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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화자씨가 열두폭 짜리 미니병풍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최화자씨가 열두폭 짜리 미니병풍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 <무한정보>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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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 지역 34곳에서 운영되고 있는 문해교실이 비문해자들의 문맹 탈출이라는 기본 목적을 넘어 노년의 삶에 활력을 주는 노인복지프로그램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글자를 깨친 뒤 달라진 일상만으로도 큰 기쁨인데, 한발 더 나아가 평생 몰랐던 재능 발견으로 벅찬 에너지를 얻는 사례가 종종 보고되고 있다. 문해교실 수강생들의 예사롭지 않은 사례가 세상에 알려지는 통로는 대부분 문해 교육 강사의 제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16일 충남 예산군 신양면 황계문해교실 장미선 강사가 기자에게 전화해 "수강생 어르신 중에 그림을 너무나 잘 그리는 분이 있다. 요즘 태어났으면 미대를 가고 화가가 되셨을 거다. 우리 어르신 그림을 같이 보면 좋겠다"며 자랑을 했다.

문해교실에 다니는 어르신들이 인생 경험을 녹여내 기성 작가 못잖은 글을 썼다는 소식은 심심찮게 들었지만, 오롯이 그림만으로 추천을 받기는 처음이다. 문해교실 수업이 단순 읽기와 쓰기만이 아니라 그리기, 만들기 등 다양하게 분화하면서 글 이외의 영역으로 확대된 덕분이다.

신양면 황계문해교실 막내 최화자(68)씨는 요즘 그림 그리는 재미에 빠져 새벽 2, 3시를 넘기기 일쑤다.

최씨가 그리기의 즐거움을 알게 된 건 문해교실에서 진행된 색칠하기 등 미술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최씨의 남다른 재능을 알아본 장 강사의 격려와 황계문해교실 반장을 맡고 있는 박정순 회원의 스케치북 선물이 계기가 됐다.

초등학생용 스케치북에 담긴 최화자씨의 일상, 여행에서 본 백두산 천지, 꽃과 나무, 새.
 초등학생용 스케치북에 담긴 최화자씨의 일상, 여행에서 본 백두산 천지, 꽃과 나무, 새.
ⓒ 최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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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절 도화지 25장이 달린 초등학생용 스케치북에는 꽃과 나무, 새, 최씨의 일상과 기념행사, 집안 달력 모사, 여행에서 본 백두산 천지, 꿈속 장면 등이 담겨있다.

앞면은 자연물 세밀화, 뒷면은 달력의 그림을 따라 그린 열두폭짜리 미니병풍도 만들었다.

논농사와 밭농사, 축산 등 복합영농을 하느라 쉴 틈 없이 바쁘지만, 스케치북만 펴면 피곤이 씻은 듯이 달아난다.

"보이는 거, 생각나는 거 다 그리고 싶어요."

젊어서도 바느질을 하거나 수를 놓으면 "재주 있다"는 칭찬을 받곤 했지만, 그림은 난생처음 그려보는 것이라는데 누가 봐도 남다르다.

자녀들도 "우리 엄마 솜씨 너무 아깝다"면서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림 뒷면에 적힌 기록이 집안 분위기를 전해준다.

'며느리가 지구 색색을 사다 주어서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렸다. 며느리에게 고맙다.'

황계문해교실에서는 최씨가 그린 밑그림을 복사해 색칠하기 교재로 쓰고 있다. 같은 반 동무의 재능을 격려하는 어르신들의 넉넉한 마음 씀씀이 역시 힘이 된다.

황계리에서 나고 자라 같은 마을 총각과 결혼한 후 지금까지 70년 가까이 한마을에서 살아온 최씨에게 그림은 새로운 세상이다. 자신이 그린 그림을 내어 보이는 최씨에게서 학생의 모습이 보였다. 칭찬이 쑥스러우면서도 자랑스러운 듯한….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예산군에서 발행되는 <무한정보>에서 취재한 기사입니다.



태그:#할머니화가, #문해교실, #미술, #노인복지,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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