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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달콤한 고통>은 제목만 놓고 보면, 합리성이나 산문과는 거리가 멀다. 몸이 아프고 마음이 괴로운데 달콤하다 했으니 하는 말이다. 차라리 시집이라 했으면 고개를 끄덕이기 쉬웠을 것이다.

그런데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의 심리를 파고드는 심리소설이라는 지점에 이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진다. 철학자 니체가 고통에 대해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토록 달콤한 고통>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미정 옮김. 오픈하우스 출판
▲ 책 표지 <이토록 달콤한 고통>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미정 옮김. 오픈하우스 출판
ⓒ 오픈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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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20세기 최고의 범죄소설 작가라는 평을 받고 있다. 그 중 <이토록 달콤한 고통>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집착이 될 때 어떻게 병이 되며, 다른 사람에게 왜 공포로 혹은 범죄로 이어지는지를 세세하게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은 범죄수사물이면서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한 여자만 바라보는 남자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 데이비드는 전도유망한 화학자이지만, 한 여인, 애나벨에 대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우발적 살인을 두 번이나 저지르는 불행을 자초한다.

그러고도 자신을 정당화할 정도로 데이비드는 애나벨에 대한 집착을 놓지 못한다. 그 결과는 9층 건물 난간에서 차가운 허공으로 몸을 날려 상상 속에서 애나벨의 알몸을 가슴에 품는 것이었다. 이 정도면 데이비드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 스토커라 해야 맞다.

그런데 이상하다. 비록 데이비드의 사랑이 눈물 나게 아름답다거나 고개를 끄덕일 만큼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하는데도 그의 죽음에 이르면 처연해지는 감정을 추스르기가 쉽지 않다. 데이비드라는 사람이 갖고 있는 심성과 주위에서 보는 심성이 언제나 부조화를 이뤘고, 그 결과가 비극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데이비드는 기본적으로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다. 아주 차가운 사람이다. 데이비드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그를 차다고 여겼고, 그의 사과조차도 진정성이 담겨 있다고 믿지 않는다.

"안 미안하잖아! 미안하지 않다고 그랬잖아. 그러니 지금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도 마. 당신은 정말 매몰차... 어떤 면에서 보면 당신은 자기 생각대로 살고, 남들 생각, 주변 사람 생각은 눈곱만큼도 안 해." 그는 그 말이 굉장히 익숙하게 들렸다. 작은어머니도 그에게 그렇게 말했고, 웨스도 그랬던 것 같다. 그 말을 들으니 데이비드는 당황해서 화가 났고, 화난 사실이 부끄러웠다. - 188쪽.

데이비드는 화학자라는 특성상 그에게 물리적 세계를 이해하고 예측하라고 했으면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관계의 허망함과 비논리적 측면은 아무리 그가 뛰어난 화학자라 해도 어쩔 수 없었다.

무엇보다 애나벨을 사랑하면서도 그녀가 낳은 아이에게는 눈곱만큼도 관심 없는 데이비드는 현실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원했던 것은 한 번의 기회였다. 사랑하는 여인이 자신이 준비한 집을 좋아하기를 바랐다.

"네가 그 집을 좋아하기를 바랐어. 날 좋아하기를, 사랑해주기를 바랐어. 나한테 기회를 주면 너도 날 사랑할 수 있어. 애나벨, 나한테는 기회도, 시간도 거의 내주지 않았잖아." -288쪽

데이비드는 애나벨이 자신을 사랑할 기회조차 허락하지 않았다고 칭얼거린다. 그러다 좌절한다. 그런데 데이비드는 자신의 좌절이 애나벨과 결혼한 남자 때문이라며 그를 증오한다. 좌절은 고통을 낳고, 너무도 쉽게 폭력으로 이어졌다.

애나벨에 대한 집착만 아니라면 데이비드는 완벽한 남자다. 주위에 죽자 살자 따라다니는 직장 동료도 있다. 하지만 그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주위에서는 그런 그가 여자들한테 차갑다고 하지만, 데이비드는 이렇게 변명한다. "난 여자들한테 차가운 게 아니라 그 여자한테만 뜨거운 거야." 데이비드는 그 간단할 걸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가 이상한 반면, 친구는 복잡한 화학 공식보다 그걸 훨씬 더 어려워한다.

데이비드에게 애나벨은 첫사랑이다. 애나벨이 다른 남자와 결혼해서 애까지 낳고 살고 있지만, 그것은 잠시 잠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둘만의 아늑한 공간을 마련하고 주말이면 가명으로 가상의 세계에서 산다.

이쯤 되면 조현병이라고 말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설령 아니라 해도 그가 현실감각을 잃은 외로운 늑대가 될 소지가 높다. 사실상 그는 전도유망한 화학자가 아닌가? 독극물이나 화학물 테러가 소설에 등장하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다. 저자가 20세기를 살았기에 데이비드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에서 마무리했을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모든 데이트 폭력이 그렇듯이 데이비드는 사랑이라는 말로 집착하지만, 그 상대방은 그게 지옥이었다는 걸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래서 애나벨은 데이비드를 이렇게 평했다.

"전 늘 그 남자가 두려웠어요. 그 남자가 편지를 보내고 찾아와 우리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그이는 그날 그를 만나려고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녀는 말을 맺으며 눈물범벅이 되었다." - 388p.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구속하고, 모든 것을 정당화하려고 한 데이비드는 데이트 폭력범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래서 21세기를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이토록 달콤한 고통>에서 살인사건과 데이트 폭력에 대처하는 방식들이 지금과 비교할 때 너무나 허술하다.

CSI류의 범죄 수사물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경찰의 어리숙한 초등수사 방식이나 짜증날 정도로 수동적인 여주인공 애나벨의 태도 때문에 몰입하기 힘들 정도다. 그러나 1950년대를 배경으로 1960년에 발표된 작품이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 번의 기회를 달라면서 사랑으로 포장한 집착이 좌절할 때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걸 이 소설은 자세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누군가의 사랑을 간절히 원하면서도 자신만을 바라보는 사랑은 외면하는 것이 우리의 삶일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데이비드를 매몰차게만 볼 수 없다.

데이비드에게서 다른 사람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자아를 끝까지 추구한 투사를 볼 수 있다면 일말의 공감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데이트 폭력이 어떠한 말로든 용납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토록 달콤한 고통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미정 옮김, 오픈하우스(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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