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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에 비해 비교적 화창한 5월의 어느 일요일 아침, 시뇨리아 광장 주변은 여성 단축 마라톤 대회 참가자들의 야광 연두색 물결로 가득했는데 다들 들뜨고 밝은 표정이었다.

 여성단축마라톤 대회 참가자들
 여성단축마라톤 대회 참가자들
ⓒ 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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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463 계단을 밟아 두오모 돔 등반이라는 첫 번째 큰 숙제를 무사히 마친 후, 오늘은 두 번째 큰 숙제를 위해 우피치 미술관(Galleria degli Uffizi)으로 향했다. 규모는 크지 않아도 꼭 한 번은 봐야할 르네상스 걸작들이 많다는 그곳에서 얼만큼의 북새통을 치러야 할지 다소의 우려를 안고 도착하니, 역시나 두오모 못지 않은 인파와 긴 줄의 행렬이 기다리고 있었다.

예매는 했어도 최소 한 시간 이상의 기다림은 기본인 터라 달관한 마음으로 느긋하게 줄을 섰는데, 참고로 말하면 예매 내역의 인쇄물이 필요하다는 얘기들이 있지만 다행히 모바일만으로도 확인이 가능했다.

 우피치 미술관의 어느 전시실
 우피치 미술관의 어느 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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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의 비너스의 탄생(La Nascita di Venere)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의 비너스의 탄생(La Nascita di Ven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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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비너스의 탄생' 앞에는 역시나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려 있었지만 예상과는 달리 파리 루브르의 '모나리자' 만큼은 아니었다. 그림 앞의 전쟁통은 역시나 루브르를 따라갈 데가 없는 듯하다.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의 프리마베라(La Primavera)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의 프리마베라(La Primav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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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아리아드네(Arianna addormentata  기원전 3세기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이 조각품은 지난 2012년 220년 만에 다시 원래의 자리인 우피치 미술관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 잠자는 아리아드네(Arianna addormentata 기원전 3세기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이 조각품은 지난 2012년 220년 만에 다시 원래의 자리인 우피치 미술관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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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서양미술을 모른 채로 유럽의 유명 미술관을 다닌 게 처음은 아니지만, 어쩐지 이날 만큼은 미리 공부를 좀 해 둘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품들에서 느껴지는 장중함이 어느때보다 컸다. 어쩔 수 없이 귀국한 후에야 그때의 사진들을 정리하고 자료를 찾아보며 감동을 되새기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미술관 밖은 관람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여전히 붐볐다.
 미술관 밖은 관람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여전히 붐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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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피렌체에서 계획했던 두 개의 큰 숙제를 마치고 나니 진이 다 빠져 숙소로 돌아왔다. 이 숙소의 최대 장점이 바로 두오모 광장과 기차역이 지척에 있다는 것인데, 관광 중에 휴대폰 충전이 필요하거나 잠깐 쉬고 싶을 때마다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나가곤 했다. 

텅 빈 방에서 홀로 침대에 누워 쉬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며 주인장이 어떤 젊은 프랑스인 여성 한 명을 데리고 들어온다. 어젯밤까지 신나게 코를 골던 이탈리아 가족이 떠나고 그녀가 안쪽 독방을 쓰게 됐는데, 잠시 후 훤칠한 키의 그녀가 씩씩하게 걸어오더니 인사를 청한다.

몽펠리에(Montpellier)의 한 샾에서 일한다는 그녀는 나흘 간의 휴가를 내서 홀로 피렌체로 여행을 왔단다. 과거에 상사의 배려로 1년 간 무급 휴가를 썼던 적이 있기에 이번에는 긴 휴가를 낼 수 없었다는데, 큰 회사도 아니고 작은 샾에서 개인에게 1년의 휴가를 줬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그녀 또한 그런 점에 대해 무척 고마워한다고 했다.

바닥에 먼지가 공이 되어 굴러다니는 걸 보니 청소를 제대로 안 하는 모양이라며 툴툴거리더니, 몽펠리에는 딱히 유명한 관광지도 없고 따분한 곳이라며, 피렌체는 처음인데 추천할 만한 곳이 있냐고 묻는다. 제일 먼저 두오모와 우피치 미술관을 권했더니 꼭 거기를 가야 하냐고 묻는다.

나 : 아니 뭐, 너의 선택이지만 그 둘이 피렌체에서 가장 유명한데 나흘 씩이나 있으면서 거길 안 가면 어딜 가려고?

그녀 : 그래? 그냥 표 사서 구경하면 되는 거야?

나 : 그래도 되지만 예매를 하는 게 좋을 걸. 안 그러면 종일 줄 서야 해.

피렌체에 대해 아무 정보도 계획도 없이 무작정 온 듯한 그녀는 학창시절 피렌체로 수학여행 올 기회가 있었는데 아버지가 경비 500유로를 내주시지 않는 바람에 가질 못 했단다.

나 : 뭐? 니네도 수학여행갈 때 학교에 500유로 씩이나 내야 해?

그녀 : 당연한 거 아냐? 먹고 자고 이동하려면 돈이 들잖아.

나 : 그건 한국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프랑스는 좀 다른 줄 알았지.

그녀는 아버지가 왜 돈을 주시지 않았는지는 모르지만 언니의 수학여행 경비는 대주셨다면서 불공평하다고 입을 삐죽거린다. 문득 나 역시 가정형편 때문에 중학교 때 경주로 수학여행을 못 갔던 기억이 떠올라 그녀에게서 잠시 동병상련을 느꼈다. 국적을 불문하고 가난은 누구에게나 아픈 기억으로 남는다.

나 : 근데 이번에 대통령 선거에 투표했어?

그녀 : 했지.

나 : 개인적으로 '마크 롱(Emmanuel Macron)' 후보 참 맘에 들더라. 잘 생기고 아내와의 로맨틱한 스토리 하며...

그녀 : 흥, 그건 알 바 아니고. 그는 정치인이 아니야. 단지 돈만 밝히는 금융인일 뿐이지. 그가 추진하려는 정책이 뭔 줄 알아? 집 있는 사람들에게서 세금을 추가로 걷으려는 거야. 안 그래도 오래도록 힘들게 집 대출금을 갚고 이제야 내 집을 갖게 됐는데 또 세금을 매기려는 거라고.

나 : 부자들에게서 세금을 더 걷으려는 건가?

그녀 : 집 있다고 다 부잔가? 집은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거야. 그리고 평생 대출금과 이자를 갚아왔는데 집에 대해 또 돈을 내라는 건 부당해.

나 : 사실 우리도 이번에 대통령 새로 뽑았어. 그전에 여성 대통령이 있었는데 그녀와 측근들이 하도 나쁜 짓을 많이 해서 국민들이 내쫓았거든.

그녀 : 어, 정말이야?

나 : 그래서 난 이번에 난생 처음 파리의 한국 대사관에서 투표했는 걸. 어쨌든 니네나 우리나 비슷한 시기에 대통령을 새로 뽑았는데 다들 잘 했으면 좋겠다.

그녀 : 글쎄, 두고 봐야지.

 파리의 마레(Marais) 지구 어느 거리에 붙은 포스터
 파리의 마레(Marais) 지구 어느 거리에 붙은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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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선거 때만 해도 그의 반대파들의 세력도 만만치 않았는데, 최근에 이런저런 이유로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이 더욱 급락했다는 기사를 보니 프랑스 정치권의 앞날이 더욱 불투명해질 것 같기도 하다.

 광장에 오르기 전에 만날 수 있는 멋진 장미정원(Giardino delle Rose)에서 5월의 장미향과 더불어 로맨틱한 분위기에 흠뻑 취할 수 있다.
 광장에 오르기 전에 만날 수 있는 멋진 장미정원(Giardino delle Rose)에서 5월의 장미향과 더불어 로맨틱한 분위기에 흠뻑 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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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렌체 전경
 피렌체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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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서 어느 정도 충전이 된 것 같아 미켈란젤로 광장(Piazzale Michelangelo)을 찾아 나섰다. 높은 언덕의 정상에 오르는 길이 생각보다 꽤 힘들었지만 그곳에 도달했을 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 모든 것을 한 번에 상쇄시키기에 충분했다.

땀에 흠뻑 젖은 채로 당도한 탁 트인 광장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주변 풍경을 둘러보았다. 아래로 보이는 모든 경치가 아름답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멋진 샷을 담을 수 있는 곳은 역시나 경쟁이 무척 치열해 한참을 기다려 겨우 한 컷을 담을 수 있었다. 사실 이곳은 야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터라 처음엔 완전히 어두워질 때까지 버텨보려고 했지만, 여자 혼자 몸으로 그렇게 오래 있기가 왠지 꺼려져서 해가 적당히 저물어갈 때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내려와야 했다.

그렇게 오래도록 기대해왔던 피렌체에서의 마지막 관광을 끝내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덧붙이는 글 | 추후 개인 블로그 http://arinalife.tistory.com/에 게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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