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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단식을 시작하면서 함께 만든 노란조끼. 치자로 물을 들이고 수를 놓고 미싱작업을 했다. 릴레이 활동을 한 966일 동안 마을 이웃들의 손을 거치면서 많이 낡았다. 사진은 치자물을 들이고 말리는 모습.
▲ 노란조끼 릴레이단식을 시작하면서 함께 만든 노란조끼. 치자로 물을 들이고 수를 놓고 미싱작업을 했다. 릴레이 활동을 한 966일 동안 마을 이웃들의 손을 거치면서 많이 낡았다. 사진은 치자물을 들이고 말리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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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아빠의 단식이 40일을 넘어서던 비 내리는 늦여름의 어느 날, 우리는 노란조끼를 만들기 위해 미싱을 돌리고 치자 염색을 했다. 절망스러운 죽음들 앞에서도 이 사회는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변화의 염원은 거대한 성벽 앞에서 좌절되는 듯했다.

내 아이가 왜 죽었는지 밝힐 수 있도록 특별법을 만들어달라며 청와대를 향하던 한 아비의 발걸음은 정문에도 이르기 전에 가로막혔다. 이 나라 대통령에게는 국민들의 생명이 관심의 대상이 전혀 아님을 이미 겪었던 터라 공포스러웠다. 우리가 또 누군가의 죽음을 무력하게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걸까? 아마도 그런 공포와 절박함 때문에 우리 마을에서 릴레이 단식이 시작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유민 아빠의 안전과 특별법 제정을 바라며, 많은 분이 전국적으로 동조단식을 이어가고 있었다. 혼자라면 지속할 수 없는 단식, 그리고 삶에 너무나 당연하고 필수적인 요소인 먹는 행위를 멈추고, 그동안 당연하다 여겨온 것들에 대해 멈추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 이것을 우리 마을 사람들이 함께 힘을 모아 이어갈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2014년 8월 25일부터 1주기까지 235일간, 산내마을 릴레이 단식이 시작되었다. 자신이 선택한 날에 노란조끼를 입고 단식을 하고, 마을 홈페이지에 단식 후기를 기록하고, 다음 분에게 조끼를 건넸다.

2주기부터 3주기까지 릴레이 인권선언 낭독을 시작하면서 가방을 만들었다. 이 가방에는 인권선언문과 조끼, 그리고 후기글을 남길 수 있는 노트가 들어있다. 노트를 넘기며 마을분들이 쓰신 글을 읽는 시간도 참 좋았다.
▲ 세월호인권선언가방 2주기부터 3주기까지 릴레이 인권선언 낭독을 시작하면서 가방을 만들었다. 이 가방에는 인권선언문과 조끼, 그리고 후기글을 남길 수 있는 노트가 들어있다. 노트를 넘기며 마을분들이 쓰신 글을 읽는 시간도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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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여를 거치면서 힘들게 특별법이 만들어지고 특조위가 구성되었지만, 사회는 변함없이 견고하였다. 국가는 그 존재 이유를 심각하게 물어야 할 만큼 무능했고 비정했고 야비했다. 그렇게 우리는 힘들게 무력감을 추스르며 1주기를 맞았고, 또 우리가 함께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우리가 한다고 무엇이 바뀔지 알 수 없었으나, 무언가 하지 않으면 그 무엇도 바뀌지 않을 것임은 명백해 보였다.

2주기까지 1년간 백배 이어가기를 하기로 마음 모았다. 노란조끼를 입고 백번의 절을 하면서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 그 시간들은 바람의 시간이기도 했고, 우리가 대체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지, 그리고 그 사회 속에서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묻는 시간이었다. 절을 하고, 조끼를 전하면서 그렇게 또 1년이 흘렀다.  

2주기, 사회는 여전했다. 정부의 비협조와 훼방 속에서 겨우겨우 자기 역할을 해나가고 있는 특조위에 대해 세금 도둑이라며 노골적으로 흠집 내는 정치인들이 있었고, 그들은 지금도 여전히 별 탈 없이 그들의 '정치'를 해나가고 있다. 그들의 정치판에서는 보상금 빨리 치르고 손 터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을 하는 것은 액수와 상관없이 '세금도둑'일 수밖에 없으리라. 이 조사로 정부의 문제가 밝혀질수록 지지율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리란 생각에서인지 이들은 마치 증거를 지우려는 이들처럼 필사적이었다. 사고 때 승객들을 버리고 도망치던 선장의 다급한 비열함과 겹쳐졌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국가란, 정치란 무엇인 걸까? 그리고 우리에겐?

이런 흐름을 거스르며 곳곳에서 잊지 않고 있는 시민들이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며 위로해보지만, 무력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무력감을 안고 또다시 앞으로의 1년을 준비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 인권선언'이었다. 이 선언문은 2015년, 다양한 시민들이 참여하여 만들었다. 이번의 참사가 사회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기를 요청하는 절박한 신호였고, 그에 맞추어 인간의 권리를 다시 세우자는 다짐으로 이 모임은 시작되었다고 한다.

산내마을에서는 세월호 1주기부터 3주기까지 마을 단체들이 함께 모여 행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일을 나누었다. 이 사진은 3주기 활동을 알리는 팜플렛의 앞장.
▲ 세월호 3주기 추모활동 팜플렛 산내마을에서는 세월호 1주기부터 3주기까지 마을 단체들이 함께 모여 행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일을 나누었다. 이 사진은 3주기 활동을 알리는 팜플렛의 앞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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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언문에는 우리가 '인간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들이 선언되어 있다. '이 당연한 권리들이 왜 일상에서는 당연히 부정당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가슴에 안고, 1년간 선언문을 읽어내려갔다. 경제적 부익부 빈익빈 현상처럼, 권리에서도 가진 자는 인권을 넘어선 특권을 누리며 살아가고, 대다수의 우리들은 누구나 누려야 할 보편적 권리를 교과서 속에서나 가능한 것으로 미루어두고 있다. 교과서와 현실은 일치하는 게 아님을 당연시하며, 그것의 일치를 주장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라고 생각하는 면이 나의 내면 깊숙이 깔려있음을 느끼곤 했다. 그런 나를 자각하고 인정하며, 1년간 선언문을 함께 읽어내려갔다.

그 와중에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촛불은 들불이 되어 광장을 가득 메웠다. 참사와 그 이후의 흐름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던 것과 비슷하게 또 다른 비현실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 모두 우리가 만들어낸 현실임에 틀림없었다.

여한 없도록 하겠다더니 끝내 유가족을 잘 만나주지 않던 정권은 몰락했다. 그리고, 현 대통령은 당선 직후 유가족들을 만나 눈을 맞추고, 얼마 전 청와대로 초청하여 공식적인 사과를 하였다. 특조위 연장에 국민들 의견 갈린다며 반대 입장을 내놓았던 전 대통령은 지금 구치소에 갇혀 있다. 그리고, 새로운 특별법의 제정과 특조위 구성이 이야기되고 있다. 무능과 탐욕, 특권의식과 정치적 계산으로 대통령의 권좌를 지키고 있던 자가 끌어내려 지고 조기 대선을 앞둔 상태에서 맞았던 3주기, 당연히 그 어느 때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각자가 쓴 피켓을 들고 함께 동네를 돌며 노래하고 팸플렛을 나누던 기억, 그 와중에 비가 너무 와서 잠시 비닐하우스에 들어가 비를 피하다가 동네 카페에서 내주어 마셨던 차의 따뜻한 느낌, 

절의 목탑지에 앉아 선언문과 시를 읽으며 들었던 새소리와 따스한 햇볕, 이렇게 우리는 3주기까지 총 966일간의 마을 릴레이 활동을 마무리하였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참사를 겪으며, 돈이 얼마나 사회를 그리고 그 사회 속 인간을 타락시킬 수 있는지를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기억에 남는 굵직한 사건들만 나열해보아도 삼풍, 대구 지하철, 서해 훼리호 그리고 세월호까지... 우리 사회가 지독한 병에 걸려 있음을 알려주는 여러 증상들을 우리는 이미 충분히 보아왔고, 지나쳐왔고, 반복해왔다.

'우리 사회가 돈이라는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이 너무나 취약하구나, 우리의 면역력을 강화시키지 않고서는 또 다른 증상들은 다시 나타날 수밖에 없겠지, 그리고 이런 증상들은 커다란 참사로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서 이미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었던 것을'이라는 생각을 그동안 많이도 했었다. 

진정으로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짧지 않은 치료의 과정이 필요하리라. 이렇게 본다면, 아직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은 멀다. 달라졌다면, 이전에는 한걸음 옮기기가 너무나 힘들었다면, 이제 우리 함께 한 걸음 떼었다는 것? 우리의 이 한 걸음이 여기에서 멈추지 않기를, 천리길을 향한 거대한 시작이기를...

산내 마을을 포함한 지리산권에서는 2014년 8월 30일부터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기 위한 천일기도가 시작되었다. 그 마무리 행사로 2017년 5월 27일 생명평화합창제가 열렸다. 절의 건물벽에 붙어있는 것은 세월호 릴레이 활동 마무리 현수막이다.
▲ 생명평화합창제 산내 마을을 포함한 지리산권에서는 2014년 8월 30일부터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기 위한 천일기도가 시작되었다. 그 마무리 행사로 2017년 5월 27일 생명평화합창제가 열렸다. 절의 건물벽에 붙어있는 것은 세월호 릴레이 활동 마무리 현수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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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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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겨울밭, 붉은 동백의 아우성, 눈쌓인 백록담,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소리와 포말을 경이롭게 바라보며 제주의 겨울을 살고있다. 그리고 조금씩 사랑이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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