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수정 : 2월 12일 오후 4시 55분]

'1987' 김태성 음악감독 영화 <1987>의 김태성 음악감독이 22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자신의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김태성 음악감독 영화 <명량> <강철비> <1987> 등을 작업한 김태성 음악감독. ⓒ 이정민


지난해 말 개봉해 겨울 극장가의 포문을 연 영화 <강철비>, 비슷한 시기 개봉한 이후 현재 700만 관객 돌파를 바라보고 있는 영화 <1987> 사이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대형투자배급사들이 사활을 건 일명 '텐트폴' 작품이라는 점, 그리고 이 사람이 참여했다는 점 등. 

서로 경쟁 관계였던 두 작품의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 한 사람이 바로 김태성 음악감독이다. 게다가 곧 개봉할 또다른 대작 영화 <골든슬럼버>에도 참여했다. 알고 보니 참여하기로 한 작품 수가 매우 많아 이미 3년 치 일정이 꽉 차 있을 정도였다. 말 그대로 영화사들이 줄서서 기다릴 정도로 바쁜 실력자였다. 그 이유가 뭘까. 지난 22일 서울 논현동의 작업실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사활을 건 작품의 무게

결과적으로 경쟁작이 됐지만 <강철비>와 <1987>은 본래 개봉 시기가 6개월 정도 차이가 있었다. 전자는 여름 개봉을 염두에 둔 작품이었으나 여러 사정으로 연말로 미뤄졌고, 후자는 올해 초 개봉이 목표였으나 2017년이 박종철, 이한열 열사 사망 30주기라는 상징성 때문에 지난해 연말로 당겨지게 됐다. "둘 다 각 영화사의 사활이 걸린 작품이기에 굉장히 큰 부담이었다"고 김태성 음악감독은 운을 뗐다.

"처음엔 힘들었지만 둘 다 의미 있는 화두와 물음을 던지는 영화였기에 제겐 뜻 깊은 작품이다. <강철비>는 남북관계에 대한 고민거리를 던지고, <1987>은 6월 항쟁을 다시 돌아본다는 의미다. 특히 <1987>은 촛불시위와 맞닿아 있고, 이 영화로 그 누구도 상처받아선 안 된다는 생각에 스스로는 많이 긴장하며 작업했다. 물론 이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소재지만 이념 프레임을 벗어나서 온 국민의 영화가 되길 바랐다. '그날이 오면' 같은 민중가요를 사용하면서도 그때 당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느낌으로 편곡했다."

그렇게 해서 등장한 '그날이 오면'은 알려진 대로 고인의 선후배 등으로 구성된 이한열 합창단이 불렀고, 영화 곳곳에 자리잡은 웅장한 오케스트라 사운드는 40여명의 단원들과 함께 미국 할리우드 제작사 워너브러더스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다. 영화를 보며 연주하던 단원들 중에선 비극적인 한국의 모습에 눈물을 흘린 이들도 있었다는 후문이다.

"사실 <1987>은 촬영 시작 후에도 음악감독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고, 제가 늦게 합류한 경우였다"며 김태성 감독은 "보통은 촬영 전부터 감독님 등과 회의하면서 메인 테마곡을 정하곤 한다"고 설명했다. 음악작업은 일반적으로 영화 후반작업의 일부로 알려져 있지만 따지고 보면 영화 스태프 중 가장 오랜 기간 참여하는 이가 바로 음악감독인 셈이다.

비틀즈 노래가 한국영화에?

 영화 <1987> OST 작업에 참여한 이한열 합창단의 모습.

영화 <1987> OST 작업에 참여한 이한열 합창단의 모습. ⓒ CJ엔터테인먼트



 영화 <강철비>의 스틸컷.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곽철우(곽도원)은 비밀회담 테러 현장에서 엄철우(정우성)가 보인 돌발적인 행동에 분노한다.

영화 <강철비>의 한 장면. ⓒ (주)NEW



그리고 이 영화를 한번 보자. 제목부터가 비틀즈의 노래 제목이기도 한 <골든슬럼버>는 김태성 감독이 참여하고 싶었던 작품이다. 동명의 일본 원작을 한국 상황에 맞게 리메이크 한 이 영화는 서울 광화문에서 대통령 후보가 암살당하는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화엔 실제로 비틀즈 멤버 폴 매카트니가 작곡한 '골든슬럼버'가 담기며, 마왕 신해철의 미발표 곡과 주요 곡이 담긴다. "지금 한창 후반 작업 중"이라며 김태성 감독이 관련 일화를 전했다.

"일본 원작의 팬이기도 했고, 이걸 한국에서 만든다고 했을 때 꼭 하고 싶었다. 비틀즈의 노래도 나오고, 상징성이 있는 영화라고 생각해서다. '골든슬럼버'라는 노래 자체가 한국영화사상 저작권료가 가장 비싼 노래일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분들이 노력했다. (제작사 측에서 해당 음원의 최종결정권자는 소니ATV라고 알려왔다-기자 주) 제 입장에선 비틀즈의 노래를 만져볼 수 있다는 자체가 큰 도전이자 영광으로 다가왔다. 

신해철씨 노래 역시 <1987> 속 유재하처럼 재평가 될 시기가 온 것 같다. 미발표 목소리를 찾았고, 이 영화에서 공개된다. 지금도 음악적으로 고민하면서 작업 중이다. 건우(강동원)라는 캐릭터를 통해 관객들이 함께 도망갈 수 있는 느낌으로 지루하지 않게 만들려고 한다."

시행착오들



'관객들을 스크린 앞으로 어떻게 데려올 것인가'. 김태성 감독이 작업 때마다 늘 고민하는 문제다. 2004년 <안녕 유에프오>, 그러니까 20대 중반이라는 매우 이른 나이에 음악감독 일을 시작하게 된 그는 본래 자신의 음악적 성향을 영화에 짙게 담아내는 쪽이었다. 영화음악을 하고 싶어 대학에서 클래식 작곡을 전공했고, 학부생 때부터 곽경택 감독의 <챔피언>, 장항준 감독의 <라이터를 켜라> 등 다수 작품의 예고편 작업에 참여했다.  

"제가 98학번으로 1999년에 군대를 가려고 휴학을 했다가 덜컥 작업을 맡으면서 활동하게 됐다. 고등학생 땐 교회에서 성극 같은 걸 하면 제가 곡을 만들어 올리기도 했다. 그 노래가 구전으로 다른 교회에 전해지기도 하고(웃음). 영화를 너무 사랑했고, 기본적으로 클래식을 공부해야 영화 음악을 할 수 있는 건 줄 알았다. 

그렇게 아무 것도 모를 때 <안녕 유에프오> 음악감독을 맡았는데 영화음악 문법을 몰라서 망한 것 같다. 촬영을 재밌게 했는데 막상 결과물이 너무 이상해 스태프들이 깜짝 놀라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개인적으로 그건 후반작업 문제라고 생각한다. 음악이나 믹싱 때문이지. 음악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그럴 수 있는데 사실 매우 중요하다. 요즘 상업영화에선 음악감독을 많이 신경 쓰고 또 어떤 문제가 보이면 가장 먼저 교체되기도 한다."

이 대목에서 김태성 감독은 스스로를 '운이 좋은 사람, 수혜자'라고 표현했다. 기라성 같은 동료, 선배들 틈에서 그는 나름의 브랜드 가치를 분명히 했다. 그렇게 되기까지 수편의 영화가 자신과 함께 저조한 성적을 내는 것을 봐야했던, 일종의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좋은 음악이 깔리면 좋은 영화음악이 되는 줄 알았는데 좋은 음악과 좋은 영화음악은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그가 고백했다.

"초반에 했던 영화들이 망한 이후 스스로를 지우는 과정을 겪었다. 보이지 않는 요소가 어떻게 관객에게 영향을 주는지 공부하게 됐다. 가장 크게 망했던 게... <가루지기>라는 작품이다. 엔리오 모리꼬네와 함께 작업했던 분들과 음악을 만들었다. 100인조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었는데 이 분들과 만든 노래가 영화에 하나도 안 붙더라. 그때 바닥을 쳤다. '난 여기서 끝이구나' 생각했다. 

비슷한 시기에 영화 <크로싱>을 했다. 감독님과 싸워가면서 했는데 내가 졌다고 생각했다. 슬픈 장면에 슬픈 음악을 넣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던 때였는데 <크로싱>은 감독님이 원하는 대로 했거든. 근데 그 영화가 성공했고, 저 역시 그 작품으로 상을 많이 받았다. 해외에서 좋은 제안도 받았고. 그때가 스스로 많이 깨지고 바뀌어 간 포인트였다."

'1987' 김태성 음악감독 영화 <1987>의 김태성 음악감독이 22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자신의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김태성 음악감독 ⓒ 이정민


시행착오 이후 그는 새롭게 깨달은 명제, 즉 '관객을 사로잡는 영화음악'을 마음에 품고 그에 맞게 작업해 나갔다. 그렇게 해서 <최종병기 활> <명량> 등의 흥행을 도울 수  있었다. 그렇다고 무조건 영화에만 매몰되는 게 정답은 아니다. 김태성 감독은 "정말 훌륭한 음악감독은 자기 음악 색깔을 지키면서 상업성도 살리신다. 전 그런 내공이 안 될 뿐이다"라고 덧붙였다.

"예전엔 그러니까 1980년대만 해도 좋은 테마곡 위주로 영화음악 안에 명확한 선율이 있었는데 이젠 연출자의 시점을 더 중시하는 것 같다. 관객을 어떻게 몰입시키느냐가 중요해졌다. 그래서 영화음악의 형태도 많이 바뀌었지. 아무래도 최근 상업영화에 멜로디가 들리면 음악 과잉이라는 얘기가 종종 나온다. <1987>이 그 점에서 고민이 많았다. 어느 수위로 멜로디가 들어가야 할지, 어떤 온도로 사건을 전달할 건지 등. 그런 이유로 음악 하는 분들이 영화음악에 참여하면서 어려워한다. 감독님과 얘기하다보며 자기 음악과 전혀 다른 걸 하게 되니까."

남은 과제

그렇게 명실상부 가장 바쁜 음악감독 중 한 명이 된 그는 새로운 목표를 두고 있다. "<한공주>와 같이 과거에 참여했던 좋은 저예산 독립영화처럼 의미 있는 작품을 경험하고 싶다"는 것. 그리고 "현재 함께 하고 있는 팀 동료들, 후배들의 작업 환경을 낫게 하는데 일조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선진 시스템을 한국에 갖고 오고 싶은 욕심이 있다. 한국에선 연주자 섭외부터 하나하나 음악감독이 다 하도록 돼 있는데 (할리우드 등에선) 스튜디오 예약, 연주자 섭외 담당 등이 따 세분화 돼 있거든. <임금님의 사건수첩> 때도 그랬고, 미국이 그만큼 시스템이 잘 돼 있다. 노조를 통해 사람들을 섭외했고, 그 분들 한 사람 한 사람 다 작업자로 표기했다. 

물론 예산은 많이 들지. 하지만 관객이 영화관을 찾아서 얻어갈 수 있는 게 바로 큰 스크린과 사운드거든. <죠스>만 해도 단순한 음 두 개만 반복해 들려주는데도 상어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잖나. <강철비>나 <1987>도 그런 식의 서라운드 믹싱을 적용했다. 보통 한국 영화음악에선 서라운드 믹싱을 잘 안하는데 전 좀 무리를 했지. 그 점을 영화사에서 좋아해주시는 것 같다. 한국영화의 후반작업 비용은 10년 전과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다. 제작비가 많이 올랐다고 하지만 소수에게만 돌아간다. 전 이걸 바꿔보고 싶다. 그만큼 돈을 줘도 영화가 흥행한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은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영화음악 크레딧이 회복되지 않고 있다. 고스트라이터(ghost writer, 이름이 공개되지 않고 작곡하는 사람)가 엄청 많다. 음악감독은 음악감독으로, 뮤직 에디터는 뮤직 에디터로, 작곡자는 작곡자로 크래딧을 표기하고 세분화 시켜야 한다. 저의 후배들 역시 작업을 하다가 곡을 뺏기곤 하더라. 이런 게 한국영화 시스템을 낙후시키는 일이다. 드라마도 보면 제작사 대표가 OST 작곡자로 올라가는 경우가 많더라. 재능 있는 친구들을 뽑아 먹고 버리는 셈이지. 크레딧은 일한 사람에게 제대로 가야 한다." 

'1987' 김태성 음악감독 영화 <1987>의 김태성 음악감독이 22일 오후 서울 논현동의 자신의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골든슬럼버>외에도 그는 <국가부도의 날> <사바하> <우상> 등의 작품에 참여한다. ⓒ 이정민


이상의 말에 그는 힘주어 강조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다간 같이 망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있는 걸까. "스스로 총대를 메고 싶다"면서 이 부분에 관심을 두고 봐달라고 호소했다.

"영화를 진짜 좋아한다. 누군가 제게 '당신은 음악인인가, 영화인인가'라고 물으면 '영화인이다. 영화 하는 음악인이다'라고 답한다. 음악으로 받은 스트레스를 영화로 푼다. 솔직히 제 영화 취향은 주류에서 많이 벗어나 있긴 하다. 이걸 밝히면 제작사 분들이 싫어할지도 모르겠다(웃음). 미란다 줄라이, 사라 폴리 등이다.  

여러 영화음악 거장들이 그랬듯 저 역시 좋은 짝을 찾고 있다. 왜 스티븐 스필버그 하면 존 윌리엄스, 크리스토퍼 놀란 하면 한스 짐머가 있듯 말이다."


1987 골든슬럼버 이한열 김태성 강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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