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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트위터에서 알려져 논란이 된 어느 법무법인의 광고. 트위터 사용자가 교대역 지하철 출구에 붙은 광고를 보고 "안 그래도 솜방망이인 성추행범 처벌을 집유로 만들 셈인가"라고 비판했다. 당시 항의로 인해 해당 광고는 철거됐다.
 지난 3월 트위터에서 알려져 논란이 된 어느 법무법인의 광고. 트위터 사용자가 교대역 지하철 출구에 붙은 광고를 보고 "안 그래도 솜방망이인 성추행범 처벌을 집유로 만들 셈인가"라고 비판했다. 당시 항의로 인해 해당 광고는 철거됐다.
ⓒ 트위터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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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경, 한 법무법인의 지하철 광고가 SNS상에서 화제가 되었다. 이 광고는 각종 성범죄를 예시로 들며 '부당한 처벌을 무죄, 불기소, 집행유예로 이끌어준다'고 홍보했다.

당연히 많은 사람의 항의를 받았고, 법무법인 측에서는 "억울한 '피해자를 부각할 의도였을 뿐, 정말로 죄를 지은 사람들을 처벌받지 않게, 무죄를 받도록 도와주겠다는 것은 아니었다"라고 해명하며 다음 날 광고를 철거했다.

성범죄 가해에 대해 '억울한 일', '부당한 처벌' 등을 언급하며 가해자의 입장에서 광고를 낸 곳이 이곳뿐이었을까? 미어캣 기획단은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광고'를 통해 성폭력 통념이 재생산되고 있다는 데 문제의식을 갖고 성폭력 피의자 변호사 광고 분석 활동을 진행하였다.

성범죄 변호사를 포털에 검색 했을 때 가장 상단에 뜨는 화면이다.
 성범죄 변호사를 포털에 검색 했을 때 가장 상단에 뜨는 화면이다.
ⓒ 한국여성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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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의자 변호사 광고는 기사 형태를 띠고 진행되기도 한다. 어떤 성폭력 사건을 언급하고 해결하는데 있어 어려움이 있을 수 있기에 변호사를 꼭 선임해야 한다는 식으로 마무리 된다.
 성폭력 피의자 변호사 광고는 기사 형태를 띠고 진행되기도 한다. 어떤 성폭력 사건을 언급하고 해결하는데 있어 어려움이 있을 수 있기에 변호사를 꼭 선임해야 한다는 식으로 마무리 된다.
ⓒ 한국여성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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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한 일은 포털에 '성범죄 변호사'를 검색해 보는 것이었다. 파워링크, 파워콘텐츠, 비즈사이트 등의 이름으로 수많은 변호사, 법무법인 사이트가 등장했다. 어딜 선택해야 좋을지 모를 정도로 너무나 많은 곳에서 성범죄 사건을 '해결'해주겠다고 홍보하고 있다.

게다가 많은 변호사가 '성범죄로 억울하게 고소당했다'는 게시글에 답변을 달고 있었다. 심지어 성폭력 가해자에게 조언하는 뉴스와 출판물까지 찾아볼 수 있었다. 홈페이지, 블로그, 카페, 지식IN, 기사형 광고 등 형태는 다양했다. 그런데 그 내용을 살펴봤을 때 사실상 동일한 논리와 정서를 공유하고 있었다.

'우발적'인 '실수', '꽃뱀에 걸렸다'는 표현... 잘못된 시각 퍼뜨릴 수도
'착각과 오해'로 '우발적 강제추행'을 했다는 건 대체 무슨 의미일까?
 '착각과 오해'로 '우발적 강제추행'을 했다는 건 대체 무슨 의미일까?
ⓒ 한국여성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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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한 기사형 광고의 내용이다. 아예 '꽃뱀'에 대처해야 한다고 글을 쓰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기사형 광고의 내용이다. 아예 '꽃뱀'에 대처해야 한다고 글을 쓰기도 한다.
ⓒ 한국여성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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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광고 내용을 보면, 기사형 광고에서 '착각과 오해', '한순간의 실수', '우발적 범행' 등의 표현을 반복하며 가해 행위가 '범죄'가 아니라 일종의 '사고'라는 식으로 심각성을 축소하는 듯한 묘사가 나온다.

또 광고에서는 '성범죄가 여타 범죄에 비해 증가하였다'면서, 그 말인즉슨 '억울하게 혐의를 받는 피의자 역시 증가하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고 무고죄에 대해 언급하며 '성범죄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모 법무법인은 엄한 처벌 추세, 신상공개 등을 언급하며 '성폭력 엄벌주의,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한 성범죄 무죄 판결에 대한 모니터링 등의 영향으로 검찰과 법원이 피해자가 피해를 주장하는 경우 사실상 유죄를 추정하는 듯한 정도에 이르렀다'며 사법기관의 판단에 불신을 부추긴다. 광고 내용을 정리해 보면 대부분 이러한 패턴이다.

"성범죄 사건은 피의자가 불리한 입장에 처해 있기 때문에 혼자서는 절대 해결할 수 없습니다. 풍부한 경험을 지닌 전문변호사의 도움을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억울한 처벌'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성폭력 피의자 변호사 광고 모니터링 내용이지만, 사실 피해자가 '가해자의 행위를 오해'했다거나 가해자의 행위를 '우발적'인 '실수'라고 표현하거나 '꽃뱀에게 잘못 걸렸다'는 식으로 여기는 것은 성폭력에 대한 흔한 통념이기도 하다.

변호사와 법무법인은 이런 성폭력에 대한 왜곡된 통념에 적극적으로 기대어 광고를 하고 있고, 실제로 성폭력 재판 동행·모니터링을 진행했을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피고인 변호사 변론 내용이기도 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7조 [주로 취급하는 업무 광고]에서 보듯, ‘전문’ 표시의 경우 협회 ‘변호사 전문분야 등록에 관한 규정’에 따라 전문분야 등록을 한 변호사만이 사용할 수 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7조 [주로 취급하는 업무 광고]에서 보듯, ‘전문’ 표시의 경우 협회 ‘변호사 전문분야 등록에 관한 규정’에 따라 전문분야 등록을 한 변호사만이 사용할 수 있다.
ⓒ 한국여성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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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전문 변호사'라는 광고 문구에도 문제가 있었는데, 변호사 업무광고규정 7조에서 알 수 있듯 '전문' 표시의 경우 협회 '변호사 전문분야 등록에 관한 규정'에 따라 전문분야 등록을 한 변호사만이 사용할 수 있다.

광고를 통해 '성범죄 전문 변호사'라는 단어를 자주 접할 수 있는 상황과는 달리, 대한변호사협회에서는 성범죄에 관해서는 전문 분야 등록을 따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즉, '성범죄 전문 변호사'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광고는 불법이라는 의미이다.

또 '성범죄 변호사'라는 키워드로 모 포털에 등록된 검색광고는 83건이었는데(2017년 11월 8일 검색 결과) 이는 사기 54건, 절도 22건, 강도 5건 등 다른 분야에 비해 높은 수치이다. 앞서 언급한 카페, 블로그, 지식IN 답변, 기사형 광고 등을 포함하면 성폭력 피의자 변호사 광고는 다른 범죄 변호사 광고에 비해 그 규모나 종류가 월등하게 많음을 알 수 있다.

그 많은 광고가 범죄 피의자, 피고인에게 '변호사를 통해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고 법률적 조언을 얻을 수 있음'을 알리는 것을 넘어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공격, 비방, 비난하는 언어로 구성되고 범죄를 사소화 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

성폭력 가해자 중 83%는 피해자와 친밀한 관계... '그런' 가해자는 없다

변호사 전문분야 등록 신청 분류표이다. 여기에 '성폭력'은 해당하지 않는다.
 변호사 전문분야 등록 신청 분류표이다. 여기에 '성폭력'은 해당하지 않는다.
ⓒ 한국여성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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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의자 광고 분석 활동을 하면서 발견하게 된 핵심 키워드는 '억울, 실수, 호기심'이었다. 이 키워드를 포털에 검색해 보면 (다른 어떤 단서도 덧붙이지 않았는데) 성폭력 관련 글이 다수 등장했다. 실제 성폭력 재판 모니터링 과정이나 성폭력 가해자 교육 중 만나는 성폭력 가해자는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니다"라며 본인의 억울함을 호소한다.

하지만 '그런' 가해자는 없다. 성폭력 가해자 중 83.2%는 피해자와 아는 관계이며 직장동료·연인·친구·선생님·목사·가족 등 친밀한 관계이다.(2016년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통계) 미어캣 기획단 결과 발표회의 토크쇼 패널로 함께 한 여성주의 연구 활동가 김홍미리는 "누구라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걸 아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가해에 대한 인정이 있어야 반성이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성폭력은 특수한 상황(혼자 있는/밤에/모르는 사람으로부터의/폭행을 동반한 등)에서 발생하는 '특별한' 사건이 아니고, 성폭력 가해자는 세상에 둘도 없는 악인이 아니다. 하지만 강간문화가 당연한 사회에서 성폭력은 그들의 '썸'이 되고, '놀이'가 되며, 성폭력 가해자는 나와 다른 '괴물'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가해자로 지목받으면 끊임없이 억울해진다. 이와 같은 논리가 법정에서부터라도 더 이상 유통되지 않으려면 성폭력 피의자 광고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

'성폭력피해에 공감하는 첫사람'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는 성폭력 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 시민들과 함께 '성폭력피해에 공감하는 첫사람'(이하 첫사람) 재판 방청 활동과 기획단 활동을 진행해오고 있다.

미어캣 기획단은 '미'간을 찌푸리고 '어'이없는 재판부와 피고인의 아무말을 '캣'치한다(!)는 목표로 성폭력전담재판부 운영 및 성폭력 재판 일반에 관한 내용들을 조사하고, 성폭력 변호사 광고를 분석하고 유형화해보았다. 미어캣 기획단의 두 번째 기사는 기획단 니모, 구구, 은사자가 성폭력 변호사 광고 분석 내용을 토대로 작성하였다.

[이전 기사] '헉' 소리 나온 성폭력전담판사의 발언, 이유가 있었다


태그:#성폭력, #변호사광고, #한국여성민우회, #미어캣기획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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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회는 1987년 태어나 세상의 색깔들이 다채롭다는 것, 사람들의 생각들이 다양하다는 것, 그 사실이 만들어내는 두근두근한 가능성을 안고, 차별 없이! 평등하게! 공존하는! 세상을 향해 걸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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