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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남원 지리산 실상입니다. 연꽃의 삶처럼 살고 있음을 알려주는 듯합니다.
 전북 남원 지리산 실상입니다. 연꽃의 삶처럼 살고 있음을 알려주는 듯합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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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영산 지리산. 천왕봉마저도 그저 산봉우리 무리 중 하나일 뿐입니다.
 민족의 영산 지리산. 천왕봉마저도 그저 산봉우리 무리 중 하나일 뿐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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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구비 구비 구불거립니다. 구비길, 속도 조절을 요구합니다. 구름마저 산중턱에 걸렸습니다. 구름, 막힘없이 흘러가면 좋으련만, 산이란 놈이 고이 보내지 않습니다. 산, 요럴 땐 영락없는 심술쟁이입니다. 구름, 삶에 굴곡이 있어야 재미있음을 아는 듯, 스스로도 유유히 흐르지 않고, 고통을 즐기는 것처럼 보입니다.

경남 함양 마고할미에 섰습니다. 민족의 영산 지리산이 한눈에 보입니다. 지리산 하봉(1781m), 중봉(1874m), 천왕봉(1915m), 제석봉(1808m), 장터목(1653m), 연하봉(1730m), 촛대봉(1703m), 세석산장(1560m), 영신봉(1652m), 칠선봉(1558m), 덕평봉(1522m), 반야봉(1732m) 등 1500m를 넘는 높은 산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습니다.

지리산 최고봉 천왕봉.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더니, 천왕봉마저도 그저 산봉우리 무리 중 하나일 뿐입니다. "제 아무리 높다한들, 하늘 아래 뫼"라더니, 과연 그러합니다. 이렇게 아무리 잘나봐야 고저 인간인 것을, 잘났다고 우쭐할 일이 아님을 또 배웁니다.

뭔 절이 너른 들판 논 가운데 멋없이 있을까?

지리산 실상사 천왕문입니다.
 지리산 실상사 천왕문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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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지리산 실상사로 접어듭니다. 들판 한가운데 떡하니 들어선 절집이 낯섭니다. 경치 좋은 계곡을 끼고 있는 편안한 절집에 익숙한 때문입니다. 그래, 실상사 스님들은 실상사를 처음 찾는 분들에게 "'뭔 절이 동네 앞에, 너른 들판 논 가운데 멋없이 있을까?'란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이에 대한 대답 또한 걸작입니다.

"마음을 열고 보시면 너른 들판 가운데 멋 하나 없이 밋밋하게 있는 그런 절이 아닐 겁니다. 불교최초 절인 '죽림정사'도 마을 옆 들판에 자리하였다지요."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름을 강조합니다. 초심을 잊지 않겠다는 선언이자 다짐입니다. 지리산중 실상사, 처음부터 들판 가운데 있었던 건 아니랍니다. 처음엔 심산유곡이었다나. 그랬는데, 부처님 품을 찾아든 사람들로 마을이 이뤄지고, 그들을 위한 논밭이 만들어져 이렇게 되었답니다. 절은 사부대중 누구나의 수행처요, 몸과 마음의 안식을 찾는 곳이라더니 대단한 공덕입니다.

실상사 앞, 철 지난 연꽃이 드문드문 보입니다. 절 입구에 연을 심은 걸 보니, 들판 가운데 선 밋밋함을 보충하려는 몸짓이지 싶습니다. 한편으로 연꽃 위에 뜬 실상사처럼 보입니다. 이 모든 게 부처님 법의 모든 것을 담으려는 애끓는 노력으로 읽힙니다. 예서 '연'을 주제로 한 '선시' 한편 읊지요.

눈에게 '사색'과 '쉼'을 덤으로 주는 '실상사'

지리산 실상사, 천왕문을 들어서면 마주하는 풍경입니다. 비어 있는 듯 허나, 꽉 찬 느낌입니다.
 지리산 실상사, 천왕문을 들어서면 마주하는 풍경입니다. 비어 있는 듯 허나, 꽉 찬 느낌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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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실상사, 하안거 해제 법회 모습입니다. 법문 중인 도법 스님.
 지리산 실상사, 하안거 해제 법회 모습입니다. 법문 중인 도법 스님.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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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 아름드리 감나무와 그 아래 놓인 돌. 그리고 감.
 실상사, 아름드리 감나무와 그 아래 놓인 돌. 그리고 감.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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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
                   일선 스님

   온 세계를 부수어
   티끌을 만들어
   진흙으로 돌아가면
   일체 모양 사라지고
   홍련 백련 자재로히
   다시 몸을 나투네

실상사, 올 때마다 매번 거의 똑같이 느끼는 게 있습니다. 비어 있는 듯 허나, 꽉 찬 느낌! 가람이 띄엄띄엄 듬성듬성 배치되어 휑합니다. 덕분에 눈이 무엇인가를 보려고 애쓰지 않아도 전각 하나하나가 똑바로 들어옵니다. 이는 다닥다닥 붙은 전각들에 익숙한 눈에게 '사색'과 '쉼'을 덤으로 주는 듯합니다. 비어있는 공간에 마음이 들어앉아 꽉 차게 느껴지는 게지요.

하안거 해제 법회가 열리는 중입니다. 불자들과 스님들, 바닥에 앉아 도법 스님 법문을 열심히 듣고 있습니다. 도법 스님 법문 중입니다. 앞으로 나가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 찍고 앉자마자, 해제 법회 마지막을 알립니다. 이마저 찍지 못했다면 얼마나 아쉬웠을꼬!

밖으로 나옵니다. 아름드리 감나무 아래 빙 둘러있는 바위. 그 위에 감 7개가 놓여 있습니다. 그 옆으로 용기 두 개가 자리합니다. 감, 누군가 가져갈 수 있는 상황임에도 가지런히 놓여 있는 걸 보니, 젯밥에 마음 없는 이곳 스님과 불자들의 진심을 엿보는 듯합니다. 단아한 이 모습이 구산선문 최초 가람이자, 인드라망 생명공동체요, 지리산 마을 절, 실상사의 실사구시 정신으로 읽힙니다.

부처님의 삶 속에 답이 있다!

실상사 도법 스님, 전각 마루에 앉아 있습니다.
 실상사 도법 스님, 전각 마루에 앉아 있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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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회를 마친 도법 스님, 마루에 앉아 숨을 고릅니다. 합장하며 인사 올립니다. 그에게 다가갑니다. 그 옆에 앉았습니다. 스님, 예전에 멀리서 뵈었을 땐 작고 날씬하며 가녀린 느낌이었습니다. 가까이에서 보는 스님은 적당히 통통한 '큰 스님' 같습니다.

"스님 법문 들으려고 달리고 또 달려왔습니다만,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법문은 한 구절도 듣지 못했습니다."

"법문은 녹음했을 겁니다. 그거 들으면."

"가여운 중생을 위해 오늘 하신 법문 복습 좀 해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허허…."

도법 스님, 난처한 표정입니다. 살다 살다 이런 생떼는 처음이란 거죠. 수염이 삐쭉빼쭉 나 있는, 흰 수염과 검은 수염이 뒤섞인 얼굴을 봅니다. 그리고 '법문 해 주실 거죠?'라는 기대에 찬 표정으로, 스님 얼굴을 빤히 보며 웃습니다. 싱글싱글 기대에 찬 표정에 손들었다는 듯, 스님 잠시 머뭇거리시더니 입을 엽니다.

"경험한 바로는, 불교를 공부하며 수행하는 사람이 해야 할 한 마디는 '여래의 진실한 뜻을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부처님의 뜻을 잘 알아야 한다. 부처님께서 8만4천 법문으로 설명하셨다. 이 법문은 교리이자 지식꺼리일 뿐, 숨 쉬고 피로 돌고 체온이 있는 삶으로는 확인이 안 된다.

그러면 여래의 진실한 뜻이 삶으로 드러난 게 없는가? 그건 무엇일까? 부처님의 일생이야말로 온전히 잘 살아온 삶이다. 이런 부처님의 삶을 이해하는 게 바로 여래다. (불교를 공부하며 수행하는 사람은) 경전에 의지하지 말라는 것 뿐 아니라, 교리 이외의 것도 알아야 한다. 부처님의 삶 속에 답이 있다."

불을 꺼야 할 조계종단이 지금 불타고 있다?

실상사 전각들은 애쓰지 않아도 자연히 안구정화됩니다.
 실상사 전각들은 애쓰지 않아도 자연히 안구정화됩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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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안거 해제, 이제 떠나면 탐․진․치의 사바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불교는 왜 필요한가? '삼계화택(三界火宅, 법화경에 나오는 일곱 가지 비유 중 하나. 삼계의 번뇌가 마치 불타는 집 속에 사는 것과 같다는 뜻)'이라고, 삼계의 불길을 잡기 위해 여래와 함께 한다.

조계종단이 나서 (삼계의) 불을 꺼야 하는데, 반대로 그게 지금 불타고 있다. 명진 스님은 불 지르고, 자승 스님은 '무슨 소리냐?'며 서로 불 지르고 있다. 이 싸움에서 누군가는 이긴다. 승부는 나지만 내용적으로 조계종단만 망가진다. 불교인으로 창피하다. 죄스럽고 부끄러워 숨고 싶다. 떠나고 싶은 현실이다."

도법 스님, 잔잔하게 하시는 말 속에 힘이 느껴집니다. 조계종단의 행태에 대한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조계종단이) 두 편으로 나뉘었는데 여래 같으면 어찌 할까? 부처님 같으면 어찌 했을까?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불교 교리만 갖고 말했으나, 부처님 삶을 공부하면 모법답안이 있다.

부처님 삶에서 중재에 나선 두 가지 사건이 있다. 첫 번째는 석가 족 멸망을 막기 위해 고요히 전쟁의 한복판에 들어갔으나 실패했다. 두 번째는 가뭄에 물 때문에 두 부족마을 간 싸움이 벌어졌다. 살육이 가능한 위험한 상황에서 부처님께서 중재에 나서 설득해 서로 화목하게 살도록 했다."

부처의 중재, 목숨과 물 중 더 중요한 건?

지리산 실상사 도법 스님.
 지리산 실상사 도법 스님.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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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께서 도만 닦는 줄 알았는데, 중재에도 나섰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습니다. 불경 말고, 부처님께서 어떻게 사셨는지 하는, 부처님 삶이 기록된 게 있습니까?
"많이 있다. 보통 싸움에서 핵심은 '싸움은 누가 일으켰고, 문제는 누구인지?' 하는 것들이다. 부처님의 중재는 '싸움은 누가 걸었고?', '문제는 누구인가?' 라는 기본적인 것들은 완전 '무시'하고 들어간다. 실제로 어느 두 부족이 긴 가뭄으로 농사짓는 물이 부족하자 물싸움이 붙었다. 그걸 부처님께서 중재에 나선다. 부처님께서 두 부족 사람을 불러 묻는다.

'사람 목숨과 물 중 뭐가 더 중요한가?'

두 부족 사람들은 당연히 '사람 목숨이 물보다 더 중요하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그럼 이렇게 싸우는 짓이 잘하는 짓이냐? (우리 모두는) 함께 살아야 할 이웃이자 동반자다'며 그러면 '물이 부족한 걸 해결 할 지혜를 서로 모아봐라'고 한다. 그랬더니, '하루는 이쪽 마을에서, 하루는 저쪽 마을이 물을 쓰도록 하는 방안이 나왔다. 부처님께서 그렇게 중재해 싸움을 말렸다. 불자들은 여래의 진실을 탐구해야 한다."

사람들이 스님께 합장하며 지나갑니다. '스님께서 무슨 인터뷰를 하시나?' 호기심에 찬 표정입니다. 스님, 지나가는 사람과 인사 나누고 다시 말을 잇습니다.

"(조계종단은 지금) 명진 스님과 자승 스님이 싸우고 있다. 보통 일이 아니다. 두 분 다 공과가 있다. 근데 진짜 문제는 서로 색안경을 쓰고 본다는 것이다. 본질은 양 스님을 따르는 쪽 보다, 여래의 진실을 보고 부처님을 따르는 사람이 더 적다는 거다. 부처님을 따르는 사람은 드물고, 두 스님을 따르는 사람은 많다. 싸움 중재에 나서려고 하나 부처님을 따르는 숫자가 너무 적어 무기력하다."

불교가 불교답지 못하다는 말의 뜻은?

지리산 실상사, 노란 리본이 가슴 저리게 합니다.
 지리산 실상사, 노란 리본이 가슴 저리게 합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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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혹은 사회에 무슨 일이 있을 때 앞장서서 해결책을 요구하고, 해결을 위해 순례, 오체투지 등의 방법으로 직접 나섰던 도법 스님. 그가 조계종단의 문제 앞에서 '무기력'을 말할 때, 참담함을 느꼈습니다. 부처님처럼 도를 얻기 위해 출가한 스님들 간의 싸움은 결단코 바람직한 모습은 아닙니다.

"법을 등불로 삼고, 자신을 등불로 삼으라. 법을 의지 처로 삼고, 자신을 의지 처로 삼으라."

"게으르지 말고, 꾸준히 정진하라. 나도 게으르지 않고, 꾸준히 정진한 결과, 부처의 삶이 완성되었다."

부처님이 남긴 유훈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내 삶으로 살아내고 있는지?" 뒤돌아봐야 할 때입니다. 지금 실상사에서 부처님의 삶 등을 배우기 위한 공부 모임을 꾸리는 중입니다. 모집 문구가 무척이지 가슴에 와 닿습니다. 불교가 불교답지 못한 이유를 깊게 지적한 실상자의 '자아성찰 글'로 마무리 합니다.

"지금 우리가 듣고 배우고 따라가고 있는 가르침은, 천지를 진동시키고 새로운 울림으로 퍼져가던 붓다의 가르침이 맞는가?

세월이 흐르고 현실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데, 붓다의 가르침은 화석화되어 있는 것은 않은가?

돌아보면, 붓다의 삶은 신비주의의 황금 옷을 입었고, 가르침은 교조화되었습니다. 신비주의와 교조주의의 길은 필연적으로 전도몽상의 길일 수밖에 없으며, 붓다께서 용맹스러운 지혜로 버리셨던 옛길일 수밖에 없습니다.

불교가 불교답지 못하다는 말의 뜻은 바로 이런 게 아니겠는지요?"

불교다운 불교, 기대합니다.
 불교다운 불교, 기대합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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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 소나무 사이로 본 칠성각은 '마음이 곧 부처'였습니다.
 실상사, 소나무 사이로 본 칠성각은 '마음이 곧 부처'였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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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는 꾸미지 않아도 빛이 나는 그런 절집입니다.
 실상사는 꾸미지 않아도 빛이 나는 그런 절집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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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SNS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지리산 실상사, #도법 스님, #하안거 해제 법회, #부처님의 삶, #조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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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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