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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때 종철이가 그랬어요. 오늘이 자기 생일이라고, 뭐 사 달라고. 그럼 웃기지 말라고 했죠. 만우절에 자기 생일이라고 하는데, 그냥 장난인 줄 알았어요. 죽고 나서야 확실히 알게 됐죠."(박종철 열사의 선배 남택범씨)

약 11년 전, 정확히는 2007년 4월 1일. 박종철 열사가 살아있었다면 마흔두 번째 생일을 맞았을 그 날,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

 2007년 4월 1일이었다. 박종철 열사 생일을 맞아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을 방문한 가족들과 만났다.
 2007년 4월 1일이었다. 박종철 열사 생일을 맞아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을 방문한 가족들과 만났다.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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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가 이 땅을 떠난 날보다는 '아들'이 이 땅에 온 날을 다시 간직하려 오신 어머니 앞에서. 오붓한 가족 모임을 방해했을 저에게 김밥을 권하는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박종철 열사의 형, 박종부씨는 그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 이렇게 물었습니다.

"입구 안내판이 2003년에 세워졌어요. 그때가 81명이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91명 정도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2004, 2005, 2006년… 자꾸 죽으니까… 사람들이 얼마나 알까요? 여기 모셔 있는 분들 중 3분의 1이나 알까요?"

자신의 동생에게만 너무 관심이 편중되고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다른 분들이 별로 알려지지 않은 것이 문제냐'고 되물었고, 그의 입에서는 "그렇죠. 당연하죠"란 대답이 돌아왔었습니다. 찔렸습니다.

 2007년 4월 1일 만났던 박종철 열사의 형 박종부씨(현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
 2007년 4월 1일 만났던 박종철 열사의 형 박종부씨(현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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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랬으니까요. 너무 모르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그때 민주열사 묘역을 돌아봤었습니다. 간혹 아는 이름도 있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이름을 전 모르고 있었습니다.

김경숙, YH 노동조합 조합원. 1979년 8월 11일 새벽, 조합원들이 농성하던 신민당사에 난입한 경찰들의 강제 해산 과정에서 추락사했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 스물한 살이었습니다. 박영진, 역시 노동자였습니다. 1986년 3월 17일, 공권력 투입에 맞서 "노동 3권 보장하라"며 자신의 몸을 불살랐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 스물여섯이었습니다.

 민주열사 김경옥, 민주열사 박영진. 그들의 2007년 4월 1일 당시 묘소 모습.
 민주열사 김경옥, 민주열사 박영진. 그들의 2007년 4월 1일 당시 묘소 모습.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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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 시간에 소위 '윤리' 선생이란 자가 이런 말을 했다. 왜 '분신'을 하냐고. 그냥 가만히 있어도 민주주의가 될 텐데... 아이들은 웃었다. 그러나,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중략)... 대통령 같지 않은 자가 대통령을 하고, 국회의원 자격도 없는 놈들이 국회의원을 하는 이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은 무엇일까?"


1986년 6월 4일 일기장에 이런 글을 남기고, 다음 날 청량리 맘모스 호텔 옥상에서 구호를 외치며 몸을 던진 이경환(당시 19세). 역시 그때 처음 알았던 이름이었습니다. 그랬습니다. '형님' 말씀대로 모르는 이름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민주열사 이경환. 2007년 4월 1일 당시 묘소 모습.
 민주열사 이경환. 2007년 4월 1일 당시 묘소 모습.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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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죽음은 '1987'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습니다. 김기설, 김종수, 박래전, 석광수, 성완희, 이재식, 천세용, 최응현... 역시 마주쳤던 이름들입니다. 대학생도 있고, 노동자도 있고, 노점상인도 있고, 택시 운전사도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분신으로 노태우 정권과 맞섰습니다.

 민주열사 김귀정. 1991년 5월 25일, '노태우 정권 퇴진을 위한 제3차 범국민대회'에 참가했다가 경찰 백골단의 가혹한 폭력에 의해 사망했다. 그렇게 삶을 마감한 나이 스물 다섯. 2007년 4월 1일 당시 묘소 모습이다.
 민주열사 김귀정. 1991년 5월 25일, '노태우 정권 퇴진을 위한 제3차 범국민대회'에 참가했다가 경찰 백골단의 가혹한 폭력에 의해 사망했다. 그렇게 삶을 마감한 나이 스물 다섯. 2007년 4월 1일 당시 묘소 모습이다.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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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노동자의 이름도 있었습니다. 문송면. 1988년 7월 2일, 수은 중독으로 세상과 작별했을 당시 그의 나이 열다섯. 그의 죽음은 직업병 문제가 중요하게 떠오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민주열사 문송면. 2007년 4월 1일 당시 묘소 모습.
 민주열사 문송면. 2007년 4월 1일 당시 묘소 모습.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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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희란 이름도 잘 몰랐습니다. 그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IBM에 입사했습니다. 호주에서 근무하다가 박종철 열사의 죽음으로 민주화 운동의 열기가 뜨겁던 조국에 돌아옵니다. 1988년 3월 서초경찰서 대공과에 연행된 후 정신병원에 강제 수용됐고, 얼마 후 의문의 죽음을 당합니다. 김성수란 이름 역시 참 안타깝게 다가왔습니다. 기말시험을 준비하다 정체불명의 전화를 받고 자취방을 나간 후 실종, 사흘 후 부산 송도 방파제 앞바다에서 발견된 그의 시신. 허리춤에 3개의 콘크리트 덩어리가 매달려 있었다고 합니다.

 민주열사 김성수. 기말시험을 준비하다가 정체불명의 전화를 받고 자취방을 나간 후 실종됐다. 사흘 후 그의 시신은 부산 송도 방파제 앞 바다에서 발견됐다. 허리춤에 3개의 콘크리트 덩어리가 매달려 있었다고 한다. "형을 떠올릴 때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는 한 후배의 다짐. 2007년 4월 1일 당시 묘소 모습니다.
 민주열사 김성수. 기말시험을 준비하다가 정체불명의 전화를 받고 자취방을 나간 후 실종됐다. 사흘 후 그의 시신은 부산 송도 방파제 앞 바다에서 발견됐다. 허리춤에 3개의 콘크리트 덩어리가 매달려 있었다고 한다. "형을 떠올릴 때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는 한 후배의 다짐. 2007년 4월 1일 당시 묘소 모습니다.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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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이보다 훨씬 많은 이름들과 마주쳤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들을, 다시 10년 넘도록 저는 새카맣게 잊고 살았습니다.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에 있는 합동 영정. 2007년 4월 1일 당시 모습이다.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에 있는 합동 영정. 2007년 4월 1일 당시 모습이다.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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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박종부씨는 "어머니가 남영동 대공분실 자리에 건립되는 박종철 기념관을 마지막으로 잘 정리하고 싶어 하신다"고 가족의 바람을 전했습니다.

허나 유감스럽게도 이 바람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여전히 기념관 관리와 운영 주체는 경찰청입니다. 아주 오랫동안 주말에는 개방되지 않는 반쪽 기념관이었습니다. '동생'과 함께 수많은 민주 인사와 학생들의 이름이 함께 많은 시민들의 가슴에 간직되길 바라는 가족의 바람 또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철성 경찰청장 옛 남영동 대공분실 방문 이철성 청장을 비롯한 경찰 지휘부가 박종철 열사 31주기를 하루 앞둔 13일 오전 서울 용산구 옛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 인권센터)을 방문, 박종철 기념 전시실을 둘러보고 있다.
 이철성 청장을 비롯한 경찰 지휘부가 박종철 열사 31주기를 하루 앞둔 13일 오전 서울 용산구 옛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 인권센터)을 방문, 박종철 기념 전시실을 둘러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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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유족들은 최근 운영 주체를 경찰청에서 시민사회로 넘기도록 해 줄 것을 요구하면서 청와대에 이렇게 청원했습니다.

"우리는 남영동 대공분실에 '박종철 기념전시실'만이 아니라 전시 공간을 더 확장하여 김근태 전 의원 등 민주화운동 관련자와 간첩 조작 사건 등으로 수난을 당한 이들의 아픈 이야기가 생생히 전시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우리는 남영동 대공분실이 '인권의 메카'로 거듭나기를 희망합니다. 시민의 관점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의 소중함을 되새길 수 있는 각종 기획 전시나 시민인권영화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가동되면서 시민이 쉽게 찾는 공간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우리는 남영동 대공분실에 과거 독재정권 시기 벌어진 국가 폭력 때문에 지금도 고통받고 있는 이들의 치유를 담당하는 '고문치유센터'도 들어서길 희망합니다."

박종철 열사 형 만난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오전 서울 CGV 용산점에서 영화 ‘1987’을 관람하기 앞서 고 박종철 열사의 형 박종부 씨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왼쪽은 고 이한열 열사 역을 맡은 배우 강동원.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오전 서울 CGV 용산점에서 영화 ‘1987’을 관람하기 앞서 고 박종철 열사의 형 박종부 씨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왼쪽은 고 이한열 열사 역을 맡은 배우 강동원.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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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14일 오후 5시 21분 현재, 모두 7468명의 시민이 가족의 소망에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모쪼록 오는 4월 1일, 아들의 오십 세 번째 생일을 어머니가 더 마음 편하게 맞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바로가기] 남영동 대공분실을 시민의 품으로!

 아들의 생일을 맞아 묘소에 방문했던 박종철 열사 어머니 정차순 여사의 2007년 4월 1일 당시 뒷모습.
 아들의 생일을 맞아 묘소에 방문했던 박종철 열사 어머니 정차순 여사의 2007년 4월 1일 당시 뒷모습.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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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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