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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 3년이 지나고 어느 정도의 종잣돈이 모였을 때, 다시 또 이사를 해야 했다. 가진 돈에 맞는 전셋집을 구할 것이냐, 대출을 받아 내 집 마련을 할 것이냐. 찰나의 고민은 있었지만, 우리는 주저없이 전세를 택했다. 신용카드를 없앤 후 자유를 맛 본 우리 부부는, 빚에 끌려다니는 삶을 살지 않겠다고 수없이 다짐한 바 있기에 그리 어려운 결정도 아니었다.

좋은 전셋집을 찾기 위해 열심히 발품을 팔았다. 전세 물량이 없어도 너무 없다 말이 많지만, 열심히 돌아다니면 제법 선택의 폭도 넓어진다. 부동산도 여러 군데를 돌았다. 내가 만난 공인중개사분들은 연령대도 다르고, 성향도 달랐지만, 토씨만 달리하며 내게 공통적으로 건넨 말이 있었다.

"그 돈이 있는데 전세를 구한다고요? 집을 안 사고?"

물론, 돈은 그리 많지 않았다. 대출을 당연한 전제로 하는 이야기. 딱 한마디만 조심스럽게 하시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어떤 중개사 분은 대놓고 말씀만 안하셨다 뿐, 거의 '이 바보 같은 양반아, 세상 물정 아무것도 모르고 전세를 구한다니, 답답한 소릴 하고 있네' 하는 투로 일장연설을 늘어놓으신 분도 있었다.

TV광고, 거리에 흩뿌려지는 명함들,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스마트폰과 홈쇼핑의 무이자 할부까지, 이렇게 빚 권하는 사회가 또 없다더니, 정말 그렇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는 나날이었다. 어찌됐든 공인중개사분들은 금전적 이해관계가 걸려 있으니, 당연히 그러실 수도 있다, 하고 넘기려 했는데, 산 넘어 산. 이게 웬일인가. 친정 엄마의 강요가 퍼부어졌다.

"넌 대체 왜 그러니? 세상 천지에 빚 없이 집 사는 사람이 어디 있다니? 겨우 돈을 모았는데, 전세가 웬말이야!"

우리 부부가 선택한 삶을 살기 위해 나는 엄마의 말을 거역했고, 마음에 드는 전셋집을 찾아 잘 살고 있다. 내가 그 일로 엄마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는 것을 안 것은 겨우 지난 추석 때다.

엄마는 지인들 모두가 집을 사서 더 좋은 집으로 옮겨가며 떵떵 거리며 잘 살고 있는데, 당신 딸은 그렇지 못한다는 안타까움과 동시에, 자신이 돈을 보태주지 못하니 딸이 엄마를 무시한 것이라는 비탄에 빠져 계셨다. 아, 이걸 어쩌란 말인가. 빚을 택하지 않은 나는 바보 취급도 모자라 이제는 죄인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

앞으로 5년, 빚없는 사람만이 살아남는다
 앞으로 5년, 빚없는 사람만이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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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정하고 확증 편향을 기대하며 이 책을 골라 들었음을 인정해야겠다. <앞으로 5년, 빚 없는 사람만이 살아남는다>. 어줍잖게 전망하길, 부동산 경기가 그렇게 낙관적일 것이라 생각지도 않지만, 더 솔직한 심정은 내 성향이 빚 앞에 대범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언젠가 피치 못하게 빚을 지는 일이 올지도 모르나, 적어도 선택의 여지가 있는 상황에서는 그걸 택하지 않겠다. 답은 어차피 정해져 있으니, 엄마를 설득할 언어가 필요해서 펼친 책이 바로 이것이었다.

두 명의 공저자(아래 저자) 모두 한때 빚 때문에 인생을 끝낼까 생각했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 적 있다고 술회하고 있다. 그 경험들과 오랜 시간 재무상담을 해온 결과를 토대로, 처음부터 빚지지 않는 가계 재무구조를 만들고, 이미 빚을 졌다면 어떻게 탈출해야 하는지 알려주기 위해 책을 썼다고 한다. 저자들이 주시한 현 상황은 이렇다.

"우리 사회가 '빚 지고 사는 게 정상'인 것처럼 빚을 적극적으로 권하고 있다는 사실과 이로 인해 '습관적으로 빚에 노출된 삶'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책에 언급된 바, 2015년 8월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는, '빚내서 집사라'는 식으로 가계 부채를 급증시킨 것에 대한 책임을 추궁당하자,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고, 며칠 뒤, "개인의 경제 행위는 개인이 궁극적으로 책임지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가 취임하자마자 LTV(Loan To Value주택담보대출비율)와 DTI(Debt To Income총부채상환비율) 규제를 완화한 것은 여기서 중요하지 않은 듯 보인다, 결국, 정부가 무슨 정책을 냈건 빚진 것은 개인의 선택이요, 책임이라는 것이다.

국가 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정부는 소비 심리를 진작시켜야 했고, 국민이 소비를 늘릴 여력이 없으니 빚을 내기 쉽게 만들었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그러나, 유혹에 이끌려 빚에 허덕이는 사람들 앞에서, 빚 권하던 사람들이 태도를 바꾼 것이다. 당신이 부채에 신음하는 것은 "개인의 책임", "도덕적 해이"라고.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은 빚을 갚을 능력이 되는지 제대로 심사하지 않고 돈을 빌려주면 '채권자의 도덕적 해이'로 간주해서 책임을 묻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일방적으로 빚진 사람의 책임만을 따진다. 이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빚잔치판의 민낯이다."

고로, 빚 권하는 세상 속에서도 그 유혹에 빠지지 않을 수 있도록, 혹시 이미 빚의 굴레에서 허덕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쉽게 빠져 나올 방법을 알려줄 수 있도록, 책은 구체적인 사례들과 전망들을 제시하며 풀어나가고 있다.

저자는 어릴 때부터 신용카드와 할부에 일찍부터 익숙해진 사람들은 빚에 둔감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대출이자가 낮으면 쉽게 생각하기도 한다. 주택담보대출은 10년에서 길면 30년까지 가는 장기적 일인데, 그 긴 시간의 현금 흐름에 대한 계획 없이 거액의 대출을 받는 사람이 많다고.

자신과 가족의 라이프 사이클을 장기적인 안목으로 바라보지 않고 덜컥 빚을 졌다간, 부채의 폭탄을 키우는 셈이므로, 꼭 대출을 받아야 할 때는 수입이 없어질 시기까지 멀리 내다보고, 국제적 환경도 고려할 것을 권한다.

햇살론, 미소금융, 바꿔드림론 등 정부가 내놓는 정책금융도 빚은 결국 빚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덧붙인다. 고리의 대출로 고통받고 있을 때는 정부가 내놓은 저리의 대출 상품으로 갈아타는 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으나, 줄어든 대출 이자를 소비로 돌리는 경우가 많아 문제가 될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신용카드와 할부에 일찍부터 익숙해진 사람들은 빚에 둔감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어릴 때부터 신용카드와 할부에 일찍부터 익숙해진 사람들은 빚에 둔감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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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주지하듯, 생활 구석구석은 이미 대부업체 광고로 뒤덮여 있다. 대부업체들의 30일 무이자 행사는 고객의 신용 등급을 떨어뜨려 은행 대출을 이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유명한 술수이다.

포인트나 무이자 할부, 청구할인을 이용하는 것도 헛똑똑이 소비가 될 가망성이 높다고 한다. 결국 불필요한 소비를 조장하고, 나도 모르는 빚을 지게 만든다고. 기업은 결코 공짜로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거다.

"세상에 '돈 버는 소비'는 없다."
"소비자심리학은 그 사실을 어떻게 해서든 잊게 만들려고 갖가지 방법을 동원한다. 합리적인 소비, 똑똑한 소비는 불필요한 소비 그 자체를 최소화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저자는 돈이 없으면 빚을 내서라도 갖고 싶은 것을 가져야 하는 문화를 경계하고,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한다. 결혼식부터 시작해서 혼수, 집 등등까지 남의 눈을 신경쓰느라 빚으로 새출발을 시작하는 한국의 체면치레 문화는 서민들을 빚의 굴레로 몰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저자가 진단하는 경제 상황은 결코 밝지 않다.

저자는 이미 "부채 폭탄 돌리기"는 시작되었다고 진단한다. 대출에 허덕이던 저소득층의 연체율이 급증하는 등 가계부채에 이상 신호가 생기면, 금융기관은 부실을 막기 위해 신규 대출을 엄격히 하거나 금리를 더 올리고, 혹은 대출금 회수에 열을 올리기 시작한다. 원금은커녕 이자를 갚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치던 가계는 기존 대출의 만기 연장이 되지 않으면 초토화될 수 있다. 결국 가계는 물론 금융권도, 국가 경제 전체의 기반이 뒤흔들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2016년 6월 말 국내 가계 부채 총액은 1257조 원으로 지난 1년간 11.1퍼센트 증가한 데 반해, 같은 기간 소득증가율은 1퍼센트 내외였다고 한다. 부채가 10배 더 빠르게 증가한 것이다. 저자는 앞으로 경기와 소득이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는 하기 힘들다고 진단하고 있다.
부채가 늘어날수록 경기를 침체시키는 것이 너무도 명확하기 때문에, 정부도 어떻게든 가계 부채를 줄이는 수밖에 없고, 이는 전술한 악순환의 시작이 될 가망성이 높다고 한다.

그렇다면 경제 전망마저 밝지 않은 이 빚 권하는 이 사회 속에서, 저자가 말하는 안전한 노후 준비를 위한 1순위 준비물은 무엇일까. 책은 의외의 것을 지목한다.

"더 자극적이고, 뭔가 가져야만 다른 사람과 차별되는 것처럼 보이는 현실 속에서 가족들과 함께 작은 것들을 행해보는 것이 우리의 미래에 희망을 가져다줄 것이라 생각한다."

없는 것을 빚까지 내 가지며 즐거움을 느끼기 보다, 삶의 원천이 되는 가족들과 함께 누리는 기쁨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 개인적인 숙제를 끌어안고 이 책을 펼쳤음을 전술한 바 있다. 빚내서라도 집을 사야 한다는 엄마를 설득할 언어를 찾는 것. 책을 읽으며, 결국 설득은 포기했다. 책에 설득당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책이 꼼꼼히 짚어내는 과거와 현재의 정반대인 경제 상황을 이해하게 됐고, 그로 인한 엄마와 나의 다른 관점 역시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의 지난 일상을 확인하려면 쓰지도 않는 다이어리를 들춰보는 것보다 카드명세서를 확인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상황이다. 오늘부터라도, 돈으로 사지 않는 즐거움을 찾아볼 일이다. 부동산 얘기 따위 하지 않고, 큰 돈 쓰지 않으며, 엄마와 다정한 대화를 나눠 보는 것. 이것이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한다.

빚 없는 자도, 빚 있는 자도, 이 험한 세상에서 모두 함께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책은 다소 자극적인 제목을 취하고 있지만, 저자들의 바람도 이것이 아니었는지 예상해 본다. 타인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앞으로 5년, 빚 없는 사람만이 살아남는다 - 돈 걱정 없는 노후를 위해 지금 당장 알아야 할 부채 관리 전략

백정선.김의수 지음, 비즈니스북스(2017)


태그:#앞으로 5년, 빚 없는 사람만이 살아남는다, #비즈니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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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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