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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미니즘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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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이 페미니즘을 공부하며 달라졌다. 페미니즘을 알기 전에는 성희롱, 성추행을 당해도 '조숙하게 행동하지 못한' 내 탓이었고, 어린 여자 주제에 가만히 잊지 못한 내 탓이었다. 교회 청년부에선 "여자애가 컴퓨터 자격증 공부해서 뭐해. 넌 그냥 가만히 있다가 시집 잘 가면 되지"라는 말을 들었다. 타자의 언어와 내 언어를 동일시했고, 폭력적 가부장 문화 때문에 나의 자존감은 추락했다.

2016년 내내, 매주 수요일 혹은 토요일 합정역 근처 말과 활 아카데미의 '감응의 글쓰기 강의'에 참여했다. 강의 내내 <페미니즘의 도전>, <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 등의 페미니즘 도서를 읽고, 내 삶을 페미니즘으로 해석하는 글을 쓰고 나니 신세계가 열렸다

글쓰기 교실에서 학인들과 서로의 삶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솔직하게 얘기할수록 성희롱과 성추행의 기억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졌고, 폭력적 가부장 주의에 예민해지고 당당해졌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버스 정류장에서 "나랑 결혼하면 미국 영주권 나오는데, 내 애기 낳아 줄래?"라며 히죽거리던 남자에게 "나는 페미니스트야! 여자들은 너 같은 쓰레기 도움 없이도 잘 먹고 잘산다!"라고 외치며 뱃속부터 끌어올린 목소리로 욕설과 고함을 퍼부었다. 성희롱이나 성추행당할 때 얼굴 빨개져 가만히 속으로만 삭이던 나는 더는 없었다.

다만, 내 통장은 강의비 때문에 헐거워졌다. 가부장제에서는 조금씩 자유로워졌지만, 자본주의에는 여전히 묶여 있었다. 부모님과 같이 살긴 해도 도시에서 살며, 강의비까지 내려면 한 달 100만 원 이상의 생활비가 들었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열악한 노동계층인 자영업자였고, 주 7일을 근무했다.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기 어려웠다. 가부장 주의의 폭력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살려면 인문학도 필요하지만, 자본주의의 폭력에 맞서려면 다른 게 필요하지 않을까. 의문은 미국 친구 헤이워드를 만나면서부터 시작됐다.

졸업 후 한번도 취업하지 않았다는 친구 헤이워드

10평자리 원목주택 프리건 헤이워드가 짓고 있는 원목주택
▲ 10평자리 원목주택 프리건 헤이워드가 짓고 있는 원목주택
ⓒ 조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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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코네티켓의 숲속에 사는 헤이워드는 25살, '프리건'이다. 프리건은 영어 단어 프리(Free)와 완전 채식 뜻하는 비건(Vegan)의 합성어이다. 프리건은 '이윤창출만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인권, 동물권은 등한시 여기는 구조'에 반대한다. 주로 덤스터 다이빙으로 음식, 생필품을 조달하고 최대한 현금사용을 자제한다. 많은 프리건들이 물물교환을 하거나 자급자족으로 산다. 헤이워드 역시 1주일에 한두 번씩 덤스터 다이빙을 간다. 달걀, 토마토 등의 식료품부터 개 사료, 세탁 세제 등의 생필품도 덤스터 다이빙으로 해결한다. 그는 주말에는 도시에 나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탄핵 집회, 뉴잉글랜드 지역 독립 집회 등 사회운동에 참여한다.

헤이워드가 주류사회의 방식에 억눌리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건 자기 몸에 밴 손기술 덕분이었다. 손기술이 좋아 가전제품을 고치고, 집수리하는 일로 현금을 얻는다. 헤이워드는 예산 9천만 원을 들여 2층짜리 10평 원목 집을 짓고 있다. 이어폰이 고장 나도, 새 이어폰을 사지 않고 전선 피복을 벗겨 고쳐 썼다. 덤스터 다이빙을 해서 찾은 비누가 친환경 제품이 아니면, 뒷마당에 핀 야생화를 꺾어 친환경 비누를 만들었다. 그는 얼마 전 결혼도 했고, 아이들을 홈 스쿨링으로 키우고 싶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이제 겨우 25살, 헤이워드는 자기가 걷고자 하는 길에 확신이 있었다.  

헤이워드는 대학에서 컴퓨터 그래픽을 전공했지만, 졸업 후 한 번도 취업하지 않았다.

"회사에서 9시부터 6시까지 일하는 삶은 너무 지겨워. 난 개인시간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겨.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지도 못하고, 남의 결정을 따라서 사는 삶을 절대 살고 싶지 않아."

페미니즘을 비롯한 인문학 공부를 하며 가부장주의 언어, 세계관에서 벗어나 나 자신의 언어로 가부장주의의 폭력성에 맞서며 자아를 지키는 법을 배웠다. 헤이워드의 삶을 통해서는 내가 내 몸을 움직여 물건을 만들고 고칠 수 있다면,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자본주의 명제에서 내 삶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궁금해졌다.

한국에 돌아가면 나는 이 둘 중 어느 것을 더 집중해서 취해야 할까, 아니면 둘 다 엇비슷하게 손에 쥐려고 노력해야 할까. 과연 여행에서 배운 대로 살 수 있을까. 여행이 내게 준 물음에 아직 답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내 삶은 가부장 주의와 자본주의 속에 끼워 맞추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갈수록 확고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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