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남자 프로농구의 '살아있는 신화' 김주성(38)이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김주성의 소속팀 원주 DB 프로미는 18일 김주성이 시즌 종료 후 은퇴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김주성 측은 "많은 미련과 아쉬움이 있지만, 한 팀에서 많은 것을 이루면서 즐거운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에 만족한다. 마지막 1년 행복한 농구를 할 수 있게 배려해주신 구단과 감독님께 감사하다. 남은 시즌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동아고-중앙대를 졸업한 김주성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당대 최고의 장신 유망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02년 신인드래프트는 '김주성 드래프트'로 불릴 만큼 일찌감치 1순위를 예약하며 원주(당시 구단명은 TG 삼보)의 지명을 받아 프로에 데뷔했다. 당시 김주성은 '농구대통령' 허재, 외국인 선수 데릭 존슨-데이비드 잭슨 등과 호흡을 맞추며 전시즌 9위에 그쳤던 원주를 단숨에 3위로 끌어올리며 신인왕에 등극했고, 플레이오프에서는 창단  첫 챔피언결정전 우승까지 이끌며 데뷔 첫해부터 일약 프로농구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후로도 김주성은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며 정규리그 MVP 2회, 챔피언결정전 MVP 2회 등을 수상하며 화려한 족적을 남겼다. 원주는 김주성과 함께한 시간 동안 7번의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하여 3회의 우승(2002~03, 2004~05, 2007~08)과 4회의 준우승을 기록했으며 12번이나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하여 '원주 왕조'를 열었다. 김주성을 중심으로 한 막강한 높이의 '고공농구'는 원주를 대표하는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뛰어난 업적, 말년까지 원주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남아

내가 막는다 5일 경남 창원시 의창구 창원체육관에서 열린 2017-2018 정관장 프로농구 창원 LG 세이커스와 원주 동부 프로미의 경기. 동부 김주성이 볼을 막고 있다.

▲ 내가 막는다 5일 경남 창원시 의창구 창원체육관에서 열린 2017-2018 정관장 프로농구 창원 LG 세이커스와 원주 동부 프로미의 경기. 동부 김주성이 볼을 막고 있다. ⓒ 연합뉴스


어느덧 프로 16년차가 된 김주성은 데뷔 이후 줄곧 원주의 유니폼만을 입으며 추승균(전주 KCC 감독, 은퇴)-양동근(울산 현대모비스) 등과 함께 KBL 역사상 몇 안되는 '원클럽맨' 레전드로 꼽히고 있다. 김주성은 17일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전까지 16시즌 통산 711경기를 출전해 평균 31분 31초를 소화하며 14.24득점-6.1리바운드-2.7어시스트-1.4 블록슛을 기록하고 있다.

김주성의 커리어는 흔히 NBA(미국 프로농구)의 슈퍼스타였던 케빈 가넷(전미네소타 팀버울브스)이나 팀 던컨(전 샌안토니오 스퍼스)과 종종 비교되곤 한다. 농구선수로서는 다소 마른 체형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운동능력과 다재다능한 농구센스로 프로농구 최고의 선수로 자리 잡았다는 점에서는 가넷과, 조용하고 착실한 이미지로 한 팀을 대표하는 프랜차이즈스타이자 원클럽맨으로 오랜 시간 군림하며 왕조를 열었다는 점에서는 던컨을 연상시킨다.

김주성과 함께 한국농구를 대표하는 빅맨으로 꼽히는 5년 선배 서장훈과는 자주 비교대상이 되곤 했다. 서장훈이 외국인 선수에게도 밀리지 않는 득점력과 에이스 본능을 자랑하는 역대 최강의 '공격형 빅맨'이었다면, 김주성은 '수비형 빅맨'의 완성체로 한 시대를 호령했다. KBL 통산 득점과 리바운드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서장훈(1만3231점, 5235개)에 비하여 개인기록은 다소 떨어지지만 김주성의 진가는 자신보다 팀원들의 능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줄 수 있는 '이타적인 플레이스타일'에 있었다.

한 시즌 평균 20점-10리바운드 이상을 기록한 시즌이 단 한 번도 없는 김주성이지만 이러한 꾸준함을 바탕으로 누적 기록에서는 통산 1만124득점, 통산 4366개의 리바운드로 서장훈에 이어 2위에 올라 있다. 특히 전매특허인 블록슛 부문에서는 1028개로 역대 1위다. 프로농구에서 통산 블록슛 1000개를 돌파한 것은 김주성 뿐이다.

또한 수비형이라는 이미지와 달리 김주성은 플레이오프같은 큰 무대에서는 종종 외국인 선수 못지않은 득점력을 발휘하기도 했고, 선수생활 후반부에는 운동능력에 의존하던 스타일에서 벗어나 3점슛과 패싱력을 장착하는 등 나이를 먹어도 끊임없이 진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뛰어난 업적에도 말년까지 개인기록에만 치중한다는 비판을 받으며 여러 팀을 전전하는 '저니맨'으로 전락했던 서장훈과 달리, 김주성은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모두 말년까지 화려한 피날레에 성공했고 원주를 대표하는 영원한 프랜차이즈 스타로 남았다.

'박수칠 때 떠나라' 국가대표팀에서도 큰 족적 남긴 선수

김주성 3점슛 12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서울 SK와 원주 DB의 경기.

DB 김주성이 3점슛을 하고 있다.

▲ 김주성 3점슛 12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서울 SK와 원주 DB의 경기. DB 김주성이 3점슛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주성은 국가대표팀에서도 거대한 족적을 남겼다. 98년 방콕 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2014년 인천 대회까지 무려 5회 연속으로 출전했고 FIBA 아시아컵의 전신인 아시아선수권에도 6회 출전, FIBA 농구월드컵(구 세계선수권) 본선 2회 출전 등 무려 16년간이나 태극마크를 달았다. 홈에서 열린 부산과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두 번이나 금메달을 목에 거는 영광도 누렸다. 특히 2014년 부산아시안게임은 김주성의 마지막 국가대표 은퇴무대에서 들어올린 금메달이었기에 더욱 뜻깊은 마무리였다.

사실 오랜 국가대표 생활은 김주성에게 명예와 함께 마음의 짐도 남겼다. 김주성은 매년 프로농구 장기레이스를 소화하고 얼마 되지 않아 비시즌에는 국가대표팀에 차출되어 쉴 틈 없이 국제대회를 치르는 일정을 반복하며 항상 '혹사'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더구나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국농구가 기나긴 암흑기에 빠져들며 국가대표팀 단골멤버였던 김주성은 본의 아니게 각종 국제대회 '참사'의 일원으로 함께 이름이 오르내리는 굴욕도 감내해야 했다. 그야말로 한국농구의 흥망성쇠를 모두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주성은 묵묵히 한국농구를 대표하는 빅맨의 계보를 이어온 버팀목이자 수호신이었다.

물론 김주성의 경력에도 '그늘'은 있었다. 김주성은 평소 코트 위 뛰어난 기량과 다사다난했던 개인 가정사, 다양한 사회공헌활동 등으로 성실하고 모범적인 이미지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오랫동안 지켜본 농구팬들 사이에서는 의의로 코트 매너가 좋지 않은 선수로 자주 거론되기도 했다. 잦은 판정항의와 속칭 '헐리우드 액션'이라 불리우는 빈번한 플라핑은, 전성기에도 김주성이 자주 비판받는 소재였으며 나이를 먹고 베테랑이 되어가면서 더 심해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2004년 정규시즌 경기 도중 골 밑을 수비하다가 서장훈의 목을 스파이크 찍듯이 가격한 사건은 '주성타'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붙으며 이후로도 두고두고 비판받는 흑역사가 됐다. 대학 시절에도 한차례 비슷한 큰 부상을 당했던 서장훈이 이후 은퇴할 때까지 목 보호대를 차고 경기에 출전해야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장면이었다.

또한 같은 해 정규시즌 막판 문경은, 우지원 등과 함께 개인 기록 타이틀을 둘러싸기 위하여 고의적인 '기록 몰아주기'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당시 KBL은 여론이 악화되자 개인기록 수상을 폐지하는 홍역을 치러야 했다. 하지만 정작 김주성은 "1~2경기를 가지고 시즌 전체의 기록이 부정당하는 건 이해할 수 없다"고 본인의 잘못을 자각하지 못하는 태도를 보였다가 팬들의 엄청난 뭇매를 맞았다.

농구전문가들은 김주성이 운만 따라줬다면 2~3회 정도는 더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김주성은 데뷔 6년만에 3개의 우승컵을 거머쥐었고 "다섯 손가락에 모두 우승반지를 끼는 게 목표"이라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준우승만 세 번을 추가하는데 그쳤다. 김주성은 사실상 선수생활 말년이 되어서야 어느 정도 체력적인 관리를 받기 시작했는데, 만일 김주성이 초창기 때부터 국가대표 차출에 대한 부담이 없이 적절한 관리를 받았다면 어땠을까 싶다. 전성기를 좀 더 오래 유지하며 한국농구의 역사가 좀더 바뀔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파란만장하면서도 영광스러운 선수생활을 보냈던 김주성은 이제 아름다운 피날레를 준비하고 있다. 원주 구단은 은퇴를 결심한 김주성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돌아오는 오는 1월 1일 원주 홈경기부터 은퇴 시즌 행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은퇴 후 영구결번'은 이미 예약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원주 팬들은 김주성이 은퇴하더라도 언젠가 '미래의 원주 감독'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벌써 예상하고 있다. 그야말로 '박수칠 때 떠나라'라는 이야기의 모범에 가까운 장면이다. 한국농구는 그렇게 또 한명의 전설과 코트에서 이별해야 할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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