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민족'의 정통성을 중시하던 한국 사회도 점차 글로벌화한 다문화 시대로 진입하면서 외국인들이 결혼, 귀화 등으로 유입되는 빈도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스포츠에서도 이제 우수 선수가 귀화를 통해 한국인이 되는 경우를 보는 것이 드물지 않다.

국내 인기 프로스포츠 중에서도 농구는 최근 가장 적극적으로 귀화선수들에 문호를 열고 있는 종목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프로농구에서 많은 귀화 선수들이 한국무대로 진출하여 활발하게 활동하는 현상이 하나의 붐으로 자리잡기도 했다. 문태영-문태종 형제, 이승준-이동준 형제, 김민수 등은 프로농구를 대표하는 선수로 활약한 것은 물론이고 국가대표까지 승선하여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무대를 누비기도 했다.

한국 국적 취득 소감 밝히는 라틀리프 한국 국적을 취득한 프로농구 서울 삼성 리카르도 라틀리프가 25일 오전 서울 강남구 임피리얼 팰리스 호텔에서 열린 특별 귀화 기자회견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 한국 국적 취득 소감 밝히는 라틀리프 한국 국적을 취득한 프로농구 서울 삼성 리카르도 라틀리프가 지난 1월 25일 오전 서울 강남구 임피리얼 팰리스 호텔에서 열린 특별 귀화 기자회견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최근에는 서울 삼성에서 외국인 선수로 활약하던 라건아(미국명 리카르도 라틀리프, 서울 삼성 썬더스)가 한국 국적을 취득하며 농구팬들로부터 화제를 모았다. 미국 태생의 라건아는 최근 법무부로부터 체육 우수인재 자격으로 특별 귀화 허가통지서를 발급받으며 정식 한국인으로 인정받게 됐다.

라건아라는 이름은 자신의 미국 성(姓) 앞글자인 '라'를 한국식으로 표기하고 '굳셀 건(健)'과 '아이 아(兒)'를 조합하여 만들었다. 귀화 확정과 동시에 라건아는 2월부터 허재 감독이 이끄는 농구 국가대표팀에도 합류할 수 있게 돼 2017 FIBA 농구 월드컵 아시아-오세아니아 예선에 출전할 예정이다.

'라건아'가 된 라틀리프, 혼혈 아닌 최초의 귀화 선수

라건아 이전까지의 귀화 선수들은 모두 최소한 부모 중 한쪽이 한국인의 혈통을 이어받았다는 연결고리를 가진 혼혈(하프코리안)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하지만 혼혈 출신이 아닌 귀화 선수로는 라건아가 사상 최초다.

귀화 선수들이 대표팀에 본격적으로 승선하기 시작한 것은 2006년부터다. 당시 한국농구는 소위 프로 초창기부터 주역으로 활약해온 '농구대잔치 세대'가 노쇠하면서 대표팀 역시 자연스럽게 세대교체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기존 토종 선수들을 능가하는 운동능력과 스타성을 갖춘 귀화 선수들이 하나둘씩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팬들 사이에서도 이들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미국 출신의 이동준(다니엘 산드린)은 2007년 일본 도쿠시마 FIBA 아시아컵을 통하여 귀화 선수로는 최초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엄밀히 말하면 한해 전이었던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을 통하여 먼저 태극마크를 달았던 또 다른 혼혈선수였던 김민수(훌리안 페르난데즈 김)도 있지만, 김민수는 이중 국적자였다가 한국 국적을 회복한 경우로 귀화선수 규정에는 해당되지 않았다. 이들은 이후 KBL에서 데뷔하여 뒤늦게 귀화절차를 거친 선수들과 달리 이미 한국무대에서 대학까지 졸업하고 한국 국적 취득을 완료하는 과정을 거쳤다는 게 특징이다.

이동준과 김민수는 초창기 대표팀 단골멤버로 이름을 올렸지만 기대만큼 크게 빛을 발하지는 못했다. 한국농구는 귀화 선수들에게서 골밑을 지켜줄 빅맨의 역할을 기대했지만 이들은 자신의 플레이스타일이나 포지션과 맞지 않는 한국농구에서의 역할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야 했고 팀플레이에서 겉돈다는 지적을 받았다. 하필 당시는 한국농구가 국제무대마다 참사를 거듭하며 극심한 암흑기를 보내던 시기이기도 했다. 두 선수는 2009년 텐진 FIBA 아시아컵(7위)을 끝으로 더 이상 대표팀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서울 삼성의 이승준이 10일 울산 모비스와의 경기에서 덩크슛을 성공시키고 있다.

서울 삼성의 이승준이 지난 2012년 1월 10일 울산 모비스와의 경기에서 덩크슛을 성공시키고 있다. ⓒ KBL


귀화선수의 위력을 대표팀에서 처음으로 증명한 사례는 역시 이승준(에릭 산드린)이다. 이동준의 친형으로도 유명한 이승준은 2007년 당시 외국인 선수 신분으로 KBL에 진출하며 한국농구와 처음 인연을 맺었고 이후 2009년에는 귀화혼혈선수 드래프트를 통하여 서울 삼성의 지명을 받으며 정식으로 한국 선수로 인정받았고 귀화절차도 완료됐다.

이승준은 특이하게도 소속팀보다 대표팀에서의 활약으로 더 빛을 발했던 선수로도 기억된다. 이승준은 서울 삼성-원주 DB-서울 SK 등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갔지만 팀 최고성적이 6강에 그칠만큼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고 화려한 플레이스타일에 비하여 영양가 논란이 농구인생 내내 끊이지 않았던 선수였다.

하지만 대표팀에서의 이승준은 또 달랐다. 이승준은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준우승)을 통하여 첫 태극마크를 단 이래 2012 런던올림픽 최종예선-2013년 필리핀 FIBA 아시아컵(3위)까지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득점과 리바운드에서 상당한 기여를 했다. 부족한 수비력과 전술 이해도라는 약점이 이미 노출된 국내 리그에서와 달리, 국제무대에서는 당시만 해도 이승준처럼 장신에 호쾌한 운동능력과 정확한 중장거리슛까지 겸비한 '공격형 토종 빅맨'이 많지 않았던 탓에 이승준의 존재감은 대체불가였다.

문태종(제로드 스티븐슨, 고양 오리온)은 현재까지 '한국농구 역대 최고의 귀화선수'로 꼽힌다. 이미 전성기에 유럽무대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은 특급 슈터였던 문태종은, 2010년 귀화혼혈선수 드래프트를 통하여 다른 귀화선수들보다도 훨씬 늦은 30대 중반의 나이에 한국농구에 진출했음에도 소속팀과 대표팀을 아울러 '레전드'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은 업적을 남겼다.

문태종이 대표팀에서 활약했던 시간이 그리 긴 것은 아니다. 첫 도전이었던 2011년 중국 우한 FIBA아시아컵, 2014 농구월드컵 본선에서는 상대팀과의 전력차와 집중견제 속에 기대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홈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을 통하여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에 대표팀의 에이스로 등극하며 진가를 발휘했다.

문태종은 필리핀과의 예선전에서 귀화선수로는 역대 최다인 38점을 몰아치며 역전승을 이끌었고, 이란과의 결승전에서도 승부에 쐐기를 박는 자유투를 성공시키는 등 눈부신 활약으로 한국이 12년 만의 AG 금메달과 전승 우승을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당시 문태종은 대표팀 내 득점 3점슛 1위를 기록했으며 귀화선수로서 금메달을 딴 것도 사상 최초였다. 문태종은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함께 명예롭게 태극마크를 내려놓았다.

특별귀화제도의 성공사례, 라건아로 이어지는 중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개막을 하루 앞뒀던 지난 18일 오후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한국 대 KBL용병팀의 연습경기에서 한국 문태종이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개막을 하루 앞뒀던 지난 2014년 9월 18일 오후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한국 대 KBL용병팀의 연습경기에서 한국 문태종이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태종은 친동생 문태영(그렉 스티븐슨, 서울 삼성)과 함께 법무부 특별귀화 제도를 통하여 정식 귀화시험이나 절차를 거치지 않고 한국 국적을 조기에 취득한 최초의 사례이기도 하다. 훗날 여자농구 첼시 리나 김한별의 사례에서 보듯, '대표팀에서의 활약상'을 전제로 한 특별귀화 제도의 형평성과 부작용을 놓고 반응이 엇갈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현재로서 특별귀화제도의 거의 유일한 성공사례라고 할 수 있는 문태종이 없었더라면 라건아의 사례도 없었을지 모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반면 전태풍(토니 앳킨스, 전주 KCC)이나 문태영은 KBL에서 보여준 명성에 비하면 대표팀과는 유독 인연이 없었던 선수들도 꼽힌다. 전태풍은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예비엔트리에 이름을 올렸으나 이승준과의 경쟁에서 밀렸고 이후로도 몇 차례 대표팀 후보로 거론되었지만 끝내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 출전하고 싶다는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 전태풍 같은 단신의 테크니션 가드보다는 빅맨이나 슈터가 절실했던 한국농구의 사정도 무관하지 않았다.

문태영은 2015년 중국 창사 FIBA 아시아컵 대표팀에 이름을 올렸지만 KBL에서의 활약과 달리, 국제무대에서는 자신보다 큰 외국 선수들과의 매치업에서 한계를 드러내며 부진한 모습으로 자신의 형만큼의 활약은 보여주지 못했다.

라건아는 문태영 이후 3년 만에 모처럼 다시 대표팀에 등장한 귀화 선수이자 최초의 순수 외국인 출신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30대를 훌쩍 넘겨 비교적 늦은 나이에 태극마크를 달았던 문태종이나 이승준과 달리, 아직 89년생에 불과한 라건아는 농구선수로서 기량이 막 전성기에 접어들고 있는 시점이라 국가대표팀에서도 최소 5~6년 이상 활약할 수 있을 전망이다. 무엇보다 이전의 귀화선수들에 비하여 역대 최고의 골밑 장악력과 파워를 갖춘 '정통센터'라는 점에서 항상 국제무대마다 '높이의 열세'에 허덕였던 한국농구의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다만 빅맨으로서는 단신인 라건아가 우수한 장신선수들이 즐비한 국제무대, 특히 중국이나 이란같은 아시아의 강팀들을 상대로도 KBL에서만큼의 위력을 재현해보일 수 있을지기 관건이다. 또한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고 할지라도 귀화 선수 한 명에게 지나친 기대와 의존도가 오히려 팀으로서는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는 것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라건아가 역대 귀화 선수의 성공사례로 꼽히는 문태종과 이승준을 뛰어넘어 한국농구 역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에 이름을 남길 수 있을까.

라틀리프 '내가 돌아왔다!' 1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7-2018 정관장 프로농구 정규리그 서울 SK 대 서울 삼성 경기. 부상에서 복귀한 삼성의 리카드로 라틀리프가 골밑슛을 넣고 있다.

▲ 라틀리프 '내가 돌아왔다!' 지난 1월 1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7-2018 정관장 프로농구 정규리그 서울 SK 대 서울 삼성 경기. 부상에서 복귀한 삼성의 리카드로 라틀리프가 골밑슛을 넣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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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귀화선수 라건아 라틀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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