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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50조 제①항 국회의 회의는 공개한다. 다만,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있거나 의장이 국가의 안전보장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다.
제②항 공개하지 아니한 회의내용의 공표에 관하여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한다.

국회의원이 국민의 대표자이자 대리인이라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국민에게는 자신들의 권한을 위임받아 국민의 대표자로 활동하는 국회의원이 어떠한 말과 행동을 하는지 소상히 알 권리가 있다. 그래야만 국민이 국회의원들의 활동을 감시하고 평가할 수 있다. 감시받지 않는 권력은 썩을 수밖에 없다. 국민의 감시는 국회가 바르게 운영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그렇기에 국회의원들의 활동은 철저히 국민에게 공개되어야 한다. 헌법이 "국회의 회의는 공개한다"고 규정한 이유다.

헌법은 국회 회의를 비공개로 진행할 수 있는 예외사유를 규정하고 있다. 출석의원 과반수가 찬성하거나 의장이 비공개를 결정한다면 회의를 비공개로 진행할 수 있다. 의장의 결정에 의해 회의가 비공개되기 위해서는 국가안보에 따른 필요사유가 충족되어야한다.

하지만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이나 의장의 결정으로 비공개회의가 진행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국회 회의는 공개가 원칙이고 국민에게는 국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회의 회의임에도 정보위원회 회의는 비공개가 원칙이다(국회법 제54조의2 제1항). 정보위원회는 국가정보원(국정원) 소관에 속하는 사항을 다루는 국회에 설치된 위원회다(국회법 제37조 제1항 제15호).

국정원은 국내·외 정보를 총괄하고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 대해서는 수사권까지 가지고 있는 막강한 권력기관이다. 예산 또한 상당한데, 영수증 처리도 필요 없는 특수활동비만 지난 10년간 4조 7천억 원을 넘게 사용했다. 이는 국방부, 경찰청, 법무부, 청와대 등 나머지 모든 기관의 특수활동비를 합한 것에 버금가는 금액이다.

그럼에도 국정원에 대해서는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있다. 정보기관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한다고 해도 국정원의 베일은 너무나도 두텁다. 심지어 국민의 세금을 받아가면서 어디다, 어떻게 쓸 것인지 조차 밝히지 않는다.

모든 국가기관은 세입, 세출예산을 요구할 때 국회에 총액뿐만 아니라 산출내역 등 자세한 예산안을 제출해야한다(국가재정법 제34조). 그러나 국정원은 산출내역과 관련된 모든 서류의 제출을 면제받는다. 단지 예산 총액만 제출하면 그만이다(국정원법 제12조 제2항).

배우자도 알 수 없는 국정원 직원의 월급

그럼에도 국정원에 대해서는 많은 부분이 베일에 쌓여있다. 정보기관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한다고 해도 국정원의 베일은 너무나도 두텁다.
 그럼에도 국정원에 대해서는 많은 부분이 베일에 쌓여있다. 정보기관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한다고 해도 국정원의 베일은 너무나도 두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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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철저한 비밀사항에 대해 "며느리도 모른다"는 표현을 사용하고는 한다. 그런데 실제로 국정원 예산은 며느리, 심지어 배우자도 모른다. 2009년 어느 부부는 이혼소송을 벌이게 되었다. 서로 헤어지자는 것에는 다툼이 없었지만 재산분할이 문제였다. 재산분할을 청구하고자 했지만 오랫동안 같이 살아온 부부였음에도 상대의 정확한 재산규모를 파악할 수 없었다. 상대 배우자가 국정원 직원이었기 때문이다.

배우자는 분할대상 재산규모를 파악하기 위해 국정원에 상대 배우자에게 지급하는 현금급여 및 월초수당 등 정보의 공개를 청구했다. 하지만 국정원으로부터 직원의 급여 등은 비공개 정보이기 때문에 알려줄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배우자는 곧바로 정보비공개결정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국정원의 "현금급여 및 월초수당 등에 관한 정보가 비공개대상정보에 해당한다"며 청구를 기각했다(대법원 2010. 12. 23. 선고 2010두14800 판결). 국정원 직원의 급여는 배우자에게까지도 비밀이라는 것이다.

정확히는 국정원 예산이 절대적 비밀인 것만은 아니다. 배우자에게까지 비밀일지라도 국정원은 국회 정보위원회에게는 예산의 실질심사에 필요한 세부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국정원법 제12조 제4항). 그러나 국회 정보위원회도 대강의 예산을 들여다 볼 수만 있을 뿐 관련 내용을 공개할 수는 없다.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정원 예산심의는 비공개로 진행되고 정보위원회 위원에게는 국정원 예산 내역에 대한 비밀유지 의무가 부여되기 때문이다(동조 제5항). 사실상 국정원은 어떠한 감시와 견제로부터도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것이다.

권력자의 쌈짓돈이 된 국정원 예산

이용주 국민의당 의원이 31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서 박근혜 정부 국정원 특수활동비 불법전용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용주 국민의당 의원이 31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서 박근혜 정부 국정원 특수활동비 불법전용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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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 4년여 동안 40억이 넘는 국정원 예산이 청와대로 흘러들어갔다고 한다. 국정원은 청와대 비서관과 수석들에게 매달 현금을 007가방에 넣어 전달했다. 거액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이재만 전 청와대 비서관은 검찰 조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국정원의 돈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국정원이 대통령에게 돈을 주었다는 것이다. 검찰은 국정원의 돈이 청와대로 흘러들어간 것을 일종의 뇌물로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이뿐만 아니라 국정원은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들이 정부에 유리한 활동을 하도록 자금을 지원해주고 대선과정에서는 여당후보에게 유리한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소위 댓글부대의 활동비도 지원한 것으로 밝혀졌다.

국정원이 정부여당의 정치자금을 대주고 국내정치에 개입한 사건은 비단 박근혜정부에서만 발생한 것은 아니다. 국정원이 아예 정부여당의 정치자금을 대주었던 사건도 있었다. 김영삼 정부 시절 민주자유당과 그 후신인 신한국당이 국가안전기획부(국정원의 전신) 예산 1197억 원을 빼돌려 총선 등에 사용한 이른바 '안풍 사건'이다. 다만 법원은 이 돈들이 국가안전기획부 위장계좌에서 일부 나온 점이 인정되지만, 해당 계좌의 돈이 국가안전기획부 예산이라고 볼 증거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한 국가의 정보기관이 대통령에게 거액을 상납하고 관제대모를 주도하고 댓글부대를 후원하는, 더 나아가 정부여당의 정치자금을 지원하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들이 발생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누구도 국정원을 견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국정원은 두꺼운 베일 뒤에 숨어 사실상 정치공작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국가 정보기관이 활동을 함에 있어 어느 정도 비밀이 보장되어야 할 필요성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밀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기 위해 보장되는 것이다. 국정원이 국가안보와 관련된 국내·외 정보를 수집하는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기 위해 비밀보장을 요구한다면 이에 반대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국내정치에 불법으로 개입하면서 비밀보장을 요구하는 것은 범죄은폐행위에 불가하다.

썩을 수밖에 없었던, 국회에 조차 비밀인 국정원 예산

헌법은 국회 회의는 공개되는 것이 원칙임을 선언하고 있다. 국회 정보위원회 회의라도 공개되지 않을 필요가 인정되는 부분이 있다면 위원의 과반수의 동의를 얻거나 의장의 판단으로 비공개 처리를 하면 된다. 그럼에도 국회 정보위원회 회의는 비공개가 원칙이다. 예외적 공개 사유조차 규정하고 있지 않다. 국회 회의에 비공개원칙이 적용된다는 것 자체가 위헌의 소지를 가지고 있다.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기 때문이다.

국정원이 국내 정치에 직접 개입하여 공작을 벌인 일련의 사건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무소불위의 권력을 부정하게 사용하려 했던 권력자의 불순한 의도에 기한 바가 크다. 하지만 국정원이 어떠한 감시와 견제 수단 없이 불법행위까지도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제도의 문제가 더 클 것이다.

지금과 같이 국정원의 예산과 활동이 철저한 베일 속에 감춰져 있다면 국정원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은 언제든 다시 발생할 것이다. 국정원으로부터 돈을 받은 청와대 인사들에 대한 처벌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국정원이 국민의 감시를 받고 국회 등 다른 기관의 견제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보안 또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국정원의 예산과 활동내역의 비밀을 조장해 주는 것은 정보기관으로서 국익에 충실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기 위한 것이다. 관제대모를 주도하고 인터넷 댓글러들을 운용하고 대통령의 호주머니나 챙겨주라고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다.

덧붙이는 글 | '헌법 쉽게 읽기'가 단행본으로 출판 되었습니다.(헌법 쉽게 읽기 바로가기)
본 기사는 TheL에도 게시되었습니다.



태그:#헌법, #국정원,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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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사무소 사람사이 대표 변호사다. 민변 부천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경기도 의회 의원(부천5, 교육행정위원회)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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