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다가오면 영화 전문지와 언론은 그 해의 베스트 작품을 뽑곤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리스트는 10년, 100년, 나아가 영화사의 명작전집에 차곡차곡 쌓인다. 걸작이 있다면 반대편엔 괴작 또는 졸작도 존재하는 법. 우리나라도 '형편없는 영화'가 나올 적에 단골로 소환되는 이름들이 있다.

지난해 영화 <리얼>이 충격을 안겨주자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맨데이트: 신이 주신 임무><클레멘타인><천사몽><주글래 살래><긴급조치 19호><평화의 시대><천사몽><다세포소녀> 같은 자타공인 한국 영화사의 괴작들이 대중의 입에 오르내렸다. 특히 영화 <불꽃슛 통키>도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작품으로 유명하다.

단지 영화 수준이 다른 영화보다 높지 못해서 지금까지 기억에 남았을까? 아마 그런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불꽃슛 통키>가 지금껏 회자하는 이유를 되짚어보고자 한다.

 영화 <불꽃슛 통키> 포스터

영화 <불꽃슛 통키> 포스터 ⓒ BUM영화제작소


응답하라 1993

1980년 11월 30일 동양방송(TBC)이 전두환 정권의 언론 통폐합으로 인해 역사 속으로 사라진 후, 1991년 12월 9일 SBS가 개국하며 민영방송의 명맥은 다시금 이어졌다. SBS는 공격적인 편성과 과감한 스카우트를 통해 기존 방송국과 경쟁했다. 예능프로그램은 <꾸러기 대행진>, 드라마는 <모래 위의 욕망>, 외화 드라마에선 <늑대미녀>가 개국 당시 시청률의 견인차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애니메이션 분야에선 <피구왕 통키>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일본에서 제작한 <불꽃의 투구아 돗지단페이>는 1992년 <매직 슈퍼볼>이란 제목으로 비디오가게에서 먼저 소개되었던 작품이다. 1992년 12월 SBS에서 <피구왕 통키>로 방송되며 일약 전국구 화제작으로 올라선다. 당시 <피구왕 통키>가 올린 시청률 35.5%는 역대 애니메이션 시청률 4위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는 대단했다. 1990년대 초중반, 맞수 연세대와 고려대, NBA의 마이클 조던, 만화 <슬램덩크>, 드라마 <마지막 승부>의 인기 여파로 중고교생들이 농구에 열광했었다면, <피구왕 통키>에 빠진 초등학생들 사이에선 피구의 인기가 가히 폭발적이었다.

<불꽃슛 통키> 199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이라면 누구나 꿈꾸었을 패션

▲ <불꽃슛 통키> 199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이라면 누구나 꿈꾸었을 패션 ⓒ BUM영화제작소


통키의 인기가 관통하던 1993년에 만들어진 <피구왕 통키>의 실사판 <불꽃슛 통키>. 영화는 그 시절의 열기를 고스란히 영화로 옮겼다. 화면 속엔 운동장 등 1990년대의 교실 안팎 풍경, 초등학생들의 옷차림과 머리 모양, 거리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과거를 재현한 것이 아닌, 가히 진짜 그 시절 그 모습들이다. 이젠 20~40대가 되어버린 분들은 <불꽃슛 통키>를 보며 당시 TV로 <피구왕 통키>를 보았던 기억이나 친구들과 피구를 하며 놀았던 추억을 떠올릴 것이다. 당시를 모르던 세대는 <그때를 아십니까>나 <대한늬우스>를 보는 느낌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당시 극장가 주름잡던 <우뢰매>와 <슈퍼홍길동>의 영향

<불꽃슛 통키>는 김춘범이 제작을 맡고, 조명화가 각본을 담당했다. 1970년대 어린이 영화를 애니메이션 <로보트 태권 V>가 대표한다면 1980년대는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섞은 특촬물(특수촬영물의 줄임말) <우뢰매>와 <슈퍼홍길동>가 극장가를 주름잡았다. 김춘범은 김청기 감독과 함께 <로보트 태권 V>시리즈, <우뢰매> 시리즈, <슈퍼홍길동> 시리즈를 만든 장본인이다.

<불꽃슛 통키> <우뢰매>와 <슈퍼홍길동>을 연상케 하는 특촬물의 향기

▲ <불꽃슛 통키> <우뢰매>와 <슈퍼홍길동>을 연상케 하는 특촬물의 향기 ⓒ BUM영화제작소


조명화 역시 특촬물 연출에 잔뼈가 굵다. 이두용 감독 밑에서 조감독을 시작한 조명화는 회천공사 기획실장으로 재직 당시엔 <안개마을><어둠의 자식들>을 기획하기도 했다. 이후 다양한 작품을 연출하던 그는 1980년대 후반 어린이 영화로 보폭을 넓혀 <우뢰매 4-썬더브이 출동><슈퍼홍길동><바이오맨> 등의 메가폰을 잡았다.

<불꽃슛 통키>는 김춘범과 조명화가 <우뢰매><슈퍼홍길동>로 쌓은 특촬물의 내공을 열혈 스포츠물에 가미한 작품이다. 사실상 피구 영화를 빙자한 무협 영화이자 본격 피구 액션 영화인 셈이다. 그리고 <불꽃슛 통키>는 김춘범-조명화 콤비가 만든 특촬물 계보의 끝자락에 위치한다. 유행이 변하고 한 시대가 저무는 흔적이 <불꽃슛 통키>에 새겨져 있다.

무협물로서의 <불꽃슛 통키>

<불꽃슛 통키>는 아버지 나태풍(안종환 분)와 어머니 김미화(유명진 분)의 모교인 태동 국민학교로 전학을 온 통키(이미림 분)가 맹태(문성복 분)와 미나(송주연 분)의 도움을 받아 실력을 쌓아 피구부에 들어가 상아 국민학교의 피구부 타이거(김승환 분)와 한판 승부를 벌이는 내용을 담았다.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전체적인 내용은 TV애니메이션의 앞부분을 그대로 가져왔다. 마지막 결말 장면도 동일하다.

<불꽃슛 통키>는 통키, 맹태, 미나, 타이거를 제외한 다른 국민학교 피구 선수들을 모두 성인 배우로 기용했다. 선생님뻘은 됨직한 배우들의 틈바구니에서 통키, 맹태, 타이거가 피구를 하는 장면들은 황당하기 짝이 없다.

<불꽃슛 통키> 이들이 무려 초등학생으로 등장한다.

▲ <불꽃슛 통키> 이들이 무려 초등학생으로 등장한다. ⓒ BUM영화제작소


<불꽃슛 통키>을 연출한 최기풍 감독은 무술감독과 연기자로 활동하다가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가 <불꽃슛 통키>의 어떤 점에 매혹을 느낀 걸까? 최기풍 감독의 첫 연출작인 <무인>이 중국 무협물의 영향을 받은 점에 주목할 필요성이 있다.

<불꽃슛 통키>와 원작 <피구왕 통키>는 무협물의 요소가 가득하다. 피구왕이 되려는 통키의 이야기는 무림 최고수가 되려는 무협지의 한 페이지와 같고, 아버지의 유산인 불꽃슛은 주인공이 가진 무림비기와 다름없는 구성이다. 통키는 <드래곤볼>의 손오공과 마찬가지로 적을 하나씩 꺾으며 성장한다.

최기풍 감독은 자신의 장기인 무술 연출을 위해 아역 배우들을 대신하여 성인 연기자를 선택했다. 스턴트맨 배우들은 피구 경기의 묘사를 위해 온몸을 날린다. 텀블링을 하거나 와이어에 매달리며 혼신의 액션 연기를 펼친다. 통키 역으로 분한 이미림도 상당한 액션 실력을 보여준다.

<불꽃슛 통키> 주성치의 <소림축구>에 영향을 준 듯한 장면이다

▲ <불꽃슛 통키> 주성치의 <소림축구>에 영향을 준 듯한 장면이다 ⓒ BUM영화제작소


<불꽃슛 통키>는 저예산과 국내 기술력의 한계 때문에 조악한 수준에 머문다. 분명 더 나은 환경에서 만들었다면 상당한 완성도를 보여주었을 것이다. 1993년은 할리우드가 <쥬라기 공원>을 내놓고 홍콩에서 <동방불패 2>가 날아왔건만, 한국은 겨우 <영구와 공룡 쭈쭈>를 만드는 시절이 아니었던가.

부족한 기술을 보완하기 위해 최기풍 감독은 황당무계한 연출법을 감행한다. 극 중에서 불꽃슛, 총알슛, 면도날슛 등 등장인물들의 필살기는 그야말로 만화적인 연출로 꾸며졌다. 불꽃슛은 배구공에 불을 붙이고 총알슛은 총알로 묘사한다. 면도날슛엔 당연히 면도날을 내세운다.

배우들이 재주를 넘고 와이어에 몸을 실어 하늘로 솟구친 다음에 붙여진 이런 장면은 독특한 맛을 전한다. 성인 배우들의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과 상상불허의 필살기 묘사가 합쳐지며 <불꽃슛 통키>는 원작에선 볼 수 없었던 무협물로서의 재미를 만든다.

통키에게 배울 점은 없다

<불꽃슛 통키>는 저작권자의 허락 따윈 애초에 안중에도 없는 작품이다. 우리나라의 저작권 인식이 희박하던 시절이 남긴 '흑역사' 중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구왕 통키>라는 유명한 제목을 놔두고 왜 <불꽃슛 통키>란 제목을 붙였을까?

극 중 통키에겐 배울 점이라곤 없다. 부상을 당해서 시합(그것도 전국대회도 아닌 친선 경기)에 나가지 말라고 주위에서 만류하자 "난 죽어도 좋아. 팔을 잘라도 좋아. 하지만 이번 시합만은 뛰게 해줘"라고 말하며 팀원들을 공포에 빠뜨린다.

<불꽃슛 통키> "난 지금 화가 몹시 나 있어"

▲ <불꽃슛 통키> "난 지금 화가 몹시 나 있어" ⓒ BUM영화제작소


극 중 통키는 자기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여길 땐 "이런 시골학교 피구부", "난 여기 아니라도 얼마든지 피구를 할 수 있어"라며 무시하는 발언도 한다. 그러나 자기 바람대로 될 적엔 "주장 최고"라고 호들갑을 떤다. 숙제를 안 해서 벌을 받던 중에 "선생님보다 교장 선생님이 더 높으니까 거역할 수 없죠?"라며 한국의 조직 문화를 활용하는 얍삽함도 보여준다. 선배에겐 언제나 반말을 내뱉는다.

반면에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타이거는 피구왕이 될 자격을 갖추었다. 전국대회 우승팀이지만, 상대방의 실력이 대단하다면 언제라도 한 수 배울 요량으로 경기를 먼저 제안한다. 자신에게 적개심을 가진 상대를 생일파티에 초청하는 넓은 아량도 지녔다. BMW를 타고 다니며 운전기사를 두었지만, 차문은 본인이 직접 열며 아랫사람을 존중한다. 경기 전에 사람을 보내 상대팀의 동영상을 구해서 분석하는 치밀함은 기본이다. 얕잡아 보는 법이 없는 인물이다.

<불꽃슛 통키> 해태 타이거즈의 검빨 유니폼을 계승한 듯한 타이거의 패션. 훗날 타이거 우즈도 따라했을 정도로 타이거의 패션 감각은 빛났다.

▲ <불꽃슛 통키> 해태 타이거즈의 검빨 유니폼을 계승한 듯한 타이거의 패션. 훗날 골프계의 타이거 우즈도 같은 패션으로 등장했을 정도로 <불꽃슛 통키> 속 타이거의 패션 감각은 빛났다. ⓒ BUM영화제작소


자신의 팀원이 실수를 저질러도 화를 내는 법이 없다. "죽으려면 너나 죽지, 왜 날 건드려"라며 맹태에게 맹비난을 퍼붓는 통키와 분명 그릇이 다르다. 영화는 진정한 피구왕이 누구인지 알려주고 있다. 그야말로 원작을 뛰어넘는, 영화만의 재해석이 빛나는 순간이다.

1990년대 국내 실사판 영화 4대 본좌

1980년대~1990년대 중반은 일본 문화가 본격적인 개방을 하기 이전이었다. <드래곤볼><북두의 권>은 불법으로 번역한 만화가 정식 수입본보다 먼저 들어왔고,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는 불법복제기판으로 만들어져 전국에 퍼졌다. 후에 정식으로 출간했지만, 분명 저작권의 개념은 부족하고 불법이 판치던 시절이었다.

이들 작품의 인기에 힘입어 왕룡이 연출한 <드래곤볼>(1990))과 <북두의 권>(1993)이 무판권으로 세상에 선보였다. 홍콩의 천하만화사에서 만든 '스트리트 파이터 가두쟁패전'의 라이센스를 따서 제작한 <스트리트 파이터>(1992)가 나왔다. <불꽃슛 통키>는 이들과 함께 '1990년대 실사 영화 4대 본좌'란 역사 속 리스트에 속한다.

<불꽃슛 통키> 진짜로 피구공에 불을 붙여서 연출한 불꽃슛

▲ <불꽃슛 통키> 진짜로 피구공에 불을 붙여서 연출한 불꽃슛 ⓒ BUM영화제작소


흥미로운 건 4편의 영화가 괴작이란 명분 아래 여전히 사랑받는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만든 이들조차 영화가 이렇게 오래 살아남을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한 철 장사로 생각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문득 고 하일성 해설위원이 했던 "야구 몰라요"란 말이 떠오른다. 이를 <불꽃슛 통키>에 관해 바꾸어 말하면 이런 말이 나오지 않을까.

"영화의 운명, 아무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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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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