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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육아, 가사노동 등을 도맡아 하는 모습입니다. 성별에 따라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아이가 있는 여성은 집안에 갇힌 납작한 존재로 그려지는 걸까요? 여기, 사회가 그어놓은 선을 뛰어넘고 제 목소리를 내는 엄마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교육 개혁·정치·여성주의 등의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합니다. '엄마의 영역'은 정해져 있지 않다는 당연한 명제를 몸소 증명하는, 'OO하는 엄마들'을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지난 8일 서울 노량진동 청화병원을 찾은 서울대 보건대학원 연구교수 김선미(37)씨(오른쪽)가 동료 이진화(37)씨(왼쪽)와 정답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진화 씨는 예정보다 3주 일찍 딸아이를 낳았다.
 지난 8일 서울 노량진동 청화병원을 찾은 서울대 보건대학원 연구교수 김선미(37)씨(오른쪽)가 동료 이진화(37)씨(왼쪽)와 정답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진화 씨는 예정보다 3주 일찍 딸아이를 낳았다.
ⓒ 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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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보다 3주 일찍 아기를 낳았다. 몸무게 2.7㎏, 딸아이다. 다음 주까지 강의 교재를 정리하려던 계획은 완전히 어그러졌다. 서울대 디자인학부 박사과정을 수료한 이진화(37)씨가 한 손을 허리에 짚은 채 뒤뚱뒤뚱 병원 복도를 걸었다. 두 겨드랑이엔 얼음주머니를 꼈다. 몸에 열이 올랐다. 젖몸살이 났다.

젖을 만들고 내보내는 조직인 '유선'에 염증이 난 게다. 모유가 제대로 나오지 않고 막힌 탓이다. 두 시간 간격으로 수유를 하는데, 아이가 원체 힘이 없는 통에 젖을 물려도 제대로 먹질 못한단다.

대학원 동료 김선미(37)씨와 서은수(39)씨가 그의 출산 소식을 듣고 지난 8일 서울 노량진동 청화병원을 찾았다. 선미씨는 두 팔에 한아름 선물을 안고 있었다. 모유를 미리 짜 저장하는 것을 돕는 '유축기'를 비롯해 손목 보호대, 손수건이 눈에 비쳤다.

"이거는 별거 아닌데, 선물이에요. 나중에 혹시 수유패드 쓰실까 해서 가져왔어요. 우리 집에는 훨씬 많이 있어요."

선미씨가 멋쩍은 웃음을 짓자 그는 활짝 밝은 표정으로 화답했다.

"그래요? 고마워요! 자기한테는 내가 손수건 한 장 새로 사줘야겠네."

지난해 교육부가 펴낸 통계연보에 따르면, 전국 대학원에 다니는 여성 학생은 16만 3179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산모들의 평균 출산연령 32.4살을 넘는 여성 대학원생은 7만 596명으로 43.3%를 차지한다. 서울대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다. 1만 대학원생 중 2천여 명 이상이 자식을 키우거나 부모가 될 가능성이 있는 기혼자들이다.

우수한 교육을 거친 전문직 여성 연구인력은 자신의 경력을 다지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사회 진출을 노리면 어김없이 '독박육아'의 늪에 빠진다. 가족과 지인들이 뒷바라지해도 사실상 엄마 혼자 출산과 육아를 도맡는다. 학교·정부 차원의 지원과 배려는 보잘것없다. 그래서 뭉쳤다. 5년 전 서울대에서 석·박사 과정을 다니는 부모 대학원생들이 모임을 꾸렸다. 이른바 '맘인스누(Mom in SNU)'다.

지난 8일 서울 노량진동 청화병원에서 서울대 디자인학부 박사수료생인 이진화 맘인스누 임시대표(37)가 대학원 동료 김선미(37)씨로부터 모유를 미리 짜 저장하는 것을 돕는 ‘유축기’를 비롯해 수유패드, 손목 보호대, 손수건 등을 선물로 받았다.
 지난 8일 서울 노량진동 청화병원에서 서울대 디자인학부 박사수료생인 이진화 맘인스누 임시대표(37)가 대학원 동료 김선미(37)씨로부터 모유를 미리 짜 저장하는 것을 돕는 ‘유축기’를 비롯해 수유패드, 손목 보호대, 손수건 등을 선물로 받았다.
ⓒ 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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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마저 "야, 학원 뺑뺑이 돌려"

맘인스누가 결성되기까지는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석사과정에 몸담았던 서정원(35) 전 대표의 공이 컸단다. 2012년 2월 관악캠퍼스 건물에 전단이 나붙었다. 학업과 육아를 병행하는 엄마들끼리 만나 서로 고민을 나눠보자는 제안이었다. 비슷한 시기 교내 홈페이지 게시판에도 정원씨의 글이 올라왔다.

이내 정원씨는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카페를 열었다. 개설 일주일 만에 30명을 웃도는 대학원생들이 가입했다. 현재 295명의 회원이 활동 중이다. 시간강사로 대학 강단에 오르는 이부터 실험실 연구원 일을 떠맡은 대학원생, 다니던 공기업을 관둔 사람, 학교 행정직원까지 다양한 분야의 경력자 천지다.

지난 2일엔 교정에서 한바탕 벼룩시장을 벌였다. 회원들은 버리기 아깝지만 쓰지 않는 육아용품, 장난감 등의 물건을 가지고 나왔다. 특히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열의를 보였다. 10여 개의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단톡방) 가운데 물품 공유만을 전문으로 하는 방도 있다. 필요없는 육아용품 사진과 정보를 올리면, 원하는 회원이 찜해서 받아가는 식이다.

'지식인' 기능을 하는 단톡방은 가족 돌봄 기능을 보완하는 든든한 영양제 역할을 지닌다. 육아를 둘러싼 경험과 각종 정보가 오간다. 특히 자녀가 아플 때 진가를 발휘한다는 게 진화씨의 설명이다. 병원에서 진료를 마치고 돌아오면 기민하게 스마트폰 입력창을 두들긴다. 함께 집단지성을 발휘해 의사의 진단 한 마디에 담긴 뜻을 길어 올린다.

"의사나 약사 관련 전공을 가진 분들도 있어요. 다 공부하는 사람들이고 하니 약 성분 같은 것도 다 잘 알아요. 대부분 엄마들이, 품은 의문이 해결되지 않는다 싶으면 내 전공이 아니더라도 논문을 뒤져봐요. '이런 사례 있어요?'라고 물어보면 '저 그런 경험 있어요', '우리 첫째가 그랬어요' 식으로 자기 일처럼 답변해주기 때문에 엄청 많은 도움이 돼요."

아이를 분만한 뒤 부모는 육아에 전념한다. 피로가 쌓인다. 아이를 기르는 부담이 한층 무거워지는 가운데 충분히 쉬지 못하면 우울증에 걸리기 십상이다. 학업을 닦아야 한다는 스트레스, 바닥 모를 경력 단절에 자아의 상실감을 맛보는 것도 한몫한다. 실제로 인구보건협회가 2015년 우리나라 20~40대 기혼여성 1천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분만 경험이 있는 여성의 90.5%가 산후우울감에 시달린 것으로 드러났다.

진화씨는 "내가 우울해서 미쳐버릴 것 같은 심정이 들 때 정서적인 지지가 된다"고 말했다. 함께 자기 경험담을 나눈다. 분통 터지는 일에는 함께 손가락질하며 감정을 배설한다. 슬픈 일을 겪는 이에겐 어깨를 토닥거리며 달랜다.

옆집 이웃과 안면을 두껍게 다지기 어려운 현실이다. 관계성이 실종된 사회. 선미씨는 맘인스누가 일종의 '마을'이란다. 지금 우리나라에 없는 마을. 물리적인 마을 공간이 무의미하던 찰나, 같은 학교라는 소속감과 동병상련한 사이라는 점이 이들을 한데 묶었다.

"아프리카 속담에 '아이 한 명을 키우려면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어요. 엄마들이 자식을 키우면 정말 많이들 공감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실질적으로 그런 마을, 공동체라는 것이 곁에 없죠."

당장 가장 가까운 학교부터 출산과 육아를 경험한 학생들에게 서러움을 안긴다. 휴학을 내더라도 다시 "네가 지금 임신할 때냐"며 연구 공간으로 불러내는 교수들이 있다. 자연과학·공학 계열에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단다.

휴학한 지 한두 달도 안 돼 연구실로 돌아오라는 전화가 온다. 아기를 낳은 지 50일 된 한 학생은 교수로부터 "연구실로 출근하지 않으면 네 책상을 빼겠다"는 강요를 받았다는 후문이다. "언제까지 애만 볼 거냐"며 면박을 줬다는 게다.

2014년 딸을 낳고 3년 만에 연구실로 복귀해 논문 집필에 몰두하는 은수씨는 자신이 겪은 배려에 얽힌 일화를 소개했다. 지도교수는 그더러 "순리대로 하라"고 말했단다. 보건대학원 박사 수료만 한 은수씨였다.

"(복귀하라는) 독촉 전화를 하지 않더군요. 오랜만에 연구실로 돌아가니 '웰컴(welcome, 어서 오세요)'이라 말하는 거예요. 이 정도로 쿨(cool)한 교수님이 거의 없습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특출한 사례다. 몇 차례 압박을 가하다 연구 프로젝트에서 '부모 학생'을 배제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은수씨는 "일부 지도교수는 '연구에 몰입할 여건이 안돼 보인다'거나 '네가 의지가 없는 것 같다'는 구실을 씌우더라"며 "아예 학교를 그만둔 사람도 봤다"고 털어놨다.

경력 단절을 겪는 여성 대학원생들을 위한 직업훈련이나 재교육 프로그램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과외 아르바이트나 임시직 일자리로 내몰린다. 건축대학원에 다니던 한 학생은 궁여지책으로 자격증을 따 병원 코디네이터로 종사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아이가 자라면서 주변 사람들은 양육에 '책임'의 의미를 강렬하게 덧씌운다. "자식을 키우면서 대학원 공부하려면 네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리가 횡행한다. 정작 맡길 데는 흔치 않다. 유치원, 국·공립 어린이집의 입소 경쟁이 치열하다. 차선책으로 택하는 게 소위 '학원 뺑뺑이'다. 대여섯 살 어린이들이 피아노 학원, 태권도장, 회화 학원을 전전한다. 진화씨의 설명이다.

"교수가 '어디에 애를 맡길 거냐'고 물어봐요. 자녀가 대여섯 살쯤 나이를 먹었다면 교수님이 대놓고 이래요. '야, 학원 뺑뺑이 돌려. 네가 지금 그럴 때야?' 심지어 여자 교수님들도 그래요. '나도 대학원 다니던 시절 그렇게 키웠다'고. 그러니 학원 장사가 잘 될 수밖에 없죠."

'육아' 때문에 새벽 2시 등교해 공부

한 주에 두 차례 제주대 학부 강의를 소화하고, 서울대에서 사흘 수업을 듣는 진화씨의 삶은 고되다. 단잠으로 아침까지 자는 건 먼 나라 얘기다.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밤 10시쯤 잠든다. 세 살배기 딸을 재우면서.

현관엔 배낭, 노트북 가방 등을 뒀다. 자정쯤 돼야 퇴근하는 남편에게 일찌감치 "문 앞에 있는 짐을 차에 실어놔달라"고 부탁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를 한 손에 안은 채 짐을 하나씩 차로 옮기며 집과 주차장을 오가야 할 판이다.

새벽 2시에 일어났다. 자택을 벗어나 학교로 향한다. 안양 평촌동에서 살 적엔 자가용으로 30~40분 걸렸다. 모두 잠든 후에 비로소 공부할 틈이 생긴다. 도서관에서 빌린 전공 서적을 읽으며 과제를 처리하거나, 밀린 연구를 진행한다.

새벽 5~6시, 몽롱한 기운이 감긴다. 머리맡에 덕지덕지 피로가 앉았다. 아침 해가 뜨면 출근길 교통이 막힌다. 서둘러 학교를 떠나 7시 전까지 집에 도착한다. 아이가 깰 때까지 잠깐 눈을 붙인다. 고작 30분에서 한 시간 남짓이다.

한 지붕 두 가족이 어울려 지내며 '육아 품앗이'에 나선 경우도 있다. 여동생 일가와 함께 사는 선미씨 집엔 "어른만 넷"이다. 지난해 둘째 아들 라온이를 낳은 뒤로 포닥(박사 후 연구원)과 연구교수직을 맡으면서 집안일과 육아를 오롯이 감당할 수 없었던 게다. 저녁에 시어머니가 집에 들러 선미씨가 퇴근할 때까지 아이를 맡아준다.

한때 진화씨는 연구 인건비나 장학금 등으로 학교에서 매달 240만 원 가까이 받았다. '텐투투(10 to 2)'의 연속이었다. 아침 10시까지 등교해 새벽 2~3시쯤 집으로 돌아오는 일상이었다. 학술 프로젝트 발표가 있기 3일 전부터는 100시간 넘게 학교에서 살다시피 했다. 저녁도, 주말도 없는 삶이었다.

맘인스누 서정원 당시 대표(35)와 이진화 현 임시대표(37)가 2015년 참여한 정책연구용역과제 <대학의 부모학생 사례연구에 기반한 여성전문인력의 사회적 경쟁력 제고> 보고서 표지.
 맘인스누 서정원 당시 대표(35)와 이진화 현 임시대표(37)가 2015년 참여한 정책연구용역과제 <대학의 부모학생 사례연구에 기반한 여성전문인력의 사회적 경쟁력 제고> 보고서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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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비를 매 학기마다 500만 원 이상 짊어지는 대학원생이지만 실상은 연구비로 생계를 잇는 직장인과 다름없다. 하지만 이들은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한 채 경계인으로 떠돌고 있다. 유급 출산휴가, 육아휴가는 꿈도 못 꾼다. 부부 모두 부모 학생이면 건강보험 지역가입자로 분류된다. 가뜩이나 군색한 살림에 쪼들리는데 높은 수준의 보험료를 내는 이중고를 맞닥뜨린다.

부모 학생들이 지닌 불만 가운데 가장 큰 불만은 맞벌이를 인정받지 못해 어린이집 입소 순위가 뒤로 밀려나는 일이다. 물론 근로 현황을 쓴 자기기술서를 동 주민센터에 내면 맞벌이로 인정받을 길이 열리지만, 그마저도 인정 않는 사례가 허다하다. 진화씨는 "누군가 주민센터에 낸 자기기술서가 통과되면 그걸 회원들이 공유한다"며 "'낙성대동은 다 해주던데 우리 동네는 왜 처리해주지 않느냐'는 식으로 일선 공무원들에게 통사정한다"고 말했다.

특히 대학원 졸업 논문 제출만을 남겨둔 수료생들은 보육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정부에서 제공하는 아이 돌봄 서비스를 신청하려니 낼 수 있는 증빙 서류가 '재학증명서' 뿐이다. 교내 어린이집으로 눈길을 돌려도 연구생으로 등록하지 않은 학생, 휴학생은 신청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대기 순번이 긴 만큼 입소 경쟁이 치열한 탓이다. 만 3살의 자녀부터 들어갈 수 있는 데다, 학생과 교직원 자녀 각각 55 대 45의 정원 비율을 뒀다.

그렇다면 해외 상황은 어떨까. <대학의 부모학생 사례연구에 기반한 여성전문인력의 사회적 경쟁력 제고> 정책연구용역 보고서(김혜란, 2015)에 따르면, 미국 시카고대는 연간 수입이 5만 달러(약 5662만 원)를 밑도는 박사과정 학생에게 매년 최대 2천 달러의 양육비를 지원한다. 버클리대는 태어난 지 만 3개월이 지난 유아부터 교내 보육센터에 들어갈 자격이 주어진다. 연간 60시간의 긴급 보육 프로그램도 학교 홈페이지에서 신청할 수 있다. 베이비시터가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못 오거나, 아이가 앓아누워 돌봐줄 사람이 없을 때 유용하다.

이는 2년 전 정원씨와 진화씨가 유수의 아이비리그 대학을 방문해 사례를 수집한 결과물이다. 진화씨는 궁금했다. 어떻게 이 많은 성취들을 일궈낸 것일까. 미국 대학 관계자에게 "학내 어린이집을 어떻게 만들었느냐"고 물었다. "68혁명 시절 학생들이 들고일어나 투쟁해서 얻은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진화씨가 당시 기억을 회상했다.

"국내 대학과 외국 대학의 복지 격차는 정말 커요. 어느 대학원 교수님이 말하기를, 본인이 1960~1970년대 유학했을 때 미국보다 지금 한국 상황이 더 열악하대요."

2008년~2017년 서울대 대학원생의 임신·출산·육아휴학 연도별 이용자 추이. 2012년 대학원생 이용자는 39명에 그쳤지만 지난해에는 295명으로, 4년 만에 7배 이상 늘었다. 2013년 1학기 서울대는 업무지침을 고쳐, 종래 1년까지 여학생만 사용하던 제도를 성별 관계없이 공히 최대 3년에 걸쳐 쓸 수 있도록 했다.
▲ 2008년~2017년 서울대 대학원생의 임신·출산·육아휴학 연도별 이용자 추이 2008년~2017년 서울대 대학원생의 임신·출산·육아휴학 연도별 이용자 추이. 2012년 대학원생 이용자는 39명에 그쳤지만 지난해에는 295명으로, 4년 만에 7배 이상 늘었다. 2013년 1학기 서울대는 업무지침을 고쳐, 종래 1년까지 여학생만 사용하던 제도를 성별 관계없이 공히 최대 3년에 걸쳐 쓸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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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 낳으나 쌍둥이 낳으나 육아휴학은 '2년'?

맘인스누가 2012년 출범한 이래 서울대의 제도도 달라졌다. 조금씩, 더디지만 전진했다. 정원씨를 비롯한 회원들은 줄기차게 학생처장에게 건의하고, 부총장과 면담했다. 마냥 학교가 속전속결로 요구를 수용한 건 아니었다. 강의를 적게 들으며 육아와 병행하는 부모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점과 비례해 등록금을 매겨 달라고 학교본부에 건의했다. 돌아온 건 "검토해보겠다"는 답변뿐이었다.

수시로 찾아가 부모 학생들의 고충을 제기하는 정원씨를 상대로 학교당국은 '악성민원인' 바라보듯 대한 적이 많았다고 진화씨는 말한다. 그는 "학교본부에선 우리가 무슨 얘기를 하면 자기 일이 늘어난다는 인식을 드러내기 일쑤였다"며 "실무를 보는 교직원들은 퇴직할 때까지 한자리에서 그 업무를 틀어쥐는 경향이 뚜렷하기 때문에, 웬만해선 움직이지 않더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복지부동의 태도를 보이는 학교 앞에서 맘인스누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정치권에 호소하는 길이었다. 때마침 지역구(당시 서울 관악구 갑) 유기홍 국회의원이 관심을 보였다. 대학원생 큰딸을 둔 유기홍 의원도 맘인스누 회원들의 고민에 깊이 공감했다. 2012년과 2013년 연이은 국정감사에서 여성 대학원생을 위한 복지 제도 확충의 필요성이 지적됐다. 그 결과 학내 보건소, 단 한 곳에 자리 잡은 모유 수유실이 눈 깜짝할 새 19곳까지 늘었다.

임신·출산·육아 휴학도 변화의 전기를 맞았다. 2013년 1학기 서울대는 업무지침을 고쳐, 종래 1년까지 여학생만 사용하던 제도를 성별 관계없이 공히 최대 3년에 걸쳐 쓸 수 있도록 한 게다. 2012년 대학원생 이용자는 39명에 그쳤지만 지난해에는 295명으로, 4년 만에 7배 이상 늘었다. 서울대 학사과에 따르면, 올해도 9월 현재까지 215명의 학생이 개정된 제도의 덕을 봤다.

물론 지금의 육아휴학 제도가 촘촘하게 설계된 것은 아니다. 허점이 적잖다. 가령 다음 해 2월 박사과정 수료를 앞둔 시점에서 12월 기말고사를 치르고 분만한 학생은 휴학할 수 없다. 박사과정을 마친 뒤 6년 안에 학위 논문을 써야 하지만, 육아의 덫에 걸리는 순간 출발선은 한참 뒤처진다.

진화씨는 "아이를 낳은 사람이나 낳지 않은 사람이나 똑같은 기준선 아래서 논문을 써야 하는데, 사실 전자의 경우엔 애 키우느라 논문 쓸 여력이 안 된다"며 "그럴수록 논문을 제출해야 하는 기한은 다가오고, 그러다 결국 학위 받기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쌍둥이를 낳은 부모 학생의 처지는 더 난처하다. 육아 부담은 두세 배로 가중되지만 휴학 기간은 아이를 한 명 낳았을 때와 똑같이, '2년'이다. 진화씨가 말을 이었다.

"어느 쌍둥이 엄마가 2년 육아휴학하고 나서도 아이가 계속 아파서 휴학 기간을 연장하려고 했어요. 학위 논문 제출 기한이 다가오는데, 학교가 휴학을 못 쓰게 하더라고요. 아니, 자녀를 한 번에 두 명 낳았으면 2년씩 합쳐 4년 휴학을 받아들이는 게 상식 아닌가요?"

하지만 이를 공론화하려니 요새 부쩍 여론의 눈치를 많이 본다. 출산과 육아 고민을 하소연해도 결혼하지 않은 이들은 남 일인 양 받아들인단다. 진화씨는 "'모유 수유'니 '임신'이니 이야기를 하다 보면 다 지저분한 주제로 취급된다"며 "비혼자들에겐 이목을 끄는 주제가 아닌 셈"이라고 밝혔다. 근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자주 회자되는 '맘충'을 둘러싼 손가락질도 육아를 둘러싼 거부감이 한몫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애를 낳지 않겠다'는 정서가 퍼지니까 육아를 나와 상관없는 별개의 문제처럼 바라보는 것 같아요. 그저 '내게 피해 주지 말라'는 사고방식이 작동하는 듯해요. 그러니 '맘충'이란 말이 아무렇잖게 입에서 나오게 되는 거죠."

육아나 집안일 때문에 학업·경력이 단절된 경험 유무와 관련해, 전국 기혼 대학생(학부생 및 대학원생) 28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남성 응답자의 80%(70명)가 '없다'고 대답한 반면, 여성 응답자의 70%(135명)은 '있다'고 답했다.
▲ 육아나 집안일 때문에 학업·경력이 단절된 경험 유무 설문조사 결과 육아나 집안일 때문에 학업·경력이 단절된 경험 유무와 관련해, 전국 기혼 대학생(학부생 및 대학원생) 28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남성 응답자의 80%(70명)가 '없다'고 대답한 반면, 여성 응답자의 70%(135명)은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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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육아는 '친근감', 엄마 육아는 '꼴불견'?

파스타를 내놓는 레스토랑에서 아기에게 먹이겠다며 쌀밥과 된장국을 주문한 엄마에 얽힌 일화를 두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지탄의 대상이 된 적 있다. 엄마는 졸지에 '파스타 맘충' '식당 맘충'으로 둔갑했다. '노키즈존(No Kids Zone)'을 전면에 내걸고 어린이의 출입을 금지하는 식당과 카페가 점차 많아지고 있다.

이를 두고 은수씨는 "옛 세대 때부터 문제를 일으키는 부모들은 항상 우리 사회에 존재했다"면서, "'맘충'이 엄마라는 점에서 여성 혐오와 결합돼, 여자를 비난하는 모양새로 갈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맘충'이란 신조어가 애초 엄마의 육아를 전제로 깔고 있다는 것.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9만 명 가까운 육아휴직자 중 남성은 7616명으로, 8.5%에 그쳤다. 세상은 남성의 육아에 '자상함', '친근감'을 채색하며 칭찬 세례를 보낸다. 아빠 육아는 희소한 가치로 인식돼 예능에서도 친숙하게 그려질 정도다. 은수씨가 목소리를 높였다.

"아빠가 애를 다중이용시설에 데려가도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 상황은 똑같아요. 기저귀를 가는 모습을 보면 '저 아빠는 자상하다', '일하느라 바쁜데도 자식과 같이 놀아주는구나'라고 인식하지만, 엄마가 와서 기저귀를 갈면 '저 여자 여기서 왜 이러는 거야'라고 바라보죠. 똑같은 사건인데 누가 했느냐에 따라 시각이 완전히 다른 거죠."

아이를 낳고서야 비로소 고통받는 타자들의 경험을 실감했다. 유모차를 끌고 가면서 장애인의 이동권이 열악한 실정이란 걸 깨달았다. 울퉁불퉁한 보도블록을 지나고, 군데군데 파인 아스팔트 길에서 유모차 바퀴가 덜컹거린다. 시내버스를 탈 때 유모차를 동반하려면 따가운 눈총을 견뎌야 했다. 진화씨는 임신하기 전의 자신은 '생리하는 남성'에 지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애 낳기 전에는 그냥 남자같이 살았어요. 서울대 나와서 학부 강의하고, 돈 벌고 싶으면 얼마든지 돈 벌고, 공부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공부하고, 제가 뭘 한다 그랬을 때 아무도 말리지 않았어요. 그런데 아기를 낳고 나서 보니까, 갑자기 제가 약자로 추락한 거예요."

그래도 터널의 끝엔, 눈 부신 빛이 보이는 법이다. 교내 남성 구성원들은 맘인스누의 활동에 격려를 보낸다. "그동안 힘들지 않았냐"며 부모 학생들의 삶을 이해하고 호응한다. 가족 단위로 회원을 받는 과정에서, 아빠 회원들도 적게나마 들어왔다. 은수씨는 "부모학생이라 하면 보통 여학생을 떠올리는데, 남학생도 상당히 많다"며 "맞벌이나 육아 문제는 남녀 똑같이 겪는 문제"라고 말했다.

"엄마들이여, 할 수 있다는 걸 입증하라"

애 키우랴, 돈 벌랴, 꿈을 위해 한 발짝 나아가랴 바쁘다.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그러려면 살아남아야 한다. 진화씨는 엄마들이 제 삶을 온전히 지키길 바랐다. 선미씨는 이 땅의 부모 학생들에게 당부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은 욕심부리는 게 아니라"고. "그냥 남들 하는 만큼 하는 것"일 뿐이라고.

"자신감을 잃지 마세요. 나 자신을 너무 희생하지 마세요. 아빠는 자기실현을 추구해도 당연하게 생각하는데, 엄마는 공부해서 자기실현하거나 취직하려고 하면 '애를 버리고 네 욕심을 챙긴다'는 말을 참 많이 들어요. 그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자기 역할을 하고 싶을 뿐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 (선미씨)

"엄마의 행복이 곧 자녀의 행복이고, 가정의 행복이에요. 제 딸이 자라서 나중에 아기를 낳았을 때 '엄마도 너 때문에 많은 것을 포기했다'고 되풀이해 말할 순 없는 거잖아요." - (진화씨)

지구 저편 이스라엘에선 사회학자 오나 도나스가 '엄마들은 아이를 사랑하지만, 엄마가 된 것을 후회한다'는 취지의 논문을 2015년 발표했다. 가부장제와 부계 혈통이 관념으로 굳은 사회에서 엄마인 여성은 늘 주변부로 밀려나 있었다. 한 가지 역설적인 사실은, 그런 이스라엘마저 합계출산율이 3.08명(2014년 기준)이다. 1.24명에 불과한 한국은, 어떤 엄마들의 세상일까.

인터뷰 당일 세 엄마는 함께 찍은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했다. 은수씨는 저녁 6시까지 유치원에 맡긴 딸을 데리러 가야 한다며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논문을 발표하고 달려온 선미씨는 병원 진료를 받겠다며 인터뷰 중간에 자리를 잠시 비웠다. 그는 지금 셋째를 임신한 상황이다.

진화씨에게 물었다. 이제 어디로 향하느냐고.

"신생아실로 가아죠. 수유를 해야 하니까."

엄마들은 제 갈 길 바삐 움직인다. 그들은 이제 막 터널 들머리에 당도했다. 전조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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