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열 받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하는 일을 보면 부러움과 경탄을 넘어 시기심과 질투심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저 사람, 도대체 뭐지? 어떻게 살기에 저렇게 대단한 작업들을 하는 거지? 잠은 자는 거야? 말은 또 왜 저렇게 잘하는 거야. 예를 들어 강원국 저자가 그렇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을 했다는 것도 부럽지만, <대통령의 글쓰기>로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에 등극했고 강연도 잘 한다는 차원을 넘어 유머까지 능수능란하게 구사한다는 점에서 더욱 나를 기죽게 한다.

또한 김민식 피디가 그렇다. 드라마 피디를 할 때나 '파업 피디'를 할 때나 어쩜 그리 즐겁게, 게다가 창의적으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지 두 손 들었고, 매일 블로그에 글을 쓰더니 급기야는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라는 책을 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데 두 발 들었다. 최근에는 <매일 아침 글 써봤니?>까지 출간해 더 이상 뭘 들 게 없게 하고 있다. 이밖에도 나에게 그런 분들은 많고도 많지만 바로 이 사람이야말로 나를 부글부글 끓게 하는, 그래서 주는 거 없이 미운 대표적인 사람이 이재익 피디다.

<나 이재익, 크리에이터> 책 표지
 <나 이재익, 크리에이터> 책 표지
ⓒ 시공사

관련사진보기

'이재익'이라는 이름 옆에 '피디'를 붙였다고 프로듀서라고만 생각하시면 큰 코 다친다. 내가 몸담고 있는 분야에서 가장 가깝게 와 닿는 직업이 피디이기에 나에게는 이재익 피디가 제일 먼저 다가왔다. SBS 라디오 피디로서 <2시 탈출 컬투쇼>를 수년간 연출했다. 어떤 분들에게는 이재익 작가가 더 다가올지도 모른다.

1997년 장편소설 <질주 질주 질주>로 <문학사상> 소설 부문에 당선되어 등단했고 그 이후로 계속 발표해 대충만 헤아려도 10권 이상의 소설을 출간했다. 영화 쪽에서 일하는 분들이라면, 이재익 시나리오 작가로 알고 계시는 분들이 꽤 있을 거다. 영화 <질주>, <목포는 항구다>, <원더풀 라디오> 등의 시나리오를 집필했다.

심지어, '이재익의 아재음악 열전'이라는 이름으로 <한겨레신문>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고, 이 밖에도 자잘한(?) 것들까지 포함하면 카피라이터도 했고, 에세이도 썼다. 2018년 현재 그는 이재익 소설가로, 이재익 시나리오 작가로, 이재익 피디로 살고 있다. 이러니 어찌 분통이 터지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다고 바라보며 부들부들 떨고 있을 수만은 없을 터, 그를 보는 시선이 나와 다르지 않을 뭇 동지들을 위해 그의 삶의 방식 혹은 창작비밀을 조금이라도 엿보지 않을 수가 없으니, 그가 소설가로 15년, 시나리오 작가로 13년, 라디오 피디로 11년 되던 해(2012년)에 쓴 에세이 <나 이재익, 크리에이터>를 탐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문을 보면, 이재익씨 자신이 소설, 방송, 영화분야에서 일하는 삶에 대해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질문에 계속 답하는 것도 힘들고 딱히 답할 것도 없던 차에 자신에 대해 곰곰이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고 그렇게 해서 발견한 '나만의 방식'에 대해 공유하고자 책을 썼다고 한다. 이른바 '이재익식 크리에이티브 보고서'이다.

이 책의 제일 강점은 뜬구름 잡는 나 잘났소가 아닌, 크리에이터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구체적으로 도움이 되는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크게 3개의 단락으로 나누어 첫째, 크리에이티브란 무엇이고 크리에이터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있는지 설명한다. 둘째, 크리에이터로 살아오면서 자신이 했던 시행착오에 대한 얘기를 한다. 셋째, 자신이 실제로 작업했던 소설, 시나리오, 방송 프로그램을 예로 들어 어떻게 구상 및 시작을 하게 됐고 진행을 해서 완성했는지를 솔직하게 알려준다. 친절하게도 부록으로 크리에이티브한 크리에이터가 되려면 반드시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책과 영화도 알려준다. 나에게 자극을 준 구절 몇 곳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누구도 쉽게 하지 못할 특별한 경험, 기묘한 추억을 가져놓고서도 그 가치를 스스로 평가절하 시켜버렸다.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라더니 내가 바로 그 돼지였고, 내가 던져버리고 싶었던 우리 프로그램은 진주목걸이 보다 더 귀한 존재였다."
 
방송 피디가 되었는데 자신의 일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주어진 프로그램을 기계적으로 하고 있을 때의 에피소드다. 대통령선거가 다가오고 자신이 맡고 있던 프로그램에서도 함께 준비했는데 대통령 후보들과 지근거리에서 소통하고 식사도 하는 경험을 했는데, 나중에야 자신이 딛고 서 있던 곳의 가치를 느꼈다는 얘기다.

"먼저 소설가로서 내 신념은 '재미'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중·고등학교 때는 나도 심오하고 예술적인 성취를 좇는 작품을 쓰고 싶었다. 그러나 책이라는 매체가 영상과 인터넷에 밀려 입지가 좁아지는 것을 목격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영화만큼 재미있는 책, 인터넷만큼 사람들의 눈과 손을 끄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그것은 소설가로서의 위기의식이랄까, 사명감의 일종이었다."
 
꼭 영상 때문이 아니라도 내 생각도 다르지 않다. 재미가 있어야 일단 페이지를 넘길 수 있다. 내가 방송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원칙으로 삼는 세 가지의 우선순위도 이렇다. 새로운가, 재미있는가, 의미도 있는가.

"시나리오 작가로서 나의 신념은 완전히 다르다. (중략) 시나리오는 요리의 주재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나는 매 작품마다 감독과 제작자가 흡족해하는, 흥행 성적이 나오기 전인 작업 과정에 있어서도 만족을 주는 작가가 되기 위해 애쓴다. PD로서의 신념은 또 다르다. (후략)"
 
이재익씨는 자신이 작업하는 콘텐츠의 역할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기준에서 작업하고 있다. 특히나 여러 사람들이 함께 해야 하는 방송이나 영화 분야에서 작가랍시고 혼자 예술하려는 꼴은 보지 못하겠다는 거, 나도 10,000% 공감한다.

크리에이터의 재능에 대해 얘기하는 단락에서는 작곡가 '용감한형제'의 예를 든다. 그는 어려서부터 일탈을 취미(?)로 하는 문제아였다. 일찌감치 유흥업소 영업부장이 되었다. 그렇게 제대로 건달 라이프를 살던 중, 사이프러스 힐(미국의 힙합 가수)의 음악을 듣고 갑자기 자기도 음악이 하고 싶어 죽겠더란다.

무작정 악기점을 찾아가서 악기를 사고 혼자 골방에 틀어박혀 두문불출하며 작곡을 공부하고 노래를 만들었는데, 이 대목에서 이재익이 강조하는 건 그가 대오각성을 했다거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즉시 했다거나 하는 게 아니다.

"바로 이 지점이다. '골방에 틀어박혀 두문불출하며 작곡을 공부하고 노래를 만든다.' 여기가 중요하다. 사람들은 용감한형제가 타고난 감을 가진 작곡가라고, 또는 행운아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집념과 노력으로 재능을 일깨우고 키워낸 것이다. 자신이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길게도 말고 딱 1년만이라도 고시원에 틀어박혀 죽도록 크리에이티브의 유전을 파본 적이 있느냐고."
 
이 밖에도 이재익은 자신이 크리에이터로 살아오며 했던 무수한 시행착오들과 자신이 작업을 했던 과정을 낱낱이 공개하며 크리에이터 지망생들에게 꿀팁을 제공한다. 일일이 밝히는 것은 독자에 대한 예의도 아니니 직접 읽어보시면 느끼시는 게 많으리라 생각한다. 그의 삶에서 내가 가장 궁금했던 점, 하루 혹은 일주일을 어떻게 관리하는지에 대한 그의 대답을 보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치겠다.

"사람들은 나에게 묻는다. PD 생활을 하면서 소설도 쓰고 영화도 만들고 가정까지 있는 사람이, 놀러도 자주 다니는 것 같은데, 대체 시간이 언제 나냐고. 난 항상 시간이 많다. 남아돈다. 나만의 시간 관리 원칙 첫 번째는 할 일의 리스트보다 안 해도 될 일의 리스트를 먼저 만드는 것이다. (중략) 친구들은 몇 달쯤 안 만나도 어디 도망가지 않는다. 내 경우, 2010년 1월1일 이후 지금까지(2012년) 3년 가까운 기간 동안 친구를 만난 횟수가 열 번도 되지 않는다. 친구가 없냐고?"
 
그 다음 그의 대답은 책에 있다. 보시기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에도 실을 예정입니다.



나 이재익, 크리에이터 - 소설.영화.방송 삼단합체 크리에이터 이재익의 거의 모든 크리에이티브 이야기

이재익 지음, 시공사(2012)


태그:#이재익, #크리에이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방송작가입니다. 세상 모든 일이 관심이 많습니다. 진심이 담긴 글쓰기를 하겠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