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는 7월 13일부터 10월 16일까지 100일 프로젝트로 '당신이 기다리는 다큐멘터리 제작자가 되어주세요 600'(당기다 600)을 진행합니다. 인권활동과 다큐멘터리 제작을 이어가기 위해 안정적인 활동비를 확보하고 아픈 활동가와 지친 활동가에게 안정적인 쉼을 제공하기 위한 프로젝트입니다. [편집자말]
 2014 여의도 기륭집회에서 연대활동 중인 곽이경님이 깃발을 들고 있다.

2014 여의도 기륭집회에서 연대활동 중인 곽이경님이 깃발을 들고 있다. ⓒ 곽이경


이미 연분홍의 기라성(?)같은 친구들이 연분홍치마와 함께 해달라는 요청을 다양한 이야기로 풀어냈는데 나는 어떤 얘기를 할 수 있을까 고민이다. 연분홍치마와 오래 함께 해왔다고 할 수 있지만, 생각보다 서로 막역한 대화를 나누고 살진 못했다. 연분홍치마를 위해 뭐라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역시 김일란 감독의 투병이 알려지면서부터다. 평소에 잘할걸, 후회된다. 일란이 투병 후 친구들에게 띄운 편지를 읽었다. 일란스럽다. 사람들 마음을 세세하게 챙기고, 자기 마음도 담담하게 돌아본다. 물론 폭풍 같은 시간의 연속이겠지만, 그래서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인권운동가 김일란이지 싶다. 연분홍 사람들이 또 그렇게 조심스럽고 세심해서 사랑스럽다. 난생처음 사랑스러운 건! 아니다.

2004년,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옛 동인련) 사무실이었던 동자동 옥탑방에서 처음으로 "성적소수문화환경을 위한 모임 연분홍치마"를 만났다. 언뜻 이해되지 않는 이름이었다. 성적소수문화환경은 또 뭐고 이름은 왜 또 '연분홍치마'일까?

일란을 처음 만난 장소는 용산 참사가 일어난 남일당 건너편 건물 옥상이었다. 카메라를 들고 집회하는 사람들을 찍고 있었다. <두 개의 문>은 예상하지 못한 다큐멘터리였다. 여성도 성 소수자도 나오지 않는 이 영화를 왜 연분홍치마가 만든 걸까. 그날의 남일당 건물로 관객과 함께 진입하는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머리 아프다는 사람들이 꽤 있었을 정도로, 철거민 대 경찰의 이분 구도에 갇히지 않으면서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둘 모두의 자리에 서게 한다. 누가 피해자인가? 복잡한 맥락을 왜곡하거나 선별하지 않은 채 질문을 던진다. 나는 후에 이 영화에 관한 연분홍치마 인터뷰를 보게 됐는데, 그제야 무릎을 '탁' 쳤다.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두 개의 문>은 관점의 철학, 페미니즘에 기초한 영화다. 관점의 힘은 용산 참사와 국가폭력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분위기를 바꾸었다.

커밍아웃 3부작 중 하나로 2008년도에 제작된 < 3xFTM >은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다. 세 명의 FTM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를 담아낸 이 다큐멘터리는, 여전히도 트랜스젠더를 뭉뚱그려서 동일한 집단으로만 바라보던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트랜스젠더가 일을 구하기 어려운 사회적 조건에 놓인 것은 사실이지만 모두가 같은 스토리로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니다. 한명 한명의 사람이 세상과 상호작용하며 사는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를 통해, 나는 성 소수자 노동자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이들의 삶을 전달하자고 마음먹게 되었다. 그래서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그 느낌을 잊지 않으려 한다. 세 명의 트랜스젠더들이 내게 말을 걸었고, 그들로부터 출발한 내가 다시 성 소수자 노동자들에게 말을 거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 <종로의 기적> 상영회 포스터.

영화 <종로의 기적> 상영회 포스터. ⓒ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종로의 기적> 이야기는 꼭 해야 한다. 행성인은 연분홍치마에 많은 빚을 졌다. 평범한(?) 게이 네 사람의 이야기인 <종로의 기적>은 많은 사람을 웃고 울렸다. 이 영화를 통해 행성인 활동을 시작하거나 후원을 하게 된 사람들이 많다. (그러니 실제로도 빚이 많은 셈!) 종로의 기적은 '공감의 기적'이다. 좀 된 일인데, 종로의 기적 개봉 당시 한 노동운동가가 종로의 기적을 보게 된 얘기다. 종로의 기적을 보자고 한 배우자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가 "게이들이 섹스하는 게 보기 싫어서"였다고. 근데 막상 끌려간 극장에서 그는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동안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고 한다. 지금은? 소수자를 존중하고 연대하는 좀 더 멋진 노동운동가가 되었다. :)

<종로의 기적>이 뭐길래 용기를 냈을까? 종로3가 낙원동 풍경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우리를 평범한 게이들의 삶 속으로 데려다 놓는다. 그런 익숙한 온기를 갖고 시작한 영화는 성 소수자들에게 익숙하지만, 비밀스러운 골목 어귀에서 종로의 기적 주인공들을 마주치게 했을지 모른다. 아무튼, 이 영화는 용기가 되었고, 잘 모르는 이들을 한 발짝 다가서게 하는 공감의 모티브가 되었다.

<플레이온>이나 <안녕 히어로>는 노동자들 이야기다. 그것도 조끼 입은 노조원들 얘기다. 하나는 처음 노조를 만드는 노동자들의 얘기, 다른 하나는 기나긴 해고 투쟁을 벌이는 노동자의 아들 이야기. 얼마 전 만난 노조 조합원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약 5년 전쯤 다니던 회사에서 노조를 만들기 시작한 그는 살면서 그때만큼 행복해서 미쳐있던 순간이 없다고 회고한다. 저녁에 퇴근하면 2시간을 차를 달려 신규 조합원들을 만나고 새벽에 귀가해 쪽잠 자고 출근하는, 일상이 정말 행복했다는 그의 눈빛이 꿈꾸는 듯 빛났다. 노조를 설립하는 건 힘들고, 팍팍하고 지루한 현실 속에서 순간 빛나는 '노조원' 한 명 한 명이 지닌 열정의 온도를 전달하는 것이 연분홍치마 영화의 주인공들이다.

연분홍치마는 영화와 기록을 통해 우리를 둘러싼 대기의 온도와 질량을 바꾸고 있다. 좀 더 숨통이 트이도록,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도록, 그렇게 연분홍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어가고 있다. 다양한 경험과 정체성이 교차하고 평등과 다양성이 숨 쉴 수 있는 대기를 만드는 것이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다. 기왕이면 연분홍 색깔로!

소수자가 숨 쉴만한 세상을 만드는 일은 너무도 중요하다. 연분홍의 숨통을 트이는 후원이 그 일을 이루는데 큰 보탬이 된다. 일단은 9월 28일 연분홍치마 후원주점에서 숨통을 틔워보시라.

연분홍치마와 곽이경 민주노총 대외협력부장과의 인연
2004년 서울역 동자동 옥탑방 행성인(옛 동인련) 사무실에서 연분홍치마를 처음 만난 후 지금까지 다양한 현장에서 함께 해왔다. 연분홍치마는 성소수자인권운동에서는 투쟁의 내밀한 고민까지 나누는 소중한 동지들이다. 제가 민주노총에서 연대사업을 하다보니 또 연분홍을 많이 만나는 곳이 다양한 투쟁현장이다. 박근혜정권 퇴진 투쟁과정에서는 매일같이 형광색조끼를 입고 뛰는 연분홍 활동가들을 만났다. 차갑게 굳은 저녁도시락을 어두운 천막에서 허겁지겁 비우던 모습이 생각난다. 국가폭력의 현장, 노동자들의 투쟁 등 셀 수 없는 현장이 연분홍과 나를 이어주는 현장이다.


덧붙이는 글 <난생처음 사랑스러운 연분홍치마 후원주점>
일시: 2017년 9월 28일(목) 오후 5시~12시
장소: 하이델베르크하우스 신촌(서울시 서대문구 창천동 53-3, 지하 1층)
문의: 02-337-6541 / ypinks@gmail.com
후원공식계좌: 우리은행 1006-701-255845
연분홍치마 함께 하는 사람들: <연분홍치마의 친구들> "진분홍치마"
곽이경 연분홍치마후원주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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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는 여성주의 감수성을 바탕으로 현장에서 연대하며 다큐멘터리를 제작합니다. 마마상, 3XFTM, 레즈비언 정치도전기, 종로의 기적, 두 개의 문, 노라노, 공동정범, 안녕히어로, 플레이온, 무브@8PM, 너에게 가는 길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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