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대전 서구 괴정동에서 태어나 갈마동에서 주로 성장했던 나는 도솔산과 갑천이 있는 월평공원에 수많은 추억에 깃들어 있는 곳이다. 결혼 이후 그곳을 떠나 상수원 보호구역인 동구 추동에 정착했지만, 부모님은 여전히 도솔산 인근 갈마동에 살고 계신다. 내가 비록 그곳을 떠났다 하더라도 일년이면 대여섯 번은 도솔산에 오르고 가끔 갑천변을 걷기도 한다.

그래서 얼마 전 '도솔산과 아버지'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 것도 있고 지역 사회적경제조직의 대표로서 월평공원 개발에 대한 글을 부탁받았다. 어릴적 그곳에 살았고 생태주의 가치관을 중요시 여기는 나로서는 정서적으로나 이념적으로 개발 반대의 입장에 서게 된다. 그러나 글을 쓰고자 하면 여러 이해관계자를 존중해야 해서 이런 저런 관련 자료를 찾아보게 되었다.

오는 26일 열릴 예정인 대전시 도시공원회위원회에서 월평공원 민간공원조성 특례사업의 '부결'을 촉구하며 갈마동주민대책위가 시청 북문 앞에서 8일째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오는 26일 열릴 예정인 대전시 도시공원회위원회에서 월평공원 민간공원조성 특례사업의 '부결'을 촉구하며 갈마동주민대책위가 시청 북문 앞에서 8일째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관련사진보기


처음으로 알아야 했던 것이 도시공원 일몰제였다. 최근 월평공원을 둘러싼 갈등이 이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도시공원 일몰제는 1999년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도시계획상 공원으로 지정된 부지가 일정 기간 공원으로 개발되지 않을 경우 공원지정 효력을 자동 해제하는 제도다. 현재 일몰제 시한은 2020년 7월로 이를 넘기면 이들 부지의 용도변경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전국의 도시공원 면적은 516㎢로 서울 전체 면적의 80%를 상회하는 엄청난 면적으로 대전의 월평공원 뿐만 아니라 전국 어디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들 부지를 매입할 예산이 지자체에 없다는 것인데, 이 때문에 민간공원 특례사업이 대안으로 제출되었다. 그래서 다시 민간공원 특례사업이 무엇인지 살펴보니 민간자본이 70%를 투자해 공원을 조성하여 기부체납하고 30%의 비공원 시설로 개발하는 것이다.

결국 도시공원 일몰제 기한 이후 난개발을 막고 공원을 보존하자는 동일한 취지 하에 한쪽에서는 3000세대 가량의 아파트 건설을 기조로 하는 월평공원 개발에 반대하고 또 한쪽에서는 개발의 불가피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다 월평공원 인근의 주민들은 자신의 환경권을 침해받고, 교통문제 등이 심각해질 것을 우려하여 반대하는 한편, 토지소유자들은 정당한 재산권 행사를 위해 개발에 찬성하면서 찬반이 맞서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드는 의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첫째 헌법재판소이 결정이 1999년이었는데 그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그리고 지역사회 시민은 이에 대해 어떤 대책이 있었는가? 둘째, 돈이 없는 지자체를 대신하여 정부가 공원을 매입할 수 있는가?, 셋째 민간공원 특례사업으로 부지구입비용을 만들어야 한다면 그것이 꼭 대규모 고층 아파트 단지여야 하는가? 넷째, 시민의 책임과 참여라는 측면에서 일부 상징적이라도 내셔널트러스트와 같은 민간참여운동이 가능한가? 다섯째, 이해관계가 대립하고 갈등이 첨예화하기 이전에 서로가 합의할 수 있는 의사결정 과정이 있었는가? 이와 같은 점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러한 다섯가지 문제에 대하여 각각 답을 하기 위해서는 역부족이다. 그리고 오는 10월 26일이면 3차 도시공원위원회가 최종결정을 하기로 한 시점이다. 그간 심정적 의견만을 가지고 제대로 살펴보고 함께 노력하지 못한 것에 대해 반성한다. 이 글은 세 번째 질문을 중심으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왜 대규모 고층 아파트 단지여야 하나?

도시계획 패러다임은 산업화 시대에 주류를 이루었던 아파트와 도로 등 대규모 건설의 신시가지 개발방식에서 도시재생으로 바뀌고 있다. 특히 기존에 없던 새로운 산업의 유치나 발전에 따른 인구증가가 없는 상태에서 녹지를 훼손하여 대규모 아파트를 짓게 된다면 결국 인접 지역의 어딘가는 갑자기 사람이 사라진 '유령의 마을'이 될 것이 뻔하다.

기왕에 형성된 도심은 공동화되고 생태계의 허파와 생명줄은 지속적으로 파괴되고 있다. 수십 년간 공을 들여 구축한 원도심의 주택, 도로와 교통을 포함한 제반 도시 인프라는 자신의 쓸모가 창창함에도 버려지고 외면당한다. 그런데 또 어딘가에는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미명하에 글로벌 기업의 자재와 상품으로 도배된 새로운 아파트 단지의 건설이 시작된다. 역사적으로 이미 구축해 온 어마어마한 인적, 물적 자원과 에너지는 대책없이 버려진다.

우석훈 박사에 따르면, 1인당 국내총생산(GDP)에서 건설업 매출액이 20%를 상회할 때마다 한국 경제는 위기에 빠졌다고 한다. "투자요건만 보더라도 더 많은 '지대'를 발생시킬 수 있는 부동산 경기가 활성화되면 자본이 산업과 기술개발에 투입되기는 어렵고, 장기투자가 사라진 경제운용이 2∼3년 계속되면 경제는 근본에서부터 위기 국면으로 전환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본이 건전한 산업육성에 투자하기보다는 수익률이 높은 부동산에 투자하기 시작하면서 경제는 투기경제가 된다. 이른바 이러한 카지노 자본주의는 비단 대전지역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렇게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야만이 우리 지역에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파트 공화국, 토건국가라는 말과 더불어 최근에는 '국토의 신자유주의'라는 말도 등장하고 있다.

한국학 연구로 국제학계에서도 명성이 높은 프랑스 지리학자인 발레리 줄레조는 1993년 한국의 거대한 아파트 단지에 큰 충격을 받아 연구에 착수하였고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책을 출간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인구밀도가 높아서 아파트는 불가피하다는 우리의 직관과는 정반대되는 사실인데, 아파트가 고층이라 토지 이용의 효율성이 많이 높아지는 것 같지만, 층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동간 간격도 더 넓게 잡아야 하므로 토지 이용의 효율성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이다. 발레리 줄레조는 책의 말미에 다음과 같이 말을 한다.

"대단지 아파트는 장기적으로 관리와 유지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필연적으로 그 비용을 더 증대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도시 형태의 견고함을 취약하게 만들어 프랑스에서처럼 쇠락의 길로 접어들거나, 한국에서처럼 일상화된 재개발의 결과를 낳는다. 주택이 유행상품처럼 취급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는 문제이지만, 결론적으로 말해 대단지 아파트는 서울을 오래 지속될 수 없는 하루살이 도시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6년 현재 60.1%가 아파트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의 모습은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이렇게 세워진 아파트는 23년을 주기로 해체되고 재건축이 시작된다. 아파트 수명이 프랑스 86년, 미국 103년, 영국 141년인 것과 대조적이다.

대전시가 월평공원에 대규모 아파트를 짓는 계획을 밝히자 대전시민들이 인간떼 잇기 행사로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다.
 대전시가 월평공원에 대규모 아파트를 짓는 계획을 밝히자 대전시민들이 인간떼 잇기 행사로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관련사진보기


대전의 아파트가 계속 증가하는 것에 비해 대전의 인구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행정자치부의 <주민등록 인구 통계 시스템> 집계자료에 따르면, 올 6월 말 대전의 인구는 150만 8137명으로 한 달동안 1450명 감소했다. 2014년 7월 대전의 주민등록인구는 153만 6349명으로 최대였지만, 2014년 8월부터 인구가 감소세로 돌아섰다. 즉 8월에 153만6286명으로 감소한 이후 4년째 꾸준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생산활동 가능 인구인 30~40대가 외지로 빠져나가고 있으며 대졸자 역내 취업률도 5대 광역시 중 가장 낮다. 100명의 신규구직자가 있어도 실제 신규 구인자는 45명에 불가한 실정이다. 이중 39.6%만이 실제 지역에서 일자리를 얻는다.

인구도 줄고, 자녀를 낳아 기르는 젊은 층도 대전이라는 도시를 빠져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월평공원에 3000세대 가까운 아파트단지를 조성한다면 이미 대전 어딘가에 살고 있던 3000세대의 사람들이 살던 곳을 비어 있게 되거나, 부동산 투기의 대상이 될 것이다. 또한 월평공원 인근에 이미 들어선 아파트 단지의 사람들은 그곳에 살기로 결정할 때 전제조건이었던 환경권 침해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분법 강요가 아닌 대안은 없을까

이와 같은 대전이라는 도지 전체를 보며, 월평공원을 바라보며 도시계획의 패러다임을 재정립함과 동시에 일단 시급한 결정을 앞두고 당장의 이해관계를 살펴보고 최소한의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까? 주요 이해관계에는 자연생태적 가치의 측면, 기존 인근 주민의 환경권 보장의 측면, 토지소유자의 재산권 보장의 측면이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목원대 도시건축공학과 최정우 교수의 제안이 눈에 들어온다.

"해당 사업부지의 50% 가까이가 국공유지이거나 동·식물 보호구역, 문화재보호구역이다. 어차피 공원지정이 해제되어도 개발이 불가능한 지역을 사업부지에 포함시키는 것은 비합리적"이라고 지적했다. "교통문제는 두말할 것도 없다. 이미 이 지역의 교통은 포화상태"라면서 "그런데 어떻게 추가로 3000세대의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설 수 있겠는가. 또한 편도 4차선인 동서대로의 1차로는 '동서BRT'로 사용될 계획이다. 그 어떤 기술적 방법으로 이 교통난을 해소할 수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갈마지구는 13개 민간공원조성 특례사업 부지 중에서도 생태적으로나 도시계획적으로나 경관적으로 가장 중요하고 시민들의 관심이 가장 큰 지역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시범사업으로 이 지역을 우선 개발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출처: <오마이뉴스> 4월 12일 장재완 기자, <대전시의회, '월평공원 민간특례사업' 현장조사 나서> 중에서)

이러한 문제의식을 토대로 최정우 교수는 대안으로 도시자연구역으로 지정하고 토지소유자들에게 임대료를 지불하거나, 설령 민간특례사업을 하더라도 대규모 아파트 건설이 아닌 전원주택 단지나 단독주택 등 낮은 밀도로 추진되는 게 옳다고 하였다.

도시계획에 대한 기본적인 관점을 갖고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여 합의점을 찾기 위해서는 대전시의 역할이 중대하다. 시민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갈등을 조정하고 중재하여야 할 대전시가 한쪽 입장에 서서 결정을 짓고 일을 추진하다 보니 이제 민간 사이에도 불신과 갈등이 증폭되어 이분법을 강요당하고 있다. 어떻게 결정하더라도 이미 상처와 갈등은 깊어진 채 결과를 승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할 지역사회는 이 과정에서 찢겨진 것이다.

월평공원 인근 무민들이 대전시의 아파트 건설 계획에 반대하는 시민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월평공원 인근 무민들이 대전시의 아파트 건설 계획에 반대하는 시민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 주민대책위

관련사진보기


한국사회는 이제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토건기업사회의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생존논리에서 벗어나서 시민이 주인이 되는 돌봄과 우정의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 또 경쟁과 성장중심의 경제발전 패러다임을 벗어나 연대와 협력, 지속 가능성과 시민의 행복에 기반한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돈벌이 가치에 생명의 가치, 공동체의 가치를 종속시킨 사회에 미래는 없다. 당장의 이해득실을 떠나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면서도 중용의 첫장에서 말하듯 천명(天命), 하늘의 명령, 모두의 자리를 염두해두고 판단과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미래세대는 오늘날 월평공원에 대해 엄중히 물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김성훈 시민기자는 사회적경제 대전플랜 상임대표입니다.



태그:#월평공원, #갑천, #도시공원일몰제, #아파트공화국, #도시계획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이 기사는 연재 2017 오마이뉴스 전국 일주 '지역이 희망이다'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