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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2월 24일 판문점 241GP 3번 벙커에서 한 남자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 그의 이름은 김훈. 계급은 육군 중위. 우수한 성적으로 육사를 졸업한 후 36년간 군인으로 복무하다 예편한 김척 예비역 육군 중장의 장남이었다.

아버지의 군 복무 36년과 아들 김훈의 복무 기간 6년을 합치면 부자는 무려 42년간 국가를 위해 충성했고, 여전히 대를 이어 충성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한 아들 김훈은 육사 지원 동기에서 "군인으로 살아온 아버지의 삶이 존경스러워 자신도 군인의 길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1998년 2월 24일. 판문점 241GP 3번 벙커

2월 24일 서울 중구 천주교 인권위에서 군 의문사 피해자 고 김훈 중위 19주기 추모미사에 고 김 중의 아버지 김척 예비역 중장이 참석하고 있다.
 2월 24일 서울 중구 천주교 인권위에서 군 의문사 피해자 고 김훈 중위 19주기 추모미사에 고 김 중의 아버지 김척 예비역 중장이 참석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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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자랑스러웠던 이들 부자에게 비극이 시작된 때는 1998년 2월 24일의 일이었다. 그리고 이후 만 19년하고도 6개월. 처음 국방부는 김훈 중위가 사망한 채 발견되자 자살로 공식 발표했다. 군 헌병대 수사관이 사건 현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발표된 '자살'이었다.

하지만 국방부의 기대와 달리 김훈 중위 사인 논란은 잠들지 못했다. 지난 19년 동안 끊임없는 자.타살 논쟁의 중심에서 뜨겁게 달궈졌다. 여러 번에 걸친 국방부와 국가기관 차원의 조사, 그리고 대법원에서도 자.타살 논쟁이 분분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국방부가 왜 이토록 많은 의혹과 의문에도 불구하고 김훈 중위 자살만 주장하는지' 나에게 묻곤 했다. 그럴 때 내가 내 놓은 답은 이것이다. 진실을 밝히는 수사가 아니라 '이미 내려진 결론에 맞춰지는' 조사가 국방부의 오래된 관행이라는 지적이었다.

김훈 중위 역시 다르지 않았다. 국방부는 '1984년 4월 2일 발생한 허원근 일병 사건처럼' 김훈 중위 역시 자살이어야 했다. 자살하고자 좌우 가슴에 각각 한발씩, 그래도 죽지 않자 자신의 머리 눈썹 사이에 다시 한 발을 쏴서 스스로 자살했다는 허원근 일병 사건처럼 김훈 중위 사인 역시 '억지 자살의 강변'이었다.

김훈 중위가 자살했다는 근거는 하나도 없고, 대신 타살 증거만 가득한데도 국방부는 이를 의도적으로 외면했다. 더구나 김훈 중위 사인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은 절대 어렵지도 않은 일이다. 간단하고 쉽다. 국방부도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진실 때문이다. 바로 김훈 중위 자신의 오른손이 그 증거다.

국방부는 처음 김훈 중위 사망 경위에 대해 발표하면서 '자신에게 지급된 권총을 우측 관자놀이에 밀착한 후 방아쇠를 당겨 스스로 자살한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반드시 뒤따라야 할 증거가 하나 있어야 했다. 바로 권총을 잡았다는 김훈 중위 오른손에 반드시 있어야 할 '화약흔'이 그것이다.

이는 미국에서 총기 사고가 나면 기준으로 삼는 증거였다. 우리나라와 달리 총기 사고가 빈발하는 미국에서 제일 먼저 확인하는 것이 손의 화약물질 검사다. 그래서 만약 두 사람이 사망한 채 발견될 경우, 현장에 도착한 과학 수사대는 제일 먼저 사망한 이들의 손을 거즈로 닦는다. 그리고 분석한 결과 '누구의 손에서 화약 물질이 검출되느냐'에 따라 가해자와 피해자로 구분한다.

마찬가지로 김훈 중위가 국방부의 주장처럼 자살했다면 응당 그의 오른손에서는 화약 물질이 검출되었어야 했다. 그런데 진실은 무엇일까. 충격적이었다. 김훈 중위의 오른손에서 검출된 화약 물질은 '전혀' 없었다. 말 그대로 '깨끗한 손'이었다. 김훈 중위의 오른쪽 관자놀이를 관통한 총알을 당긴 손은 따로 있었던 것이다.

만 19년 6개월 만의 순직 결정, 그러나

생전의 김훈 중위. 그는 아버지를 잇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장교가 되려고 했다.
 생전의 김훈 중위. 그는 아버지를 잇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장교가 되려고 했다.
ⓒ 김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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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진실을 인정받기 위해 싸워온 시간이 만 19년 6개월이었다. 이처럼 길고 긴 시간동안 이 진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싸워온 기록은 그야말로 몇 문장의 표현으로 담아낼 수 없는 고통과 절망의 세월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2017년 8월 31일. 국방부는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를 열어 김훈 중위 사망을 순직으로 인정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이 사실이 알려진 후 많은 분들이 '많이 늦었지만 다행'이라는 공감과 '조금이나마 그 유족에게 힘이 되었으면 한다'는 위로를 표했다.

그런데 이를 알리는 언론 보도에 달린 '당시 자살로 몰고 갔던 관련 인물들, 특히 자살이 확실하다고 했던 법의학자들 모조리 조사해서 처벌해야 한다'(아이디 soci***)는 댓글에 7000명이 넘는 이들이 호응했다. 대부분이 이런 류의 댓글이었다,

하지만 나는 김훈 중위 순직 결정에 대해 마냥 웃고 좋아할 수 없다. 적어도 이 사건의 진실을 아는 나로서는 더욱 그렇다. 김훈 중위 사인에 대해 그동안 자살만 강변해 온 국방부가 입장을 바꿔 '순직' 결정을 내려준 것은 응당 평가할 만한 일이지만 그 속 내용을 보면 여전히 유감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4월에 국방부로부터 순직 결정을 받은 허원근 일병 사건과도 전혀 다르지 않다. 허원근 일병 아버지는 국방부의 순직 결정에 대해 그리 기뻐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왜 1984년 발생하여 무려 33년 만에 내려진 아들의 순직 결정에 대해 마냥 기뻐하지 않았을까.

이유는 진실로 가슴 아팠다. 국방부는 허원근 일병 뿐만 아니라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해 '순직 결정'만 내렸을 뿐이었다. 이들 유족이 주장해 온 '진짜 사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순직 결정의 내용은 그동안 진실을 숨긴 누군가의 책임을 물을 수 없도록 되어있다. '진상규명 불능에 의한 순직 결정'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허원근 일병이나 김훈 중위 역시 '사인은 알 수 없으나' 다만 복무중 사망한 것으로 인정되어 순직 결정을 받은 것이다.

김훈 중위 의문사, 끝날 때까지 끝이 아니다

2월 24일 서울 중구 천주교 인권위에서 군 의문사 피해자 고 김훈 중위 19주기 추모미사가 거행되고 있다.
 2월 24일 서울 중구 천주교 인권위에서 군 의문사 피해자 고 김훈 중위 19주기 추모미사가 거행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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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역시 대단한 변화이다. 국방부가 그동안 외면해 온 군의문사 유족의 고통에 대해 엄청난 개선 노력을 기울인 결과임을 나 역시 인정하고 이는 분명 평가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다시 가야할 또 다른 숙제가 확인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군의문사 유족들은 군에서 죽어간 이들의 순직 결정을 통해 명예를 회복시켜 달라고 국방부에 요구해 왔다. 그리고 그러한 유족의 눈물에 대해 송영무 국방 장관 체제하에서 과거와 달리 대폭 수용하고 관행 개선을 위해 노력해 준 덕분에 오늘과 같은 결과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제, 다시 또 시작해야 한다. 명예회복은 당연한 일이고 '왜 죽었는지, 누가 죽였는지, 그리고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한' 진실 규명이 반드시 필요하다. 허원근 일병과 김훈 중위처럼, 그리고 일반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수많은 이들이 외치는 의문사를 규명해야 할 새로운 길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군복을 입고 죽어간 군인은 모두 국가 책임이다. 당연히 그들의 명예를 회복하여 순직 인정해 줘야 한다. 이러한 토대위에서 조속한 일시 내에 중단된 군 의문사 진상규명을 시작해야 한다.

이를 위한 국가 차원의 조사기구가 재출범해야 한다. 이를 통해 허원근 일병이, 그리고 김훈 중위가, 또 수많은 이 땅의 군인들이 어찌 죽었는지 밝혀 그들 유족에게 진실을 알려줘야 한다.

김훈 중위가 순직 결정이 되었다고 '이제 끝이라고 여기는 분이 있다면' 기억해 달라. 끝날 때까지 끝이 아님을. 다시 진실 규명을 위해 싸울 것이다. 순직 결정을 받기 위해 싸운 것이 아니라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싸워온 것이고,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정의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김훈 중위의 명복을 빌며 그 가족에게 깊은 위로를 전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고상만 시민기자는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의문사위) 전 조사관입니다.



태그:#김훈 중위, #김훈, #군의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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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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