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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라 공자 평원군은 선비를 후하게 대해 그의 주변엔 항상 수천 명의 식객이 있었다 한다. 어느 날 진나라가 침략하여 조나라의 수도 한단을 포위했다. 이에 조나라는 평원군을 초나라에 보내 도움을 청하도록 한다.

이에 평원군은 식객과 제자 가운데 용맹하고 학식 있는 20명을 선발하여 가려고 한다. 19명을 채웠으나 마지막 한 명을 채우지 못하고 있을 때다. 모수(毛遂)라는 이가 스스로를 추천하며 앞으로 나섰다. 평원군이 이를 보고 말했다.

"현명한 선비가 세상에 있는 것은 비유하자면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과 같아서 그 끝이 금세 드러나 보이는 법이오."

평원군이 이렇게 말을 한 이유가 있었다. 모수는 평원군의 빈객으로 있은 지 3년이나 되었으나 누구에게도 그에 대한 말을 들은 적 없었기 때문에 그만큼 그의 학식이 다른 이의 눈에 띌 정도도 되지 못한다는 판단으로 거절한 것이다.

그러자 모수가 대답했다.

"저는 오늘에야 당신의 주머니 속에 넣어달라고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저를 좀 더 일찍 주머니 속에 있게 했더라면 그 끝만이 아니라 송곳 자루까지 밖으로 나왔을 것입니다."

결국, 모수는 평원군의 사절단 일행에 가담하여 초나라로 갔고 교섭에 큰 활약을 하였다.

어떤 이야기인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다. 이 이야기는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고사에 얽힌 말로 한자를 그대로 풀면 '주머니 속의 송곳'이라는 뜻이다. 주머니 속의 송곳이 어떻겠는가. 주머니 속에 뾰족한 송곳은 넣었다면 감추어도 반드시 뚫고 나오듯이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은 남의 눈에 자연스럽게 드러나기 마련이란 의미로 쓰인다.

최근 문재인 정부와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에 대해 몇몇 언론들이 보도하는 행태와 야당 정치인들의 튀고자 하는 모습을 보면, 주머니 속에 감추어도 자연스럽게 모든 사람들이 넉넉히 헤아릴 수 있는 송곳이 아니라 썩은 생선을 넣고 다니는 듯하다.

근본 바탕이 부족하니 자연스럽게 바늘인데 몽둥이라고 우긴다는 의미로 쓰이는 말인 침소봉대(針小棒大)란 옛말을 그저 따르고 실천할 뿐이다.

박근혜 정권과 박근혜에 의해 임명되어 한시적으로 권한대행직을 수행한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저질러 놓은 사드 배치 탓에 중국에 의해 대한민국은 경제와 문화, 관광사업 등에 막대한 피해를 초래했다. 당장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국민의 입장에서도 "왜 사드를 철회하지 못하느냐"는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국가와 국가 사이의 약속이란 손바닥 뒤집듯 할 수 없는 일이다. 이전 정부가 국민을 기망하고 밀어붙인 사드 배치라 하더라도 거기엔 국민의 지지는 받지 않았어도 대한민국의 신뢰 문제가 결부되어 있다.

솔직히 밝히면 처음 성주와 경주로 사드부지가 거론될 때 아예 구미에 배치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성주에서 당장 '설치 반대' 목소리가 터졌다. 아니 그 좋은 걸 자신들이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박근혜 대통령과 그 정부가 들여오겠다는데 당연히 찬성하는 이들이 많은 지역에 설치를 해주어야 옳은 일 아니겠는가. 딱 이런 심정이었다.

바로 그 사드로 발목 잡힌 한국과 중국의 관계를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지는 못했다. 난징대학살 80주년 추념식에 시진핑이 참석하는 날 공항에 도착하는 대통령이 주중대사를 참석하라고 지시한 일을 여러 언론들은 감추고 '국빈방문이 아닌 것'으로 조작도 서슴지 않았다.

이보다 사실 더 심각한 일은 이전 박근혜 정부에서 있었다. 시진핑의 옆자리에 자리를 배정받았다며 대단한 일로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중국의 전승절 기념식장 풍경이다. 중국은 일찍이 한국전에 참전했던 과거가 있었음에도 바로 그 군대의 기념식에 참석했다.

물론 중국의 전승절이 한국전쟁에 참전해 승리를 한 걸 기념하는 행사는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승리를 기념한다고는 하더라도, 바로 이 전쟁을 통해 자력은 아니지만, 일제로부터 해방을 맞았다고는 하지만 중국 전승절에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참석한다는 건 국민의 감정을 자극할 일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 1년 뒤 탄핵정국으로 급물살을 타기 직전까지 MBC와 KBS는 더 거론할 필요도 없고, 대부분의 방송에서는 새누리당과 그와 같은 입장으로 박근혜 대통령 찬양에 열을 올리는 패널들로 채워졌다. 냉정하게 분석한다면 바로 이런 종편과 공영방송의 보도방식이 말도 안 되는 박근혜 정권의 국정 지지도로 나타났다고 봐야 된다.

방송들은 종편은 물론이고 공영방송까지 일종의 이미지 정치에 몰입되어 경쟁했다. 누가 더 많이 박근혜 대통령을 예쁘고 곱게 포장해 방송을 내보내느냐는 경쟁이다. 자연스럽게 진실은 가려지기 마련이다. 이런 방식의 이미지 정치와 보도로 박근혜 정부의 국정 지지도는 탄핵정국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통령이 그 말처럼 그렇게 잘못하고 있다면 뉴스에서 왜 하나도 보도를 안 해?"

세월호 국면에서 "여행을 가다 사고가 발생했는데 왜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 하느냐는 이들의 말에 "청와대는 대한민국의 모든 시스템 전부를 관리 운영하는 곳이며, 동시에 모든 사건사고에 대해 가장 빠르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고 명령을 내릴 권한을 가진 곳이다. 대통령이 바로 그런 시스템이 작동되고 그에 따라 운영되는 청와대에서 어지간한 잘못은 법적 책임을 면하는 특권을 부여받은 것도, 그리고 목숨을 걸고 경호에 만전을 기하는 많은 경호원들의 보호를 받는 것도 가장 빠르게 사건사고에 대처하고 시스템을 작동해 국민의 안전과 안녕을 지키라고 국민의 세금으로 보장해주는 것"이다고 대답했을 때 이구동성으로 방송이 왜 대통령에 대해 비판을 전혀 하지 않느냐는 답변이 나왔다.

심지어 '대통령의 세월호 사고 시점 7시간'에 대해 "대통령이지만 여자고 사람인데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수도 있는 거 아니냐"는 말도 정치인과 패널들의 입을 통해 방송이 국민들에게 보여주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전 정권에서 그랬으니 이번엔 당신들이 입을 다물고 있으란 이야기는 아니다. 동시에 현 정부에 대해 잘잘못 자체를 거론하지 말라는 주문이 아니다. 그렇지만 더욱 현명한 방법으로 더 좋은 대한민국 정부가 되길 바라는 비평은 있어야 한다. 이는 국민이 지닌 고유한 권리다. 이 과정에서 틀림이 아닌 나와는 다른 의견이나 시선, 혹은 상반된 철학이나 안목에서 시작된 다양한 비평과 의견 개진으로 바른 방향으로 정립되어 갈 수 있다.

문제는 이들이 객관적인 시각으로 냉철하게 현상을 분석하고 정직하게 말을 하겠느냐는 부분에서 대단히 미안하지만, 전혀 그렇지 못하단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들이 진정으로 무지해서 그렇게밖에 세상을 판단하지 못하느냐면 그건 분명 아니다. 오히려 너무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이익과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할 뿐이다.

노영민 주중대사가 신임장을 받으며 방명록에 '만절필동(萬折必東) 공창미래(共創未來)'를 한자로 쓴 뒤 한글로 '지금까지의 어려움을 뒤로하고 한·중 관계의 밝은 미래를 함께 열어나가기를 희망합니다'라고 적은 걸로 알려졌다.

이는 <순자(荀子)> 유좌편(宥坐篇)에 전하는 말이다. '만절필동'은 '강물이 만 번을 굽이쳐 흐르더라도 반드시 동쪽으로 흘러간다'는 뜻이다. 바꿔 말하면 '일이 곡절을 겪어도 이치대로 이뤄진다'는 뜻으로 '사필귀정(事必歸正)'과 같은 의미로도 사용됨을 이미 주중대사관도 밝혔다.

이를 놓고 '천자에 충성을 하겠다'는 의미로 대통령의 방중 이후 다시 끄집어내 논란거리로 만드는 저의는 분명한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자유한국당과 <조선일보>가 맨 앞에서 여론몰이에 나섰다. 어떻게든 흠집을 내어야 이득을 볼 수 있다는 판단이고, 문재인 정부를 흠집을 낼 수단의 하나로 말을 만들어 낸데 지나지 않는다.

하태경 자유한국당 의원의 말을 빌려 <조선일보>가 낸 기사들을 살펴보면 <중 충성 서약? 사필귀정? 노영민 대사 '만절필동(萬折必東)' 논란>을 필두로, 조간 A34면 1단 '만물상'에 <萬折必東(만절필동)>으로 제목을 달고 큰 산을 하나 그려 놓고 작은 산에서 고개를 조아린 모습을 이미지까지 동원하여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 <월간조선>에서 <'경질 요구' 나오는 주중대사 노영민이 쓴 '만절필동(萬折必東)' 의미>까지 내보냈다. 바로 이런 보도가 대중의 의식 속에 자신들이 의도하는 방향성을 주입시키는 <조선일보>의 방식이다.

「중국을 국빈 방문중인 문재인 대통령 부부는 14일 오전 8시쯤 아침 식사를 위해 베이징 조어대 인근의 한 현지 식당을 찾았습니다. 중국인들이 즐겨 먹는다는 요우티아오(油?)와 도우지앙(豆?), 샤오롱바오(만두), 만둣국(훈둔)이 이날 메뉴. 요우티아오는 밀가루를 막대 모양으로 빚어 기름에 튀긴 꽈배기 모양의 빵입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말랑말랑 합니다. 일반적으로 중국식 두유인 도우지앙에 적셔 먹는데, 중국 시민들의 대표적 아침 메뉴라고 합니다.」란 설명이 붙은 청와대 누리집의 사진
▲ 문재인 대통령과 노영민 주중대사 「중국을 국빈 방문중인 문재인 대통령 부부는 14일 오전 8시쯤 아침 식사를 위해 베이징 조어대 인근의 한 현지 식당을 찾았습니다. 중국인들이 즐겨 먹는다는 요우티아오(油?)와 도우지앙(豆?), 샤오롱바오(만두), 만둣국(훈둔)이 이날 메뉴. 요우티아오는 밀가루를 막대 모양으로 빚어 기름에 튀긴 꽈배기 모양의 빵입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말랑말랑 합니다. 일반적으로 중국식 두유인 도우지앙에 적셔 먹는데, 중국 시민들의 대표적 아침 메뉴라고 합니다.」란 설명이 붙은 청와대 누리집의 사진
ⓒ 청와대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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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중국 국빈방문에서 이미 다양하게 보여준 소탈한 행보일 뿐인, 보편적인 중국인들처럼 아침식사를 한 모습을 '혼밥'으로 몰아간 것도 마찬가지 이유일 뿐이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에서였다면 <조선일보>는 이를 전혀 다른 각도로 해석하고 보도했을 것이다. 예를 든다면 <조선일보>는 분명 <중국 국빈방문 박 대통령 친서민적 행보 –중국 국민 "소통하는 서민적 대통령" 찬사> 정도로 여론을 만들고자 애썼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이런 모습을 대통령후보자일 때만 시장에서 보여줬을 뿐이다. 아니 오히려 "고추로 만든 가루...이거 굉장히 귀한 거네요" 정도로 고춧가루가 굉장히 귀한 재료로 아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정현 의원에겐 친히 청와대로 불러 송로버섯·캐비어·샥스핀·바닷가재·한우갈비·능성어찜으로 식사를 냈다. <조선일보>는 이를 보도하였는지 알 수 없고 검색되지 않는다.

선조가 임진왜란을 겪으며 명나라에 군대를 보내준 것에 대해 감사하며 '만절필동, 재조번방(再造藩邦)'이란 글을 올렸다 하여 '만절필동(萬折必東) 공창미래(共創未來)'를 같은 의미로 해석하는 건 옳지 않다. '거듭 세워진 제후의 나라'와 '함께 미래를 만들어 나가다'가 어떻게 동등한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단 말인지.

침소봉대(針小棒大)하지 않기를 현명한 국민은 바란다. 어찌 바늘이 몽둥이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덕수의 블로그 ‘한사의 문화마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문재인 대통령, #노영민 주중대사, #만절필동,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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