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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주> 세월호 참사에서 언론은 무기력했다. '기레기'라는 조롱도 받아야 했다. 반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후 한국의 언론은 달라졌을까. <오마이뉴스>는 재난을 겪은 시민들을 만났다. 국내외 기자들과 전문가도 만났다.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로 한국 언론의 재난 보도를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가 언론의 재난 보도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잘못된 재난 보도의 피해를 보는 건 결국 우리이기 때문이다.

2016년 4월 14일 규모 6.5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일본 구마모토. 한 달 뒤 한국에서는 동일한 지진을 가정하고 벌이려던 훈련용 팩스를 실제 지진으로 오인한 언론사들의 오보 경쟁이 이어졌다.
 2016년 4월 14일 규모 6.5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일본 구마모토. 한 달 뒤 한국에서는 동일한 지진을 가정하고 벌이려던 훈련용 팩스를 실제 지진으로 오인한 언론사들의 오보 경쟁이 이어졌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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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2시 강원도 홍천군에서 규모 6.5의 강진이 발생했다."

속보가 쏟아지기 시작한 건 2016년 5월 18일 오후 5시 20분을 조금 넘겼을 때였다. 삽시간에 무려 70여 건이나 쏟아졌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알아차렸겠지만, 언론이 현대의 과학 기술로는 예측할 수 없다는 지진을 하루 앞서 보도한 셈이다.

기상청 직원이 실수로 보낸 '재난 대응 안전 한국 훈련' 관련 팩스를 각 언론이 앞다투어 보도하면서 생긴 일이었다. 물론 다음날 실제 지진도 일어나지 않았다. '세월호 전원 구조'라는 뼈아픈 오보를 냈던 언론은 이때도 다음 날 발생한다는 강진을 아무런 고민 없이 속보로 내보냈다.

누구보다 앞서 속보 경쟁을 벌였던 언론은 사실을 알고 난 뒤 기상청이 "얼이 빠졌다"며 기사로 비난을 퍼부었다. 하지만 스스로에 대한 칼날을 무디기만 했다. 결국 기상청 지진화산감시과 등 관련 직원 3명이 징계를 받는 선에서 이 사건은 넘어갔다.

"기억하라" 기자 교육에 공들이는 일본

일본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의 지역신문 <이시노마키히비신문>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 피해를 기억하기 위한 기록관을 운영 중이다. 이곳에는 당시 취재 기자들이 쓰던 부서진 카메라와 불에 그을린 취재 완장 등도 전시하고 있다.
 일본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의 지역신문 <이시노마키히비신문>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 피해를 기억하기 위한 기록관을 운영 중이다. 이곳에는 당시 취재 기자들이 쓰던 부서진 카메라와 불에 그을린 취재 완장 등도 전시하고 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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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의 언론은 어떻게 다를까? 타나카 아츠시(田中淳) 도쿄대학 종합방재정보연구센터장은 "일본은 감정보다는 지식에 근거한 보도를 한다는 게 강점"이라고 말했다. 특히 다나카 센터장은 언론사와 기자들의 '노력'을 높이 샀다.

"일본의 각 언론사와 기자들은 공부를 굉장히 열심히 합니다. 메커니즘 등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재해 보도를 할 때 기상청 보도만 하는 게 아니라 각 회사 내에 전문가가 한 명씩 있어요. 전국에는 카메라가 다 있죠. 그 카메라를 통해 사실 확인을 하고 정보를 주민들에게 전달하게 됩니다."

206개 회원사가 가입한 일본민간방송연맹도 매년 11월이면 젊은 기자들을 한 곳에 불러 모아 분야별 토론회를 연다. 전국에서 온 기자들은 1박 2일 동안 각종 현안을 놓고 토론을 벌이는데 그 중 빠지지 않는 프로그램이 바로 재난 분야이다.  

언론사 내부에서도 재난 보도의 경험을 후배 기수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중시한다. 각종 재난을 취재한 경험이 있는 <산케이신문> 사회부의 토요요시 히로히데 (豊吉広英)기자는 "재난을 통해 쌓은 경험을 축적하고, 경험을 후배들에게 교육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언론사 내부의 교육 프로그램은 뜻밖의 대형 재난이 발생했을 때 진가를 발휘한다. <아사히신문> 기자로 오랫동안 일한 이가사리 코지(五十嵐 浩司) 오쓰마여자대학 커뮤니케이션문화학과 교수의 말이다.

"한신대지진의 피해지역이던 고베신문은 지진과 관련한 지식과 피해를 아직도 젊은 사람에게 교육하고 있습니다. 동일본대지진 때는 지진이 너무 커서 오사카지사에서도 도와주러 왔는데 그때 오사카에서 온 분들의 지식이 정말 많아서 도움이 컸습니다."

지역 사회 치유에 힘쓰는 일본 언론들

일본 동북 지방 최대 일간지 <가호쿠신보>의 센다이 본사 편집국. 신문은 지금도 동일본대지진 관련 기획을 이어 나가고 있다.
 일본 동북 지방 최대 일간지 <가호쿠신보>의 센다이 본사 편집국. 신문은 지금도 동일본대지진 관련 기획을 이어 나가고 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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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언론이 재난에 대한 교육을 신경 쓰는 이유는 매우 간단하면서도 분명하다. 재난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되고, 다시는 이런 재난으로 피해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 때문이다. 일본 도호쿠(東北) 지방의 최대 신문인 <가호쿠신보>의 센다이 본사에 들어서면 동일본대지진 당시의 기록을 크게 전시하고 있다.

동일본대지진 당시 피해가 가장 컸던 동북지방이었던 만큼 <가호쿠신보> 본사도 피해가 막심했다. 신문 제작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인근 <니가타일보>의 윤전기로 신문을 발행했다. 재난 상황에 대비해 미리 협정을 맺어 놓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회사의 남은 휘발유를 모아 취재 차량을 현장에 급파했다. 신문사의 사투는 '내일을 포기하지 않아, 잔해 속의 신문사 <카호쿠신보>의 가장 긴 하루'라는 제목의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지금도 이 신문사에 들어온 신입 기자들이 반드시 찾아야 하는 곳은 후쿠시마 원전이다. 참상을 보고 깨닫기 위해서다. 북부 지방에 있는 지방지이지만 지난해 1000km가량 떨어진 남쪽 끝자락 구마모토에서 지진이 일어나자 취재진을 보내 동일본대지진의 뼈아픈 경험이 반복되고 있지 않은지를 살폈다.

보도국 현장취재반 안에는 별도의 재해부를 두고 운영하고 있다. 동일본대지진과 관련한 각종 기획도 지금까지 이어나가고 있다. 타마오우 마사치카(玉慮雅史) <가호쿠신보> 재해부장에게 지방지가 왜 이런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물었다. 

"인간은 시간이 지나면 과거의 기억이 옅어지게 됩니다. 우리 역시 지금의 우리를 모르는 세대가 많아질 거예요. 2011년 대지진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이 벌써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됐거든요. 그 아이들만 해도 이 일을 잘 알지 못하죠. 그런데 인간은 재난이 일어나고 나서야 피해를 느낍니다. 재난이 타인에게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다는 걸 생각하게 해야 합니다"

기자 6명 동네 신문사가 강조하는 '기억과 기록의 의무'

2011년 동일본대지진 당시 한 주민이 <이시노마키히비신문>을 보고 있다. 쓰나미로 윤전기가 침수되는 피해를 입은 신문사는 손으로 쓴 벽보 신문을 만들어 대피소에 부착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당시 한 주민이 <이시노마키히비신문>을 보고 있다. 쓰나미로 윤전기가 침수되는 피해를 입은 신문사는 손으로 쓴 벽보 신문을 만들어 대피소에 부착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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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 당시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본 곳이다. 작은 어촌 마을에 쓰나미가 덮치면서 3200명이 사망했고, 420명이 행방불명됐다. 이곳에 올해로 창사 105년을 맞은 작은 지역신문 <이시노마키히비신문>이 있다. 기자 6명이 있는 이 지역신문은 지금도 시내 중심지에 기록관을 운영 중이다.

기록관에서 눈길을 끄는 건 손으로 쓴 대자보 형태의 벽보이다. 쓰나미가 덮치며 신문사의 심장인 윤전기까지 물에 잠기자 기자들은 일주일 동안 손으로 벽보 신문을 만들어 대피소와 시내 편의점에 부착했다.

지금은 독자들의 마음까지 복구하는 게 이 신문사가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부분이다. 대지진 당시 보도부장이었던 타케우치 히로유키(武内宏之) 상무이사는 지역의 작은 신문사라고 재난을 기억하고 이를 치유하기 위한 역할을 피해갈 수 없다고 강조한다.

"지금의 사례로 이후 세대가 피해를 겪지 않도록 하는 건 중앙언론이든 지역언론이든 모두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큰 지진이 일어난 걸 덮지 않고 다음의 지진에 대비해 지금까지 있었던 걸 배우고 전달해나갈 겁니다. 그게 이시노마키에 있는 저희가 해야 할 일입니다."

덧붙이는 글 |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태그:#재난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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