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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 그리고 10만인 클럽 회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그동안 개인적인 이유로 수 개월간 연재를 올리지 못했음을 깊이 사과드립니다. 연재를 재개하오니 독자님들의 많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저는 2015년 6월 14일부터 23일까지 일본 순회강연을 마치고 6월 24일부터 7월 9일까지 북녘의 수양딸을 찾아 북한을 여행했습니다. 또 2015년 10월 초에도 북한을 한 번 더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연재 '수양딸 찾아 북한으로'를 통해 그 사이에 있었던 일을 전하려 합니다. - 기자 말

청천강을 거슬러 

 향산호텔에서.
 향산호텔에서.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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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17일 아침, 산채나물과 토장국으로 개운한 식사를 한다. 웨이트리스가 묻는다.

"잠은 잘 주무셨습니까?"
"네, 아주 편히 잘 쉬었어요."
"오늘 점심도 호텔서 드실 건가요? 원하시는 식사를 미리 말씀해주시면 준비해 놓갔습니다."

안내원 경미가 웨이트리스에게 "오늘 점심은 희천에서 할 예정"이라고 말하자 남편이 "평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러 호텔 야외식당에서 송어회를 한 번 더 먹었으면 좋겠다"라고 제안한다. 웨이트리스가 야외식당에 말해놓겠다고 한다. 다시 올 것을 약속하고 향산호텔을 나선다. 주위를 둘러보니 단풍이 한창이다.

 평안북도와 자강도의 경계. 오른쪽으로 청천강이 흐른다.
 평안북도와 자강도의 경계. 오른쪽으로 청천강이 흐른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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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태운 차가 평안북도와 자강도의 경계선에 다다르자 운전기사 아저씨가 차를 세운다. 경미가 차에서 내려 신분증과 증명서를 꺼내 들고 경비소 같은 곳으로 들어간다. 도와 도 사이의 경계선에는 짐과 승객을 태운 승합차가 손님을 기다리는지, 아니면 검문을 받는지 세워져 있다. 승객으로 보이는 아기 엄마가 등에 업힌 아이를 재우면서 차 주위를 맴돈다.

내가 어렸을 때 남한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시외버스를 타고 가노라면 검문소에서 멈춰섰다. 경찰과 헌병이 차에 올라와 승객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쳐다보다가 간혹 한 사람을 지목해 신분증을 요구하기도 했다.

 평안북도와 자강도의 경계.
 평안북도와 자강도의 경계.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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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강도를 흐르는 청천강.
 자강도를 흐르는 청천강.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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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강도에 들어선다. 1990년대 중반에 대기근이 들어 소위 '고난의 행군'이라는 고초를 겪을 때 자강도 주민들이 제일 심하게 고생을 했다는데,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논이라곤 찾아볼 수 없고, 주변엔 온통 산뿐이다. 오죽하면 석탄으로 국수를 만들어 먹었을까. '니탄'이라는 석탄으로 국수를 만들어 '니탄국수'라고 불렀단다. 그러나 가는 길은 정겹기 그지없다. 산과 산 사이로 청천강이 흐르고 도로변에는 코스모스가 피어 있다.

자강도 희천으로 가는 길은 청천강을 따라 자연 그대로의 강을 감상하는 여행이다. 강폭이 넓고 수심이 깊어 보이는 곳이 있는가 하면 수심이 얕고 강변에 자갈밭이나 모래사장이 있는 곳도 있다. 그물로 고기잡이를 하는 사람도, 낚싯대를 드리운 동네 사람들도 보인다. 장비를 갖고 물속에서 모래를 파는 것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경미의 말에 따르면 사금을 캐는 사람들이란다. 수정같이 맑은 물에 고기가 헤엄치고 강바닥에는 금이 쌓여 있다. 강 건너 단풍 숲 울창한 산을 바라보니 물에 비친 산이 비단결 같이 흐르는 강물 위에 수를 놓은 듯하다. 그야말로 금수강산이다.

 자강도의 교통표지판.
 자강도의 교통표지판.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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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은편 도로로 자강도의 2층 버스가 달려온다.
 맞은편 도로로 자강도의 2층 버스가 달려온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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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강도 희천 가는 길.
 자강도 희천 가는 길.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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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강도 희천.
 자강도 희천.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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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강도 희천의 아파트 모습.
 자강도 희천의 아파트 모습.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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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은 편으로 고급스럽게 보이는 2층 버스가 온다. 평양에서는 자주 봤지만, 북한의 산골에서 2층 시외버스를 보는 건 처음이다. 평양에 차량이 많이 증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방에도 시외버스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이동 인구가 많아졌다는 증거다. 늘어나는 휴대전화와 함께 교통수단의 급격한 증가는 북한 사회의 점진적 역동성을 의미한다. 

서서히 도시 모양을 갖춘 마을들이 나타난다. 희천시 초입에 들어서고 있다. 북한의 산골 도시치고는 상당히 깨끗하고 정리가 잘 돼 있다. 특히 다른 도시에 비해 건물에 페인트가 싼뜻하게 칠해져 있다. 평양 등 다른 도시의 아파트처럼 1층은 상점이고 2층부터는 주거용이다. 말하자면 주상복합 아파트랄까. 강과 산을 끼고 있는 희천은 아늑한 전원도시 같은 인상을 준다.

난생처음 보는 재미동포

 안내를 위해 나온 희천시 직원(가운데)과 지역 해설원(오른쪽).
 안내를 위해 나온 희천시 직원(가운데)과 지역 해설원(오른쪽).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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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구경을 위해 차가 광장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안내를 맡을 희천 해외동포위원회 직원들을 만나 함께 희천댐으로 간다고 경미가 알려준다. 잠시 시내관광을 하고 떠나자고 한다. 차량이 광장에 도착하자 희천시 직원과 해설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서로 인사를 나누는데 희천시 직원이 깜짝 놀라는 표정으로 내 어깨를 팔로 감싼다.

"오마나, 어케 우리 조선말을 이레 잘 하십니까? 야아~, 재미동포가 온다는데 말이 안 통하면 어카나 걱정을 많이 했드랬습니다. 여기는 관광객이 오는 곳도 아니고 또 재미동포는 처음입니다. 외국서 태어나 살면서 이레 우리말을 잘 하다니…."
"아, 네, 고맙습니다. 저는 남조선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마치고 미국으로 갔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우리말을 잘 하지요."

"기렇구만요. 우리는 고저 해외동포라 하면 왜정 때 왜놈들 피해 외국으로 간 동포들이나 그 자손들이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다나니. 기럼 남조선 동포십니까?"
"그런 셈입니다. 다만 국적이 미국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북조선에도 올 수가 있답니다."
"야아~, 어쨌든 재미동포는 처음입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네, 반갑습니다. 저도 자강도는 처음입니다."

다른 북한동포들과 마찬가지로 큰 호기심을 가지고 온갖 질문을 쏟아낸다. 항상 같은 질문들이다. 가족 구성, 직업, 먹는 음식에 대해 그리고 미국에서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탄압을 받지 않았는지 등등.

"미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서울에도 갈 예정이냐"라고 묻는다. '입국 금지'가 돼 가지 못한다는 말 대신 "이번에는 시간이 없어 서울에 들리지 않고 바로 미국으로 돌아갈 거예요"라고 답했다.

해설원이 멀리 한 건물을 가리키며 CNC 기계를 생산하는 회사라고 소개한다. 이름이 잘 기억이 나질않는데 '연하기계'라는 것 같다. 겉으로 봐선 공장이 아닌, 사무실 건물처럼 보인다. 해설원이 CNC 기계에 대해 축이 몇 개라는 등 설명을 이어가는데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그냥 '기계를 만드는 기계' 정도로 이해했다.

차에 오르니 희천시 직원과 해설원이 "다음에 꼭 또 오시라"는 말과 함께 손을 흔든다. "다시 오겠다"는, 지킬 수 없을 것 같은 약속을 인사말로 남기며 광장을 떠난다.

"맨손으로 세운 댐"

 희천댐 가는 길.
 희천댐 가는 길.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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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시내를 벗어나 희천댐으로 향한다. 마을의 민둥산에는 갓 심은 어린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대충 10년쯤 후엔 북한의 마을에서 민둥산을 볼 수 없길 기원한다. 자강도는 공업지구라더니 공장은 보이질 않고 주변은 평화로운 마을뿐이다. 경미의 말로는 도내 여러 곳에 공업지대가 형성이 돼 있는데, 주요시설은 대부분 지하 깊숙한 곳에 있다고 한다. 공습에 대비해 그럴 것이라 쉽게 짐작된다.

강을 따라 올라가는데 여러 작은 댐들이 나타난다. 알고 보니 희천댐은 열 몇 개의 댐으로 이뤄져 있으며 지금 우리가 찾아가는 댐은 '희천 제2발전소'란다.  

 희천댐. 이곳에서 약 60km 거리에 전천군이 있다. 2017년 7월 28일 발사된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4호의 2차 발사 장소가 바로 전천군 무평리다.
 희천댐. 이곳에서 약 60km 거리에 전천군이 있다. 2017년 7월 28일 발사된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4호의 2차 발사 장소가 바로 전천군 무평리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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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천댐 위에서 바라본 청천강.
 희천댐 위에서 바라본 청천강.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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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언덕을 올라서자 엄청난 댐이 눈에 들어온다. 상상한 것보다 큰 규모에 압도당한다. 댐 아래 '열 번 확인 한 번 조작'이라는 큰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댐 위에서 청천강을 바라본다. 수위가 많이 낮아져 물까지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그동안 내가 보아온 청천강은 그 규모가 수나라의 백만 대군을 쓸어버릴 정도로 커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댐 위에서 바라보니 이 정도 수량이라면 우중문의 대군을 제압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어 경미에게 물었다.

"이 정도의 수량이면 수나라의 대군을 충분히 물리칠 만하네. 을지문덕 장군께서 이곳 어디쯤에 둑을 쌓아 수나라의 군대를 물리치셨겠지?"
"살수는 청천강이 아닙니다."
"살수가 청천강이 아니라고? 그럼 어디야?"
"여러 설이 있습니다만 중국의 요하가 게 중 하나라고 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2011년 10월 첫 북한관광 때, 청천강을 바라보면서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을 연상하며 얼마나 감격했었던가! 경미의 말을 듣고 나니 갑자기 공허한 느낌이 다가온다.

 희천발전소 부소장과 함께.
 희천발전소 부소장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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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천발전소와 그 주위를 설명하는 발전소 부소장(맨 왼쪽).
 희천발전소와 그 주위를 설명하는 발전소 부소장(맨 왼쪽).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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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술한 작업복 차림의 한 젊은 남성이 자신을 발전소의 부소장이라고 소개한다.

"안녕하십니까. 이곳 발전소의 부소장입니다. 멀리 미국서 동포가 이곳까지 찾아주시니 정말 반갑습니다. 기래 조국(북한)은 많이 다녀 보셨습니까? 음식이나 잠자리는 불편하지 않으십니까?"

부소장의 인상이 아주 영리하고 날카로우면서도 매우 세심하다. 댐 주위 이곳저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자세하게 설명한다.

"우리나라가 뭐 장비가 제대로 있습니까 아니면 물자가 풍부합니까. 온 인민이 일심단결하여 돌멩이 하나 하나 어깨에 둘러메고 나르면서 건설을 하였습니다. 기것도 2년여 만에…. 외국 기술자들도 와서 보고는 믿지 못하겠다고 말하곤 합니다."

 착공일과 완공일을 알려주는 안내 표지.
 착공일과 완공일을 알려주는 안내 표지.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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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소장이 화강암으로 세운 표지석을 가리킨다. '희천언제'라는 글씨 아래 '착공 주체 98(2009)년 3월 25일' '완공 주체 100(2011)년 4월 9일'이라고 적혀 있다.

나는 표지석 위의 '희천언제'라는 말이 무슨 말인가 궁금했다. 그 아래 착공일과 완공일이 적혀 있으니 '언제'라는 말이 혹시 시간을 가르키는 부사가 아닐까 잠시 생각해봤으나 그러기엔 뭔가 어색하다.

"부소장님, '언제'가 무슨 말이에요?"
"아, '언제'란 '물막이'라는 말입니다. 영어로 댐(dam)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희천언제'란 '희천댐'의 우리말인 것이다. '댐'이란 말만 써온 내게는 아주 생소한 우리말이다.

 하굣길의 자강도 어린이들.
 하굣길의 자강도 어린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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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천언제' 구경을 마치고 점심식사를 위해 희천시내로 돌아간다. 하굣길의 어린아이들이 도로 한 쪽에 걸어간다. 자강도 아이들의 가방에도 디즈니 만화의 캐랙터가 그려져 있다. 핑크색 상하의를 입은 아이가 길을 가다말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다. 함께 가던 동무가 뒤돌아 서서 쳐다보며 느긋하게 기다린다.

점심식사를 위해 희천 시내에 있는 한 '려관(여관)'에 들어선다. 여관치곤 규모가 꽤 커 보인다. 복도에는 이 국영 여관의 역사를 말해주는 사진들과 함께 여러 글귀가 전시돼 있다. 고난의 행군 시절 국가로부터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했음에도 지배인이 여관을 잘 경영해 국가로 부터 상을 받고 오늘에 이르렀다는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희천시 한 '려관(여관)'의 식당에서.
 희천시 한 '려관(여관)'의 식당에서.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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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강도 산나물들, 닭고기 조림, 가재미 튀김, 김치, 샐러드 등과 함께 후식으로 송편을, 그리고 맥주와 포도로 만들었다는 '인풍술'을 주문했다. 북한 포도주라 생각하고 한 모금을 입에 넣고 삼켰다. 순간 독한 알콜 냄새가 입안 가득 진동하더니 금방이라도 목구멍이 타들어가 버릴 것만 같다. 얼른 물을 마시고 병을 들여다 보니 알코올 도수가 무려 40도나 된다. 포도를 주원료로 만든 독한 술이다.

함께 올 줄 알았던 발전소 부소장이 보이질 않는다. 경미에게 물으니 근무 중이라 자리에 함께할 수 없단다. 무척 아쉽다. 꼭 식사를 대접하고 싶었는데 말이다.

희천을 뒤로 하고 차에 오른다. 도로를 따라 농가가 눈에 들어온다. 마을 주변 민둥산에는 역시 심은 지 얼마 안 돼 보이는 듯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밭에는 수확을 마친 옥수수대들이 펼쳐져 있다. 볕에 말리고 있는 것 같다. 저 옥수수대를 말려서 어디에 쓸까. 땔감으로 밖에는 용도가 없을 것 같은, 밭에 널린 누런 옥수수대를 바라보면서 자강도 동포들의 안녕과 행복을 빈다.

 자강도 농촌 마을.
 자강도 농촌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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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북한사람?"... 내 대답은

향산호텔 웨이트리스에게 한 약속대로 묘향산으로 향한다. 향산호텔의 야외식당에 도착하니 외국인 관광객들이 자리하고 있다. 웨이트리스가 뜰채를 가리키며 원하는 송어를 잡아와도 좋다고 일러준다. 뜰채를 들고 칠색송어를 뜨려고 하자 한 외국인 관광객 어린이가 자기도 하고 싶다며 뜰채 손잡이를 함께 잡는다. 송어가 얼마나 빨리 움직이던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웨이트리스의 말에 의하면 잡히지 않으려고 많이 움직이는 송어가 살도 더 쫄깃쫄깃하고 맛도 좋단다. 겨우 2마리를 잡아 주방에 전했다.

 향산호텔 야외식당에서 외국관광객 어린이와 수족관 칠색송어를 그물로 뜨며..
 향산호텔 야외식당에서 외국관광객 어린이와 수족관 칠색송어를 그물로 뜨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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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어회를 뜨는 향산호텔 야외식당 종업원들.
 송어회를 뜨는 향산호텔 야외식당 종업원들.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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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산호텔 야외식당 송어회.
 향산호텔 야외식당 송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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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어회를 곁들여 맥주를 마신다. 오후의 햇볕이 식탁 위로 스며든다. 좀 전에 송어를 함께 뜬 외국 어린이가 우리의 테이블로 다가와 내게 말을 건다.

"Are you a North Korean? You are not, right? (당신은 북한 사람이에요? 아니지요?)"
"No, I am not. I am a Korean, though. (아냐. 그렇지만 나는 코리안이야.)"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빤히 쳐다본다. 겉모습은 좀 다른데 식당 종업원들과 우리말을 주고받으니 이상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이 어린아이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갑자기 답답해진다. "세상 여러 나라에 많은 코리안들이 살고 있다"라고 대답해 줬다.

티끌 하나 없을 듯한 묘향산의 가을 공기가 가슴속을 확 트이게 한다.

주일을 기다리며 

 휘발유 구입표.
 휘발유 구입표.
ⓒ 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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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오른편으로 지는 북녘의 태양을 바라보며 평양으로 돌아간다. 차의 연료 계기를 보니 휘발유를 넣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차에 기름을 넣어주겠다며 주유소로 가자고 하니 운전기사 아저씨가 "자동차 사용료에 기름값도 포함돼 있다"라면서 거절한다. 남편이 윽박지르다시피 해서 주유소로 간다. 경미가 안내하는 대로 주유소에 들어가 휘발유 구입표를 샀다. 휘발유를 부피가 아닌 무게로 계산한다. 15kg 구입표 4장을 사서 운전기사에게 줬다.

내일은 일요일이다. 경미가 묻는다.

"내일은 어느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시렵니까? 봉수교회로 갈까요, 아니면 칠곡교회로?"
"지난번에는 칠곡교회로 갔으니 이번에는 봉수교회로 가자."

기억에 남는 몇몇 신도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대동강변의 한 식당에서 하루를 마감한다. 자강도를 따라 흐르는 푸르른 청천강을 마음속에 떠올리며.

 서해로 기우는 북녘의 태양.
 서해로 기우는 북녘의 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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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음대 졸업.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 음악박사. 전직 성악교수 이며 크리스찬 입니다. 국적은 미국이며 현재 켈리포니아에 살고 있습니다. 2011년 10월 첫 북한여행 이후 모두 9차례에 걸쳐 약 120여 일간 북한 전역을 여행하며 느끼고 경험한 것들 그리고 북한여행 중 찍은 수만 장의 사진들을 오마이뉴스와 나눕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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