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의 돌풍을 소개하는 호주오픈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호주오픈 공식 홈페이지에서 정현의 돌풍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 호주오픈


'2018 호주오픈'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한국 테니스의 간판 정현이 호주오픈에 출전할 당시 세계랭킹은 58위에 불과했다. 일단 본선에 출전하는 선수는 모두 좋은 성적을 기대하지만 현실적인 정현의 예상 성적은 3라운드(32강) 정도였다. 정현의 32강 상대가 바로 세계랭킹 4위 알렉산더 즈베레프(독일)였기 때문이다. 즈베레프는 정현보다 한 살 어린 1997년생이지만 이미 ATP투어 6회 우승의 만만치 않은 경력을 자랑했다.

하지만 정현은 32강에서 즈베레프를 풀세트 세트스코어 3-2로 꺾으며 대이변을 일으켰다. 1회전에서 알렉산더의 친형 미샤 즈베레프에게 기권승을 거둔 데 이어 본의 아니게 즈베레프 집안에게 상처(?)를 안긴 것이다. 정현은 이 여세를 몰아 16강에서 호주오픈 통산 6회 우승에 빛나는 '무결점 테크니션'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를 세트스코어 3-0으로 제압하는 기염을 토했다.

정현은 8강에서 16강에서 세계 5위 도미니크 팀(오스트리아)을 꺾은 테니스 샌드그렌(미국)을 또 한 번 3-0으로 꺾으며 호주오픈 돌풍의 진정한 주인공임을 선언했다. 이미 한국 테니스의 새 역사를 쓰며 호주오픈 최고의 히트상품으로 떠오른 정현은 26일 오후 열리는 4강에서 진정한 '끝판왕'을 만난다. 현존하는 가장 뛰어난 선수를 넘어 테니스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히는 '황제' 로저 페더러(스위스)가 그 주인공이다.

'황제'로 불리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역대 최고의 선수

 페더러(오른쪽)는 8강까지 5경기를 치르면서 단 한 세트도 허용하지 않았다.

페더러(오른쪽)는 8강까지 5경기를 치르면서 단 한 세트도 허용하지 않았다. ⓒ 2018 호주오픈 홈페이지 화면캡처


특정 종목에서 범접할 수 없는 업적을 올린 1인자에게는 '황제'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축구황제 펠레,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 단거리 황제 우사인 볼트, 포뮬러1의 황제 미하엘 슈마허 등이 그렇다. 그랜드슬램 우승 19회 , 윔블던 8회 우승(역대 최다), 237주 연속 세계랭킹 1위라는 독보적인 커리어를 쌓은 페더러는 세계 테니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히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2000년대 초반까지 세계랭킹 10위권을 넘나들던 젊은 유망주에 불과했던 페더러는 2003년 윔블던회에서 생애 첫 그랜드슬램 우승을 차지하며 본격적인 '페더러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그리고 2004년 호주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스위스 선수로는 최초로 세계랭킹 1위에 오르며 2000년대 중반 자신의 독주시대를 활짝 열였다.

특히 2004년부터 2006년까지 3년 간 페더러가 보여준 퍼포먼스는 '역대급'이라는 표현 외에는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가히 압도적이었다. 페더러는 이 기간 열린 12번의 그랜드슬램 대회 중 무려 8개의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페더러는 3년 동안 262경기를 치러 247승 15패로 94.3%라는 비현실적인 승률을 올리며 무적의 황제로 군림했다. 이 시기엔 오히려 페더러가 지는 경기를 찾는 게 더 빨랐을 정도.

페더러는 서브 앤 발리 같은 전통적인 플레이부터 체력을 앞세운 상대와의 랠리 싸움, 그리고 순간순간 페이크를 구사하며 변화무쌍하게 들어가는 까다로운 서브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올라운드 플레이어다. 특히 한 손으로 빠르고 정확하게 구사하는 우아한 백핸드 스윙에서는 범접할 수 없는 황제의 품격마저 느껴진다.

하지만 '짐승남' 라파엘 나달(스페인)의 추격을 받으며 페더러가 세월의 부담을 느끼기 시작할 때, 조코비치라는 무서운 신예가 등장하면서 페더러의 무적시대도 조금씩 저물기 시작했다. 2011년 8년 만에 그랜드슬램 무관 시즌을 보낸 페더러는 2013년부터 4년 연속 그랜드슬램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30대 중반으로 접어든 많은 나이에 잦은 부상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테니스팬들은 이제 페더러의 은퇴시기가 임박했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무실세트로 4강 진출, 돌풍의 정현과 결승 길목에서 격돌

2016년 윔블던 준결승에서 밀로스 리오니치(캐나다)에게 패한 페더러는 무릎 부상 치료를 위해 남은 시즌 결장을 선언했다. 반 년 동안 착실히 재활 과정을 마친 페더러는 2017년 호주오픈에서 17번 시드를 받아 공식 복귀했다. 사람들은 페더러의 말년을 궁금해 했지만 페더러는 호주오픈에서 라이벌 나달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아직 자신의 시대가 끝나지 않았음을 세상에 알렸다.

20대 시절 만큼 압도적이진 않지만 노련한 플레이를 앞세워 여전히 세계 최정상 레벨에서 활약할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페더러는 그 해 윔블던에서도 결승에서 마린 칠리치(크로아티아)를 꺾으며 '90년대의 전설' 피트 샘프라스를 제치고 역대 윔블던 최다우승 기록(8회)을 달성했다. 페더러는 2017년 52승5패(승률 91.23%)의 성적으로 세계랭킹 2위까지 순위를 회복하면서 '황제의 완벽부활'을 선언했다.

페더러의 기세는 2018 호주오픈에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2번 시드를 받은 페더러는 파죽지세로 4강까지 올라왔다. 8강까지 5경기를 치르면서 단 한 세트도 허용하지 않았고 자신의 서브게임을 내준 경우도 5경기에서 4번에 불과했다. 전성기를 연상케 하는 완전무결한 기량으로 상대로 압도했다. 특히 나달, 조코비치 등 라이벌들이 대거 탈락했기 때문에 페더러의 우승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 상황이다.

한국팬들은 즈베레프와 조코비치를 넘었던 정현이 페더러마저 꺾고 한국 선수 최초, 아시아 남자선수로는 두 번째(2014년 U.S오픈, 니시코리 게이)로 그랜드슬램 결승에 올라가 주길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노련한 페더러 입장에서는 큰 경기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정현은 비교적 쉬운 상대라 할 수 있다. 실제로 해외 도박사들도 페더러의 승리 확률을 70% 정도로 보고 있다. 이번 대회 여러 차례 이변을 연출했던 정현으로서는 또 한 번의 기적에 도전하는 셈이다.

페더러는 1981년생, 정현은 1996년생으로 두 선수의 나이 차이는 무려 15살에 달한다. 만약 페더러가 슬럼프에 빠졌을 때 조금 일찍 은퇴를 결심했거나 정현의 성장 속도가 지금보다 느렸다면 두 선수는 영원히 만나지 못했을지 모른다. 어렵게 성사된 '살아 있는 전설' 페더러와의 첫 만남. 승패도 중요하지만 역대 최고라는 테니스 황제를 상대하게 되는 정현이 코트에서 마음껏 경기를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테니스 2018 호주오픈 정현 로저 페더러 테니스 황제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