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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1월 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신용산역 부근 재개발 지역내 5층 건물 옥상에 설치된 철거민 농성용 가건물을 경찰특공대가 강제진압 하는 과정에서 불길에 휩싸인 가건물이 무너지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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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책상을 정리하다가 주디스 허먼의 <트라우마>라는 책을 펼쳐보았다. 밑줄 그은 문장도 많고, 중간중간에 적혀있는 메모들도 많았다. '어? 내 글씨인데, 대체 뭐라고 적은 거지?' 평소에 글씨를 흘려 쓰는 편이라, 적은 내용이 무엇인지 한참을 들여다봐야 했다. 문득문득 그 메모들을 썼던 상황이나 그때의 마음이 떠올렸다.

한 사람. 그것도 잔혹한 기억을 가진 사람들을 이해하는 일은 어려웠다. 답답한 마음에 여기저기 다양한 도움을 청했는데, 아마도 <트라우마>라는 책에서도 조언을 구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고민도 정리했던 모양이다. 거의 책의 뒷부분에서 책갈피처럼 붙어있는 하늘색 포스트잇 하나를 발견했다. 거기에는 두 문장이 적혀있었다. 그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은 순간의 기록이었다. 꽤 감격스러웠나보다. 또박또박 힘주어 쓴 글씨다. 메모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었다.

"용산참사가 잊혀졌다. 그러자, 내 존재도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공동정범>에 등장하는 5명의 주인공

<공동정범>에는 5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5명의 주인공 중 4명은 용산과는 무관한 다른 지역의 철거민으로, 용산에 연대하러 왔다가 한순간에 인생이 바뀌었다. 그중 화재 직전에 망루에서 탈출할 때, 두 발목이 분쇄되는 부상을 당한 지석준씨. 그는 몸의 부상뿐만 아니라 죄스러움 때문에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의 죄책감은 말뜻 그대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었다.

지석준씨에 따르면, 탈출할 때 자신과 같은 동네 주민인 윤용헌씨와 얼굴 정도만 알고 지냈던 다른 지역의 철거민 이성수씨가 자신을 살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런데 문제는 윤용헌씨와 이성수씨의 시신이 망루 안에서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불타는 망루를 함께 탈출했던 윤용헌씨와 이성수씨는 왜 다시 불타는 망루로 들어갔을까. 윤용헌씨와 이성수씨, 두 분의 사망원인과 경위는 의혹으로 남아있었다.

 지난 1월25일 개봉한 영화 '공동정범'포스터
ⓒ 시네마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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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죄스러움 때문에, 천주교 신자인 지석준씨는 늘 성당을 찾았다. 기도하면서 자신이 살아남은 이유를 찾았다. '왜 살렸을까, 왜 살렸을까. 나를 왜 살렸을까' 어느 날 질문에 답을 들었다. 윤용헌씨와 이성수씨가 살아서 망루를 탈출했다는 증언을 하는 것이 생존의 이유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면서 점차 파괴되었던 몸과 마음을 점차 복구할 수 있었다.

지석준씨는 몸의 고통에 비해 마음의 고통은 비교적 잘 회복하고 있었던 것에 비해, 김주환씨는 몸의 고통에 비해 마음의 고통이 가늠이 안될 정도로 컸다. 무척 온순한 성격의 김주환씨는 조용한 곳에서 화초를 키우며 살고 싶어한다. 어릴 적부터 희한하게도 그의 손길이 닿으면 식물이며 동물이며 무척 잘 컸다고 한다. 그런 김주환씨는 술만 먹으면, 폭력적으로 변한다. 평소의 억울한 마음을 잘 다스렸던 빗장을 술이 열어 버리는 듯했다.

김주환씨 역시 망루에서 탈출할 때, 허리를 다쳤다. 허리통증이라는 것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얼마나 아픈지 남들에게 증명하기 어렵다. 그뿐인가. 마음의 고통 역시 증명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가 항상 지니고 있는 마음의 고통이란 무엇일까. 도대체 김주환씨를 괴롭히는 기억은 무엇일까.

주인공이 여러 명일 경우에는 의지하게 되는 주인공이 있기 마련이다. 김창수씨가 그랬다. 그는 매우 신중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었다. 누구보다 용산참사 진상규명이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런 마음만큼이나 가족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진상규명을 위한 활동을 하기가 어려웠다. 김창수씨의 아내는 용산참사로 인해 남편이 억울하게 감옥에 가게 된 것도 억울한 데다가 9살 첫째와 4살 둘째를 데리고 생계를 유지하면서 하는 것이 너무도 고통스러웠나보다. 남편이 수감되어 있는 동안, 결국 암에 걸렸다. 그리고 남편이 걱정할까 봐 이 모든 사실을 숨기고 혼자 감당했다.

김창수씨는 출소하고 나서야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서, 가족들이 고통받은 것을 생각하니 너무나 미안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용산참사 진상규명에 대한 의지도 더욱 굳건해졌다. 그래서인지 김창수씨는 이 다큐멘터리 촬영에 누구보다 성실하게 임했다. 아마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다큐멘터리밖에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천주석씨는 완전히 파괴된 동네 한가운데 있는, 담이 부서진 집에서 살았다. 용산에 연대를 가기 전날에도 용역들이 동네에 들어와서 집들을 부쉈다. 감옥에서 4년을 보내고 출소하고 왔는데, 용역들이 또 들이닥쳤다. 용산참사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오히려 더 나빠졌다. 연대를 간 것은 자신의 선택이었으니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점점 외로워졌다.

그러서였을까. 천주석씨는 제작진을 항상 반가워했다. 촬영하지 말고 그냥 대화하자고 할 때도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천주석씨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망루에서 제일 먼저 탈출한 사람이 누구인지 안다. 하지만 말할 수 없다.' 제작진들은 궁금했다. 그게 왜 궁금했을까. 누구인지 물었을 때, 천주석씨는 재미있는 놀이를 발견하는 듯 알려줄 듯 말 듯하였다. 망루에서 제일 먼저 탈출한 사람이 누구인지가 왜 중요할까.

4명의 성격도, 처한 상황도, 고통도, 그 고통을 해결하는 방식도 모두 달랐지만 그들의 억울함은 같았다. 아니 후회할 때 떠오르는 질문이 같았다.

'왜 용산으로 연대를 가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이 비극을 피할 수 있었을까.'

이러한 후회와 함께, 어떤 충돌을 보였다. 4명의 주인공들은 잔혹한 경험에 대해서 부정하고 싶은 만큼이나 그것을 큰소리로 외치고자 하는 의지가 충돌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는 매우 정서적이고, 모순적이며, 조각조각 파편화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는 신빙성을 상실하고, 그들이 진실을 말하는 것과 은폐하는 것 사이에서 주저하는 것이 느껴졌다. 진실을 말하고 싶음과 주저함의 충돌, 그 '말할 수 없음'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 중요했다. <트라우마>에 따르면, 이 '말할 수 없음'은 두려움, 무력감, 통제 상실, 자아붕괴를 위협한다. 그것은 단지 심리적인 것이 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고통을 동반한다.

그런데 용산 망루 농성책임자였던 이충연씨는 '말할 수 없음'이 더욱 강하게 보였다. 이충연씨의 '말할 수 없음'을 느낀 것은 그를 처음 보았을 때였다. 이충연씨와 처음 인사를 나눈 것은 용산참사 이후로 355일 만에 장례를 치르기 위해, 잠시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였다.

그는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도록 잠시 구속이 정지되어 감옥에서 나왔다. 그때 이충연씨는 무슨 까닭인지, 다른 주요언론이 아니라 용산참사에 연대하고 있는 미디어활동가들과만 인터뷰를 하겠다고 했다. 그는 용산참사 당시 망루에서 탈출하다가 크게 다쳐서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바로 구속이 되었던 터라, 현장에 있던 미디어활동가들은 이충연씨를 직접 볼 기회가 없었기에 그를 직접 촬영한다는 사실에 무척 흥분되었다. 나 역시 그와의 인터뷰가 반갑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했다.

카메라 앞에 앉은 그는 내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작았다. 작은 체구, 카메라 뒤에 있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 표정, 영민해 보이는 눈, 과장된 손짓, 빠른 말투, 입에 충분히 붙지 않아서 발음할 때 묘하게 뭉게지지만 굳이 어려운 단어들로 설명하는 고집스러움, 질문을 날렵하게 가로채며 준비된 듯한 답변을 쏟아내는 순발력 그리고 무엇보다 지난 모든 일들을 과거가 아닌 현재 시제로 이야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왜 망루 농성을 시작했는지, 용산구청은 어떻게 방관했는지, 용역들의 횡포가 얼마나 무자비했는지, 참사 당일 경찰들은 어떻게 진압을 시작했는지 그 어떤 질문에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답변을 해주었다. 이제 시간이 많이 흘러서,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을 할 차례가 되었다. 마지막 질문을 우리는 서로에게 미루었다. 한 활동가가 용기를 내서 이충연씨에게 질문을 했다. 혹시 망루 안에서 아버님이신 이상림 열사의 마지막 모습을 보셨나요?

어렵게 질문을 꺼낸 마음이 무색하게, 이충연씨는 지금까지 답변하던 모습과 별반 차이 없이 답을 하였다. 그는 최루액과 소화액 등으로 혼란스럽고 경찰특공대들이 위협을 하는 경황없는 상황이라서 아버지의 모습을 못봤다고 담담하게 답했다. 우리는 무시무시한 경험을 하고도 이토록 담담하다니 놀랍다고 상찬을 하면서도, 그의 답변이 낯설게 느껴졌다.

눈물이라도 흘리기를 바란 것일까. 물론 그렇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 무언가 극적인 것을 바라고 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비극적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였으니까. 한동안 우리는 이충연씨가 왜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어떻게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지에 관해 다양한 추정을 했었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상상력과 추리는 실제 이충연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충분치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이충연씨가 그렇게 담담하게 답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감옥에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는데 보냈기 때문이었다. 이충연씨가 후회할 때 떠오르는 질문이 있었다.

'망루에서 불이 났을 때, 내가 당황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돌아가신 분들을 먼저 탈출시켰을까.'

이충연씨와 다른 4명의 연대자들은 각자 후회하고 자책하는 부분이 달랐다. 이충연씨는 망루에서 탈출하던 그 순간, 그 선택에 집중되어 있다면, 다른 연대자들은 연대를 결정하던 그 순간, 그 선택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것이 갈등의 핵심이었다. 이것은 용산 철거민과 연대 철거민의 갈등이라기보다, 망루 농성 책임자와 단순참가자가 이 참사의 비극과 관련해서 스스로 어떤 책임을 져야 할 것인지 혼란스러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충연씨는 동지들과 아버지의 죽음에 지나치게 큰 자책을 갖고 있다 보니 되려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방어적인 상태가 되었다. 다른 연대자들은 자발적인 선택, 즉 용산에 연대를 가는 선택, 스스로 한 선택을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을 함에도 불구하고, 후회하고 자책하기엔 억울함이 너무나 컸다.

그러다 보니 이충연씨에 대한 원망의 감정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충연씨는 돌아가신 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사망의 원인을 밝히는 과정이 중요한데, 이에 동참하지 않는 연대자들이 원망스러웠다. 결국, 이들의 갈등은 용산참사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농성철거민들에게 전가한 것으로 비롯된 셈이다. 그런데 여기서 더욱 문제는 용산참사가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잊혀졌다는 점이다. 이제는 용산참사를 빼고는 자신들의 삶을 설명할 수 없는데, 이제 용산참사는 잊히고 있으니 서로에 대한 원망은 증폭되었다. 그래서 용산참사 농성철거민들의 피해자로서의 혼란스럽고 불안한 마음을 이해하면서, 그 마음을 문장으로 썼던 것 같다.

"용산참사가 잊혀졌다. 그러자, 내 존재도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신용산역 부근 재개발 지역내 5층 건물 옥상에서 철거민들이 농성을 벌이는 가운데, 철거민들이 던진 화염병으로 불길이 치솟는 가운데 경찰특공대가 건물로 진입하고 있다.
 2009년 1월 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신용산역 부근 재개발 지역내 5층 건물 옥상에서 철거민들이 농성을 벌이는 가운데, 철거민들이 던진 화염병으로 불길이 치솟는 가운데 경찰특공대가 건물로 진입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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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명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그들 각자의 '말할 수 없음'에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말할 수 없음'은 거짓말, 속임수, 은폐와는 다르다. 그것은 말하고 싶은 마음과 주저함의 충돌이다. 이 충돌은 점차 잦아들면서, 어느새 그들은 말할 준비가 된 것이다. 말할 준비가 된 그들은 카메라 앞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리고 관객들 앞에서도 용산참사에 대해 이야기할 용기를 냈다. 이러한 과정이 담긴 다큐멘터리가 바로 <공동정범>이다. <공동정범>이 지난 25일 개봉을 했다. 이제 관객들이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용기를 내어주시길 바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천주교인권위원회 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렸습니다. 글을 쓴 김일란 기자는 영화 <공동정범>의 감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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