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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후 시민들이 서울역 1층 대합실에서 한국철도공사(코레일)에 승무원의 직접고용과 해고자 복직 교섭을 촉구하는 취지의 서명을 하고 있다. 오른쪽 푸른 조끼를 입은 여성은 김승하(39)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장.
 24일 오후 시민들이 서울역 1층 대합실에서 한국철도공사(코레일)에 승무원의 직접고용과 해고자 복직 교섭을 촉구하는 취지의 서명을 하고 있다. 오른쪽 푸른 조끼를 입은 여성은 김승하(39)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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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승무원들이 부당 해고된 지 4000일이 지났습니다! 서명 부탁드립니다!"

9월 24일 오후, 서울역 1층 대합실에서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그들은 한국철도공사(코레일)에 승무원의 직접고용과 해고자 복직 교섭을 촉구하고 열차 승무원 업무의 위탁 운영 중단을 외치며 11년째 거리를 헤맸다.

시곗바늘이 낮 1시를 가리켰다. 청록색 조끼를 입은 여성 노동자 15명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3층 오픈콘서트홀로 향했다. 무대 바닥엔 깔개가 널렸다. 지난 20일부터 이들은 서울역에서 농성에 돌입했다.

농성장 한편에선 해고 승무원 서너 명이 손을 바삐 움직였다. 팔찌를 만드느라 여념 없었다. 10개 정도 만들었단다. 상자엔 눈꽃을 단 붉은색 용돈 봉투 수십 통이 들어 있었다. 9월 28일 역사 1층에서 열리는 명절 바자회 준비의 일환이다. 복직 투쟁 기금을 모으는 한편, 세간 사람들의 관심을 일으키려는 차원이다.

이들은 당초 추석 연휴 직전인 9월 29일까지 농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KTX 해고 승무원들은 코레일이 성의 있게 복직 협의에 나서지 않는다면 기한을 연장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서울역 농성장에서 만난 김승하(39)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장은 내달 23일이 마지노선이라며 조여드는 절박함을 드러냈다.

"10월 23일에 부당이득금 반환소송 2차 조정이 있어요. 추석 연휴 지나고 나면 조정기일까지 여유가 열흘밖에 남지 않아요. 그 사이에 여론을 불러 모으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라, 이때 농성을 할 수밖에 없죠."

1·2심 판결에 따라 김 지부장과 동료 33명은 코레일에 직접고용된 것으로 간주됐다. 2008년 11월부터 2012년 11월까지 4년치 임금과 소송비 등 1인당 8640만 원을 탔다. 그러나 보상금은 졸지에 '부당이득금'으로 둔갑했다. 2015년 대법원이 기존 판결을 뒤집은 게다.

연 15%의 법정지연이자가 붙어 어느새 내야 할 돈은 1억 원을 넘는다. 코레일이 전향적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 한 사람마다 다달이 108만 원씩 갚아야 한다. 정미정(36)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 총무는 "조정기일 전에 사측과 합의를 이루지 못한다면 그간 말로만 거론하던 금액을 실제 빚으로 지는 것"이라며 "강제집행도 염두에 둬야 할 상황이라 조합원들의 마음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근로자 지위 확인을 둘러싼 7년의 법정 싸움, 끝내 졌다. 코레일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개인에게 갚은 돈을 토해내라 소송을 걸었다. 지난해부터 법원은 내용증명을 조합원 가정에 보내더니 올 1월부터는 지급명령서 전달에 나섰다.

집요했다. 인기척이 없으면 주말에 다시 찾아왔다. 지난해 딸을 낳은 조합원 한아림(38)씨는 덜컥 현관문을 두드리는 법원 공무원들에 겁이 질렸다.

"이젠 검은 양복 입은 사람만 봐도 깜짝 놀라요."

24일 오후 서울역 3층에 자리잡은 KTX  해고 여승무원들의 농성장 주변에 전시된 사진들을 조영남(72·서울 구로2동)씨가 둘러보고 있다. 조영남씨는 "한번 잘리면 끝 아니냐"며 "반드시 복직해서 다시 일하면 좋겠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24일 오후 서울역 3층에 자리잡은 KTX 해고 여승무원들의 농성장 주변에 전시된 사진들을 조영남(72·서울 구로2동)씨가 둘러보고 있다. 조영남씨는 "한번 잘리면 끝 아니냐"며 "반드시 복직해서 다시 일하면 좋겠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 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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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엔 부모님과, 지금은 아들딸과 함께

아림씨는 강원도 화천에서 기차 타고 왔다. 여섯 살 난 아들 진웅이를 데려왔다. 아들은 유치원에서 제 엄마더러 "기차 타는 사람"이라고 자랑한다. 연대하려고 들렀다가 떠나는 시민들을 바라보던 진웅이, 손에 고무 찰흙을 움켜쥐고 아림씨 옆에 착 달라붙었다.

"나도 (집에) 빨리 가고 싶어요."
"열차 시간이 아직 안 됐어. 열차가 올 때까지 기다려."


10년 전 파업 투쟁할 당시, 아림씨 곁엔 부모님이 있었다. 어느덧 그는 결혼하고 아들딸을 낳아 기르는 나이가 됐다. 여섯 명을 제외하곤 모두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혼인한 조합원들 가운데 90%가 출산했다. 투쟁 첫해 태어난 '파업둥이'는 벌써 11살 초등학생이 됐다.

결혼하지 않은 조합원 박미경(37)씨는 전날 동료 네 명과 함께 부산에서 올라왔다. 일반 기업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터라 주말에 짬을 낸 게다.

부산역에서도 매주 목요일 서명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2011년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에 맞서 크레인 고공농성을 감행했던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도 팔을 걷어붙였단다. 1인 시위에 동참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이들의 활동을 홍보한다.

2006년 3월 철도유통(현 코레일유통) 소속 KTX 승무원들이 모회사 코레일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파업에 나선 380여 명 중 100여 명이 부산지사 소속이었다. 이들은 상경을 택했다. 미경씨가 말했다.

"용산구에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건물이 있거든요? 거기 2층 강당에서 부산지사 승무원들은 스티로폼 위에 침낭 깔고 3년 동안 합숙 생활했어요. 서울 승무원들은 자기 집이 여기에 다 있는데, 부산 승무원들은 파업하려 해도 잘 데가 없잖아요."

24일 오후 서울역 3층 오픈콘서트홀에 마련된 KTX 해고 여승무원들의 농성장 전경.
 24일 오후 서울역 3층 오픈콘서트홀에 마련된 KTX 해고 여승무원들의 농성장 전경.
ⓒ 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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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끌려갈 때 편히 퇴근한 나"... 미안함에 다시 찾기도

강산이 한 차례 바뀐 사이 심리적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중도 포기하는 이들이 속출했다. 싸움을 이어 가는 KTX 해고 승무원들은 33명으로 줄었다. 한송이(39)씨는 자발적으로 회사를 떠난 축에 속했다.

제주도에 살던 시아버지는 중병에 시달렸다. 치료차 상경해 송이씨 집에 머물고 있었다. 파업의 막이 올랐다. 동료들은 송이씨의 참여를 강요하지 않았다. 송이씨는 "출퇴근하면서 친구들에게 면목이 없었다"며 "누군가는 경찰에 끌려가는데 나는 집으로 편히 가는 상황이었으니, 되게 눈치 보였다"고 당시 기억을 길어 올렸다. 스멀대는 죄책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사회'를 국정지표로 내건 참여정부는 해고 승무원들의 목소리를 짓눌렀다. "총리와 면담하고 싶다"며 국회 헌정기념관 로비에서 점거농성을 벌이던 승무원 84명은 2006년 4월 20일 '닭장차(경찰버스)'에 실렸다. 그해 5월 11일 저녁엔 코레일 서울지역본부에서 농성하던 승무원 80여 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승무원들이 끌려가던 날, 송이씨는 평소와 다름없이 퇴근했다.

"밤 11시에 귀가했는데, 집안 분위기가 되게 싸늘해요. 제가 연락이 되지 않으니까 가족들은 경찰에 끌려간 거라 생각했나봐요. 시아버지가 제게 그러더라고요. '네가 거기서 그만두고 나오는 게 소원'이라고. 다들 '아픈 사람 마음 편하게 해달라'고 하니까, 소원 들어주는 셈 치고 회사를 관뒀죠."

동료들을 남겨두고 떠나는 미안함. 감정은 질겼다. 파업 대열에서 이탈한 이들에겐 KTX 해고 승무원들의 투쟁이 "눈앞에서 떠나지 않는 불편한 문제"였다. 송이씨는 지난 7월부터 주말 오후 2시 청와대 앞 분수대로 향한다. 경기도 화성 자택에서 서울까지 3시간 오가는 것쯤은 기꺼이 감수한다. 다섯 시간 동안 1인 시위를 하기 위해서다. 송이씨가 그 이유를 털어놨다.

"어떤 모습으로든 (이 문제가) 해결이 되면 좋을 텐데, 끝나지 않고 남아 있으니 일상적으로 불편한 마음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좀 더 가까이서 지켜보고 싶고, 소식을 듣고 싶고, 내 행동이 도움 된다면 돕고 싶은 거죠."

24일 오후 서울역 3층 오픈콘서트홀에 마련된 KTX 해고 여승무원들의 농성장. '안전을 책임지는 승무원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이 눈에 띈다.
 24일 오후 서울역 3층 오픈콘서트홀에 마련된 KTX 해고 여승무원들의 농성장. '안전을 책임지는 승무원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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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의 외주화' 대법 판결... "승무원은 소화기도 만지지 말라?"

2004년 송이씨는 "사람과 만나는 일이 좋아서" KTX 1기 승무원이 됐다. 당시 이들을 뽑은 곳은 철도청(현 코레일) 자회사 '홍익회(철도유통의 전신)'였다. 1년 단위 계약직이었지만, 채용 기간 중 홍익회는 '직급 체계와 급여 제도를 조정해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공무원 신분에 따르는 모든 복지를 제공하겠다'는 취지의 홍보 영상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아림씨는 대한항공 승무원 합격 통지도 포기한 채 KTX 승무원 자리를 택했다. 일가친지들 모두 안정적인 근무 여건을 보장하는 공기업에 가라고 권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그는 몰랐다. 업무를 하청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며 비용을 줄인 덕택에 '꿈의 직장' 신화가 탄생했다는 것을.

KTX 승무원 입사 첫날 신입 사원 교육 당시에도 정규직 전환 기조는 변함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홍익회 소속이었는데, 코레일 임원이 교육장에 와서 우리에게 약속하더라"며 "'1년만 고생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고 한 말이 기억에 남아 일기장에 적어뒀다"고 말했다. 지급된 승무원 유니폼 가슴팍엔 코레일 배지가 달렸다. 이들은 약속을 철석같이 믿었다.

정규직으로 전환되리란 기대는 무참히 깨졌다. 코레일은 직접고용을 회피했다. 철도유통은 KTX관광레저(현 코레일관광개발)로 고용 계약을 넘겼다. '용역, 위탁, 협력업체'로 표상되는 고용 구조는 이들의 삶에 깊숙이 뿌리 내렸다.

아림씨는 해고된 뒤 한때 프리랜서 성우로 일하며 생계를 꾸렸다. 다달이 150만~180만 원 남짓 벌었다. 스물네살 무렵 KTX 승무원으로 입사해 탄 월급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송이씨는 현재 사회적기업 경영 컨설팅 업무를 맡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 직장도 1년짜리 비정규직 투성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지만 시당국에서 '위탁'이란 형태로 민간에 떠넘긴 게다.

KTX 해고 승무원 파견 사건을 둘러싼 대법 판결은 승객들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업무를 도외시했다는 비판에 맞닥뜨렸다. 대법원은 안전 부문 업무는 코레일 소속인 열차팀장 단 한 사람에게만 있다고 봤다. 승무원들은 승객들을 향한 인사, 안내방송, 승차권 확인, 객실 온도 조절 등 응대 업무에만 그친다고 판단한 게다. 여성 승무원이 일개 보조역으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열차 안에서 불이 나면, 승무원들은 소화기도 만지면 안 되는 건가요? 쉽게 얘기하면, 위급 상황에서 열차팀장을 뺀 승무원들은 그저 도망치면 된다는 논리겠죠."(미경씨)

해고 승무원들 모두 입을 모아 얘기했다. 자신들은 분명 안전 교육을 받았고 꾸준히 대피훈련을 수행했다고. 아림씨는 "새벽 열차에 오르기 전 열차팀장과 간단히 회의를 하고 비상시 대응 사항을 숙지했다"고 승무원 시절을 회고했다.

서울역 농성 둘째날을 맞은 지난 21일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철도노조에 '서울역 맞이방 선전전 중단 및 퇴거 요청' 공문을 하루에만 세 차례나 보냈다. “시설관리권을 침해하고 서울역을 찾는 고객에게 불편을 가중할 뿐만 아니라 철도 이미지도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으니” 농성장을 치우고 떠나라는 내용이었다.
 서울역 농성 둘째날을 맞은 지난 21일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철도노조에 '서울역 맞이방 선전전 중단 및 퇴거 요청' 공문을 하루에만 세 차례나 보냈다. “시설관리권을 침해하고 서울역을 찾는 고객에게 불편을 가중할 뿐만 아니라 철도 이미지도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으니” 농성장을 치우고 떠나라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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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거 공문' 하루 세 번 보낸 코레일... "대통령께 마지막 기대"

그러나 코레일은 KTX 해고 승무원들의 호소에 아랑곳 않는다. 서울역 농성 둘째날, 세 차례나 같은 내용의 공문이 왔다. "시설관리권을 침해하고 서울역을 찾는 고객에게 불편을 가중할 뿐만 아니라 철도 이미지도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으니" 농성장을 치우고 떠나라는 내용이었다.

이들은 마지막 기대를 걸었다.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에서 특단의 조치를 내릴 것인가, 문재인 대통령이 결단을 내릴 것인가.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이던 지난 5월 1일 철도노조와 'KTX 승무원 문제를 전향적으로 해결한다'는 요지의 정책협약을 맺은 바 있다. 다시, 김승하 지부장의 말이다.

"현 정부가 잘못된 현실을 바꿔줄 것이란 희망을 지니고 있어요. 하지만 언제까지 기다릴 수는 없겠죠.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시민들이 실망하는 순간이 분명히 올 겁니다. 지금의 높은 지지율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는가 하는 첫 관문은 KTX 승무원 문제 해결 여부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태그:#KTX해고여승무원, #코레일, #한국철도공사, #농성, #서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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