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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을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갑자기 생긴 한 달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을 하다가 평소에 가장 해보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여행을 마음껏 하기로 했습니다. 원래 저는 계획을 하고 여행을 가는 편이 아니라 그냥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는 생각 외에는 하지 않았습니다.

주변에 저를 잘 아는 몇 명의 지인들에게 여행을 가려고 하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나름 여행을 많이 했다는 후배가 추천해준 곳들이 있었습니다. 저에게 여행지를 추천해준 후배는 빌딩이 우거진 숲에 살다 보니 평소에 조용한 어촌마을을 가보고 싶다는 제 말을 흘려듣지 않았는지 거의 어촌마을을 위주로 추천을 해주었습니다.

'그냥 가까운 지역으로 2, 3일 정도 다녀와야지'라는 생각을 갖고 있던 제가 멀고 먼 땅끝마을(전라남도 해남)로 달려갔던 이유는 여행할 지역을 추천해 주면서 후배가 덧붙인 말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추천한 지역들은 관광지로 개발된 곳들이 아니라 볼거리도 없고 재미가 별로 없을 텐데… 그래서 형한테 더 잘 어울릴만한 곳일 거야."

더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짐을 챙길 필요도 없었고요. 그냥 편하게 입을 옷 몇 벌을 차 뒤에 대충 던져두고 평소에 자주 다니던 카페에 들려서 시원한 커피를 한 잔 사서 무작정 땅끝마을로 출발했습니다.

땅끝마을로 가는 어느 길목에서
▲ 희망의 시작, 땅끝마을 땅끝마을로 가는 어느 길목에서
ⓒ 신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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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하지 않아서 만날 수 있던 사람들

무작정 커피 한 잔을 들고 떠난 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먼 길을 선택했다는 생각이 든 건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고속도로를 달리던 어느 순간이었습니다. 네비게이션에서 '땅끝전망대'라는 곳을 선택하고 몇 시간을 달리고 또 달려서 '땅끝전망대'에 오후 11시가 훌쩍 넘은 시간에 도착했습니다. 서울에서 오후 4시쯤 출발했으니 7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도착을 했는데 땅끝전망대는커녕 땅끝이라는 표지석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캄캄한 밤에 도착한 것도 이유였지만 땅끝전망대를 관람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땅끝에서의 야경은 아쉽지만 볼 수 없었습니다.

밤에 잠깐 잠을 자고 아침 일찍 이동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숙소는 잠만 잘 수 있는 곳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전국 모텔의 수준을 잘 알고 있던 후배(참고로 후배의 직업은 목사입니다)의 도움으로 호텔 수준의 좋은 방을 찾았고, 자정이 넘은 시간에 도착한 숙소에서 만난 친절한 사장님의 설명은 다음 날 여행 일정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땅끝전망대를 올라갔지만 부슬부슬 내리는 비 때문에 땅끝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땅끝표지석은 전망대에 없었습니다. 전망대의 안내를 하는 분에게 물어봤더니 땅끝표지석은 전망대가 아니라 선착장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내리는 비를 흠뻑 맞고 선착장으로 내려와서 땅끝표지석을 보면서 한참을 서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최남단 땅끝마을에서
▲ 한반도 최남단, 땅끝 대한민국 최남단 땅끝마을에서
ⓒ 신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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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표지석을 봤으니 어디로 가기는 해야 하는데 해남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었기에 할 수 없이 몇 년 동안 연락을 못 하던 선배(해남 거주)에게 문자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선배가 추천을 해준 곳은 미황사의 도솔암이라는 곳이었습니다.

도솔암은 좁은 산길을 30여 분 이상 걸어가야 겨우 만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비가 내려서 미끄러워진 좁은 산길을 30분 이상 걷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겨우 찾아간 도솔암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화려하지도 않았고 크기도 2, 3명이 겨우 들어갈 만큼 작았고 마당이라고 해봐야 몇 명이 겨우 서 있을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땅끝에서 만나는 하늘끝에 위치한 '도솔암' 가는 길
▲ 도솔암 가는 길 땅끝에서 만나는 하늘끝에 위치한 '도솔암'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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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황사의 12번째 암자인 도솔암은 땅끝마을 해남에 있는 달마산의 가장 높은 끝자락에 있었습니다. '땅끝에서 만나는 하늘 끝'이라는 설명을 가진 도솔암은 천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었습니다. 중간에 보수를 하는 과정을 거치기는 했지만 도솔암은 천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깊은 산속에 있는 아주 작은 암자였지만 도솔암이 가진 역사의 위대함은 감히 제가 마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땅끝에서 만나는 하늘끝에 위치한 '도솔암'
▲ 미황사 도솔암 땅끝에서 만나는 하늘끝에 위치한 '도솔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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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마을 해남을 뒤로하고 제가 다음으로 선택한 여행지는 보성이었습니다. 몇 해 전에 보성 녹차 밭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꼭 한번은 가봐야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렇게 무작정 떠나온 여행길에 가보게 되었습니다.

보성으로 가면서 저는 보성에 가면 어디를 가든지 그동안 TV에서 보던 녹차 밭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네비게이션에 '보성녹차밭'을 입력하고 무작정 출발을 했습니다. 그런데 도착을 해보니 녹차 밭이 아니라 녹차 밭을 운영하고 있는 한 다원의 주차장이었습니다. 주차를 안내하는 분에게 물어봤더니 TV에서 보던 녹차 밭을 보려면 어디를 가든 다원을 통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1939년에 개원한 국내 최대의 다원인 '대한다원'
▲ 대한다원 녹차밭 1939년에 개원한 국내 최대의 다원인 '대한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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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에 개원한 국내 최대의 다원인 '대한다원'
▲ 대한다원 녹차밭 1939년에 개원한 국내 최대의 다원인 '대한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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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에 개원한 국내 최대의 다원인 '대한다원'
▲ 대한다원 녹차밭 1939년에 개원한 국내 최대의 다원인 '대한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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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의 입구를 지나서 본격적으로 녹차밭을 둘러보기 전에 녹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에서 우전으로 우려낸 녹차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에서 분명히 어디에선가 본 것 같은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닐 거야'라고 생각을 하고 다시 보는데 분명히 저와 아주 친한 후배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름을 불렀는데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이름을 부르는 순간 후배도 저를 알아보고는 서로 너무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보성에서 우연하게 만난 후배가 더 반가웠던 건 사실 평소에 너무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는데 서로가 새롭게 시작한 일 때문에 바빠서 6개월 이상 얼굴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후배와 저는 서울에 살고 있었고 서로가 살고 있는 집은 차로 불과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었습니다. 그렇게 친한 후배를 서울에서 무려 400km 떨어진 보성에서 그것도 보성에 있는 수많은 다원중에서 만나다니 보통 인연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유가 없이 달려온 삶을 꾸짖어준 남해일주

반가웠던 후배와의 만남을 뒤로 하고 제가 다음으로 찾아간 여행지는 남해였습니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계획을 하지 않고 왔기 때문에 어디로 가야하는지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다만 여행을 떠나오기 전에 유일하게 남해에 있다고 알고 있는 독일마을이 있었기 때문에 그곳을 가보기로 하고 찾아갔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의 아픔을 품고 있는 '남해 독일마을'
▲ 남해 '독일마을' 대한민국 역사의 아픔을 품고 있는 '남해 독일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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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역사의 아픔을 품고 있는 '남해 독일마을'
▲ 남해의 '독일마을' 대한민국 역사의 아픔을 품고 있는 '남해 독일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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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찾아간 남해에 있는 독일마을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을 보는 것으로는 추천할만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서울에 있는 사람들이 독일마을의 겉모습을 보시기 위해서 남해를 가는 것은 더욱 추천하기 어렵습니다. 혹시 남해의 독일마을을 찾아가실 분들이 있다면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남해의 독일마을이 지닌 대한민국 아픈 역사를 볼 수 있는 전시관을 꼭 들려보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바다와 맞닿은 남해의 해안도로
▲ 남해의 해안도로 바다와 맞닿은 남해의 해안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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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맞닿은 남해의 해안도로
▲ 남해의 해안도로 바다와 맞닿은 남해의 해안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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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마을에서 나오면서 받은 지도를 한 장 들고 남해의 가장 바깥쪽으로 놓여진 해안도로를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길고 긴 연휴가 끝난 시기이기도 했고 평일이라서 그런지 남해의 어촌마을은 한적하고 고즈넉한 모습이었습니다. 해안도로를 달리다가 어디인지 모르는 곳에 내려서 바라본 바다는 그동안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이 달려온 저의 삶을 꾸짖는 것만 같았습니다.

담장너머로 은빛바다가 보이는 남해의 'OO중학교'
▲ 남해에 위치한 'OO중학교' 담장너머로 은빛바다가 보이는 남해의 'OO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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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너머로 은빛바다가 보이는 남해의 'OO중학교'
▲ 남해에 위치한 'OO중학교' 담장너머로 은빛바다가 보이는 남해의 'OO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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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지 모르는 남해의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는 한 중학교는 현실에 있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습니다. 학교의 건물 뒤로는 숲이 우거진 산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나무가 심겨진 학교의 담장너머로는 은빛으로 반짝이는 남해바다가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남해에서 가장 빼어난 풍경을 자랑하는 해수욕장
▲ 남해 '상주은모래비치' 남해에서 가장 빼어난 풍경을 자랑하는 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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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도로를 달리다가 작은 언덕에서 보이는 '상주은모래비치'는 남해에서 가장 뛰어난 풍경을 자랑하는 곳입니다. 부채꼴 모양의 백사장과 바다를 호수 모양으로 감싸고 있는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기에 충분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해의 해안도로를 달리다가 만난 작은 어촌마을
▲ 남해의 어촌마을 남해의 해안도로를 달리다가 만난 작은 어촌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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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 해안도로를 달리다가 만난 '등대'
▲ 바다의 길잡이 '등대' 남해의 해안도로를 달리다가 만난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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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남해로 여행을 가려고 계획하는 분들이 있다면 남해와 가장 가깝게 있는 해안도로를 천천히 달리면서 그동안 돌아보지 못하고 달려온 삶을 천천히 돌아보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이번 여행은 제가 그동안 경험했던 어떤 여행보다 더 큰 기쁨과 행복, 깨달음을 주기에 충분한 여행이었습니다. 잘 꾸며진 관광지를 간 것도 아니었고, 맛있다고 이름난 식당에서 비싼 음식을 먹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작은 마을에서 느꼈던 고즈넉함은 그동안 제 생각과 마음에 자리 잡고 있던 찌든 때를 씻어내기에 충분했습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여행을 떠나기 전에 후배가 해주었던 말을 생각하면서 이번 여행이 재미가 없어서 저한테 더 잘 어울릴 거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재미가 없어서 더 좋았던 이번 여행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추억으로 제 삶에 남겨질 것입니다.



태그:#남도여행, #해남, #남해, #보성,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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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오마이뉴스를 통해 좋은 기사를 많이 접했고,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영역을 찾고자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문화, 여행, 음식...등과 관련된 정보를 많이 알고 있기에 가능하면 관련분야에 대한 기사를 작성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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