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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2년간 수감생활을 한 한명숙 전 총리가 23일 새벽 경기도 의정부교도소에서 만기출소하고 있다.
▲ 2년 만기출소 한 한명숙 전 총리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2년간 수감생활을 한 한명숙 전 총리가 23일 새벽 경기도 의정부교도소에서 만기출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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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수감됐다가 지난 23일 만기 출소한 한명숙 전 국무총리를 놓고 여의도의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기소도 잘못됐고, 재판도 잘못됐다"면서 지난 정권 시기 한 전 총리에 대한 검찰 수사와 법원 판결 결과를 '사법개혁'의 이유 중 하나로 내세우면서다.

이용호 국민의당 정책위의장은 24일 국회에서 연 원내정책회의에서 "한명숙 전 총리는 유관순 열사도, 넬슨 만델라 대통령도 아니다"라면서 "검은 돈을 받고 징역형을 살고 나온 사람"이라고 지적했다. 또 "(민주당의 주장은) 법치주의 근간을 흔드는 매우 위험한 사고다. 민주당이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볼 수밖에 없다"라며 이번 문제를 대법원장 후보자 인준 문제와도 연계할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다른 야당의 입장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재만 한국당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정권 잡았다고 사법부 판결조차 부정하는 문재인·민주당 정권"이라며 문 대통령은 물론 국회의장·헌법재판소장·중앙선거관리위원장 등 헌법기구 수장들이 민주당의 주장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러한 야당의 비판을 무리한 정치공세로 볼 순 없다. '사실'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2015년 8월 20일,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한 전 총리에게 징역 2년과 추징금 8억8천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그렇다면 민주당의 주장이 무리한 것일까? 2010년부터 2015년까지 5년 넘게 이어졌던 한 전 총리에 대한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의 쟁점을 되돌아보면, "기소도, 재판도 잘못됐다" 혹은 "억울한 옥살이였다"는 주장 역시 터무니없다고 단정하긴 힘들다.

기소 때부터 '정치수사' 입길 올라, '별건수사' 논란 땐 한나라당도...

한명숙 전 총리는 2009년 11월, 2010년 4월 두 차례 불법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대한통운 비자금 사건을 수사 중이던 검찰은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2006년 12월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당시 총리였던 한 전 총리에게 인사 청탁 명목으로 5만 달러를 건넸다는 진술을 받고 그를 기소했다.

그러나 이는 곧장 '정치수사'라는 비판을 받게 됐다. 검찰 진술 때는 "돈을 직접 전달했다"고 했던 곽 전 사장이 법정에서 "총리 공관 오찬 모임을 마치고 의자에 (돈을) 두고 나왔다"고 말을 바꿨다. 이를 두고 총리 공관에서 현장검증을 벌이는 진풍경까지 연출됐다.(관련기사: 검찰 "한 전 총리, 돈봉투 서랍장 넣었다" 한명숙 "난 저 서랍을 쓴 적도 없는데..." ) 더욱이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곽 전 사장을 심리적·육체적으로 압박한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면서 이 사건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됐다.

이에 검찰은 또 다른 사건을 꺼내들었다. 2010년 4월 9일, 대한통운 뇌물사건이 무죄로 선고 나던 날, "한 전 총리가 2007년 3~8월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로부터 세 차례에 걸쳐 9억여 원의 불법정치자금을 받았다"면서 한 전 총리를 재차 기소한 것이다. 이것이 2015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유죄 선고를 받은 사건이다.

당장, '별건수사' 논란이 불거졌다. 한 전 총리가 2010년 지방선거의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였던 점도 한몫했다. 검찰은 "제보가 들어왔고 공소시효 문제 때문에 신속히 수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에서조차 비판이 나올 정도였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가 당시 라디오 인터뷰에서 "1심에서 무죄가 날 것 같으니까 또 하나를 찾겠다는 것은, 검사가 당당한 태도가 아니다. 증거가 있다면 지방선거가 끝난 뒤에 당당히 수사해야 한다"고 검찰을 비판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또 다시 법정에서 벌어진 뇌물공여자의 진술 번복, 검찰은...

보수단체인 ‘엄마부대’ 주옥순 대표와 회원들이 23일 새벽 한명숙 전 총리가 만기출소하는 경기도 의정부교도소앞에서 한 전 총리를 비난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엄마부대, 한명숙 만기출소 교도소앞 시위 보수단체인 ‘엄마부대’ 주옥순 대표와 회원들이 23일 새벽 한명숙 전 총리가 만기출소하는 경기도 의정부교도소앞에서 한 전 총리를 비난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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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사건 역시 '정치수사'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앞서 무죄를 선고받았던 사건 때처럼 '뇌물 공여자'였던 한만호 전 대표의 진술 역시 법정에서 바뀌었기 때문이다.

한 전 대표는 2010년 12월 20일 공판에서 검찰 진술 때와 달리 "(한 전 총리에게) 정치자금을 준 적이 없다"면서 "강압에 의해서는 아니지만 그동안 검찰에서 진술한 것은 모두 허위다. 사업 재기를 위해 거짓말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2011년 1월 5일 공판 때도 "검찰에서 한 전 총리에게 9억 원을 줬다는 진술서를 쓴 뒤에 구치소에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만들었다"며 진술조작 사실을 시인했다. (관련기사 : "한명숙 9억원 수수 이야기, 1시간 만에 급조" )

다만, 검찰은 대한통운 뇌물사건 때와 달리 돈이 오간 정황증거를 제시했다. 우선, 한 전 대표가 2007년 3월 말 한 전 총리에게 건넸다고 진술한 3억 원 중 수표 1억 원이 한 전 총리 여동생의 전세자금으로 사용된 증거를 제시했다. 또 2008년 2월 한 전 총리가 입원 중이던 한 전 대표를 병문안한 다음날, 한 전 총리의 비서 김아무개씨가 2억 원을 한 전 대표에게 반환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특히 2억 원을 반환한 날, 한 전 총리와 한 전 대표가 30초간 통화한 사실도 있다고 부연했다.

한만호 전 대표는 이 3억 원을 한 전 총리의 비서 김아무개씨에게 빌려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씨 역시 "3억 원을 빌려 그 가운데 2억 원은 한 전 대표에게 돌려주고, 나머지 1억 원은 한 전 총리의 여동생 전세자금으로 빌려줬다가 돌려받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한 전 총리의 여동생이 김씨에게 갚은 1억 원은 4장의 수표 원본으로 법정에 제출되기도 했다. (관련기사 : 한명숙에 건너갔다는 1억 수표의 진실은? )

이러한 주장만 보면 한 전 총리가 직접 돈을 받아썼다는 증거는 없는 셈이었다. 그러나 검찰은 비서 김씨를 한 전 총리의 '심부름꾼'으로 간주하고 재판을 밀어붙였다.

대법원 판결 이후 '공판중심주의' 후퇴 논란까지

이에 대한 1심과 항소심의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여동생이 사용했다는 것만으로 한 전 총리가 수표 1억 원을 한 전 대표에게 받았다고 곧바로 추단할 수 없다", "병문안 전후로 통화했다는 사실만으로 2억 원의 반환 주체가 한 전 총리라고 인정하기 어렵다"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은 이와 정반대의 결론을 내리면서 유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항소심의 결론을 그대로 수용했다. 다만, 당시 재판에 참여한 대법관 13명 중 8명은 '한 전 총리가 9억여 원의 불법정치자금을 받았다'는 검찰 공소 내용을 모두 인정했지만 나머지 5명의 대법관은 서로 돈을 주고받은 정황 증거가 드러난 3억 원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했다.

'최종 결론'이 나온 셈이지만 논란은 여전했다. 특히 대법원이 이 사건에 있어서 공판중심주의를 무시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같은 사람이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을 법정에서 번복했을 때 재판부가 진술을 뒷받침하는 객관적인 자료가 있지 않는 한 법정에서의 증언에 더 무게를 두도록 한 '공판중심주의'는 참여정부 이후 형사 재판의 기본원칙으로 꼽힌다.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 과정에서 비슷한 우려가 드러났다. 한만호 전 대표가 당시 검찰 조사를 위해 70회 넘게 서울중앙지검을 드나들었는데 검찰에서 법정에 제출한 기록은 진술서 한 부와 다섯 번의 조사 내용을 기록한 조서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소수의견을 냈던 대법관 5명은 "한만호가 일단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진술을 하자, 검사가 번복하지 않도록 부적절하게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원심(항소심)이 한만호를 직접 증인으로 신문하지도 않고 1심 판단을 뒤집은 것은 공판중심주의 등 형사소송의 기본원칙에 비추어 적절하지 않다"고 의견을 남겼다. (관련기사 : 수사기록 아닌 재판기록 던져버린 대법원 )

대법원이 2002년 박종진 전 경기도 광주군수 뇌물 사건에서 "수사나 재판이 진행 중이거나 임박한 자신의 상황을 모면하려는 동기가 있는 금품 공여자의 진술은 쉽게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던 것과도 반대되는 선고이기도 했다. 당시 한만호 전 대표는 2008년 한신건영 부도 후 사기죄로 징역 3년형을 받고 복역 중이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한 전 총리의 변호인단은 한 전 대표의 '접견표' 등을 근거로 '검찰에서 9억 원의 정치자금을 건넸다는 한 전 대표의 진술을 유지하기 위해 한 전 대표의 횡령 혐의를 따로 조사하는 정황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태그:#한명숙, #사법개혁, #민주당, #공판중심주의, #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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