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15일, 승객과 승무원 155명을 태운 US에어웨이스 1549편 비행기 한 대가 뉴욕의 라구아디아 공항을 출발한다. 이 비행기는 이륙 직후 이른바 버드스트라이크(Bird strike),즉 새 떼와의 충돌로 엔진에 불이 붙으면서 동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뉴욕 도심의 한 가운데 센트럴 파크의 인근 허드슨 강에 불시착하게 된다.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은 당시의 사고를 이렇게 스크린을 통해 재현하고 있다. 2016년 국내 개봉 당시 영화의 홍보문구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오늘은 아무도 죽지 않는다." 이 사고는 'Miracle on the hudson', 즉 허드슨 강의 기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사고가 난 그 날, 과연 어떤 일이 있었을까?

그들은 왜 그토록 무책임했는가?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의 한 장면. 이 영화를 보고 세월호가 떠오르는 건 나뿐일까.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의 한 장면. 이 영화를 보고 세월호가 떠오르는 건 나뿐일까. ⓒ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순조롭게 이륙한 비행기는 급작스런 새떼와의 충돌로 양쪽 날개의 엔진 모두에 불이 붙는다. 더 이상의 정상적인 비행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기장 설리는 그의 부기장과 관제사들에게 이렇게 선언한다.

"My aircraft." 이에 부기장은 답한다. "your aircraft."

항공기안에는 기장과 부기장 그리고 승무원과 안전요원들이 있고 비행기의 운항에도 관제사 등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 해야 모든 시스템이 문제없이 운용됨은 당연하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일에는 언제나 실수가 따르고 또한 예측불허의 상황들은 치명적인 결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위기의 순간에 궁극적인 책임을 누가 지느냐에 따라서 전체의 명운이 결정된다. 항공기 추락의 순간 기장 설리의 선언, "My aircraft (이 항공기는 이제 내 것이다)." 이 한마디 말의 의미는 어떤 결과든 내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엄숙한 선언이다.

결국 비행기는 허드슨 강 위로 불시착한다. 기장인 설리는 기내에 한겨울의 차가운 강물이 급속도로 밀려드는 위기의 순간에도, 탈출을 재촉하는 동료들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기체의 구석구석을 다 살핀 후에야 비로소 밖으로 나온다. 그들의 판단이 옳았는지 여부를 묻는 공청회가 끝난 후 부기장에게 설리는 말한다.

"We did our job.(우리는 우리의 일을 했네)."

영화를 보며 세월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배에 타고 있던 선장과 선원들이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어쩌면 그들보다 더욱 엄중한 책임을 진 사람들에 대한 새삼스런 분노가 사무쳤다. 구조를 책임져야 했던 해경의 수뇌부, 그리고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한 수많은 공무원, 무엇보다 그 책임의 정점에 있었던 대통령이 그토록 무관심하고 무책임했던 사회적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지난 2009년, 허드슨 강의 기적을 선보인 비행기 추락사고를 속보로 전하던 CNN 뉴스 갈무리.

지난 2009년, 허드슨 강의 기적을 선보인 비행기 추락사고를 속보로 전하던 CNN 뉴스 갈무리. ⓒ CNN


지그문트 바우만은 그의 저서 <현대성과 홀로코스트>에서 독일인에 의한 유태인 학살, 즉 홀로코스트의 많은 원인 중의 하나로 관료주의에 주목한다. 그토록 잔혹했던 수많은 독일인 중 그 누구도 '개인에게' 유태인들을 체포하고 구금하고 학살토록 했다면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을 거라고 주장한다.

이른바 엘리트들로 이루어진 관료주의 시스템 안에서, 각자에게 주어지는 도덕적 직무적 책임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거리낌 없이 그러한 일을 자행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아우슈비츠 대학살의 많은 책임자들은 이렇게 얘기했다. "난 그저 상부의 명령에 따라 가스실의 버튼을 눌렀을 뿐이다."

2014년 4월 16일, 청와대를 비롯한 유관부처의 관료들 역시 그들의 눈앞에서 세월호가 바다 속으로 침몰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면 그토록 무책임하게 수수방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단 한 명의 생명이라도 구해내기 위해서 물에 뛰어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믿고 싶다. 그러나 그들은 시스템 안에서 자신의 책임소재만을 걱정하는 담당자 중 한 명일뿐이었다. 그들은 오로지 상부의 명령만을 기다렸다. 상부의 정점에는 대통령이 있었고, 그 긴박한 순간에 최고책임자는 어디에서 뭘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보수주의자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의 주인공 설리 기장을 영웅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보다 설리의 내면에서 요동치는 감정을 놓치지 않는다.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독일 태생의 유태인 철학사상가 한나 아렌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는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라는 소제목이 붙어 있다. 히틀러의 유태인 이송책임자였던 일급전범 아이히만은 수십 년을 숨어살다가 붙잡혀서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 한나 아렌트는 지극히 평범한, 그저 주어진 임무에 충실했던 공무원으로서의 모습을 한 그가 그러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던 근원적인 문제에 주목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한 당시의 권력자들을 보며 우리가 분노했던 것도 이와 같은 '악의 평범성'을 직접 목도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토록 무능하고 사악한 정권의 부역자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모두를 구하는데 걸린 시간, 단 24분

영화의 마지막에서 2009년 뉴욕에서의 기적을 영화는 이렇게 설명한다.

"1200명 이상의 구조대와 7대의 출근보트가 승객과 승무원 155명 전원을 구조했다. 모두 하나로 뭉쳐 기적을 이루는데 걸린 시간은 단 24분이었다."

'24분간의 기적'으로 차가운 강물위에 추락한 항공기의 모든 승객이 구조됐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영화의 실제 주인공 설리와 당시의 생존자들이 서로에게 감사와 존경을 표하는 장면에서 눈물이 났다. 우리에게는 그와 같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다.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을 '세월호 참사'에 패러디한 패러디 포스터.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을 '세월호 참사'에 패러디한 패러디 포스터. ⓒ 인터넷 갈무리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최초 보고시점이 조작됐다는 청와대의 발표에 대해서 당시의 여당은 '정치공작'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세월호 관련 문건 발표 쇼는 정치공작적 행태로, 반드시 국정조사를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사라진 7시간'도 모자라 이제 거기에 30분이 더해졌다. 30분, 긴 시간은 아니다. 잠깐 짬을 내 커피 한 잔을 마시거나 동네 한 바퀴를 산책할 정도의 시간이다. 그러나, 그날 아침의 30분은 그 수많은 귀한 생명을 모두 구해낼 수 있는 골든 타임, 금쪽같은 시간이었고 삶과 죽음의 시간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엄마, 아빠"를 부르짖으며 차가운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가던 그 시간에 '국가 수반이자 최고통치자'가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었는지 우리는 아직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그 기록마저 조작하고 국민을 속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추가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여권은 세월호 보고시점 조작과 대통령 훈령 조작을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의 대표적 사례로 규정하면서 검찰 수사를 통한 진상 규명 절차에 착수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 초기 대응은 왜 그토록 부실했는지, 그 귀중한 시간에 대통령은 어디서 뭘 하고 있었는지 모든 의혹이 낱낱이 규명되어야 한다. 또다시 시간 속에 묻히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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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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