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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이 위기다. 농부의 수가 감소하고 농촌마을은 소멸의 벼랑끝에 몰려 있다. 로컬, 생태, 마을, 공동체와 같은 담론들이 유행하긴 하지만 '이촌향도'(離村向都)의 뿌리깊은 관행은 여전하다. 저출산, 고령화와 인구 유출로 인구절벽과 지방소멸의 위기에 봉착한 곳들은 대부분 시골 농촌 마을들이다. 도시와 시골의 격차는 물리적으로 좁히기 힘들만큼 너무 커져버렸고 농촌에서 농사를 지어 먹고 살기란 '미션 임파서블'에 가깝다.

농업의 위기, 우리에게 미래는 있는가?

농업·농촌의 문제는 농부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공정한 먹거리 생산과 분배, 자연자원의 이용과 보존, 식량안보와 식량주권, 먹거리 소비 방식과 문화의 변화, 농업기술의 진보와 생산방식의 변화 등의 문제를 포함하는 국가적 의제다. 어느 누구도 농업의 현실에서 나 홀로 비켜갈 수 없다. 농업은 인간 생존의 기본이자 필수적인 조건이다.     

대체로 농업농촌의 위기는 세계적인 경향이다. 나라마다 사안의 심각성을 바라보는 정도의 차이, 대처방법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대한민국처럼 앞이 안 보이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농업을 국가기긴산업으로 보고 농부들의 농업소득을 보전해주면서 농업농촌의 활성화를 국가적 과제로 시행하는 나라도 있다.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는 그 나라의 몫이겠지만 여기에는 정책결정권자들의 태도뿐만 아니라 농업농촌을 대하는 국민적 인식 또한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

<비아캄페시나 : 세계화에 맞서는 소농의 힘>을 읽으면서 신자유주의가 만들어 낸 소농의 몰락과 농업의 위기가 일국적 차원을 넘어서는 지구적인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전 세계 농민들의 연대와 협력, 소신있고 강인한 투쟁의 모습은 먹먹한 감동을 자아낸다. 2003년 WTO 5차 각료회의가 열리던 멕시코 칸쿤에서 농업의 세계화에 저항하며 자결한 고 이경해 농민, 2015년 민중총궐기 당시 경찰의 물대포에 사망한 고 백남기 농민의 절박함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비아캄페시나'(LA VIA CAMPESINA)를 풀이하면 '농민의 길'이다. '비아캄페시나'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에서 소작농, 중소규모의 농민, 농촌여성, 농업노동자, 토착 농업공동체의 조직들을 포괄하는 초국적 농민 운동이다. 2008년 현재 68개국 148개 농민조직을 포괄하고 있다. 한국의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맹도 소속되어 있다. 이 책을 쓴 아네트 아우렐리 데스마레이즈 또한 14년 경력의 여성 농민이다.

농업의 세계화가 몰고 온 재앙

자본주의적 개발과 농업의 산업화는 농업의 기계화, 기업화, 상업화를 불러왔다. 생산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으나 농민들은 땅에서 밀려났고 식량생산과 분배의 불평등이 심해졌다. 농산업 기업들은 농업의 생산과 가공, 운송, 유통, 마케팅에 이르는 전 과정에 깊숙히 침투했고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농업 생산은 농산업 기업들에 점차 의존하게 되었고 생산의 주체인 농민의 자율성은 축소됐다. 기업의 이해관계에 맞지 않는 작물은 사라지거나 개량되었고 생물다양성과 문화다양성은 파괴되었다. 불공정한 자유무역협정으로 인한 값싼 농산물 수입은 다양한 토착 농산물을 밥상에서 밀어냈다.

"세계화는 농촌을 향한 지구적 수준의 공격이다. '효율적' 농촌 즉, 근대화되는 농촌이라는 논리를 갖추지 못한 소규모 생산자와 농민 가족들에 대한 지구적 공격이다. 또한 세계화는 자원 관리, 생물다양성 등 이슈에 있어서 소작농이나 소규모 생산자들의 비전과 대립하는 지구적 수준의 진보라고 설명된다. 이러한 세계화의 과정 안에서 우리 모두가 마주하는 적들은 동일하다. 이 모든 적들의 마지막에는 큰 회사들, 즉 다국적기업들이 포함된다. 따라서 처한 상황들은 다르더라도 우리 모두는 대규모 다국적기업들의 이윤을 보장하는 부유한 국가의 정부들이 추지하는 지구적 경향성에 동일하게 직면하고 있다." (84쪽)

자본주의 농업의 자유화에 맞서 '비아캄페시나'가 주장하는 대안적 농업모델에서 '식량주권'은 핵심적인 개념이다. '비아캄페시나'에 따르면 식량주권이란 '각 국가들이 문화적, 생산적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기본적인 먹을거리를 생산할 수 있는 생산능력을 유지·발전시킬 수 있는 권리'와 '민중이 자신의 농업 및 먹을거리 정책을 규정할 권리'(72쪽)를 의미한다. 국가적으로 충분한 먹거리를 생산하는가 하는 '식량안보'의 개념뿐만 아니라 어떤 먹거리를 어떤 규모로 어떤 방식으로 생산하는가를 결정하는 권리까지 포함한다.

지구를 살리는 대안적 농업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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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아캄페시나> 표지 .
ⓒ 한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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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주권'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소농에게 유리한 광범위한 농업개혁과 대안적 농업모델이 필요하다. 근대적인 농산업모델의 폐해를 극복하고 대안적 농업모델을 만들어 갈 주체는 초국적 기업이 아니라 농민들이다. 책에서는 농민들을 '땅의 사람들'이라고 표현한다.

저자는 "'땅의 사람들'이라는 강력한 집단 정체성과 지역 농촌에서 곡식을 기르며 생계를 꾸려나가고자 하는 그들의 권리에 대한 단호한 신념으로 무장한 비아캄페시나는 다름 아닌 존재의 권리를 위해 싸우고 있다"며 "이는 단지 생존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그들의 공동체와 문화는 물론이고 식량주권, 즉 국내소비용 식량을 자국의 문화에 맞추어 적절한 방식으로 생산하겠다는 그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싸움"(205쪽)이라고 규정한다.

"비아캄페시나의 목표는 농촌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즉, 생계를 개선하고 지역 소비를 위한 지역 먹을거리(로컬푸드) 생산을 증진하며 민주적 공간을 열어주는 변화이다. 또한 땅의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에 있어서 더 큰 역할과 지위, 이익을 부여해주는 변화이다. 비아캄페시나는 이러한 종류의 변화는 지역공동체가 지역의 생산자원에 대한 접근과 통제력을 더 많이 획득할 때만 일어날 수 있으며 그 결과 사회적 정치적 권력을 획득할 수 있다고 믿는다." (382쪽)

저자는 "실제로 농민들은 세 가지 전통적인 약자의 무기, 즉 조직, 협동, 공동체를 활용하면서 '개발'을 재규정하고 사회정의, 생태적 지속가능성, 농민문화와 농민경제를 존중하는 대안적인 농업모델을 건설하고 있다. 소규모 농업협동조합, 지역 종자은행, 공정무역 벤처에서부터 전통적인 영농관행의 회복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다양한 대안들을 수반하고 있다"(385쪽)고 설명한다.

이 책은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대안운동으로 성장하고 있는 '비아캄페시나'의 두툼한 활동보고서다. '비아캄페시나'는 농민들의 대안적 활동을 국가적이고 국제적인 수준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연결하고 연대하는 활동을 한다.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소농은 몰락하고 농업 관련 중요한 결정에서 객체로 전락했지만, 농민들은 다시 농업의 구원투수로 역사무대에 등장하고 있다. '비아캄페시나'로 단결한 농민들의 열망과 연대가 세상을 좀 더 평등하고 인간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비아캄페시나>(아네트 아우렐리 데스마레이즈 지음 / 한티재 펴냄 / 2011.08 / 20,000원)
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비아캄페시나 - 세계화에 맞서는 소농의 힘

아네트 아우렐리 데스마레이즈 지음, 엄은희 옮김, 한티재(2011)


태그:#비아캄페시나, #소농, #농민운동, #이경해, #세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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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골 농촌에서 하루 하루 잘 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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