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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현정(破邪顯正). '사악한 것을 부수고 사고방식을 바르게 한다'는 뜻입니다. 교수신문은 이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았습니다. 촛불, 탄핵 인용, 조기 대선... 연이어 큰 사건을 경험한 2017년 한국 사회는 얼마나 변화했을까요. 내년엔 '파사'를 넘어 '현정'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올해 상황이 달라진 사안들, ‘보도 그 이후’가 알고 싶은 기사들, 사연 속 주인공의 현재가 궁금한 사례들을 모아 '2017 비포 앤 애프터'를 구성했습니다. [편집자말]
작열하던 땡볕은 수그러졌으나 살을 에는 칼바람이 찾아왔다. 계절은 바뀌었지만, 고통의 체감은 변한 게 없다. 사뭇 지칠 수 있는데 두 아버지는 단호했다.

"우리는 간절해요. 아들의 생사를 확인하기 전까진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오늘로 266일째(20일 기준). 철광석을 싣고 중국으로 가던 스텔라데이지호가 지난 3월 31일 남대서양 망망대해에서 가라앉은 뒤 흐른 날들이다. 그 사이 계절이 세 번 바뀌었고, 연말에 이른 2017년은 정리를 앞두고 있다.

그러나 배에 탑승했던 한국인 8명과 필리핀 16명의 생사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실종자 가족들은 정리란 것을 할 수가 없다. 애달픈 마음을 키울 뿐이다.

지난 19일 낮, 광화문광장. 사랑의 온도탑 앞에 박성백(39) 일등항해사 아버지 박홍순(72)씨와 전성웅(42) 기관사 아버지 전형술(69)씨가 나란히 섰다. 관심을 잊게 할 망각과 싸우기 위함이다. 올 한여름에도 실종자 수색을 촉구하며 같은 자리에 섰던 이들이다.

 광화문광장에서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수색을 촉구하고 있는 두 아버지.
 광화문광장에서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수색을 촉구하고 있는 두 아버지.
ⓒ 고동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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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감 온도 –6도에 두 아버지는 외투를 쓰고 '중무장'을 했지만 콧가에 맺힌 콧물은 어찌할 수 없었다. 박홍순씨는 기자를 만나자 마음 한구석 응어리를 쏟아냈다.

"배가 가라앉고 수색 한 번 제대로 못 해보고. 선사 앞에서 시위하다가 비바람, 모래바람 뒤범벅이 되고. 서민의 자식이라 이런 것인지..."

"밑에서 외쳐도 턱 막혀"

선사 폴라리스쉬핑은 사고가 일어나고 12시간이 지난 뒤에 해경에 사고를 알렸다(관련 기사: 세월호 유가족 머물던 광장에 스텔라데이지 실종자 가족이 있다). 수색은 5월에 가서 이뤄졌다. '늑장 대응'은 세월호와 같았다. 생사의 단서가 되어줄 구명뗏목의 행방은 놓쳤다. 실종자가 탔을지 모르는 뗏목엔 식량과 낚시 도구 등이 있었다.

코를 훌쩍인 박씨는 "밑에서 아무리 외쳐도 해양수산부나 외교부를 거치면 턱 막힌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제대로 된' 수색을 요구했지만 6월과 7월, 한시적으로 배 1~2척이 드넓은 바다를 살필 뿐이었다. 그마저도 7월 11일경 종료됐다. 지난 2일엔 심해 수색 장비를 투입하는 예산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가족들은 장비로 블랙박스를 건져 사고 재발을 막을 원인을 규명해야 한다고 밝혀왔다.

유조선이었던 스텔라데이지호는 중국에서 화물선으로 개조된 25년 된 선박이었다. 같은 조선소에서 개조된 폴라리스쉬핑 계열 코스모호는 폐선 절차를 밟았다. 유니콘호, 퀸호를 비롯한 폴라리스쉬핑 소유 선박이 노후화됨에 따라 이들 배도 사고 위험이 상존한다는 게 가족들 주장이었다.

가족들 호소는 미래의 안전과도 맞닿아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 반응은 응원 혹은 멸시로 나뉘었다. 수색 촉구에 기꺼이 서명에 동참하는 이도 있었지만 광장에 문뜩 와서 "누가 죽으라 했나, 위로금 받고 그만하자"라고 막말한 이도 있었다고 한다. 전형술씨는 "욕만 안 하면 다행"이라고 말했다.

"덥다고, 춥다고 포기할 이유가 없어요"

 광장에는 실종자 수색과 사고의 원인 규명을 촉구하는 서명 운동도 함께 진행 중이다.
 광장에는 실종자 수색과 사고의 원인 규명을 촉구하는 서명 운동도 함께 진행 중이다.
ⓒ 고동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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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올라온 전씨는 지난 7월 이후로 서울에 눌러앉았다. 자동차공장에서 차량 조립을 하던 전씨는 아들의 실종에 사직서를 내고, 광장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부인은 당뇨로 두 눈이 실명 위기에 처했다. 먹고 살길이 막막한 전씨의 버팀목은 실종자 가족이다.

"그래도 가족 어머니들이 먹을 걸 가져와 도와줘요. 생업 저버리고 왔는데 밥 먹는 걸 혼자 감당할 수 있겠어요?"

그러나 그 버팀목도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약화됐다. 가족 내에서도 갈등이 생긴 것이다. 박홍순씨는 가족 중 일부와 절연했다. 박씨는 "우린 합의보다 자식 생사가 우선이다. 선사와 합의를 한 가족 중 한 사람과 갈라졌다"고 말했다. 여덟 명의 실종자 가족 중 세 가족이 합의를 하고 떠났다는 게 박씨의 설명이다.

남은 가족은 고단함의 연속이었다. 땡볕에서 서서 시위를 했던 이등항해사 허재용(33)씨 어머니 이영문(68)씨는 척추 협착증을 앓게 됐다. 그러나 두 아버지는 결기를 내비치며 포기란 말을 경계했다.

"덥다고, 춥다고, 눈보라 친다고 포기할 이유가 없어요. 자식의 생사 때문에 여기 온 겁니다."

두 아버지는 어머니들과 하루걸러 교대하며 주말을 포함해 낮에 광화문을 지킨다. 두 아버지의 쉼터는 광장에 마련된 한 평 남짓한 쪽방. 바닥은 얼음장이었고, 손엔 냉기가 돌았다. 그 쪽방에서 실종자 허재용씨 누나이자 실종자 가족 대표인 허경주씨와 허영주씨를 만나 추가적인 얘기를 들었다.

"원인 규명, 선원들 생명과 안전 직결"

 광장에 있는 한 평 남짓한 실종자 가족 쉼터.
 광장에 있는 한 평 남짓한 실종자 가족 쉼터.
ⓒ 고동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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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이 요구한 심해 수색 장비 예산이 2018년도 최종 예산안에서 빠졌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 재적 의원 50명 중 18명이 예산 투입에 찬성했어요. 예결위에서 예산안이 최종 확정되려면 관련 부처와 예산을 짜는 기획재정부, 예결위가 서로 협의를 해야 해요. 그 과정에서 예산이 빠지게 된 거죠. 해양수산부는 수색 장비 투입 같은 예가 과거에 없었다는 말로 반대했다고 해요.

그런데 2015년 10월 화물선 엘파로호가 침몰하자 미국은 19일 만에 심해 수색 장비를 투입했어요. 정확한 사고 원인 규명을 위해 장비를 투입하기로 한 겁니다. 수색 8일 만에 블랙박스를 회수해서 사고 정황을 복원했어요. 2009년 에어프랑스 447기 추락사고 당시에도 대서양에 투입된 장비가 블랙박스를 수거했습니다. 불가능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에요."

- 사고 원인이 규명이 안 돼 생긴 우려는.
"현지 시각 낮 1시 30분경에, 기상 상황이 나쁘지도 않을 때 312m 배가 두 동강이 나 침몰했어요. 자동차 사고가 나도 블랙박스부터 보잖아요. 선박 사고는 침몰 사고가 나도 왜 블랙박스를 회수할 생각은 안 하는지 모르겠어요. 스텔라데이지호처럼 노후 선박이 한국에만 27척이 더 있어요. 원인 규명은 선원들 생명과 안전과도 직결된 거죠."

바라는 건 딱 '두 가지'

 쉼터 벽면엔 실종자 가족을 응원하는 시민들의 사진과 글이 있었다.
 쉼터 벽면엔 실종자 가족을 응원하는 시민들의 사진과 글이 있었다.
ⓒ 고동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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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후 선박에 대한 안전 점검을 정부에 요청했는데.
"지난 6월, 해양수산부 김영춘 장관과 면담하면서 스텔라호 선사 폴라리스쉬핑에 노후 선박이 많으니 안전 점검을 확실히 해달라는 요청을 드렸어요. 10월에 국정감사를 통해서 보니 특별 점검에 해당되는 6척 중에 실제 검사한 배는 1척에 불과하더군요. 해수부는 배 운항 스케줄과 일정이 맞지 않아 검사를 못 했다는 답변을 했는데 그 뒤로 두 달이 흘렀지만 파악한 바로는 그대로예요."

- 여름과 비교하면 무엇이 달라진 것 같나.
"솔직히 날씨 추운 거 말고는 바뀐 게 없는 거 같아요. 다만 스텔라데이지호 사고를 알아보는 시민이 많아졌어요. 사건 초기엔 외로운 싸움을 했다면 지금은 시민들과 연대로 힘을 받을 수 있어요(실종자 수색을 촉구하는 온·오프라인 서명 운동에 시민 10만 명이 동참을 했다.)."

- 올해가 가기 전 바라는 소망이 있다면.
"딱 두 가지입니다. 미 해군이 초계기가 찍은 영상을 통해 구명뗏목으로 추정되는 물체를 발견한 걸 일부 언론은 선사 입장에 따라 기름띠로 확정하고 말았는데, 그 진위를 확실히 알려주길 바란다는 것. 그리고 내 가족이 왜 이런 사고를 당하게 된 건지 사고 원인을 알려달라는 겁니다."

만났던 아버지들처럼 허씨 자매 역시 향후 계획을 거론하며 결연함을 내보였다. 대화를 마치고 쪽방을 둘러보니 벽엔 시민들 응원 메시지가 담긴 사진과 글이 수놓아져 있었다. "포기하지 말라"란 말도 있었다. 실종자 가족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건 연대에 기꺼이 동참하는 시민들의 움직임 덕분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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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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