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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중립화장실.
 성중립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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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중립화장실'에 대한 오해

내가 다니는 성공회대학교에서 국내 대학교 중 최초로 교내에 성중립화장실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총학생회가 내건 공약 중 하나인데, '성중립화장실'이라는 개념이 아직 낯선 만큼 학내 구성원들에게 홍보하는 중이다.

교내 구성원들의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지만, 어떤 경로인지 언론보도가 나오더니 기사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 아래엔 '이런 거 할 시간에 공부나 하라'는 댓글이 달렸다. 성중립화장실에 대한 무지를 고스란히 표현한 내용이다. 어이가 없었고, 성중립화장실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를 느꼈다.

성중립화장실은 말 그대로 '성별 구분 없이 이용 가능한 화장실'이다. 영어로 'all gender restroom'(올 젠더 레스트룸)이라고 쓴다. 다른 표현도 있으나 이 표현이 성중립화장실의 취지를 가장 잘 설명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all gender'(올 젠더)의 범주에 남자와 여자만 있는 것이 아니란 거다.

세상엔 다양한 젠더가 존재한다. 우리 주변에 흔한 화장실은 남·여·남녀공용 이 세 가지뿐이다. 하지만 'all gender'라는 말은 이분된 젠더의 규범을 지운다. 세상에 남자 혹은 여자만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성중립화장실은 효용이 없어 보일지 모른다.

때문에 성중립화장실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는 바로 '남녀공용이랑 다를 게 무어냐'는 것이다. 하지만 남·여 두 가지로만 구분된 화장실 앞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고, 그런 사람들의 불편을 없애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성중립화장실이다.

성중립화장실, 절대 어렵지 않다

성중립화장실에 대한 논란을 정리하다 보면 사람들의 우려는 다소 복잡하게 뒤섞여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성의 용변 보는 소리를 옆칸에서 듣는 것이 불쾌해서 걱정'이라는 의견 밑에는 '기존의 남녀공용화장실과 다른 게 뭐냐'는 목소리가 있고, 성소수자 아우팅 아니냐고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 이용률이 낮을 거라며 이 시설이 필요한 사람들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사람도 있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거부반응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낯선 개념이라 처음엔 두려울 수 있겠지만, 실제 성중립화장실은 그렇게 어려운 존재가 아니다. 단언컨대 성중립화장실은 기존의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는 데 불편을 못 느끼는 사람들에게서 아무것도 앗아가지 않는다. 이 화장실은 그저 지금의 화장실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하나의 선택지가 될 뿐이다.

나는 성중립화장실을 사용해 본 적이 있다. "모든 성별이 이용하는 시설이니 앉아서 용변을 봐달라"는 안내가 붙은 1인용 화장실이었다. 안내 문구 한 가지 말고는 아주 익숙한 구조일 뿐이었다. 변기 하나, 세면대 하나, 휴지통 하나. 이는 주변의 음식점이나 카페에서도 흔한 모습이고, 지금 성공회대학교 총학생회에서 준비 중인 성중립화장실의 구조와도 흡사하다. 그래서 나는 총학생회의 공약을 듣고 쉽게 반가워할 수 있었다.

성공회대에 설치하려는 성중립화장실에는 장애보조시설도 포함돼 있다. 이러면 혼자 화장실을 이용하기 힘든 장애인들이 활동보조인과 함께 화장실을 이용하기 더욱 쉬워진다. 성중립화장실은 기존의 화장실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오히려 지금의 화장실이 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끌어안을 수 있다.

올해 시청광장에서 열린 2017퀴어문화축제에는 실제 성중립화장실이 등장했다. <한국일보> 영상(관련 링크)에서 PD는 직접 성중립화장실에 가보는데, 이용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다른 화장실을 이용할 때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성공회대학교 총학생회 '바다'에서 제작한 카드뉴스
▲ 성중립화장실 카드뉴스 내용 일부 성공회대학교 총학생회 '바다'에서 제작한 카드뉴스
ⓒ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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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중립화장실은 남·여로 이분된 공간 앞에서 쉽게 지워지는 존재들, 그리고 각 공간의 '금기'로 인해 배제되는 이들을 위한 대안이다. 그저 대안을 두겠다는 것인데 기존의 화장실을 이용하는 데 불편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굳이' 이 화장실의 등장을 두려워하고 막을 필요가 있을까? 사람들의 우려에 대한 나의 의견은 이렇다.

[첫째] 몰카에 대한 우려

이성의 용변 보는 소리가 옆칸에서 들리는 것이 싫다는 말 다음으로 가장 많이 보였다. 몰카가 설치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데 이 질문은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몰카는 지금 어디에서나 문제다. 화장실은 물론이고 원룸 건물 계단에 버려진 담뱃갑에도 설치된 바 있다.

몰카에 관해선 현대의 기술력이 상상을 뛰어넘는다. 종류도 다양하고 화질도 선명하다. 이 사태의 책임은 몰카가 이토록 성행할 수 있게 만든 주범에게 돌아가야 한다. 몰카를 만들고, 설치하고, 영상을 유출하고 공유하는, 그리고 '신고가 예방'이라는 어이없는 소리를 하는 쪽에 문제가 있는 거다. 성중립화장실은 잘못이 없다. 지금으로선 어떤 화장실에든 몰카가 설치될 수 있다. 몰카에 대한 대책은 성중립화장실 문제에만 국한할 게 아니라 포괄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둘째] 성소수자의 아우팅 우려

이건 솔직한 심정으로, 누가 성중립화장실을 이용하든 당신이 아무 생각 안하면 된다. 성중립화장실인 거지 '성소수자 전용' 화장실이 아니다. 앞서 계속 말했듯 누구나 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누군가가 성중립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을 봤다고 성소수자가 아닐까 의심한다면 그 생각이 몹시 차별적임을 알려주면 되지 않을까.

[셋째] 이용자가 적을 것이라는 생각

두 번째와 같이 성소수자만 이용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화장실 내에 세면대와 장애보조시설을 만들면(이런 시설은 상식적으로 설치되어야 한다) 장애인들도 이용할 수 있고, 유아보호시트나 기저귀 교환대를 설치하면 아이와 함께 외출한 보호자도 이용할 수 있다.

어디에 어떻게 설치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 화장실이 반가울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다. 우리가 주변에서 장애인을 많이 볼 수 없는 까닭은 장애인들의 활동을 제대로 보장한 시설이 없기 때문이지 장애인의 수가 적기 때문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성중립화장실이 없기 때문에 이용자가 적을 것처럼 보이는 것뿐이다.

화장실은 몹시 정치적인 공간이다

남·여로 구분된 공용화장실은 사회적인 젠더 억압을 상징한다. 세상에는 분명 남자도 여자도 아닌 사람들이 존재하고, 이들도 남자 혹은 여자와 다를 바 없는 한 사람으로 존중받을 충분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남·여 화장실은 이들의 존재를 지워버리며, 둘 중 하나의 범주에 '자연스럽게' 속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남성복 혹은 여성복을 판매하기 위해 제작된 마네킹을 보면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이상적인 신체가 어떤 모양인지 알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이런 몸이 되라고 우릴 부추기며, 그에 맞지 않는 이들을 낙인찍어 배제한다.

예를 들어, 여자 화장실에 '남자처럼' 보이는 사람이 출입하면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 쉽다. 최근 방영 중인 <청춘시대2>에 등장하는 한 인물은 키가 크고, 짧은 머리에 화장기 없는 얼굴을 하고 있다. "여자 화장실 들어가면 사람들이 놀라기는 하는데, 뭐 이젠 익숙해요"라는 대사에서 일상적으로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때 겪는 불편함을 엿볼 수 있다. 드라마 속 그 인물은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때 다른 사람들이 놀라지 않도록 머리를 길러야 할까? 그렇지 않다. 그 사람은 얼마든지 자기 맘대로 옷을 입고 머리를 짧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또 하나 언급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 최근에 여성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부치, 젠더질서의 교란자>를 보면, 사회적인 기준에서 '여성답지 못한' 여성들이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는 데에 얼마나 어려움을 느끼는지 알 수 있다. 부치는 쉽게 말해 '남성'처럼 보일 수 있는 외모의 여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사람들은 이들을 낯설어하며 존재 자체를 잘 모르거나 지우려고 든다.

그들은 분명 여성인 자신을 만족스러워하는데 '남자가 되고 싶어 한다'고 오해하거나, '과도기적인 현상'이라는 생각에 그들을 나이 어린 소년쯤으로 판단한다. (지금 이 원고를 두드리는 한글 파일에서조차 영화 제목을 쓰려고 하니 부치를 자꾸만 '붙이'로 바꿔버리는 것이 몹시 가슴 아프다.)

굳이 자신을 부치라고 정체화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몸매의 굴곡이 드러나지 않는 셔츠, 펑퍼짐한 바지, 짧은 머리에 화장하지 않은 얼굴 등을 한 여성이 여자화장실에 들어가면 다른 사람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분명 그것은 위험을 경계하는 행동이겠지만, 문제는 그 눈초리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는 거다. 상대가 여성이라는 것을 알아챘어도 불편함을 거두지는 않는다. 영화 속 인물은 자신이 화장실 칸 안에 들어가서 용변을 보는 동안 밖에서 "저 사람은 여자냐 남자냐" 하는 둥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고스란히 들어야 했다고 증언한다.

자신을 부치로 정체화한 인터뷰이가 자신의 경험을 말하고 있다.
▲ <부치, 젠더질서의 교란자>스틸컷 자신을 부치로 정체화한 인터뷰이가 자신의 경험을 말하고 있다.
ⓒ 여성인권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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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중립화장실은 인권의 문제

나는 지난 21일 여성인권영화제에서 위의 영화를 봤다. 그리고 누구든 이 영화를 본다면 성중립화장실의 필요에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화 상영 후 이어진 프로그램에서, 여성학자 김순남 교수는 세상에 남자·여자 화장실만 있는 것에 대해 "사회가 자꾸만 쉬운 방법을 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서 "지금 사회의 젠더 규범이 누군가를 억압해야만 작동하는 불안한 규범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외형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는 정체성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기저에서부터 억압하는 것이 젠더 이분법이다. 여자·남자로 나뉜 화장실만을 만들어놓고, 그 앞에서 고민하지 말고 어느 한쪽에 자연스럽게 속할 것,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이 사회에서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상에 남자와 여자만 있는 줄 알게 되고, 또 이 둘이 대칭되는 개념으로써 짝을 이룬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이성애 중심주의로 연결된다. 이분된 화장실 제도의 뿌리를 따라가면 여성과 남성의 존재만을 인정하며 그 둘의 결합으로 세상을 유지하려는 규범에 닿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엔 분명 다양한 삶의 형태가 있고, 지금 사회는 그런 사람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성중립화장실의 필요에 대해선 낯설게 느끼는 사람들은 이 중간에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의 내가 느끼지 못하는 불편함이라고 해서 그게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성중립화장실의 존재는 다양한 삶을 인정하는 것이며, 다양성을 인정할 때 우리가 잃게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른 사람의 인권을 존중할 때 나의 권리가 적어지는 일은 없다. 오히려 전반적으로 평등해지는 게 모두에게 이익이다. 그러니 조금은 두려움을 내려놓아도 좋을 것 같다. 성중립화장실은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맞다.


태그:#성중립화장실, #성소수자, #장애인,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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