 ⓒ 김창엽


페더러의 경우를 보자. 1997년 9월에 803위, 1998년 10월에 396위, 1999년 9월에 95위, 2000년 10월에 30위를 기록했다. 1000위에서 500위 안쪽으로 진입하는 데 1년 남짓, 다시 100위권 이내로 들어오는 데 1년 조금 못 걸렸으며 30위권 이내까지 도약하는 데 1년가량 소요됐다. 전반적으로 정현보다 가파르게 랭킹이 상승했는데, 100위권 이내까지는 비슷하지만 30위권으로 뛰어오르는 데는 정현의 절반도 안 되는 시간이 걸렸다.

나달은 2001년 10월에 990위, 2002년 7월에 489위, 2003년 4월에 96위, 2005년 3월에 30위의 추이를 보였다. 1000위, 500위, 100위권까지 진입속도는 페더러보다 빨랐지만 다시 30위 안쪽으로 드는 데는 페더러보다 훨씬 오래 걸렸다. 조코비치는 2003년 7월에 767위, 2004년 5월에 338위, 2005년 7월에 94위, 2006년 7월에 28위로 세계 100위권까지 올라가는 데는 나달과 함께 가장 빠른 축이었다. 다시 30위까지 진입하는 데도 불과 1년으로 페더러만큼이나 상승세가 가팔랐다.

대기만성이라는 말이 스포츠에도 적용될 수 있지만, 정현은 살아있는 테니스의 역사라 불리는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에는 다소 못 미치는 랭킹 상승 속도를 보이고 있다. 페더러와 나달, 조코비치와는 세대가 다르므로 정현의 경쟁 조건 또한 달라서 그대로 비교는 무리가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페더러가 인정했듯, 랭킹 상승 추이만 따지면 '세계 10위권 진입은 시간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26일 호주오픈 준결승 경기 이후 페더러는 정현에 관해 "세계 랭킹 10위 안에 충분히 들어갈 수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요컨대 정현 돌풍과 인기는 산술적으로는 내년 이맘때까지 1년 정도만 보장할 수 있지만, 테니스 선수의 전성기를 감안하면 향후 거의 10년 가까이 지속될 수도 있다. 통계가 말하는 테니스 선수의 전성기는 만 28~29세 즈음이다.

시민들의 관심과 테니스 인기 얼마나 지속될까

땀으로 젖은 정현의 등 정현이 26일 호주오픈 남자 단식 4강전 경기를 앞두고 경기장 내 18번 코트에서 연습경기를 하고 있다.

▲ 땀으로 젖은 정현의 등 정현이 지난 1월 26일 호주오픈 남자 단식 4강전 경기를 앞두고 경기장 내 18번 코트에서 연습경기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스포츠의 저변이 넓고, 선수층이 두꺼울수록 스타 선수가 탄생할 가능성이 높은 건 불 보듯 뻔한 이치이다. 박세리가 촉발시킨 여자 골프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김연아의 피겨는 골프에 비교할 수준은 아니지만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반면 박태환의 수영은 골프나 피겨와 견줄만한 인기를 얻거나, 저변을 확대하는 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정현이 몰고 온 테니스에 대한 관심은 어떨까? 크게 부족하지 않은 테니스 코트의 숫자와 줄고 있기는 하지만 전국 대회 등이 활발하게 열리는 동호인 테니스 환경을 감안하면, 테니스의 인프라는 골프나 피겨 수영 등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정현의 호주 오픈 준결승 진출은 생활체육으로써 테니스와 엘리트 프로 스포츠로써 테니스가 서로 상승 작용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순수한 동양인으로서 테니스의 역사를 다시 쓴 케이 니시코리를 배출한 일본의 예는 한국 테니스가 주목할 만하다.

 앞줄 오른쪽에서 5번째가 정현과 동갑내기인 일본의 니시오카 선수. 그는 호주 오픈 직전 테니스 활성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일본의 한 동네를 방문 이틀간 아마추어들과 공을 쳤다. 앞줄 왼쪽에서 4번째는 재일 한국인 이성독 박사.

앞줄 오른쪽에서 5번째가 정현과 동갑내기인 일본의 니시오카 선수. 그는 호주 오픈 직전 테니스 활성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일본의 한 동네를 방문 이틀간 아마추어들과 공을 쳤다. 앞줄 왼쪽에서 4번째는 재일 한국인 이성독 박사. ⓒ 김창엽


일본 츠쿠바에 살고 있는 평범한 한 한국인이 전하는 일본 테니스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보과학 박사로 재일 한국인인 이성독씨(56)는 30년 가까이 테니스를 즐겨온 애호가이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사나흘 전 필자에게 사진 몇 컷을 보내오면서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요시히토 니시오카라는 일본 프로 테니스 선수가 랠리를 대략 30개쯤 쳐주었고, 서브도 몇 개 받아보았다"는 것이었다.

니시오카는 키가 170cm로 테니스선수치고 단신이라는 약점 외에는 니시코리의 뒤를 이을만한 뛰어난 자질을 갖고 있다. 정현과 동갑내기인데, 이번 호주 오픈에서 2라운드에 진출한 뒤 탈락했다. 세계 58위까지 오른 적도 있고, 앞날이 기대되는 선수이다.

호주 오픈이 시작되기 전 이씨가 다니는 테니스 아카데미를 방문한 그는 격의 없이 다른 2명의 프로선수들과 함께 동호인 등을 상대로 테니스를 이틀 동안 '쳐줬다'는 것이다. 하루는 유소년, 다른 하루는 성인 등이 중심이었다. 4살 때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테니스 채를 잡은 그는 또래들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내다가 결국 프로로 전향한 전형적인 케이스다. 테니스 선수를 아버지로 둔 정현보다 2살이나 빨리 라켓을 쥐기 시작한 것이다.

엄마 아빠 혹은 형제자매와 함께 어린 나이에 생활체육으로 테니스를 접하고 그중 소질이 있는 경우 프로로 변신하는 건, 서구나 일본이 테니스 선수를 배출하는 전형적인 통로이다. 한국은 이런 점에서 서구나 일본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방과 후나 주말 즐거움과 건강을 위해 테니스 코트에 나오는 어린 학생들을 찾아보기 힘든 우리 현실과는 딴판인 것이다.

정현 선수가 테니스에 대한 관심에 불을 지폈다면, 이 불씨를 살려 나가고 키우는 것은 팬과 시민들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정현 선수가 젊고 성실한 등 미래가 기대되는 만큼 다행히도 시민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적지 않다. 건강도 증진하고 스트레스도 풀 수 있으며 상대적으로 큰 비용 지출 없이 즐길 수 있는 테니스의 장점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없다. 개개인들의 웰빙 수준을 끌어올리기에 이만한 운동도 기실 많지 않은 것이다. 한국이라는 공동체에 활기를 불어 넣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그냥 날려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주말 추위에도 테니스 열정 정현의 호주 오픈 남자 단식 4강 진출로 테니스에 대한 관심과 관련 용품 수요가 늘어나는 등 테니스 붐이 일고 있다. 지난 1월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 시민의 숲 테니스장에서 테니스 동호인들이 테니스를 즐기고 있다.

▲ 주말 추위에도 테니스 열정 정현의 호주 오픈 남자 단식 4강 진출로 테니스에 대한 관심과 관련 용품 수요가 늘어나는 등 테니스 붐이 일고 있다. 지난 1월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 시민의 숲 테니스장에서 테니스 동호인들이 테니스를 즐기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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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마이공주 닷컴(mygongju.com)에도 실립니다.
정현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 테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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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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