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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10월 29일 준공된 여의도 시범아파트는 와우아파트 붕괴사고로 형성된 아파트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시범적으로 지어진 12층의 고층 아파트였다. 1973년 4월 15일 촬영
▲ 여의도 시범아파트 1971년 10월 29일 준공된 여의도 시범아파트는 와우아파트 붕괴사고로 형성된 아파트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시범적으로 지어진 12층의 고층 아파트였다. 1973년 4월 15일 촬영
ⓒ 서울역사박물관 디지털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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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10월 29일 여의도 시범아파트가 준공됐다. 와우아파트 붕괴사고(1970. 4. 8)로 형성된 아파트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이름 그대로 시범적으로 지어진 아파트였다. 처음으로 엘리베이터가 설치됐고 세대마다 스팀난방과 냉온수가 급수됐다. 24개동(1584세대)으로 지어진 아파트단지에는 파출소, 쇼핑센터는 물론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입지했다. 뿐만 아니라 여의도 시범아파트는 '아파트는 5층'이라는 등식이 통용되던 시절 12층으로 지어진 고층 아파트였다.

1978년 11월 완공된 잠실 주공5단지는 고층 아파트의 새장을 열었다. 15층 높이로 지어진 잠실 5단지는 최고층 아파트였다. 당시로서는 대형 평수인 23평형과 25평형으로 설계됐고, 넓은 부지(9만8,815평)에 아파트 동과 동의 이격거리가 70m로 일조권이 좋고 생활환경이 쾌적했다. 그러나 근린주구이론에 따라 설계된 잠실 5단지는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자폐형 아파트단지의 본격적인 출현을 알렸다.

목동신시가지 건설 사업으로 지어진 목동아파트단지는 16층 이상의 높이로 건설됐다. 양천구 목동과 신정동 일대에 지어진 목동아파트단지(14개 단지 2만6608가구)는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김포공항 주변의 환경개선과 안양천변 홍수 방지 대책의 일환으로 건설됐다. 안양천변에 산재한 빈민촌을 철거하고 지어진 목동아파트단지는 여타의 도시개발지구에 비해 상업과 행정 비중이 컸고, 간선도로를 따라 선형으로 조성됐다.

서울올림픽 이후 주택난과 부동산 투기가 맞물리면서 집값이 폭등하자 노태우 정부는 주택 200만호 건설 정책을 추진했다. 수도권 1기 신도시(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는 노태우 정부가 주택 200만호를 건설하기 위해 추진한 사상 최대의 주택 건설 프로젝트였다. 분당, 일산 등의 신도시에 신축된 아파트는 25층 높이로 건설됐다. 1기 신도시 건설을 계기로 신축 아파트는 20층 이상으로 지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건희의 복합화 모델, 타워팰리스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의 복합화 경영철학에 따라 서울 중구 태평로에 위치한 사옥을 금융복합단지로 조성하고, 패션복합단지와 IT복합단지를 신축할 계획을 수립했다.
▲ 삼성 구 본관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의 복합화 경영철학에 따라 서울 중구 태평로에 위치한 사옥을 금융복합단지로 조성하고, 패션복합단지와 IT복합단지를 신축할 계획을 수립했다.
ⓒ 전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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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0월 타워팰리스(1차)가 완공되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타워형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가 등장했다. 타워팰리스는 삼성그룹 회장 이건희의 복합화 경영철학의 산물이다.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말로 유명한 신경영을 선언한 이건희는 서로 다른 여러 가지 요소로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복합화 경영철학을 역설했다.

이건희의 복합화 경영철학에 따라 삼성그룹은 중구 태평로에 위치한 사옥을 금융복합단지로 조성하고, 패션복합단지와 IT복합단지를 신축, 계열사를 3대축으로 연계하는 계획을 수립했다. IT복합단지를 건설하기 위해 삼성그룹은 1996년 서울시로부터 강남구 도곡동 소재의 2만2714평의 체비지를 6226억 원에 매입했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했다. 일조권과 교통난을 이유로 주민들이 건물 신축을 반대하는 가운데 외환위기가 터진 것이다. 삼성그룹은 외환위기의 여파로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자 IT복합단지 건설 계획을 폐기하고,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 건설을 추진했다.

"빌딩을 옆으로 넓히지 말고 위로 높이자. 좁은 국토를 효율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한곳에 모든 임직원이 모여 산다면 40초 만에 모일 수 있다. 이게 바로 경쟁력이다. 물류비용이 줄고 경영 스피드가 제고된다. 교통체증도 없어진다. 이게 바로 복합화다." - 김성홍 외, <이건희 개혁 10년>, 91쪽

양재천에서 바라본 타워팰리스 1차 A, B, C동(오른쪽부터) 모습.
▲ 타워팰리스 양재천에서 바라본 타워팰리스 1차 A, B, C동(오른쪽부터) 모습.
ⓒ 전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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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팰리스는 이건희의 복합화 경영철학에 입각하여 최고 93층 높이로 계획됐다. 문제는 인허가권을 가진 서울시가 93층 아파트를 짓는데 부정적이었다. 서울시와 갈등을 벌이던 삼성은 1999년 5월 타워팰리스 1차분 건설공사를 시작하여 2002년 10월 완공했다.

타워팰리스 1차는 4개동(A동 59층, B동 66층, C동 59층, D동 42층)으로 지어졌다. 1차분 1499세대는 50평(116세대), 57평(320세대), 68평(429세대), 72평(218세대), 101평(102세대), 124평짜리 펜트하우스(30세대)로 구성됐다. A, B, C동 꼭대기 5개층에 배치된 펜트하우스는 92평과 32평을 터서 만들었다. 비교적 작은 평형에 해당하는 20평, 30평, 40평형대는 D동에 배치된 200여 세대에 불과했다.

타워팰리스 2차는 2000년 착공되어 2003년 2월 완공됐다. 961가구가 입주한 2차 2개동(E, F동)은 55층 높이로 용적률은 923%, 건폐율은 39%이다. 단위세대의 면적은 92㎡(방 2개, 욕실 1개)와 326㎡(방 4개, 욕실 3개)로 구성됐다.

서울시와의 갈등 속에 69층 높이로 지어진 타워팰리스 3차(G동)는 2001년 착공하여 2004년 4월 완공됐다. 완공 당시 G동은 전국에서 제일 높은 건물(69층 264m)인 동시에 가장 비싼 아파트였다. 3차 G동의 용적률은 791%, 건폐율은 39%이고, 480가구가 입주한 단위세대의 면적은 155㎡(방 2개, 욕실 1개)에서 340㎡(방 2개, 욕실 1개)이다.

타워팰리스의 구별짓기

"평범한 사람들과 자신들을 구별 짓고자 하는 태도는 삼성 고위 임원들의 공통된 특징이었다. 물론, 이런 태도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은 이건희다. 삼성은 서울 도곡동에 타워팰리스를 지으면서 대단한 공을 들였다. 이건희의 지시 때문이다. 2002년 10월 타워팰리스가 첫 입주자를 받을 무렵, 이건희는 입주자 자격 심사를 하라고 했다. …… 당시 이건희는 삼성 고위 임원,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으로 성공한 사람, 문화 학술계 유명인사 등을 입주 자격으로 내세웠다. 이건희는 일종의 우생학적인 생각을 품고 있었던 듯하다. 뛰어난 사람들을 따로 골라내서, 그들이 대중과 섞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 말이다. 순수혈통을 고집하는 배타적인 인종주의를 떠올리게 하는 태도인데, 아마 이건희가 생각하기에 가장 우월한 인종은 삼성 고위 임원이었을 게다" - 김용철, <삼성을 생각한다>, 247~248쪽

타워팰리스는 강남의 부와 권력을 상징한다. 초고층 높이에 넓은 주차장, 첨단 경비 시스템에 수영장, 골프연습장까지 갖춘 타워팰리스의 등장은 주거문화의 획을 그은 사건이었다. 한마디로 타워팰리스는 고급 아파트의 대명사인 동시에 극히 소수의 특권층만이 분양받을 수 있는 아파트였다.

삼성은 타워팰리스 1·2·3차를 모두 특정 계층만을 대상으로 비공개 분양했다. 고급 커뮤니티를 형성한다는 이유로 대기업 임원, 고위 공무원, 교수 등에 한해 분양됐다. 집값과 관리비 또한 평범한 샐러리맨이 분양받아 살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타워팰리스의 정확한 분양가는 공개된 바 없다. 당시 강남구의 아파트 가격과 서울 평균 아파트 가격을 비교해 보는 것으로 타워팰리스 분양가를 추정해 볼 뿐이다. 타워팰리스가 분양될 당시 강남구 아파트 평당 가격은 평균 1458만원으로 서울 평균 722만원보다 2배 이상 비쌌고, 최저인 도봉구와 금천구(474만원)보다는 3배 이상이었다.

고급 주거공간을 만들기 위해 타워팰리스는 다양한 시설들이 구비됐다. 1499가구가 입주한 1차분의 경우 3695대의 주차 공간과 40대의 엘리베이터가 설치됐다. 입주민을 위한 수영장과 연회장, 골프연습장, 스트리트몰 등은 기존 아파트에서는 볼 수 없는 시설이었다. 최고급 마감재 뿐 아니라 주민의 안전과 보안을 위해 다양한 장치를 적용했다. 출입할 때 필요한 카드(RF와 ID카드) 키와 2000여 대의 폐쇄회로 TV와 지문 감식 시스템이 더해졌다.

각 동 중간층에는 연회장, 헬스클럽, 독서실 등 호텔급 편의시설이 들어섰고, 외부 손님을 위한 게스트룸(양실, 한실 각 1개)이 따로 마련됐다. 또한 당구장, 노래방, 비디오방, 공동세탁실은 물론 입주민들의 사교공간인 클럽하우스도 갖췄다. 아파트 입구에 들어선 상가동에는 사우나, 수영장, 골프연습장이 설치되어 입주자들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타워팰리스가 건설된 이후 50층 이상의 주상복합 아파트가 성냥갑(판상형) 아파트를 제치고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여의도의 대우트럼프월드(2002), 삼성동의 아이파크(2004), 논현동의 동양파라곤(2004), 목동의 하이페리온(2003) 등 타워형 주상복합아파트가 이 무렵 지어졌다. 2000년대 중반 우후죽순처럼 건설된 주상복합아파트는 아파트의 대형 평형을 주도하고, 부동산 버블을 일으킨 주범이기도 했다.

타워팰리스 주민의 값 싼 우월의식

타워팰리스 인근에 위치한 개일초등학교와 대도초등학교 모습. 다음 스카이뷰를 캡쳐했다.
▲ 타워팰리스 주변 모습 타워팰리스 인근에 위치한 개일초등학교와 대도초등학교 모습. 다음 스카이뷰를 캡쳐했다.
ⓒ 다음 스카이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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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2월 4일 오후 2시 강남구 개포동 소재 개일초등학교에서 신입생 예비 소집이 열렸다. 동네별로 줄지어 선 코흘리개들이 선생님과의 첫만남을 가진 이날, 타워팰리스에 사는 신입생들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타워팰리스에 사는 신입생 대부분은 인근의 대도초등학교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사태의 발단은 강남교육청이 타워팰리스의 학구(學區)를 대도초교에서 개일초교로 조정(2004. 11)한 때문이다. 학교 배정이 바뀌자 타워팰리스에 사는 학부모들이 강남교육청으로 몰려가 "갑작스러운 학구 변경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세게 항의했다. 이들은 개일초교가 대도초교보다 더 멀기 때문에 학구 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타워팰리스 중앙에서 개일초교까지의 거리는 580m로 대도초교(740m)보다 더 가까웠다. 더욱이 타워팰리스에서 대도초교로 걸어서 가려면 지하도를 지나야 했다. 대도초교가 가깝다는 주장은 핑계에 불과했다. 대도초교에는 타워팰리스를 비롯하여 래미안, 센트레빌 등 고급 아파트에 사는 학생들이 대부분인 반면 개일초교에는 개포동 주공1단지 아파트에 세 들어 사는 학생들이 많았다. 타워팰리스 학부모들이 학구 조정을 반대한 이유는 자기 자식이 가난한 집 아이들과 어울리는 걸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타워팰리스 학부모들의 항의에 강남교육청은 무기력했다. 학구 조정계획은 수정되어 타워팰리스에 사는 신입생들은 대도초등학교에 배정됐다. 타워팰리스의 부자들에게 사회적 공감대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책임의식을 기대하는 것은 무망한 일일까. 이즈음 어느 신문은 타워팰리스 주민의 값 싼 우월의식을 다음과 같이 질타했다. 

"타워팰리스 학부모들의 반대는 한마디로 값 싼 우월의식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신흥 상류층의 대표적 주거지로 꼽히는 타워팰리스 주민들의 의식이 이 정도라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사회에 본보기를 보여야 할 상류층 사람들은 높은 도덕성과 의무 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못한 상류층은 계층의식과 반목 등 사회에 쓰레기를 남길 뿐이다. 같은 단지 내에서도 아파트 평수 크기에 따른 적대적 차별의식이 존재한다면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 국민일보 2005년 2월 7일자 사설, '타워팰리스 주민의 왜곡된 우월 의식' 일부

덧붙이는 글 | 전상봉 시민기자는 서울시민연대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타워팰리스, #이건희, #삼성, #개일초등학교, #여의도시범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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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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