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에서 열리는 올림픽을 앞두고도 체육계의 '안일한 행정'은 여전했다. 그것도 한 단체가 아니라 빙상연맹 등 여러 곳에서 문제가 발생해 그 충격이 배가 됐다. 평창 대회 하나만 바라보고 달려와 20대 청춘을 다 바친 선수들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지난 24일 대한스키협회가 국제스키연맹(FIS)의 올림픽 선발 규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당초 9명의 선수가 출전할 것으로 예상됐던 알파인 스키 종목에서 무려 선수 5명의 평창행이 좌절돼 파문이 일었다. 특히 경성현(28·홍천군청 알파인스키선수단)이 다른 선수에 비해 세계랭킹이 월등히 높은데도 불구하고 올림픽 출전이 좌절돼 협회에 대한 비난 여론이 더욱 거세졌다.

지난 29일엔 국회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됐다. 바른정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지상욱 바른정당 정책위의장은 평창 동계올림픽 스키 종목 국가대표 선발 과정에서 발생한 논란에 관해 "대한스키협회는 스키선수들의 억울함과 국민의 공분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선발을) 어떻게 했는지 과정 일체를 낱낱이 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성현은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후 꾸준히 국가대표로 활약해 왔고 지난해 평창에서 열렸던 극동컵 테스트이벤트에도 정동현과 함께 남자대표로 출전했다. 그만큼 충분한 잠재력을 보유한 선수다.

장애물 피하는 경성현 18일 오후 강원 정선군 하이원리조트에서 열린 제99회 동계 체육대회 및 제48회 회장배 전국스키대회에서 경성현(홍천군청)이 역주하고 있다.

▲ 장애물 피하는 경성현 지난 18일 오후 강원 정선군 하이원리조트에서 열린 제99회 동계 체육대회 및 제48회 회장배 전국스키대회에서 경성현(홍천군청)이 역주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경성현은 30일 오후 기자와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의 여파로 평창 스피드 종목에 나서는 김동우에게 좋지 않은 여론이 생겼다. 이로 인해 너무나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의 일로 동료가 더 이상 다치지 않길 바란다며 이를 꼭 독자들에게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경성현은 인터뷰 내내 지치고 힘이 빠진 듯한 목소리였다. 마지막 질문에서는 한 마디를 내뱉기 힘들어하는 모습이 역력했고 조금은 울먹거렸다. 꿈을 위해 달려온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는데 감히 어떻게 힘내라는 꺼낼 수 있을까. 그조차 이 청년에게는 너무나 큰 사치 같았다.

다음은 경성현 선수와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 사태 발생 일주일이 되어간다. 어떻게 지냈는지.
"현재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갑작스럽게 올림픽 출전이 취소되는 바람에 마땅히 할 것도 없는 상황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중이고 부모님과 상의하고 있다."

- 29일에 올린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니 협회로부터 투자와 스키장 유치 때문에 경 선수가 배제됐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적었더라. 결국 정선 알파인 경기장 때문인가?
"맞다. 페이스북에 올린 협회 회의 기록에도 적혀있다. 나는 회의가 결단식 당일 저녁에 이뤄진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국제스키연맹은 이미 2016년 8월부터 올림픽 출전 규정에 대해 공지를 해놓은 상태였다. 또한 개최국 규정과 일반 참가국 규정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도 적혀있다. 만약 협회 말이 맞고 최소 1년 전이나 6개월 전에 기술 1명, 스피드 1명을 선발한다고 우리에게 통보했다면, 그에 맞춰 각자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국제대회 출전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기술 부문에서 정동현 선수가 1위이고 제가 2위이니, 제가 기술 부문에 나가기 위해서는 동현이 형을 이기거나 아니면 아예 스피드 쪽만 대회에 출전하거나 둘 다 병행했을 것이다. 그러나 협회는 그런 것조차 말하지 않았다. 선수가 바보가 아니지 않냐. 공지는 해놓지 않고 이때까지 무엇을 한 것인지 모르겠다.

우리는 결단식에 참석하기 위해 9명이 모두 단복까지 다 받고 참가하기로 돼 있었다. 스피드팀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버스에 오르기 5분 전 스피드팀에 '국제스키연맹하고 무언가 꼬였으니 가지 말라'는 식의 통보가 내려왔다. 결국 이런 상황을 보면 이미 협회도 이때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 아닌가. 결단식 사이에 회의를 해서 새로운 규정을 꺼내고 결국 이렇게 결정한 것이다."

(정선알파인경기장은 평창 대회 유치 후 가리왕산 환경파괴 논란으로 인해 남녀 활강코스를 통합해 지었고 이 과정에서 2000억 원가량의 공사비용이 들었다. 정선에서 활강·슈퍼대회전·복합 경기가 진행되는데, 협회 측은 정동현(30·하이원)과 경성현이 나갈 경우 스피드 종목(슈퍼대회전·활강) 나갈 선수가 없으니 대신 김동우를 발탁한 것이라고 경성현에게 통보했다(관련 기사 : '스키' 경성현, 평창 대표 탈락 이유는 이것 때문?).

하지만 경성현은 이 종목에서도 김동우에 비해 성적이 높았다. 경성현의 세계랭킹은 국제스키연맹(FIS) 올림픽 포인트 기준 대회전 세계랭킹이 181위로 올림픽에 나서게 된 김동우(활강 412위)보다 훨씬 높다. 관련 내용은 다음 질문에서 서술한다.)

"대신 선발된 선수는 잘못 없어, 협회가 잘못해 생긴 일"

'최강 한파' 전국에 최강 한파가 기승을 부린 26일 강원도 평창군 알펜시아에서 피어오르는 난방 수증기 뒤로 스키장 리프트가 보이고 있다.

▲ '최강 한파' 전국에 최강 한파가 기승을 부린 26일 강원도 평창군 알펜시아에서 피어오르는 난방 수증기 뒤로 스키장 리프트가 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 혹시 평창 불발 통보를 받은 후 (올림픽 대표를 선발한) 기술위원회 임원들과 만나봤는지?
"만난 적은 없고, (위원회에) 갔던 분들, (투표) 거수한 분들과 통화했다. 미안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내가 그분들을 비난할 그럴 상황은 아니다. 높은 사람들에 의해 결정된 것이니까. 결국 '협회는 규정대로 했다' 이거다. 하지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시험일정이 다 나와 있고 그 일정에 맞춰 시험과목 공부를 진행해 왔는데, 불과 하루 앞두고 갑자기 스케줄을 변경한 것이나 뭐가 다른가. 우리에게 시도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결국 이렇게 됐으면 순위(세계랭킹)대로 나가는 것이 맞는 것 아닌가. 협회는 아무도 나가지 못하게 된 걸 뒤늦게 알고 발등에 불 떨어졌으니 자기들이 살아보려고 발버둥 친 것이다."

- 스키협회는 '기술 1명, 스피드 종목 1명 대표를 뽑아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스피드 종목에 출전할 수 있는 선수를 선발하려고 경성현이 아닌 다른 선수가 출전하게 됐다는 것이다. 경성현 선수는 올 시즌 스피드 종목에 한 차례만 출전했다. 당시 협회는 규정에 대해 아무 말이 없었다고 들었다.
"국제스키연맹 극동컵 시리즈가 중국, 한국, 일본, 러시아 순으로 열려 마무리됐다. 나는 월드컵 엔트리를 확보하기 위해 출전했다. 개인적인 영광이기도 하고 한 명이라도 더 출전할 수 있으면 좋은 것이 아닌가. 당시 나는 스피드 종목 포인트가 없어 꼴찌로 출발했다. 다른 대표 선수들은 포인트가 있으니 모두 나보다 앞서 탔다. 스키 종목에서 꼴찌로 출발하는 것은 굉장히 불리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한국 선수 중에서 1등을 했다. 전체순위(외국선수 포함)에서는 슈퍼 콤바인(복합)에서 4위, 슈퍼대회전에서는 7위였다. 올 시즌에 한 번도 출전한 적이 없는 종목에서 나는 다른 선수들을 제치고 1등을 했다. 처음 탔는데 어느 정도 실력이 나온 것이고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그 선수(대신 선발된 김동우)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고 들었다. 페이스북에도 얘기했지만 그 선수는 정말 잘못이 없다. 협회에서 잘못해 생긴 일이다. 하지만 지금 내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 선수를 아예 언급을 안 할 수는 없어서 자꾸 말하게 된다. 그 선수에게 정말 미안하다. 그 선수는 정말 잘못이 없으니 이건 꼭 기사에 강조해 줬으면 좋겠다. 정말 친하게 지낸 선수다."

완성된 오륜기 문양 27일 강원도 평창군 알펜시아 올림픽파크의 스키점프대에서 작업자들이 오륜기 문양을 설치하고 있다.

▲ 완성된 오륜기 문양 27일 강원도 평창군 알펜시아 올림픽파크의 스키점프대에서 작업자들이 오륜기 문양을 설치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이제 물거품이 돼 소용없지만, 소치 이후 평창 대회만을 위해 4년간 정말 많은 노력을 해왔을 텐데.
"소치 이후 우선은 원래 스케줄대로 꾸준히 훈련해왔다. 나를 비롯해 모든 선수들이 1년 중 300일가량을 훈련에만 몰두했다. 개인적인 사비를 들여 꾸준히 대회에 참가했다. 한 시즌에 두세 차례 정도 사비를 들여 훈련했는데, 한번 가는데 기본 천만 원가량이 들었다."

- 경 선수뿐만 아니라 소속팀 홍천군청 측도 속상하고 많이 분노했을 텐데.
"정말 감독님을 비롯해 많이 도와주셨다. 감독님은 저를 데리고 올림픽에 나가는 줄로만 알고 계셨다. 입장권도 80장이나 사 놓은 상태다. 그런데 이렇게 돼서 화가 많이 나셨다. 만일 내가 올림픽에 나서지 못한다면 팀을 없앤다는 말도 나온 상태다. 사실 나는 스키를 그만두면 끝이지만, 감독님은 한순간에 실업자 신세가 되는 것이 아닌가. 간단한 일도 아니고 복잡하다. 너무나 속상하다."

- 혹시 소치 대회 이후 평창을 준비하면서 이번 사건 말고 다른 불만 사항은 없었나?
"작은 것들이 있긴 했지만 불만이라고 할 수는 없다. 소치 때보다 지원도 많아지고 많이 좋아졌다. 협회에서 많이 도와주신 것은 사실이고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거짓으로 나쁘다고 절대 말하고 싶지 않다. 그 점에 대해서는 더 이상은 할 말이 없다."

"선수 개별로 만나서 사과하겠다는 협회, 모두 불러 투명하게 설명해야"

- 경 선수 이외에 평창행이 불발된 다른 4명의 선수들과 연락은 해봤는지?
"모두 친한 후배들이라 가끔씩 했다. 나와는 경우가 조금 다르다. 하지만 모두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모든 일은 협회 행정부분에서 일 처리가 미숙해 잘못된 것이다. 몇몇 선수에게 협회가 접촉해 '만나서 사과하고 싶다'며 접촉해 왔다고 하는데 거절한 선수도 있고 만난 선수도 있다고 들었다. 왜 다 같이 한데 모여서 사과하지 않고 따로 만나 진행하는가. 자기들이 실수한 부분이 분명히 있는데도 협회 차원에서 공식적인 사과나 어떠한 성명도 없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 협회 측에서 차기 올림픽 지원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는데.
"거기까지 도와준다 해도 그때는 우리가 나이도 있을뿐더러 잘할 수 있을지도 장담하지 못한다. 그걸 말한다고 과연 신경을 쓸지 모르겠다."

- 올림픽 출전을 준비하기엔 너무 늦겠지만, 그래도 만약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진다면 기분이 어떨 것 같은지.
"이미 올림픽이 물 건너간 것은 알고 있다. 내가 가처분신청을 낸 것은 앞으로 길게 봤을 때 저뿐만 아니라 다른 후배 선수나 사람들이 당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협회도 '선수가 바보가 아니구나, 무섭구나'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그래야 더욱 조심할 것 아니냐. '별 것 아니다'거나 '조금 이러다가 말겠지'라는 생각을 갖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선수는 바보가 아니다. 스키를 계속 타고 싶다. 하지만 만약 (가처분 신청이) 잘 안 된다면 내가 다시 어떻게 그곳에 가겠냐. 저도 이렇게 가처분신청을 하고 싶겠나. 억울하기 때문에 신청한 것이다.

국가대표 선발 규정도 의문인 것이 개최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인데도 결국 최종 엔트리는 소치 때보다 많이 나가지 못하게 됐다. 그렇다면 협회가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인지 탈락한 선수들을 모두 불러서 투명하게 답을 줘서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할 것 아니냐. 해명을 해줘야 한다. 협회는 그런 행동 하나 취하고 있지 않다."

- 평창을 앞두고 그나마 스키가 조명을 받고는 있지만 그동안 비인기 종목이지 않았나. 비인기 종목 선수였기에 받는 설움도 컸을 텐데, 이런 불미스러운 일까지 겹쳤다.
"너무나 속상하다. 결국 대회에 못 나가게 됐고, 선수로서 좋은 일로 관심을 받고 싶고 이슈가 되면 얼마나 좋겠나. 그래야만 하는데 이런 일로 조명을 받고 있어 불명예스럽다. 불미스러운 일에 엮인 것 자체가 기분이 좋지 않다. 이렇게 될 줄도 몰랐고 이런 결과를 얻고자 그렇게 노력한 것도 아닌데... 애매하다."

질주하는 경성현 18일 오후 강원 정선군 하이원리조트에서 열린 제99회 동계 체육대회 및 제48회 회장배 전국스키대회에서 경성현(홍천군청)이 역주하고 있다.

▲ 질주하는 경성현 지난 18일 오후 강원 정선군 하이원리조트에서 열린 제99회 동계 체육대회 및 제48회 회장배 전국스키대회에서 경성현(홍천군청)이 역주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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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계올림픽 스키협회 경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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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스포츠와 스포츠외교 분야를 취재하는 박영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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