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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과 핵재처리실험저지를 위한 30km연대, 시민기자, 대전 시민들로 구성된 특별취재팀이 한국원자력연구소를 주제로 기획 <스쿨존 옆 핵연구, 이래서 문제다!>를 진행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대전 원자력연구원 1.5km 안에는 약 3만 500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대전 원자력연구원 1.5km 안에는 약 3만 500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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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 네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단다. 우리 집 옆에서 벌어지는 일이야.

"엄마, 무슨 책을 읽고 있어요?"

언젠가 네가 이렇게 물었지. 그때는 제대로 말 못했어. 어려운 말과 숫자로 가득한 책을 어떻게 쉽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으니까. 이제는 말할 수 있어. 그 책은 '파이로프로세싱'과 '소듐냉각고속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놓은 <재처리와 고속로 - 미래 한국의 과제, 핵폐기물을 말한다>(장정욱 지음)였단다.

생소한 단어뿐이지? 그렇다면, 이제부터 엄마가 하는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겠니? 우리 가족의 안전과도 관련된 이야기란다.

위험한 실험 '파이로프로세싱'

사용 후 핵연료와 파이로프로세싱
 사용 후 핵연료와 파이로프로세싱
ⓒ 한국원자력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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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이런 말이 있어. '배보다 배꼽이 크다.' 너도 알지? 대전에 있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이 하려는 '파이로프로세싱'(사용후핵연료 건석 재처리) 실험이 이래. 알고 보니, 이 실험보다 '소듐냉각고속로'가 더 문제였거든. 왜냐고? 이게 위험한 핵시설이거든.

먼저, '파이로프로세싱'이란 핵발전소에서 다 사용한 핵연료를 꺼내 분말로 만든 후 필요한 물질로 분리해 새로운 연료로 만드는 건식 재처리 기술 중 하나야. 쉽게 말해 사용후핵연료를 재활용하는 거지. '파이로프로세싱'은 '원자력계의 4대강 사업'이라고 불리기도 해. 아직 전 세계적으로 상용화되지 않은 핵재처리 기술이지.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이걸 상용화하기 위해 1997년부터 올해까지 정부로부터 연구비 6891억 원을 받아 연구개발 사업을 해왔어. 내년에도 500억 원가량의 예산이 편성돼 있다고 알려졌어. 이렇게 만들어낸 연료를 사용하기 위해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게 있는 데, 이게 '소듐냉각고속로'야. 한마디로 핵발전소란다.

엄마도 처음엔 몰랐어. 파이로프로세싱과 소듐냉각고속로가 위험하다는 말만 들었지 정확히 뭔지, 그래서 지난해부터 세미나·토론회·설명회를 찾아다니고 책을 읽고, 전문가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봤단다. 이렇게 보고 들은 내용을 종합해 크게 네 가지만 이야기할게. 150만 명이 사는 대전 한복판에서 위험한 파이로프로세싱 실험이 진행되면 안 되는 이유란다.

세계적인 원자력 전문가의 경고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와 '핵재처리실험저지30km연대'는 30일 시민 1057명의 이름으로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추진하고 있는 '파이로프로세싱'과 '고속로 연구 사업'에 대한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와 '핵재처리실험저지30km연대'는 30일 시민 1057명의 이름으로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추진하고 있는 '파이로프로세싱'과 '고속로 연구 사업'에 대한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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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방사성물질의 위험성이야. 너처럼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매우 해로운 위험물질이지.  파이로프로세싱 실험을 하면 방사성물질이 나온단다.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이 실험을 한다면, 우리 집은 과연 안전할까?

너도 알지.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우리 집까지 얼마나 가까운지. 아마, 세계에서 가장 빠른 우사인 볼트 아저씨가 뛰어온다면 10분도 걸리지 않을 거야.

이게 다가 아니야. 방사성물질이 누출되는 사고가 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 집은 대전 원자력연구원에서 1.5km 너머에 있어 즉각 사고 소식을 접할 수 없단다. 대전 서구에 있고 원연에서 5km 떨어져 있으니 비상계획구역(1.5km 이내)이 아니거든. 지난 2011년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백색경보가 발령된 상황이 벌어져도 우리는 알 수가 없는 거지.

평상시에도 문제야. 한국원자력연구원 안에는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와 실험 시설이 있단다. 여기선 매일 방사성물질이 배출되고 있지. 원자로가 가동을 멈추거나 실험을 중지하지 않는 한 방사성물질은 계속 나올 거야. 

여기에 파이로프로세싱 실험까지 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숨 쉬는 공기, 마시는 물, 밟고 사는 흙에 지금보다 더 많은 양의 방사성물질이 스며들어 결국, 우리 몸까지 위협하겠지? 엄마는 이게 무섭고 두렵구나.

의학교과서에서도 이렇게 적혀 있단다. 방사성물질의 기준치는 '0'이라고. 농도에 비례해서 피해준다고. 그렇다면, 낮은 농도의 방사성물질이라도 취약한 누군가에겐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근데, 한국원자력연구원은 "기준치 이하"라 괜찮다고 해. 방사성물질을 지속적으로 측정하는 시스템이 있으니 믿어 달라고 하지. 그렇지만 한국원자력연구원이 배기가스 측정기를 조작하고 방사능측정기를 정상적으로 운영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올해 초에 밝혀졌단다. 뉴스에 나온 거 너도 봤지? 이러니 어떻게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측정한 자료만 믿고 살 수 있겠니. 딸과 아들을 키우는 엄마니 안전을 위협하는 일은 막아야지.

둘째는 파이로프로세싱의 기술적 한계란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파이로프로세싱이 '핵폐기물 처분장 면적과 독성을 줄이는 꿈의 기술'이라 홍보하고 있어. 사실은 다르단다. 이 기술을 적용하려면 소듐냉각고속로가 필요하고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저장 시설도 있어야 한단다.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고 사고위험성도 큰 시설이지.

그뿐인가. 사용후핵연료를 자르고 분쇄하는 과정에서 파편이 발생해 화재를 일으킬 위험성이 크단다. 100% 완전 제거가 불가능한 핵분열생성물 가스도 공기 중으로 나오게 되지. 300년이나 별도로 보관해야 하는 방사성폐기물(세슘, 스트론튬)도 발생하는데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처리 계획에 따라 보관하더라도 보관 중 유출된 물질이 지하수를 오염시킨단다. 정말 심각한 일이지.

소듐냉각고속로도 마찬가지야. 소듐이 누출되면 물과 공기를 만나 폭발하거나 불이 나게 된단다. 소듐 누출로 인한 사고는 세계 곳곳에서 빈번하게 일어났어. 그래서 영국과 프랑스, 독일에서는 고속로 운행을 중지했고, 가까운 일본에서도 지난 2016년에 '몬주 고속로'를 폐로했단다.

그래서일까? 지난 6월 한국을 방문한 세계적인 원자력 전문가인 프랭크 본 히펠 미국 프린스턴대 명예교수는 이렇게 말했어.

"다른 모든 선진국이 실패한 두 기술을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개발하려고 한다. 파이로프로세싱은 무의미하고 위험하며, 문제를 개선하기는커녕 문제를 악화시키고 막대한 비용이 들 것이다."

딸아! 기억하렴, 엄마의 이야기를

세 번째는 원자력업계 종사자들의 안전의식 부족이란다. 엄마가 주민설명회를 다니면서 느낀 건, 이들이 투명하게 정보 공개를 하지 않으면서 말로만 무조건 "믿어달라"고 한다는 점이야. 사람이면 누구나 실수가 있을 수 있고, 기계도 오작동이 있을 수 있는데 사고 가능성을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거야. 엄마가 주민설명회서 들은 충격적인 원자력업계 전문가의 말이 있어.

"핵 사고는 비행기 사고가 일어날 확률보다 적으니 안심해도 된다."

아주 극단적인 비유였지. 원전 사고는 단 한 번의 사고가 상상을 초월하는 피해를 줄 수 있는데, 단순한 확률로 비교하더라. 참 놀랍고 걱정스러웠단다. 이게 과연 우리 안전을 좌우하는 사람들이 할 말일까?

모의 훈련도 실망스러웠어. 지켜볼 기회가 있었는데 긴장감 없이 매우 형식적으로 진행됐단다.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방사성물질이 누출되면 공기의 흐름에 따라 빠른 속도로 주변으로 퍼져 나가겠지. 하지만 바람 방향을 고려해 주민들의 탈출경로를 정하거나 적극적으로 사고 소식을 알리는 모습은 없었단다. 실제 사고가 일어났다면 어떨까? 주민들이 사고 소식과 내용을 잘 알고 대응할 수 있을까? 많은 의문이 들었단다.

실제로 옆 나라 일본 도카이촌에서 이런 일이 있었단다. 1999년 재처리공장에서 사고가 발생해 4시간 30분 만에 주민들을 대비시켰어. 결과는 작업자와 소방관, 주민 수백 명이 방사능에 피폭되고 심지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단다.

2013년에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어. 일본 원자력연구개발기구 가속기실험시설에서 방사능이 유출돼 연구원들이 피폭되는 일이 벌어졌거든. 그래서야. 엄마는 모의 훈련이 좀 더 실효성 있게 마련됐으면 좋겠단다.

딸아! 기억하렴. 너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은 또 있었단다. 올해 초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동안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주민설명회에서 했던 말과 달리 숱한 거짓말을 했어. 방사성물질이 액체로는 한 방울도 유출된 적이 없다고 하더니 작업복을 세탁한 물 등 액체방사성폐기물을 무단으로 배출한 사실이 밝혀졌단다. 다른 방사성폐기물도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하더니 무단 배출하거나 소각한 사실도 드러났어.

그래서야. 이젠 엄마는 "안전하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허풍쟁이거나, 안전 불감증에 걸렸거나, 비전문가가 아닐까 자꾸 의심하게 돼. 수많은 사고 사례와 원전비리, 파이로프로세싱과 소듐냉각고속로의 위험성을 안다면, 과연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겠니? 

엄마도 알아. 원자력업계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이 개인의 출세나 조직의 이익, 연구비 획득 등을 위해서 비윤리적으로 일하진 않을 거야. 다만, 안전을 고민하고, 눈과 귀를 열어 진실을 말하려는 원자력업계 종사자들이 더 많아지길 바랄 뿐이야.

끝으로 네 번째, 엄마가 파이로프로세싱 실험을 반대하는 이유는 너희들에게 부담을 떠안겨주고 싶지 않아서야. 일본의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와 경주 지진을 지켜보며 수많은 사람들이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깨달았지.

엄마도 그랬어. 우리나라는 경주·부산·울산·울진·영광의 핵발전소에서 발생한 핵폐기물을  처리대책 없이 쌓아놓고 있단다. 10만 년을 안전하게 보관해야 하는 매우 위험한 폐기물이야. 상황이 이런데 또 다른 핵폐기물을 만들어내고 사고위험도 큰 파이로프로세싱 실험을 해야 할까? 또 다른 핵발전소인 소듐냉각고속로를 건설해야 할까? 그 부담이 모두 너희 미래세대가 짊어져야 할 짐인데. 엄마는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고 봐.

핵발전소 밀집도 '세계 1위'

가동 중인 원전을 6기 이상 보유한 원전 밀집단지가 우리나라에는 4곳이나 존재한다.
 가동 중인 원전을 6기 이상 보유한 원전 밀집단지가 우리나라에는 4곳이나 존재한다.
ⓒ 강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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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네가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온 <핵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구드룬 파우제방 지음)이란 소설책을 엄마도 읽었어. 핵폭발 후에 벌어진 원자병과 참혹한 죽음, 핵사고 현장에서 탈출한 사람과 다른 지역 사람들의 갈등, 기형아 탄생 등이 담겨져 있었지.

<세계 핵사고사>(니시오 바쿠 지음)에 적혀 있던 수백 건의 실제 핵사고를 떠올리니 소설 속 이야기가 단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란 걸 느꼈단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사고 같은 일은 네게 절대로 일어나면 안 되지. 우리나라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면 절대로 안 되지. 핵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하는데 집중하는 게 맞지. 이 일만해도 할 일이 많을 텐데 말이야.

마지막으로 너에게 하고픈 말이 있단다. 방사성폐기물 보관량 1위 부산 고리의 밀집된 핵발전소 문제가 그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잖아. 대전 원자력연구원의 파이로프로세싱 실험 문제도 대전만의 문제가 아니란다. 우리나라 전체가 고민해야 할 일이지.

그래서야. 엄마는 이젠 위험한 에너지가 아니라 안전한 에너지를 사용하는 방향으로 우리나라가 바뀌었으면 좋겠어. 왜냐면, 핵발전소 밀집도 세계 1위인 우리나라는 지금껏 운이 좋았을 뿐이니까.

서명운동 동참하기
핵 재처리 실험에 반대하는 서명운동(☜클릭)에 동참해주세요. 국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핵발전소와 핵시설에 대한 전면적인 안전점검이 실시될 수 있도록 참여를 바랍니다. 이 서명운동은 공론화 과정을 통해 핵폐기물 처리에 대한 올바른 방안 찾고자 핵재처리실험저지 30km 연대에서 실시하고 있습니다.



태그:#한국원자력연구원, #핵발전소, #파이로프로세싱, #소듐냉각고속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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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2017 오마이뉴스 전국 일주 '지역이 희망이다'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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