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고 김다애(18)학생과 아빠 김 모씨와의  통화내용
 고 김다애(18)학생과 아빠 김 모씨와의 통화내용
ⓒ 심규상

관련사진보기


"공기가 부족해 숨 막혀 여보 빨리 와."

제천 화재로 숨진 희생자들이 화재 발생을 인지한 직후 가족들과 나눈 통화 내용이 공개됐다. 이 중에는 숨진 딸과 화재 발생 신고 후 1시간 25분이 지난 21일 오후 5시 12분까지 전화통화를 했다는 기록과 증언도 들어 있다. 유족들은 거듭 소방대의 초기 늑장 대응을 지적하며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

유족대책본부는 29일 오전 희생자 중 11명의 통화록을 공개했다. 녹취록에는 "숨 막혀", "아 뜨거워", "숨을 못 쉬겠어", "연기 들어와" 등 다급했던 현장 상황이 그대로 들어 있다.

특히 숨진 김다애(18) 학생의 경우 오후 5시 12분까지 아빠와 통화하며 기침과 함께 신음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고 김다애 학생이 처음 아빠에게 전화를 건 시간은 이날 오후 3시 59분 건물 6층 헬스장에서다. 최초 119에 화재신고가 접수된 지 6분 후였다. 아빠는 "내가 가겠다"며 빨리 피신하라"고 외쳤다. 올해 대학에 합격한 김다애 학생은 이날 운동을 하기 위해 스포츠센터를 방문했다.

이어 오후 4시 2분과 5분께 각각 다시 딸과 통화했다. 아빠는 "수건으로 입 막고 피하라, 빨리 위로 올라가"라고 외쳤다.

오후 4시 10분 아빠가 다시 전화를 걸었다.  다애 학생은  "6층인데 앞이 안 보여, 안 열려"라고 알려 왔다. 아빠는 "소방관 왔으니까, 조금만 참으라"고 소리치며 통화를 계속했다.

사고 현장으로 김다애 학생의 부모와 할아버지 등 온 가족이 달려갔다. 발을 동동 굴렀다. 소방관을 붙잡고 꼭대기 층에 딸아이는 물론 여러 명이 있다며 구조를 요청했다. 굴절사다리차를 이용해 서둘러 위층 유리창을 깨 달라고도 했다. 그렇게 1시간여가 흘렀다. 오후 5시 12분 딸의 기침 소리와 신음소리를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 화재 신고 후 1시간 25분이 지난 시간이었다. 소방대가 현장에서 최초 사망자를 발견한 오후 5시 기준으로도 12분 뒤다.

이후 딸은 더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날 저녁 8시 43분 소방관은 가족에게 전화로 김다애 학생의 사망 소식을 알렸다.

제천 화재 현장에서 소방 대원들이 2층 사우나 시설을 정비하고 있다.
 제천 화재 현장에서 소방 대원들이 2층 사우나 시설을 정비하고 있다.
ⓒ 심규상

관련사진보기


김다애 학생의 할아버지는 "화재 당시 다애 아빠와 다애가 화재 발생 이후 무려 한 시간이 지나서도 통화를 했다"며 "그때를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 사다리차가 서둘러 유리창을 깼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다애가 떠난 후 온 가족이 울기만 한다. 잠도 잘 수 없다. 다애가 곁에 없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도 했다.

고 정희경씨의 남편은 화재 당일 오후 4시 1분 아내로부터 "불이 났다"는 전화를 받았다. 이어 오후 4시 6분에도 다시 전화해 "앞이 전혀 안 보인다, 빨리 유리를 깨 달라"고 하소연했다.

오후 4시 16분 이번에는 남편이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내가 "죽겠어 빨리 어떻게 해"라고 호소했고,  남편은 "수건에 물을 적셔서 입에다 대라"고 외쳤다.

"OO 아빠..."  이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

남편이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1분 뒤인 오후 4시 17분이다. 소방관들을 붙잡고 "아내가 2층에 있다, 2층 유리창부터 깨 달라"고 하소연했다. 아무도 나서지 않자 그는 "내가 깨겠다"며 출입구 쪽으로 내달렸다. 소방관들은 위험하니 나가라고 잡아끌었다. 그는 "내 아내가 죽어가고 있다"며 2층 유리를 깨 달라고 통사정했다.

고 최순정씨의 유가족과 통화 내역을 보면 고인은 이날 오후 4시 21분에도 전화를 받았다.

구조대원은 건물 앞면 2층 유리창을 깨려고 복식 사다리로 오르기 시작했다. 오후 4시 38분께였다. 유리창을 깨고 2층 여자 사우나실로 구조대가 진입한 시간은 오후 4시 45분쯤이었다. 2층에서만 20명이 사망한 뒤였다.

유족대책본부는 "오후 4시에 소방대가 도착했지만, 인명구조를 하지 않고 LPG 탱크에 살수 활동만 했다"며 "구조 활동을 하지 않은 책임자를 처벌해 달라"고 거듭 촉구했다.


태그:#제천 화재, #제천 참사, #소방대, #유족대책본부, #유가족
댓글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