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내 아이는 농촌 시골마을의 작은학교에 다닌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폐교 결정이 내려졌던 학교다. 마을에 남은 유일한 학교가 사라지는 것을 그냥 볼 수 없다며 학부모들과 지역주민들이 나섰다.

'학교가 사라지면 마을의 미래도 사라진다'는 간절한 호소가 지역 사회에 공감대를 얻어 결국 폐교 대상에서 제외됐다. 12명에 불과하던 학생 수도 70여 명으로 늘어나고 통학버스가 배정되고 체육관이 건립됐다. 적어도 다시 폐교 위기를 맞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졌다. 학교 문제로 시끌벅적하던 마을에도 평화가 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폐교 위기 탈출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라는 걸 깨달았다. 폐교를 막자는 하나의 목표에 뭉쳐 있을 때는 잘 몰랐던 크고 작은 차이와 갈등들이 불거졌다. 학부모들간의 관계, 학부모와 교사의 관계, 교과 과정과 학교 운영에 대한 입장 차이 등 풀어야 할 숙제들이 쌓여갔다.

간절히 원했던 학교가 살아났는데 정작 왜 우리는 행복하지 않은 걸까.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에 신명을 다했던 학부모들은 지금 '성장통'을 겪으며 표류 중이다. 고민이 깊어질 때 즈음 만난 책 <로컬에듀>에서 나는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혁신학교'를 넘어 '혁신교육특구'로

.
▲ <로컬에듀> 표지 .
ⓒ 에듀니티

관련사진보기

완주교육지원청 장학사 추창훈이 쓴 <로컬에듀>는 '혁신교육특구'를 통해 지역교육운동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워가고 있는 완주 교육 3년의 기록이다.

교육과 마을을 결합시키려는 시도들은 확산되고 있으나 완주에서처럼 학교, 학부모, 지역사회, 교육지원청, 지자체가 토론과 조정, 협력을 통해 지역교육 발전의 거버넌스를 구현하는 사례는 드물다. 대개 지역에서는 교육을 바라보는 학교와 학부모의 입장 차이로 학교 운영에 갈등이 야기되거나, 교육지원청과 지자체의 정책이 엇갈려 학교 현장에 혼란이 초래되기도 한다.

'로컬푸드'라는 말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로컬에듀'라는 생소한 단어에도 바로 감이 올 것이다. 간단히 말해 로컬에듀는 지역 교육 문제는 지역 스스로 해결하자는 운동이다.  

"혁신교육을 통해 학교가 변화하고, 그 결과 아이들이 성장한다 하더라도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는 순간 일자리 문제에 직면할 것이다. 아이들은 양질의 일자리를 찾기 위해 경쟁의 대열에 합류할 것이고 조금이라도 더 좋은 기회를 잡기 위하여 결국 지역을 떠날 것이다. 이는 결코 혁신학교나 혁신교육의 힘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중략)....현재의 수준에서 다양한 대안과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그 중심에 지역교육이 있다. 혁신교육만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를 지역교육으로 해결할 수 있다. 지역교육은 기초지자체 행정구역을 그 범위로 한다. 지역의 양대 행정기관인 교육지원청와 지자체가 학교, 학부모, 지역주민과 함께 지역의 교육환경을 획기적으로 바꿔 지역에서 아이들이 자라고, 그 아이들이 다시 지역에서 살아갈 수 있는 교육 생태계를 만드는것이다. 더는 국가나 중앙 정부, 도 교육청에 의존하지 않고 지역의 교육환경을 함께 분석하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을 찾아 함께 실천하는 것이다." (381쪽)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가 날로 벌어지고 인구 절벽과 지방 소멸의 위기가 높아지는 가운데 마을의 지속가능성은 어떻게 찾아야 할까. 이 책은 그 실마리를 '로컬에듀'로 제시한다. 수도권 대학으로 유학을 가 경쟁력을 높이고 대도시의 좋은 직장을 잡는 것이 교육의 목표가 되어버린 현실은 교육의 본령을 왜곡시킨다. 아이들이 지역을 떠나지 않고도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고 학교를 졸업하고도 지역 안에서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는 학교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민관을 아울러 교육에 관여하는 모든 주체들이 지역 교육의 창의적인 로드맵을 만들고 협력해나가야 한다. 지역의 교육력은 곧 지역의 미래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교육지원청과 지자체가 '따로국밥'이 아닌 함께 지역교육의 해법을 찾고 공교육 혁신과 마을교육공동체 강화를 지원해야 한다. '혁신교육특구'는 혁신학교를 넘어 지역 전체가 혁신 교육의 장으로 전환하는 모델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저자는 "로컬에듀는 아이들이 지역의 학교에서 공부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지역 전체가 학교를 지원하는 교육운동"(20쪽)이라며 "혁신교육특구는 학교라는 공교육의 토대를 탄탄하게 만들어가면서 마을에서 자생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교육공동체가 더욱 내실을 기하고, 본래의 취지에 맞게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예산, 시설, 인력 등을 지원하는 역할을 할 것"(89쪽)이라고 설명한다.

학부모 교육 참여의 바람직한 모델은 무엇일까?

우리 마을에서는 작은 학교 살리기에 적극적이었던 학부모들이 막상 학교가 살아나자 제 역할을 찾지 못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게다가 '그 학교 학부모들은 드세더라'는 소문 때문에 혹시 학교 운영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까 위축되어 있다. 엄연히 교육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학부모들이 학교에 참여하는 적정하고 바람직한 모습은 무엇일까?

완주의 '혁신교육특구'에서는 마을교육공동체 지원과 활성화를 매우 중요시한다. 학교가 살아야 마을이 살고, 마을이 살아야 학교가 살기 때문이다. 지역교육을 발전시키려면 교육지원청과 지자체 못지 않게 학부모들의 역할이 중요하고 '학교거버넌스'가 민주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학교거버넌스는 교육과정 운영에 교사, 학생, 학부모 등 교육의 3주체가 모두 참여하여, 토론하고, 합의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학교 거버넌스를 통해 학교 비전의 공유, 각 주체의 권리와 책무성 공유, 파트너십 형성 등이 가능합니다. 민주적 학교 거버넌스에서 학부모의 위상과 역할을 예전보다 대폭 강화되었습니다. 그것은 학교와의 직접 소통 확대, 학교 참여 확대로 나타납니다. 학교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확부모의 실질적인 학교 교육 참여를 보장해야 합니다. 학교교육 과정 및 운영 방향 등을 교사와 학부모가 끊임없이 소통하고, 학생의 성장을 돕기 위해 협력해야 합니다." (60쪽)

완주 봉서초등학교 김수정 학부모회장은 "'완주학부모연대'는 교육청의 정책이기 이전에 교육주체가 실천한 교육운동의 결과물, 학교혁신으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혁신하고자 하는 새로운 교육운동의 출발점"이라며 "우리는 학교에 대한 지나친 기대나 정치적 의미 부여를 넘어서서 새로운 교육운동에의 전망을 가지고 당면한 과제를 올바로 해결하려는 성실한 자세와 집단적 지혜를 추구해야 한다"(61쪽)고 강조한다.

'교육혁신특구'라는 개념조차 생소한 내게 완주의 모델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내 아이가 다닐 이 학교가, 그리고 이 마을이 지속가능하고 행복한 배움의 공동체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새로운 모색과 담대한 구상, 비상한 실천이 필요한 때다. <로컬에듀>에서 얻은 자극과 영감을 바탕으로 우리 마을에서도 교육백년지대계를 위한 공부와 토론을 시작해야겠다.

덧붙이는 글 | <로컬에듀>(추창훈 지음 / 에듀니티 펴냄 / 2017.6 / 16,500원)
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로컬에듀 (2017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도서) - 지역교육을 위한 희망 로드맵

추창훈 지음, 에듀니티(2017)


태그:#로컬에듀, #혁신학교, #혁신교육특구, #마을교육공동체, #학교거버넌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작은 시골 농촌에서 하루 하루 잘 살기 위해.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