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택배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닌 사장님이기에, 다쳐도 쉬지 못하고 배송을 해야 한다.
▲ 다쳐도 쉬지못하는 택배노동자 택배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닌 사장님이기에, 다쳐도 쉬지 못하고 배송을 해야 한다.
ⓒ 김진일

관련사진보기


[장면①]
일 하다가 다쳤는데, '산재' 아닌 '사고'라니

국내 대형 택배회사에서 1년 반 동안 근무한 A씨는 하루에 3시간 이상 자본 적이 거의 없다. 대다수 큰 택배회사들이 그렇듯 매일 쏟아지는 물량을 그날 다 처리하려면 오후 10시, 11시를 넘기는 건 기본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A씨는 얼마 전 중소택배회사로 옮겼다. 그러나 A씨를 기다리고 있던 건 40kg짜리 쌀부터, 자전거, 장롱만 한 짐 등 대부분 무거운 택배들이었다.

결국 A씨는 무거운 택배를 나르다 어깨뼈가 골절됐고, 수술 후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다. 8주 진단을 받았지만, 재활치료 기간까지 생각하면 당분간 무거운 짐을 들어야 하는 택배 일은 못할 상황. 그가 가장 억울해 하는 건, 개인사업자라 산재 혜택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A씨는 "산재 혜택도 못 받고 사고 처리를 하니 어이없다. 택배 종사자에 대한 국가적 보호 장치를 어서 마련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면②] 매일 7시 30분부터 시작되는 '무보수 노동'

찌는 듯한 더위로 공기까지 뜨거워져 숨을 훅 들이마시면 폐까지 타버릴 듯했던 지난 8월 어느 날. 택배 물건들이 모이는 '터미널' 내 공기는 상상 이상이었다. 한 대형택배 노동자인 B씨는 매일 오전 7시 30분부터 시작되는 '하차분류작업'에 참여하기 위해 이날도 동료들과 다닥다닥 붙어 물건을 정리했다. 누가 봐도 분명 '일'을 하는 것이지만, '하차분류작업'에는 따로 돈이 지급되지 않는다. '무보수 노동'인 것이다. 회사는 "당신들이 배송할 물건, 직접 골라가는 거다"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대다수 택배 노동자들은 이 상황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지만, 누구 하나 감히 나서지 못한다. 엄연한 '을'이기 때문에.

74시간.

택배 노동자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이다. 5일제로 하루 8시간씩 근무하는 노동자와 비교했을 때 34시간, 그러니까 4일 정도를 더 일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과도한 노동으로 과로사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우체국 집배원만큼 과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매순간 생명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는 택배 노동자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건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밝힌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정책들"이다.

높은 업무강도 이외에 택배노동자들은 온갖 갑질로 고통받고 있다. 계약을 맺은 대리점 사장이 제 마음대로 수수료(운임)를 깎아도 택배노동자들은 아무런 대꾸를 못 한다. 상시적으로 계약해지(부당해고) 위협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또 택배회사는 여러 지침과 다양한 패널티 규정으로 택배노동자를 옥죄고 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택배노동자들의 '권익 보호'가 우선돼야 할 것 같지만, 사실상 대한민국에선 어렵다. 매일 택배를 가득 실고 우리 집, 옆집, 앞집을 찾는 택배 노동자들은, '특수고용노동자'로 노동자가 아니라 '사장님(개인사업자)'이기 때문이다.

택배회사 '꼼수' 때문에 사장님이 된 택배 노동자

택배노동자들은 따로 식사시간이 없기에, 오전 하차분류작업 도중 터미널 한켠에서 끼니를 때우곤 한다.
▲ 바닥에 앉아 식사하는 택배노동자들 택배노동자들은 따로 식사시간이 없기에, 오전 하차분류작업 도중 터미널 한켠에서 끼니를 때우곤 한다.
ⓒ 김진일

관련사진보기


'특수고용노동자'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비용을 줄이려는 자본의 요구로 등장했다. 재벌들이 정규직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교체할 때 택배회사들은 더 악랄한 '꼼수'를 찾아냈다. 바로 택배노동자를 '사장님'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택배회사 입장에서는 고정급 없이 배송하는 만큼 돈을 주면 되고, 4대 보험 안 들어줘도 되고, 배송에 필요한 차량, 보험료, 유류비, 사고로 인한 비용 모두 택배노동자에게 떠넘겨도 되니 너무나 매력적인 '발명품'이었을 거다. 그러나 택배노동자에겐 '날벼락'과 같은 상황이었다. 일 시킬 때는 마치 직원처럼 부리다가 책임질 일이 생기면, 모른척하는 택배회사와 '노동자가 아니니 보호해주기 어렵다'는 정부까지. 거기다 매년 꼬박꼬박 부가세, 소득세를 내며 납세의 의무를 지지만 국가는 권리를 보장 해주지 않는다.

역대 정부는 특수고용노동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조치를 취했다. 참여정부는 2006년 비정규직 관련법을 개정하면서 특수고용직 제도개선 방안에 대해 다뤘지만 '논의만' 했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일부 특수고용 직종에 산재보험 임의가입을 허용하는 제도를 마련했지만, 근본문제인 노동자성 인정은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국가인권위원회가 노동부장관과 국회에 '노동3권 입법화'를 권고하고, 4대보험중 산재보험에 이어 고용보험 가입 의무화를 추진하는 등 의미 있는 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근본적 개선방안은 요원하다.

혹자는 후보시절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을 약속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었으니 조금 더 지켜보자 할 수도 있지만, 마냥 기다리기에 택배노동자가 처한 현실은 너무나 열악하다. 오늘도 네이버 밴드 '택배기사권리찾기모임'에는 택배회사의 횡포와 대리점 사장의 갑질,  살인적 장시간 노동 등으로 고통 받는 택배노동자들의 절절한 호소가 올라오고 있다.

전국택배노조가 생긴 뒤 바뀐 많은 것들

7월 23일 전국 택배노동자들은 청와대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노동3권 보장을 축구하였다.
▲ 노동3권보장촉구택배노동자 결의대회 7월 23일 전국 택배노동자들은 청와대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노동3권 보장을 축구하였다.
ⓒ 김진일

관련사진보기


문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노동자들이 스스로 단합된 힘으로 자신들의 권익을 키워나"가기 위해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말은 노동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택배노동자에게 노동조합이 너무나 절실한 이유와 같다. 그런데 택배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법적으로 노동조합을 설립할 권리조차 없다.

정부가 당장 보호해줄 수 없다면 스스로 권리를 지킬 수 있게 노동조합이라도 보장하라는 것은 너무나 상식적인 요구이다. 노동조합은 택배 현장의 여러 불합리한 일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는 '현장 촛불'이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이 있으면 택배노동자들은 현장의 문제들과 일하며 겪는 부당한 문제들에 대해 공론화하고 사회적으로 해결방안도 모색할 수 있다.

실제로 올해 1월 8일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8월 31일 노조설립 신고를 낼 예정)이 출범한 이후에 택배노동자의 삶은 조금씩 바뀌고 있다. 아직 법외노조 신분이지만, 회사 합병으로 하루아침에 해고당한 택배노동자들이 일자리를 되찾았고, 대리점 사장에게 체불임금을 받아냈으며, 온갖 악행을 저지른 악덕 대리점 사장을 현장에서 몰아냈다. 또한 많은 택배노동자들이 무임금 노동에 대한 대가 지급, 배송 수수료 올리기 등을 위해 오늘도 노동조합과 함께 싸우고 있고, 이로 인해 또 많은 것이 바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초 재벌경제가 "공정한 시장을 어지럽혔"고 "반칙과 특권, 부정부패로 서민경제를 무너뜨렸"기에, "재벌적폐를 청산해야 우리 경제를 살리고, 국민 모두 잘 사는 나라로 갈 수 있"다고 밝혔다.

재벌경제의 이런 적폐가 만연한 곳이 바로 택배산업이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택배노동자를 비정규직보다 못한 처지인 특수고용노동직으로 내몰았고, 택배업계 1위 CJ대한통운은 "저단가 후려치기"로 택배시장의 혼란을 조성하고 있다. 택배회사가 대리점 사장이 택배노동자에게 행하는 온갖 갑질을 묵인하며 많은 불공정 행위가 양산되고 있다. 이러한 택배현장의 적폐청산은 택배노동자들의 권리 증진에 기여할 뿐 아니라, 현 정부 정책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하려면 노동조합은 너무나 필수적이다.

또 택배노조는 정부의 '특수고용노동자 정책'에도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현재 택배노동자는 4대보험 중 유일하게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하지만, 산재보험에 대한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고 택배회사와 대리점 사장의 방해 때문에 산재보험 가입율은 10%를 밑돌고 있는 실정이다. 즉, 택배노동자의 권익 증진에 도움이 되는 정책이 시행되더라도 현장에서 이를 제대로 알리고 실행할 노동조합이 없다면 실효성이 없다.

문 대통령, 특수고용노동자 권리 증진에 나서주길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5월 12일 인천공항을 찾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를 선언했다. 이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흐름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고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던져주었다.

이제 문재인 대통령이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권리 증진에도 적극 나서주길 바란다. 최소한 택배노동자 스스로 권리를 지켜나갈 노동조합을 보장해줄 것을 요구한다. '고쳐야할 법 규정'을 핑계로 자신의 책무를 회피하지 말고, 노동3권을 약속했던 만큼 전향적인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구한다.

* 청와대 온라인 1만명 청원 운동 :  "택배기사도 노동조합 설립필증이 필요합니다"
☞클릭 http://bit.ly/2xG6rNS
- 청원에 "동의합니다" 댓글 달기 (SNS계정 로그인)
- 개인 SNS에 청원 공유하기 / 가족,친인척,지인 등과 단톡방에 공유하기


태그:#택배노동자, #노동3권, #택배연대노조, #택배노동조합, #택배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택배연대노조 정책국장입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