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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의사당 내 캣집을 찾은 길고양이.
 국회의사당 내 캣집을 찾은 길고양이.
ⓒ 한정애 의원실 인스타그램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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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캣대디들이 캣집 보수 공사를 하고 있는 모습.
 국회 캣대디들이 캣집 보수 공사를 하고 있는 모습.
ⓒ 한정애 의원실 박철우 비서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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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다 헤쳐 놓은 거봐, 이것들이~!"

사료로 촉감놀이라도 한 모양이었다. 채리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행정기획실 부국장이 무릎을 굽혀 바닥에 널브러진 고양이 사료를 손으로 쓸어 담았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청 왼편 구석, 나무와 풀숲 사이에 마련된 이층짜리 '캣집'.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5m 밖 인도에서도 눈에 띄지 않는 공간이다.

"여기 아이들이 엄청 세요. 물이 더러워지면 그냥 엎어버려요."

채리 부국장은 웃으며 품안에 들고 있던 500밀리리터짜리 생수 7통을 캣집 창고 한편에 차곡차곡 쌓았다. 고양이 두 마리 정도가 들어갈 크기의 창고에는 사료 포대도 함께 보관돼 있었다.

이곳은 올해 1월 국회 주변을 떠돌아다니는 길고양이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본청을 비롯해 의원회관 등 국회의사당 경내에는 총 4곳의 캣집이 포진돼 있었다. 일명 '고양이 급식소'. 관리자는 국회로 출근하는 당직자들과 보좌진이다. <오마이뉴스>와 지난 9월 27일 캣집을 방문한 채리 부국장은 자신을 '본청 담당'이라고 소개했다.

 국회 본청 정론관 인근에 있는 캣집.
 국회 본청 정론관 인근에 있는 캣집.
ⓒ 조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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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캣대디들이 캣집 보수 공사를 하고 있는 모습.
 국회 캣대디들이 캣집 보수 공사를 하고 있는 모습.
ⓒ 한정애 의원실 박철우 비서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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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청 완료."
"회관도 완료했습니다."

채리 부국장이 사료주기를 마친 후 카카오톡방에 짧은 보고를 올렸다. 밝은 표정의 고양이 캐릭터 이모티콘이 튀어나왔다. 관리 집사들은 총 16명으로, 카카오톡 '국회 캣맘 모여라' 단체 대화방에서 캣집 관리와 청소 및 중성화수술 여부 등을 논의한다. 계절마다 장마철 위생관리, 겨울철 단열 보수 등을 의제로 다룬다. 회원 모집은 알음알음 이뤄질 때가 많다고 했다. 국회 도서관에서 홀로 사료를 나눠주던 캣맘의 경우, 채리 부국장이 모임 소개를 적은 메모를 남겨 함께하게 됐다고.

이들은 한 달에 한 번 오프라인 회의를 열기도 한다. 채리 부국장에 따르면 "정치 얘기하기 힘들다"고 했다. 캣집을 관리하다 발견한 '아깽이(아기고양이)' 이야기, 집에서 기르는 '내새끼' 자랑이 주요 대화 주제다. 국회 안 고양이 급식소 비치에 힘쓴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일원이다. 모두 고양이에 흠뻑 빠진 자발적 '캣부모회'다.

"길고양이 해코지하는 사람들에게 '여길 봐라' 할 수 있는 곳"

 국회의원회관, 의사당 건물 등에 놓여있는 캣집
 국회의원회관, 의사당 건물 등에 놓여있는 캣집
ⓒ 한정애 의원 인스타그램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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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 '단톡방'에 올라온 안건은 '추석 연휴 길냥이 밥 차려주기'였다. 하루 한 번 고양이 사료를 밥그릇에 담아 줘야 하는데, 10일에 달하는 긴 연휴 동안 이를 책임질 당직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채리 부국장은 "추석 연휴 때 애들 밥 챙길 당번 정하는 거랑, 여름철 지나고 집이 지저분해졌으니 대청소 하는 것, 요렇게 정해졌다"고 전했다. 의원회관 캣집 관리에 집중하고 있는 박철우 비서관(한정애 의원실)은 당번 정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고 했다. 추석 연휴가 끝나면 곧 국감이라 출근하는 집사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회 캣맘·캣대디들이 파악한 의사당 내 길고양이들은 20마리 남짓. 눈에 띄지 않는 아이들이 더 많기 때문에 정확한 수는 알기 힘들다고 했다. 채리 부국장은 "3대가 덕을 쌓아야 고양이를 만날 수 있다"고 농담하기도 했다. 주변 고양이들 사이에 소문이 퍼졌는지 가족들을 데리고 캣집을 찾기도 한단다. 채리 부국장이 '캣집 늘리기'를 적극 주장하는 이유다.

"원래 이틀에 한 번씩 왔는데, 본청 옆 사랑재에 사는 아이들이 급속하게 이용하기 시작해서 하루 한 번 주지 않으면 안 돼요. 한 번은 사료 봉지를 다 뜯어놨더라고. '조금만 더 달라고~ 이 따위로 두고 먹으라는 거야? 그냥 내가 먹을게!'라는 식이죠(웃음)."

캣집은 고양이 사이에서만 회자된 게 아니었다. 인적이 드문 새벽, 국회 청소 노동자들이 출근길에 고양이들을 발견하고 집사에게 알려주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했다. 채리 부국장은 "지난 주에 밥을 주러 왔더니 한 청소노동자 분이 노랑 고양이 한 마리가 애기를 데리고 와서 밥을 먹더라고 알려줬다"고 말했다. 동네 캣맘·캣대디들의 응원을 받기도 했다.

"생명을 돌보는 사람들에게 고양이급식소는 큰 자부심이에요. 국회에 급식소가 생겼다는 소식에 (길고양이에게 밥을 준다고 욕먹는) 캣맘·캣대디들이 엄청 으쓱해 했어요. (밥을 준다는 이유로) 해코지하는 일부 사람들에게 '국회에도 길고양이 급식소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거죠."

"동물뉴스 대부분이 흉흉한 소식"

'항상 고맙다냥' '동물보호법을 강화해라냥'

국회 캣집 한쪽 벽에 붙어있는 귀여운 고양이 스티커. 윤여길 비서관(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기획한 '캣맘·캣대디 응원' 프로젝트다. 캣부모들의 자체 급식소에 응원 스티커를 붙여 '사기 진작'을 도모하는 것이다. 동네에서 길고양이 급식소를 발견한 이가 '고맙다냥' 페이스북 페이지에 응원스티커를 요청하면, 택배로 서른 장가량 발송해주는 식이다. 

 '고맙다냥' 길고양이 캣부모들을 응원하는 스티커.
 '고맙다냥' 길고양이 캣부모들을 응원하는 스티커.
ⓒ '고맙다냥' 페이스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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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비서관은 기획 배경을 묻는 질문에 "고양이 뉴스들은 대개 우울한 이야기가 많다"면서 "이 스티커를 보면서 서로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그는 9월 26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캣맘 중에 디자인을 하시는 분이 있어서 도움을 받았다"면서 "스티커 인쇄소 사장님도 원가에 싸게 해주신다고 해서, 큰 돈 안 들어가겠다고 생각해 시작했다"고 말했다.

"내가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에 경외심을 갖고 온 정성을 다한다면 내 주위의 세상은 매우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흘러갈 것이다." - <동물을 사랑하면 철학자가 된다> 이원영, 44페이지 중

채리 부국장은 길고양이들의 캣집을 관리하면서 "굉장히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했다. 윤 비서관의 말처럼 동물 관련 뉴스의 주요 꼭지를 담당하는 동물학대 사건을 볼 때마다 "견딜 수가 없게 됐다"는 것이다. 채리 부국장은 "한 번은 육식 관련 시위자들이 조그만 틀 안에 개를 우겨 넣고 퍼포먼스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아이들이 겪은 통증이 그대로 와 닿는 것 같았다. (길고양이를 만난 이후로) 생명을 학대하는 것을 보면 못 견디겠더라"고 말했다. 

농축산검역본부가 2015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길거리를 떠도는 고양이는 21만 3천여 마리에 달한다. 개와 기타 동물을 포함한 전체 유기동물 수는 82만 1천여 마리였다. 길고양이 밥에 쥐약을 넣어 몰살을 시켰다는 등 흉흉한 기사도 즐비하다. 국회 캣집의 고양이들처럼 굶주리지 않고 이번 추석을 보낼 수 있는 길고양이들은 그리 많지 않은 실정이다.

지난해 추석, 국회 'VIP주차장'에서 구출된 '더불어민주당'의 근황
 작년 이맘때 국회 의원회관에서 구출된 더불어민주당(현 고거련)
 작년 이맘때 국회 의원회관에서 구출된 더불어민주당(현 고거련)
ⓒ 임형찬씨 페이스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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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추석 이맘 때, 국회의원회관 '의원전용' 주차장에서 구출된 길고양이들도 있다. 당시 여야 3당인 더불어민주당, 새누리당, 국민의당이 이들의 이름이 됐다. 1년 후, 이들은 모두 고거련, 고순이, 안나라는 새 이름을 얻어 보다 '럭셔리하게'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당시 이들 모두를 임시보호했던 임형찬씨는 지난달 27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한 아이는 노사모 전 대표인 노혜경 시인에게, 또 다른 아이는 소설가 홍형진씨에게 분양됐다"며 "더불어민주당이었던 고거련은 제가 데리고 있다"고 이들의 근황을 전했다.

다만 구출 당시 사고를 당한 고거련의 경우, 소변을 배로 배출하는 등 중병을 앓고 있다고 했다. 임씨는 "장수하라고 고구려 장수왕의 이름을 붙여줬다"면서 "1년 뒤부터는 척추가 좀 이상해져서 뒷걸음이 좀 이상해졌다"고 안타까워했다.

두 달여 동안 병원비만 200여만 원이 지출돼, 한정애 의원실의 도움을 받아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동물병원을 소개받기도 했다. 임씨는 "MRI를 찍어야 하는데, 서울에는 두 군데 밖에 없다고 한다"면서 "촬영 비용도 한 번에 약 100만 원이 든다"고 걱정했다.

임씨는 그러면서도 반려인으로서 가져야할 책임에 대해 강조했다. 아프고 병들어 유기당하는 반려동물들의 이야기였다. 그는 "반려동물의 DNA를 등록하는 법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주인이 유기할 경우 (등록 내용을 통해) 처벌할 수 있는 그런 법을 생각해봤다"고. 임씨의 페이스북에는 거련이의 사진이 가득했다. 햇살 아래 바닥에 배를 깔고 졸거나 침대 맡에서 애교를 부리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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