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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일정한 거주공간이 있는 분이었어요. 반은 무료진료소를 처음 이용하시는 분, 반은 무료진료소를 자주 이용하시는 분이신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술 담배를 하시는 분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무료 진료소에서 다양한 금연금주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면 참여 하시겠냐고 물어봤지만, 대부분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시네요... 하하..."  

"호소하는 질환들은 치질, 무좀, 고혈압, 오십견, 감기, 대상포진, 당뇨 등 다양했습니다. 만성질환을 가지신 분이 많네요!"

"무료 진료소를 이용하시는 분들은 주로 '재정적 지원' '의료지원(주로 약)' '일자리' '거주공간'을 원하시고 계십니다!"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의대생의 모습.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의대생의 모습.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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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9일엔 유난히 진료소가 북적였다. 이날 의대생들이 쪽방 방문에 이어 무료 진료소를 찾아 설문조사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부산 인도주의 실천의사 협의회는 노숙인에게 최소한의 의료를 보장하고자 사랑 그루터기 진료소를 운영 중이다. 아주 작은 사무실이지만, 이용하시는 분들이 상당히 많다. 심지어, 끼니를 걸러 가면서 진료소 테이블에 몇 시간을 앉아 있는 분들도 있다.

이용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의료보험이 상실되어 약을 구하기 어렵다. 의료급여 신청을 하면 되지만, 의료급여 취득 조건이 매우 까다롭기도 하고, 혹시나 부당한 일을 당하거나, 많은 돈을 내야 할까봐 신청하지 않기도 한다. 그래서, 노숙인과 주거취약계층이 무료진료소를 자주 이용할 수밖에 없다.

설문조사 이후, 진료소를 지키는 복지사분과 간단하게 이야기를 진행하고 진료소내부를 찬찬히 알아갔다. 복지사분은 설문조사부터 간담회 진행까지 환한 미소로 응해주셨다.

- 안녕하세요 조미경 복지사님. 처음 설립할 때부터 노숙인 무료 진료소에서 꾸준히 근무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일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
"일단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어요. 어둠속에 있는 곳을 이렇게 직접 찾아와 줘서 고마워요. 여러분의 작은 행동으로, 진료소가 좀 더 나아져야 한다는 공감대를 많이 형성해 주셨음 해요.

저는 원래 일본어 관광통역을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 와중에 지내면서 많은 시련들이 제 인생에 들이닥쳤습니다. 추스르고 있는 도중, 불현 듯 사회복지사를 하는 것이 어떨까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이렇게 노숙자 분들을 위한 진료소를 지키고 있네요.

사랑그루터기 진료소는 2003년에 설립되었어요. 지금은 지원사업으로 인해 골목이 많이 밝아졌지만, 옛날에는 진료소 밖 골목은 참 무서웠어요. 길도 어두웠고, 주변이 슬럼화가 많이 진행된 상태였죠. 그래서, 초기에는 약사 선생님이 계셔서 함께 손잡고 퇴근하고 그랬던 추억도 있습니다. 그때는 참 무서운줄 모르고 젊은 패기로 근무도 하고 열심히 이것저것 해보려고 했던 것 같네요."
무료 진료소에서 근무중인 조미경 복지사님과 무료 진료를 진행하고 계시는 의사 선생님.
 무료 진료소에서 근무중인 조미경 복지사님과 무료 진료를 진행하고 계시는 의사 선생님.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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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그렇군요. 복지사 님의 꾸준한 모습을 노숙인 분들이 많이 보셔서, 여러모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합니다. 혹시, 근무를 하시면서 기억나시는 분들이 계시는지요?
"기억에 남는 분이 있다면, 한분이 있네요. 작년에 25세의 나이로 진료소에 몇 번 온 청년이 있었어요. 혼자 고시텔에 있으면서 범죄드라마를 보다가 돌연 모방범죄를 저질러 두 번정도 교도소 생활을 했던 분입니다. 기초수급자였지만, 마음이 너무나 병들어 있었는지 진료소에 올 때 수염과 머리 그리고 손톱이 전혀 정리되지 않은 모습이었어요. 

한 번은 그분을 걱정하여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더니, '왜 내가 저러한 잔소리를 들어야 하지'라고 받아 들이신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이분들에게 내 입장과 내 생각을 이야기 하는 것이 '강요'나 '압박'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한 저 스스로가 반성이 되는 순간이었어요."

- 복지사님이 현장에서 느끼시는 것들을 고려해 보았을 때 , 노숙인과 취약계층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병원에서 퇴원하신 분들 중 대개는 요양이나, 휴식이 필요하신 분이 계셔요. 거리에서 문제가 되어 치료를 하셨던 분이 다시 거리로 내몰리는 상황도 많고요. 노숙인 종합지원센터에서 운영되고 있는 응급 잠자리의 경우 새벽 6시부터 저녁까지 이용자를 밖으로 보내는 것이 원칙이라 쉴 수 있는 곳이 못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또 너무 많은 지원을 해준다면 이분들이 길거리 생활을 계속 하실 테니까 참 여러모로 복잡한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아픈 이들을 위해서 쉴 수 있는 공간에 대해 계속 고민해 나가야 할 것 같아요. 센터를 좀더 늘린다던지, 직원을 좀더 뽑든지 해야 하지 않을까요." 

- 마지막으로, 진료소가 지어지고 꽤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만큼, 바뀐 것이나 바뀌어야 하는 것들이 있으리라고 생각되는데요. 한 번 이야기 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보시다시피, 크게 변한 건 없어요. 만들어진 지 10년 이상 되어가지만, 엑스레이 기구나 초음파기구, 멸균기구 하나 없는 것이 안타까워요. 개선되어야 할 부분과 요청사항을 관할 시에 꾸준히 보고 드리는데 열정만으로는 되는 것이 또 아닌가 봐요.

과거에 상주하는 공중보건의사가 할당되어 꾸준히 진료가 진행되었지만, 이제는 그런 것이 없어서 전적으로 봉사하시는 선생님들에게 의지하고 있어요. 제 욕심일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더 체계적으로 진료가 이루어질 수 있는 사무실과 도와주실 수 있는 많은 의사선생님이 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간담회를 준비하고 계시는 조미경 복지사님.
 간담회를 준비하고 계시는 조미경 복지사님.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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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노숙인 및 취약계층에 대한 의료지원은 관리의 편의성만을 생각한 것들이 많다. 그렇다 보니, 제도의 허점 사이에 방치된 이들은 악순환의 터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노숙인을 위한 '의료' 접근성은 그리 양호하지 않다. 부산에서 노숙인이 편하게 오고갈 수 있는 무료 진료소는 단 한 곳이지만, 그조차도 없는 지역이 허다하다. 아쉽게도, 무료 진료소에서는 기본 의원보다 못한 '문진' 정도에서 진료가 끝이 난다.

설문조사를 진행하면서 들었던 과거의 파란만장한 그들의 삶. 그리고 다시 지금을 살아가려고 하는 이들의 삶 사이에서 우리는  '아프지 마셔요'라는 이야기밖에 하지 못하는 지금이 아쉽고, 또 아쉽다.

덧붙이는 글 | 9/29일 의대생들과 함께 쪽방 상담소에 이어 무료 진료소를 방문했습니다. 현재 무료진료소는 매주 금요일에 운영되며, 복지사님이 상시 근무하고 계십니다. 부산대 약대 동아리 에서 복약지도 및 처방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태그:#의대생, #노숙인, #무료진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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