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가 학창시절 '학교 폭력'에 연루되어 도마에 올랐던 신인 투수 안우진(19)에게 50경기 출전 정지 등의 자체 징계를 내렸다.

넥센은 23일 고교 재학 시절 학교 폭력에 가담했던 안우진에게 외부 징계와 별도로 자체 징계를 내리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안우진은 정규시즌 50경기 출장과 함께 징계 기간동안 시범경기와 퓨처스리그 출장도 금지되며 1, 2군 스프링캠프 명단에서도 제외될 것으로 알려졌다.

 넥센 히어로즈의 신인 투수 안우진

넥센 히어로즈의 신인 투수 안우진 ⓒ 넥센 히어로즈


안우진은 투수로서 우수한 신체조건과 시속 150㎞가 넘는 강속구를 앞세워 고교 시절부터 여러 프로구단에서 주목 받던 특급 유망주였다. 넥센은 지난해인 2017년 10월 구단 역대 최고 계약금인 6억 원을 들여 2018 신인 1차 지명에서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는 안우진을 선택했다.

하지만 안우진이 지난 해 모교 야구부 후배 선수들을 배트 등으로 폭행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큰 파문이 일었다. 안우진은 현재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로부터 3년간 국가대표 자격정지 등의 중징계를 받은 상황이다. 안우진은 징계처분이 과하다며 대한체육회에 재심을 청구하기도 했다.

여기에 지난 10일 대전에서 열렸던 KBO 신인 오리엔테이션에서 안우진의 인터뷰는 잠잠해져가던 논란에 또다시 기름을 부었다. 프로야구 신인선수 신분으로 오랜만에 공식석상에서 모습을 드러낸 안우진은 학교 폭력 사태에 언급하며 "지나간 일이기 때문에 잊고 감수하려고 한다. 제가 앞으로 야구를 잘해야 한다"고 언급한 부분이 알려지며 엄청난 뭇매를 맞았다.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피해자에 대한 진심어린 사죄나 반성은 일언반구도 없으면서 오히려 본인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야구만 잘하면 폭력을 저질러도 된다는 생각이냐"며 안우우진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빗발쳤다. 덩달아 안우진의 소속팀인 넥센 구단도 비판 여론을 피해갈 수 없었다. 이후 넥센은 엄청나게 악화된 여론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부랴부랴 뒤늦게 안우진에 대한 자체 징계를 검토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고형욱 넥센 단장은 안우진에 대한 징계와 함께 "피해자분들께 구단을 대표해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 구단의 늦은 대처로 야구팬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도 사죄한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심각한 사안인 만큼 재심 결과와 상관없이 중징계를 내렸다. 안우진이 징계를 받는 기간 동안 구단 역시 반성하겠다. 앞으로 선수 인성교육에 더욱 힘쓰도록 하겠다"라고 사과의 뜻을 밝혔다. 안우진 역시 구단을 통해 "저 때문에 피해를 당하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구단과 협회에서 내린 벌은 달게 받겠다. 아마 용서받기 어렵겠지만, 깊이 반성하고 뉘우치겠다"라며 뒤늦게나마 제대로 된 사과의 의사를 전했다.

사과·징계에도 여론 '시큰둥'...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지적도

안우진에 대한 징계에도 불구하고 여론의 반응은 여전히 시큰둥하다. 시간이 지나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구단 차원에서 진화에 나서기는 했지만 이미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인상을 지우기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시기가 너무 많이 늦었다. 안우진이 폭행 사건에 연루된 사실이 처음 문제가 된게 작년 8월이었고 이로 인하여 제28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엔트리에서도 제외됐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에선 자격정지 3년 징계가 내린 시점은 11월 21일이었다. 구단 입장에서 안우진의 신변 문제에 대하여 처음에는 몰랐다고 해도 입단 이후에라도 자세히 파악하고 그에 적합한 조치를 검토할 시간은 충분했다.

하지만 넥센은 해를 훌쩍 넘겨 1월이 될 때까지도 안우진에 대하여 아무런 입장 정리가 없었다. 안우진이 문제의 발언을 저질렀던 KBO 신인오리엔테이션에서 정상적으로 참가할 수 있었던 것이나 현장에서 보였던 선수의 언행을 봐도 분명해 보인다. 넥센은 KBO 차원의 징계가 나오지 않았고 대한체육회 재심도 진행 중인 상황이라 결정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했다. 하지만, 결국은 이래저래 여론의 눈치보기만 하다가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것을 스스로 자인한 꼴이다.

물론 안우진의 폭행 사건은 프로 입단 전 고교 시절에 벌어진 일이고 넥센 입장에서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어느 정도 억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넥센은 팬들의 인기를 먹고사는 프로구단이다. 아무리 과거에 벌어진 사건이라 하더라도 안우진이라는 가해 당사자가 있고, 넥센은 그 선수에 대한 권리와 의무까지 이어받는 소속팀으로서 책임감 있는 자세를 보여줘야만 했다. 그만큼 이 사태의 파장에 무관심했다는 비판을 들어도 할말이 없다.

50경기 출전정지라는 징계 역시 '보여주기식 솜방망이 처벌'에 불과하다는 비판 여론이 더 강하다. 유망주라고는 해도 아직 신인에 불과한 안우진이 징계가 아니라도 데뷔 첫해 초반부터 얼마나 출전 기회를 잡았을지도 의문인 데다, 투수라는 포지션 특성상 어차피 매일 같이 경기에 나설 수도 있는 것도 아니다.

야구팬들이 "도박이나 음주운전으로 72경기 출전징계를 받아도 약하다는 소리가 나오는데 사람을 폭행한 선수, 그것도 신인에게 고작 50경기 출전정지가 과연 중징계냐"라고 허탈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차라리 경기보다는 기한을 정하여 팀훈련 참여나 야구선수로서 일체의 공식 활동과 연봉 지급을 정지시키고 충분한 자숙의 시간부터 보내도록 하는 식의 조치를 내렸다면 조금이라도 진정성을 더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단지 이번 징계가 안우진 사태의 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징계가 아니라 안우진 본인의 진심어린 반성이다.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성인이고 더구나 프로라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세상은 바뀌어도 정작 사람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살면서 너무 많이 목격하게 된다. 한 사람에게 씌워진 세상의 이미지도 마찬가지다. 안우진에게 이 사건은 어쩌면 야구인생 내내 끊임없이 따라다니며 그에 대한 평가에 영향을 미치게 될 꼬리표가 될지 모른다. 죄를 짓는 것은 순간이지만 반성의 시간은 영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스스로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체육계 '군기 문화'의 잔재... 선수들의 의식 수준 높여야

 야구계 폭력

단지 개인의 일탈이기 이전에 한국 학원야구의 고질적인 문제인 선후배 군기잡기와 구타 문화의 잔재가 불러온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프로로서의 사회적 책임감이나 인성교육보다는 '야구만 잘하면 그만'이라는 분위기가 불러온 야구계의 '도덕 불감증' 역시 이번 사건을 통하여 돌아봐야 할 대목이다. ⓒ 오마이스타


야구계에서도 이러한 사태가 다시 반복되지 않기 위한 구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안우진의 잘못은 단지 개인의 일탈이기 이전에 한국 학원야구의 고질적인 문제인 선후배 군기잡기와 구타 문화의 잔재가 불러온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프로로서의 사회적 책임감이나 인성교육보다는 '야구만 잘하면 그만'이라는 분위기가 불러온 야구계의 '도덕 불감증' 역시 이번 사건을 통하여 돌아봐야 할 대목이다.

사실 프로구단이 기본적으로 선수들의 인성교육을 일일이 책임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이런 사태가 벌어질 때마다 단순히 징계를 강화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근본적으로는 결국 야구계라는 집단 자체의 도덕적-사회적 의식 수준이 더 높아져야 진정한 '안전망'이 형성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폭력, 도박, 음주운전, 승부조작, SNS 등 야구선수이기 이전에 사회인으로서 기본적인 금도를 넘어선 일탈은 누구든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는 분위기가 자연스러운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어린 선수들도 선배들을 본받아 일찍부터 경각심을 느끼게 된다.

이번 안우진 사태에서 반성해야 할 것은 안우진만이 아니라 그 주변에서 '야구보다 올바른 가치'를 먼저 이끌어주고 가르쳐주지 못한 '어른'들의 책임도 적지 않다. 소를 잃었으면 부디 외양간이라도 제대로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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