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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청년들의 삶이 고달프다. 높은 실업율과 낮은 임금, 고용 불안정으로 인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삶으로 내몰리고 있다. 하지만 세상 탓만 하지 않고, 그렇다고 오로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만을 향한 삶이 아닌,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청년들도 있다. 새해를 맞아 그들의 희망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지금 흥행 중인 영화 <1987>의 배경이 된 1987년 6월 항쟁에서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을 폭로한 건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었다. 이뿐 아니라 천주교는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의 진상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런 굵직한 사건들을 빼고 보더라도, 천주교는 우리 사회에서 많은 역할을 해왔다. 최근 철거로 논란이 되고 있는 인천가톨릭회관(인천 중구 소재)은 군부독재시절 '민주화의 성지'로 불릴 정도로 시대와 함께했다.

부평구 십정동에는 천주교 인천교구 노동사목이 있다. 노동사목은 노동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인천지역 노동자들과 함께 해왔다. 그리고 이제는 청년들에게도 관심을 갖고 여러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천주교 노동사목에서 인연을 쌓은 청년들의 자발적 모임이 있다고 해서 인터뷰했다. 이 모임은 책을 읽고 각자 생각을 이야기하고 토론하며 지식을 공유한다.

여러모로 바쁜 시절에 어떤 마음으로 이 모임을 시작했는지 궁금했다. 그들은 '책을 매개로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모임'이라고 소개했다. '책을 읽고 쌓은 지식으로 다른 이들과 나누는 삶을 살고 싶다'는 취지도 들려줬다.

더 흥미로운 건, 노동자로 또는 취업준비생으로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의 다양한 생각과 이야기를 서로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래는 천주교 노동사목의 박민서 상담실장과 나종인 기획실장, 모임에 함께하고 있는 주현서·윤길중·김진오·이지윤씨와 한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

어떤 모임이고, 모임을 만든 계기는

천주교 노동사목의 청년 모임 ‘북북(book book)’ 회원들이 책을 읽고 토론하고 있다.
 천주교 노동사목의 청년 모임 ‘북북(book book)’ 회원들이 책을 읽고 토론하고 있다.
ⓒ 김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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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노동사목의 'book book(북북) 모임'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책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이다. 천주교 노동사목은 창립한 지 40년이 넘은 단체인데, 예전에는 노동자들을 지원하고 노동자들이 쉬었다 갈 수 있는 공간이었다. 지금은 여러 변화가 생기면서 사람들이, 특히 청년들이 많이 찾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직원들이 모여 청년세대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공부를 하다 보니 지금의 청년들이 많이 힘들다는 걸 알았고, 2016년에 처음으로 청년강좌를 열었다. 강좌에 참여해 인연을 맺은 친구도 있고, 봉사활동을 와서 만난 친구도 있다. 이렇게 한 명 한 명 인연이 이어져 책을 읽는 모임을 만들었다. 지금은 한 달에 책 한 권씩을 정해 읽고 모여서 토론한다.

처음에는 한 명씩 돌아가면서 책을 추천했다. 각자 관심 있는 분야가 다르기에,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의 책을 추천하고 그 책 이야기를 함께 토론하는 형식으로 진행했는데, 올해부터는 다른 방식으로 책을 선정할 계획이다. 아직 정확한 방식을 결정하지는 않았다.

모임에 참여한 계기는 무엇인가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대화해보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했다. 마침 노동사목에서 강좌를 한다고 해서 참여했고, 그게 책모임으로 이어졌다.

요즘에는 내 내면을 솔직하게 표현할 곳이 없다. 회사에 동기들이 있긴 하지만 회사 일에 대해서만 얘기하지 또래라고 해서 편하게 내 생각을 얘기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여기 와서는 책을 읽으며 각자의 생각을 거리낌 없이 얘기하고, 반대도 하고 공감도 하면서 재미를 느낀다.

처음에는 모임에 참여하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싶기도 했다. 이 모임을 시작하는 게 개인적으로 큰 도전이었다. 이 모임에 참여하며 두려움을 없앨 수 있었고, 이후 운동 동아리 활동도 하는 등, 스스로 성장했다고 느낀다.

모임에서 읽었던 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전태일 평전'이다. 전태일 열사가 돌아가시기 직전, 친구들에게 가족을 부탁하며 '나처럼 너무 심하게 하지 말고, 가족을 살피면서 해라'라는 말을 했는데, 그 부분이 너무 슬펐다. 그 때의 상황과 지금의 현실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하니 더 슬펐던 것 같다.

모임에 참여하면서 이루고 싶은 것은

천주교 노동사목이 개최한 첫 번째 청년강좌 포스터.
 천주교 노동사목이 개최한 첫 번째 청년강좌 포스터.
ⓒ 천주교노동사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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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임은 책을 매개로 서로 공감하고 자유로운 토론을 하며 연결고리를 만드는 데 방향을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거창한 목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회원들이 모여서 좋아하는 책을 읽고, 책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편하게 얘기하고 쉬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이 모임이 유지됐으면 좋겠다.

책을 읽고 나누는 이 시간만큼은 팍팍한 세상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말들을 하고 세상살이 어려움을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같이 여행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 그런 것들이 하나하나 쌓아가면서 우리에게 맞는 의미 있는 활동도 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알게 된 것을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과도 나누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라며, 각박해져가는 사회에서 '힐링'할 수 있는 여유를 찾고, 서로 생각을 나누며 힘든 청년시기를 극복할 수 있는 모임이 됐으면 한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

이 모임에 함께하는 선배들이 '너네랑 같이 있으면 젊어지는 기분이다'라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이 오히려 고마웠다. 항상 먼저 얘기를 들어주고 이해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는데, 그 말을 해준 것이 정말 좋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서로 의지하면서 더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청년으로 살아가며 힘들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경험이 있는가

취업 준비할 때 자존감이 떨어진다고들 하는데, 이번에 취업준비를 하며 왜 그런지 느꼈다. '누구는 어디 들어갔다'라는 소식들만 들리니까 마음이 급해져 아무것도 못하겠더라. 그러던 와중에 친구와 고민을 상담하다가 그 친구가 "우리는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해도 모자라다는 얘기를 듣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니야"라고 했는데, 그 말을 듣고 눈물이 났다.

또, 친구 중 한 명이 취업했는데, 수습기간이 6개월이고 그동안 월급의 70%만 받는다고 하더라. 노동법에는 수습기간 3개월에 90%의 임금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얘기를 했는데, 면접관들이 '우리 회사는 수습기간 6개월에 임금 70%만 준다. 괜찮으냐?'고 물어서 괜찮다고 답했다고 한다. 도대체 어느 누가 그 자리에서 노동법 얘기하면서 안 된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렇게 법이 있어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일이 많다. 그리고 그에 대해 소리 높여 얘기하지 못하는 게 아쉽다.

또, 최저임금을 적용해 받는다면 지금의 월급보다 더 받을 수 있는 경우도 있는데, 청년들이 이런 걸 물어본다는 것 자체로도 바로 회사에서 찍히는 분위기가 된다. 왜 우리나라는 법이 있는데도 눈치보고 얘기할 수 없는지 모르겠다.

'우리 때는 안 그랬다' '너희는 이것만으로도 감사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그 때는 그 때고, 지금은 지금인데, 이런 상황에서 소리 높여 얘기할 수 없는 게 안타깝다. 결국 회사를 그만뒀다.

우리나라에서는 법의 테두리에 맞는 회사를 들어가기 힘든 것 같다. 이 부분이 아쉽고, 그런 잘못된 일들이 있을 때 그것에 대해 얘기할 수 없는 환경이 아쉽다.

인천의 청년들을 위해 바뀌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얼마 전 인천시가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에서 유일하게 청년기본조례가 제정돼있지 않고, 청년수당도 최하위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인천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느꼈다.

청년은 인천에 관심이 없고, 인천시는 청년들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지역과 정치행정에 관심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한다. 또, 청년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 일들도 잘 되기 위해서 투표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동법 교육을 인천시가 주최해 각 동 주민센터 등에서 실시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청년들이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기 위해 바뀌었으면 하는 것이 있다면

천주교 노동사목이 개최한 첫 번째 청년강좌 진행 장면
 천주교 노동사목이 개최한 첫 번째 청년강좌 진행 장면
ⓒ 천주교노동사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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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하고 있는데, 신입사원이 들어와서 노조에 가입하라고 설명하면 노조가 뭐하는 곳인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신입사원에게 노조에 대해 알고 있냐고 물으면, '귀족노조'만을 알고 있다던가, 그냥 술 먹는 모임 정도로 알고 있는 경우도 있다. 노동 관련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초·중·고등학교에서 노동 관련 교육을 하기 힘들다면 대학에서라도 관련한 강의를 했으면 좋겠다.

어릴 때부터 노동 교육을 받는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면,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알고 있고, 회사도 그 권리를 인정해주기에,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교육이 없으니까 문제가 많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기 권리를 찾는 사람들을 보고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버지가 경찰인 친구랑 길을 가는데, 그 친구가 집회하는 사람들을 보더니 '저런 사람들 때문에 우리 아빠가 힘든 거야'라고 말했다.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권리를 찾으려 노력하는 사람들을 존중했으면 한다.

또, 지금은 많은 청년이 취업문제에 봉착한다. 취업률은 줄고 실업률은 느는 현실은 분명히 개인문제가 아닌 사회문제다. 정부가 해결책을 내놓아야한다.

대기업 이익에만 편중돼있는 경제구조, 갈수록 늘어나는 비정규직 일자리, 청년 취업 문제를 놓고 '나약해서, 눈이 높아서'와 같은 잘못된 관점으로 바라보는 게 청년들을 갈수록 궁지로 몰아가고 있다. 잘못된 인식을 조장하는 정치인들은 각성하고 제대로 된 청년정책을 내놓아야한다.

청년들 스스로 변해야하는 지점이 있다면

노동법 교육도 중요하고, 이슈화하는 과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치가 바뀌면 많은 것이 바뀐다. 해고된 동광기연 노동자들이 거의 1년 만에 복직한다는 소식을 최근 들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힘들게 싸워도 복직되지 않다가, 이렇게 한 번에 복직된다고 하니 기쁘면서도 허무하기도 하다. 이렇듯 정치가 바뀌면 많은 것이 바뀌기에, 정치에 관심을 많이 가졌으면 한다. 자세한 내용까지 알지는 못하더라도, 맥락과 흐름을 알 수 있게 관심을 가지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사인천>에도 게시 되었습니다.



태그:#인천, #청년, #천주교, #노동사목, #책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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