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페미니스트였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페미니스트였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페미니스트였다. 물론 페미니즘이니 페미니스트니 하는 것을 알지도 못했지만 내가 지녔던 그 의식은 감히 페미니스트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족보를 중시하는 몹시 평범하고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자란 장남의 두 딸 중 첫째 딸이다.  마음이 약하고 눈물이 많은 우리 아빠는 어릴 때부터 남자답지 못하다고 할아버지한테 그렇게 구박을 받았다고 한다. 기지배같은 마음에 안드는 장남이 심지어 아들도 못 낳고 딸만 둘 낳았으니 우리 엄마와 아빠가 또 얼마나 시달렸을지는 불 보듯 훤한 일이다. 심지어 우리 가정은 친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그러니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페미니스트였다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친가의 남자 성인들은 모두 부인 때리고, 바람피고, 집안의 재산 탕진하는 사람들밖에 없는데 왜 그리 아들을 원하는 건지, 장사하느라 365일 쉬지 않고 일하는 우리 엄마가 제사 전날 음식 장만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 왜 그렇게 비난을 들을 일인지, 나의 성별이 무엇이든 간에 나는 그냥 나일 뿐인데 내가 남자가 아닌 것이 왜 그리 아쉬운 일인지 나로선 이해되지 않는 일들 투성이였다.

장남한테 시집와서 아들도 못 낳은 주제에, 고분고분하지도 않았던 우리 엄마는 모든 시집 식구, 심지어 친정식구들에게도 숱한 설움을 당했다. 엄마는 나를 붙잡고 그것들도 아들 가진 유세를 한다며 아들 없다고 무시하는 사람들을 욕했고 평생을 그런 일들을 지켜보면서 산 나는 엄마를 내가 지켜줘야 한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남자 따위 힘으로든, 공부로든 다 이겨버리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힘도 키우려고 노력했고 공부도 열심히 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힘으로 남자를 이길 정도가 되어도, 공부를 잘 해도 아들 없는 우리집에 겪어야 하는 차별과 설움은 없어지지 않았다. 결국은 친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들 있는 집에서 우리집 제사를 뺏아가면서 연을 끊은 후에야 우리집은 아들없는 설움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는 윤리 남교사가 '여자는 걸어가는 뒷모습 엉덩이만 봐도 처녀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며 순결을 지켜야 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대학에 갔더니 남자 동기, 선배가 나한테 '조금만 더 살을 빼만 예쁠텐데 빼라, 거식증에 걸리더라도 빼는 게 좋지 않냐'고 외모 품평을 했다. 직장에 갔더니 회식자리에서 악수를 하자고 해놓고 내 손등에 뽀뽀를 했다. 술자리만 있으면 여자 몸매가 어쩌고, 들은 얘긴데 가슴이 어쩌고, 치마는 짧아야 하고 등등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성폭력 기사를 본 남자 동료는 '여자가 꼬시면 남자가 넘어가지 않기가 어렵다'고 했다.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단지 성별이 여자이기 때문에 내가 감내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도 많다. 여자는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해도 꽃 취급 밖에 받지 못한다. 성폭력을 당하고도 말도 못하고 넘어가는 일이 수없이 이어지는데, 사건 기사만 나오면 피해자를 꽃뱀으로 치부하려는 댓글들은 여전히 많다. 일상에선 성희롱이 아무렇지 않게 이뤄진다. 이 숱한 일들의 본질은 모두 같다. 그 당사자의 성별이 여자이기 때문이다.

배우 유아인의 그 트윗이 불편했던 이유

유아인의 트윗
 유아인의 트윗
ⓒ 권미현

관련사진보기


최근에 페미니즘 열풍이 불고 있다. 서점가에서도 페미니즘 책이 많이 팔리고,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갈등도 최고조에 달했다. 이 와중에 배우 유아인은 '여성혐오 한다'며 자신을 지적하는 사람들을 페미니즘 유행에 날뛰는 생각없는 사람 취급하며 자신이 '진짜 페미니스트'라고 천명하는 듯하다.

지금  페미니즘을 외치는 여성들은 유행에 편승해서 아무 이유없이 화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내가 글에서 밝힌 것과 같은, 어쩌면 훨씬 더한 피해의 경험을 안고 자신이 당한 피해가 부당하다고 자신들의 안전을 담보로 소리치고 있는 것이다. 피해 의식이 아니라 피해의 경험을 안고 외치고 있다. 페미니스트의 '페', 여성의 '여'자만 언급해도 매도당하고 비난받고 신상털리기 쉬운 이 사회에서 절박하게 절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유아인은 어떤 심정으로, 무엇을 외치고 있는지 묻고 싶다.

그는 제사 때 고생하는 엄마와 누나들을 지켜본 경험, 이름이 방울인 누나를 불쌍하게 여긴 경험을 풀어내면서도, '진짜 페미니스트'와 '가짜 페미니스트'를 구분하는 듯하다. 본인이 '인정'한 여성의 목소리에만 귀를 귀울이겠다는 소리일까.

차별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그 차별의 부당함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차별을 경험한 사람이 가지는 두려움, 공포, 피해의 경험을 들으려 하지 않은 채, 본인이 말하는 것만 옳고 나머지는 가짜라고 판단하는 건 오만이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 페미니스트는 당신에게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권한을 주지 않았다.


태그:#페미니스트, #유아인, #여성혐오
댓글15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