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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롬바 마을
 팔롬바 마을
ⓒ 조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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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할머니의 수제 파스타 수업'이란 제목의 여행 상품을 보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광고 속에는 앞치마를 두른 이탈리아 할머니가 나무 방망이로 정성껏 반죽을 밀고 있었다. 97 달러라는 가격에 망설였지만, '그래, 내가 찾던 진짜 이탈리아 문화 경험이 여기 있어!' 라는 직감이 들었다.

로마에서 기차를 타고 30분 떨어진 파롬바 마을에 도착했다. 관광객은 한 명도 없는 로마 외곽의 농촌 마을이었다. 10세기에 만들어졌다는 이 마을에 오늘의 수업 강사 레리나 할머니, 통역을 맡은 손녀 키아라, 치아라, 치아라의 갓 돌 지난 아들까지 3대가 모여 산다.

돌 담 언덕 위 할머니의 집 대문을 열자 레리나 할머니가 "본죠르노~"라고 외치시며 나를 껴안고 양 볼에 뽀뽀했다. 150cm가 겨우 넘어 보이는 키, 회색빛 머리, 주름과 검버섯이 핀 피부, 내가 알아듣던 말든 쉴 새 없이 이탈리아 말로 내게 뭐라고 말을 건네며 먹을 것을 권하는 정 넘치는 시골 노인이었다.

레리나 할머니와 가족들
 레리나 할머니와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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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리나 할머니는 농부의 딸로 자라 5세부터 아버지를 위해 파스타를 만들었다. 할머니는 25살에 시집오면서 혼수품으로 파스타 반죽을 미는 나무밀대, 파스타를 말릴 때 쓰는 광목천, 요리 후 뒷정리를 할 때 쓰는 나무 빗자루, 참나무 식탁을 가져왔고, 지금까지그 도구들을 쓰고 있다. 65년 된 나무 빗자루는 닳을 때로 달아 나뭇결에 윤기가 흘렀다.

수업에서 할머니와 세 가지 파스타 라비올리, 링귀니, 카넬롤리를 만들었다. 세 가지 파스타는 일단 같은 반죽에서 시작했다. 100g의 세몰리나 밀가루를 나무 도마 위에 올려놓고 가운데가 움푹 파인 화산 모양으로 만들었다. 움푹 파인 곳에계란 하나를 톡, 떨어트린 후 포크로 밀가루와 계란을 살살 섞어 반죽을 만든 후, 광목천에 싸서 30분 동안 실온에 보관했다.

30분 후, 할머니는 반죽 밀기 시범을 보여줬다. 할머니는 나무 방망이로 반죽이 어느 정도 평평해 질 때까지 앞뒤로 민 후, 평평해진 반죽을 밀대에 말았다. 이때, 반죽을 말면서 손으로 잡아당겨야 한다. 손바닥이 아니라 손날로 반죽을 밀 듯이 당겨야 하며, 반죽의 안쪽이 아니라 가장자리만 잡아당기는 게 포인트다.

반죽이 밀대에 다 말리면 두 손으로 힘껏 밀대를 반대 방향으로 빠르게 민다. 수강생들은반죽이 상할까 싶어 밀대를 살살 밀었지만, 할머니는 오히려 그렇게 하면 반죽이 망가진다며 '휘리릭'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밀대를 힘껏 밀었다. 할머니의 너무나 자연스러운 반죽 만들기 솜씨에 수강생들은 카메라를 들고 쉴 새 없이 사진을 찍으며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감탄사를 연발했다.

내가 민 반죽은 아무리 밀어도 그 정도로 얇게 밀어지지 않던데, 할머니가 10분 넘게 정성스럽게 민 파스타 반죽은 나무 도마의 결이 다 비칠 정도로 얇았다. 할머니는 본인이 민 반죽을 보며 이탈리아어로 예쁘다인 '벨라'를 연발했다. 다 밀어진 반죽은 실내의 그늘 진 곳에 광목천을 깔고 20분을 말렸다. 말리기 전에는 촉촉했던 반죽 표면이, 20분이 지나자 거칠거칠한 가축처럼 변했다.

완성된 반죽으로 첫 번째 파스타, 라비올리를 만들었다. 라비올리는 만두 모양의 파스타로 속에 리코타 치즈와 시금치를 섞어 넣었다. 속을 넣은 후 만두 마냥 반죽의 반대편을 속 위로 올려 봉합한 후, 지그재그 모양의 작은 바퀴가 달린 라비올리 파스타전용 커터로 반죽을 잘랐다.

라비올리 파스타
 라비올리 파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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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과 올리브유를 넣고 팔팔 끓인 물에 라비올리를 넣었다. 건조 파스타와 달리, 생면 파스타는 다 익으면 물에 저절로 떴다. 다 익은 라비올리 파스타는 허브의 한 종류인 세이지와 올리브유를 넣고 3분정도만 볶았다. 볶아진 라비올리를 서둘러 맛봤다. 건조 파스타를 먹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탱탱하고 쫄깃한 면의 식감이 살아있었다. 짭조름한 리코타 치즈와 올리브유의 궁합도 조화로웠다. 레리나 할머니는 라비올리를 한 그릇 맛있게 비우는 수강생과 손녀를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카넬롤리 파스타
 카넬롤리 파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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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만든 파스타, 카네롤리는 손가락 두 개 정도의 두께, 10cm 길이의 파스타다. 카네롤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반죽을 삶는다. 삶아진 반죽 위 10cm 길이에 알맞게 리코타 치즈와 양송이버섯을 섞은 속을 올렸다. 속을 채운 후 반죽을 두 바퀴 말아 잘랐다. 자른 카네롤리는 토마토소스가 가득 찬 사각형의 오븐 용기에 넣고, 180도에서 20분을 구웠다.

링귀니 파스타
 링귀니 파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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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만든 파스타는 링귀니. 링귀니는 칼국수 면과 비슷한 파스타였다. 칼국수를 만들 때처럼 반죽을 5cm 넓이로 3단 정도 접은 후, 1cm 간격 정도로 썰었다. 자른 링귀니는 칼국수 면과 똑같았다. 삶은 면을 통마늘, 토마토, 양파, 올리브유, 바질, 당근, 셀러리, 소금을 넣은 소스에 버무리고 파르메산 치즈를 뿌려 먹였다. 우리가 직접 소스를 만들지 않고 레리나 할머니가 한 달 전에 만든 병조림 토마토소스를 썼다.

세 가지 파스타가 차려진 부엌에는 뭉근하고 부드러운 토마토소스 향이 퍼졌다. 약간 시큼한 냄새가 감도는 듯 하면서도 달짝지근한 냄새가 식욕을 자극했다. 카네롤리와 링귀니는 씹는 맛을 제외하면 크게 맛이 다르지 않았다. 같은 반죽, 같은 소스를 썼기 때문이었다. 둘 다 쫄깃한 식감이 뛰어났는데 링귀니의 경우는 길쭉한 면발 형태라 톡톡 끊어지는 식감이 독특했다. 퍼지지 않은 쫀득한 면발의 맛과 단순하지만, 감칠맛 나는 토마토소스가 어우러진 완벽한 파스타였다.

수업 내내 어느 이탈리아 가족의 주말 밥상에 초대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열린 창문에서는 10월의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고, 한국의 가을 날씨와 비슷한 파란하늘과 적당히 따듯한 온도의 해가 빛났다.

수업 내내 레리나 할머니는 손녀 치아라, 키아라에게 이탈리아 말로 연신 뭐라고 소리를 지르고, 이제 막 돌이 지난 증손자의 토실토실한 볼에는 연신 뽀뽀를 했다. 치아라는 할머니의 이탈리아어를 영어로 통역하다가 이따금 "윽, 할머니가 하는 사투리 못 알아 듣겠어. 할머니 정말 짜증나"라고 볼멘 소리를 했다. 3대의 소란스러운 모습을 지켜보며 파스타를 만드는 내내 수강생들의 얼굴에는 연신 웃음이 피었다. 수업 시간 동안 수강생들은 와인 3병을 다 비우며 적당히 오른 취기를 즐겼다.

이탈리아 여행 상품 광고의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듯한 시간이었다. 관광객 하나 없는 10세기에 지어진 농촌 마을에 80세 노인이 만든 소박하지만 따뜻한 음식을 먹는 순간이라니. 수강생들과 가족들은 연거푸 마신 와인 덕이었을까 배가 불러서일까, 수업이 끝난 후 다들 볼이 발그레 해진 채 하품을 했다. 이탈리에서의 더없이 완벽한 하루였다.   


태그:#세계일주, #이탈리아, #파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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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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