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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회령진성 역사공원. 정유재란 당시 조선수군 재건에 나선 이순신 장군의 발자취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장흥 회령진성 역사공원. 정유재란 당시 조선수군 재건에 나선 이순신 장군의 발자취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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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진'인 전남 장흥의 회진에서 올해 처음 열리는 축제가 있다. 바로 '2017회령포 문화축제'다. 이 축제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의 신화를 일군 조선함대 12척의 출발지였음을 알리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올해 첫 선을 보일 회령포 문화축제는 10월 13일부터 15일까지 사흘 동안 전남 장흥의 회령진성과 회진항 일원에서 열린다. 장흥 회진(옛 회령포)은 정유재란 때 삼도수군통제사로 다시 임용된 이순신 장군이 조선함대 12척을 손에 넣고 조선수군과 함께 전쟁 승리의 결의를 다진 곳이다.

축제는 삼도수군통제사 입성식, 조선함대 12척 해상 퍼레이드, 학술 심포지엄과 이순신 시조 낭송, 그리고 해상 불꽃 판타지 쇼, 소원 풍등 날리기 등으로 준비된다. 이순신 사진전, 장흥 출신 소설가 한승원·이청준 작품전, 회진면 사계 사진전 등은 덤이다.

장흥 회진포구.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경상우수사 배설로부터 조선함대 12척을 회수했던 곳이다.
 장흥 회진포구.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경상우수사 배설로부터 조선함대 12척을 회수했던 곳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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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령진성 역사공원에 세워진 '필사즉생 필생즉사' 표지판. 명량, 울돌목으로 가던 이순신 장군의 마음가짐을 나타내고 있다.
 회령진성 역사공원에 세워진 '필사즉생 필생즉사' 표지판. 명량, 울돌목으로 가던 이순신 장군의 마음가짐을 나타내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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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8월 18일, 양력 9월 28일이다. 이순신 장군은 이곳 회령포에서 경상우수사 배설의 휘하에 있던 조선함대 12척을 회수했다. 보성에서 조정의 수군 철폐령에 맞서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전선이 있다(今臣戰船 尙有十二)'는 장계를 올리고 군학마을에서 배를 타고 회령포에 닿은 직후였다.

이순신 장군은 회령포에 도착한 다음날 포구에 군사들을 줄지어 세우고 숙배(肅拜) 행사를 열었다. 숙배는 임금에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하며 군사들의 사기를 높이는 군례다. 이른바 전쟁 출정식인 셈이다.

이 자리에서 이순신 장군은 군사들에게 선조 임금이 내린 교서와 삼도수군통제사 임명 교지를 높이 들어 보였다. 그러면서 한 번의 죽음으로 보답하자며 군사들로부터 죽기로 싸울 것을 다짐 받았다.

"우리는 지금 임금님의 명령을 다 같이 받들었다. 한 번의 죽음으로 나라에 보답하는 것이 무엇이 그리 아깝겠는가. 오직 우리에게는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복원된 회령진성. 1490년부터 1554년까지 회령포구의 뒷산을 이용해서 쌓았다. 성곽의 둘레가 본디 6㎞에 이른다.
 복원된 회령진성. 1490년부터 1554년까지 회령포구의 뒷산을 이용해서 쌓았다. 성곽의 둘레가 본디 6㎞에 이른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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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령진성이 둘러싸고 있는 마을 풍경. 당시 성곽을 이뤘을 크고 작은 돌들이 마을길과 담장의 재료로 들어가 있다.
 회령진성이 둘러싸고 있는 마을 풍경. 당시 성곽을 이뤘을 크고 작은 돌들이 마을길과 담장의 재료로 들어가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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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배 행사를 마친 이순신 장군은 곧바로 조선함대 12척을 판옥선으로 개조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사다리를 타고 조선함대의 뱃머리로 올라와서 싸우는, 일본군의 특기인 백병전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순신 장군은 김억추를 책임자로 지정하고, 전함을 거북 모형의 구선(龜船)으로 바꾸도록 했다. 함대 수리에는 조선수군으로 참여하고 있는 병사들은 물론 회령포 인근 마을 주민 300여 명이 참여했다.

건곤일척의 승부를 앞둔 명량으로 가는 이순신 장군의 조선수군 재건작업이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군관 9명과 병사 6명을 데리고 수군재건에 나선 이순신 장군은 일본군이 뒤쫓아 오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전라도 내륙의 구례와 곡성, 순천을 거치면서 군사를 충원하고 군기와 화약무기를 확충했다.

보성에선 군량미를 확보했다. 수군철폐령에 맞서 '신에게는 아직도 열두 척의 전선이 있다'는 장계를 쓴 곳도 보성이었다. 8월 3일 삼도수군통제사로 다시 임명돼 조선수군 재건에 나선 지 17일 만이었다.

옛 회령진성의 흔적. 마을 뒷산에 아직도 남아 있다. 옛 성곽은 집과 집, 밭과 밭의 경계로 활용되고 있다.
 옛 회령진성의 흔적. 마을 뒷산에 아직도 남아 있다. 옛 성곽은 집과 집, 밭과 밭의 경계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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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령진성에서 내려다 본 회진포구.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조선함대 12척을 회수한 곳이다. 지금은 전형적인 어촌마을 풍경 그대로다.
 회령진성에서 내려다 본 회진포구.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조선함대 12척을 회수한 곳이다. 지금은 전형적인 어촌마을 풍경 그대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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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령포는 전라우수영에 소속된 수군만호가 주둔하면서 마을이 형성됐다고 전해진다. 진(鎭)이 설치된 것은 조선 초기였다. 평상시에는 식량과 군기를 쌓아두는 보급기지 역할을 했다.

회령진성은 회령포구의 뒷산을 이용해서 쌓았다. 1490년(성종 21년)에 쌓기 시작, 1554년(명종 9년)에 마무리됐다. 둘레 6km로 큰 성이었다. 석축의 너비는 2∼4m였다. 흙과 돌을 섞어 쌓았다. 동쪽의 벽은 벼랑 위에 쌓았다.

장흥 회진에는 지금 회령진 역사공원이 조성돼 있다. 당시 회령진성의 흔적도 남아있다. 현재 남아있는 성벽은 전체의 10분의 1 남짓. 마을 뒤로 폐허가 된 성벽과 석축이 남아 있다. 집과 집, 산과 밭의 경계로 쓰이고 있다.

성문 터도 일부 남아있다. 성벽에 올라서면 회진마을과 포구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뒤로는 천관산이 자리하고 있다. 250여 년 전 마을주민들이 이순신 장군을 기리기 위해 심었다는 팽나무도 성내에 있다.

장흥 회진마을 풍경. 한적한 마을 골목길에 주민 세 명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금세 각자 집으로 들어간다.
 장흥 회진마을 풍경. 한적한 마을 골목길에 주민 세 명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금세 각자 집으로 들어간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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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령포 역사공원 앞에 세워진 조선수군재건로 안내도. 정유재란 당시 조선수군을 재건해 명량으로 가던 이순신 장군의 행적을 확인할 수 있다.
 회령포 역사공원 앞에 세워진 조선수군재건로 안내도. 정유재란 당시 조선수군을 재건해 명량으로 가던 이순신 장군의 행적을 확인할 수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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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이 함대를 고쳤던 곳은 회진면 덕산마을이다. 마을에 배를 숨겨 놓은 곳을 가리키는 지명 '고집(庫集)들'이 남아있다. 배를 수리했던 거두쟁이(톱쟁이)의 후손들도 살고 있다. 회진포구 풍경도 아름답다.

손승현 장흥군 회진면장은 "회진면은 정유재란 당시 조선수군 재건의 육로 종점이자 수로의 시점으로 이순신 장군의 자취가 살아 숨쉬는 역사적인 고을"이라며 "장흥에서 처음 열리는 문화축제인 만큼 역사적인 의미를 담은 알찬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선학동마을에 활짝 핀 메밀꽃. 영화 '천년학' 촬영 이후 찾아오는 외지인들을 위해 마을주민들이 심었다.
 선학동마을에 활짝 핀 메밀꽃. 영화 '천년학' 촬영 이후 찾아오는 외지인들을 위해 마을주민들이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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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와 어우러진 소설가 이청준의 생가. 장흥군 회진면 진목마을에 있다. 이청준은 남도사람들의 웅숭깊은 한과 소리를 소설로 풀어냈다.
 코스모스와 어우러진 소설가 이청준의 생가. 장흥군 회진면 진목마을에 있다. 이청준은 남도사람들의 웅숭깊은 한과 소리를 소설로 풀어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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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진마을에서 가까운 데에 가볼 곳도 많다. 선학동은 2008년 고인이 된 이청준의 소설 〈선학동 나그네〉의 배경이 된 마을이다. 임권택 감독이 이 작품을 원작으로 영화 <천년학>을 촬영했다. 마을로 가는 길목에 영화 세트가 남아 있다. 바닷가에 소나무와 어우러진 선술집이다.

선학동 마을에는 지금 메밀꽃이 흐드러져 있다. 마을을 찾아오는 외지인들을 위해 주민들이 부러 심었다. 봄에는 유채꽃이 만발한다. 이청준의 생가도 가까운 진목마을에 있다. 이청준은 남도사람들의 웅숭깊은 한과 소리를 소설로 풀어냈다.

정남진전망대도 지척이다. 탑의 위층은 떠오르는 태양을, 가운데는 황포돛대를, 아래층은 파도를 형상화하고 있다. 여기서 바라보는 바다 경관이 황홀하다. 삼산리 후박나무는 세 그루의 나무가 한 무더기로 어우러져 하나의 수관을 이루고 있다.

정남진 전망대. 탑의 위층은 떠오르는 태양을, 가운데는 황포돛대를, 아래층은 파도를 형상화하고 있다.
 정남진 전망대. 탑의 위층은 떠오르는 태양을, 가운데는 황포돛대를, 아래층은 파도를 형상화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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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삼산리 후박나무. 후박나무 세 그루가 한 무더기로 어우러져 하나의 수관을 이루고 있다. 흔히 볼 수 없는 귀한 나무다.
 장흥 삼산리 후박나무. 후박나무 세 그루가 한 무더기로 어우러져 하나의 수관을 이루고 있다. 흔히 볼 수 없는 귀한 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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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회령포문화축제, #회령진성, #회령포, #조선수군재건, #장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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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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